309화
어느 건축가의 인생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조용하고 아늑한 사무실.
따뜻한 색감의 나무 탁자 위에선, 타자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타자를 치는 사람은, 하얗고 긴 손가락을 가진 여성이었다.
딸깍- 타타타닥- 다다닥-!
타자 소리가 퍼져나갈 때마다, 작은 모니터 위의 하얀 화면을 까만 글씨들이 차분히 채워 나갔다.
하얀 조판 위에 쓰여 내려가는 글씨들은 제법 정갈했다.
이미 페이지 수도 제법 많은 것을 보면, 단순히 문서작업은 아닌 듯하였다.
탁-
그녀가 검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엔터키를 누르자, 문단이 넘어가며 글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화면의 상단에, 그녀가 작업 중인 파일의 이름이 떠올랐다.
[어느 건축가의 인생]
그것은 에세이 같기도, 수필 같기도. 혹은 자전적 소설 같기도 한 모호한 이름이었다.
또르륵-
잠시 집필을 멈춘 그녀는, 탁자 위에 올려있던 주전자를 들어 유리컵 위에 커피를 따라 올렸다.
비어있던 잔에 따뜻한 커피가 반쯤 들어차자, 그 향을 음미하며 한 모금 커피를 홀짝였다.
커피가 조금 뜨거웠는지, 인상을 살짝 찡그리는 여자.
이어서 그녀의 손은 다시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딸깍-
“이쯤 썼으면 어디 한 번……. 퇴고나 해 볼까?”
화면 우측의 스크롤을 쭉 올리자, 네댓 페이지 정도가 순식간에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리고 그 첫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22세, 늦깎이 대학생의 도전]
그녀는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 * *
아영은 디자인 잡지사 아르티카의 편집팀장이자, 건축가 서우진의 열렬한 팬이었다.
한때는 디자인을 전공했던 전공자로서.
또 한 때는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던 적이 있는 실무자로서.
건축과 디자인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여자, 손아영이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는 바로 서우진이었다.
‘내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디자이너의 모습. 어쩌면 그게 서우진일지도 몰라.’
지금 그녀의 손에서 쓰여지는 것은 바로 그 서우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것은, 이번 달 ‘아르티카’에 특집으로 실리게 될 기고寄稿글이기도 하였다.
[2010년, 군대를 전역했던 서우진 대표는 스물두 살의 늦깎이 새내기였다.]
[그리고 그는, 겉으로 보기에 아주 평범한 신입생이었다.]
[집이 부유하지도 않았으며 수석 입학을 한 장학생도 아니었고, 특별히 잘생긴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특별했다.]
[스물둘 우진에게는 명확한 꿈이 있었고, 확고한 목표가 있었으며, 누구보다 커다란 열정이 있었으니까.]
[스물두 살에는 결코 갖기 힘든, 그런 것들 말이다.]
아영이 아르티카의 편집팀에서 일한 지는 거의 십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줄곧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존경하는 디자이너 서우진.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발자취를 좇아보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어떤 인생을 살아야 이런 건축가로 성장할 수 있는지. 다른 것보다 그게 너무 궁금해.’
그래서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아영은 회사에 자처하여 이번 기획을 맡겠다고 이야기했다.
<디자이너 서우진 특집>이라는 이름으로 잡지의 삼분의 일 수준이 할애되는 이번 프로젝트만큼은, 꼭 본인이 맡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많았지만, 야근을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서우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는 이번 기회를, 팬으로서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WJ 스튜디오에서 공식적으로 협조까지 해 준다는데,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겠어?’
그래서 아영은 전체 프로젝트의 총괄 기획은 물론 이렇게 기고 글까지 자처해서 쓰게 되었고.
정말 공들여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아영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우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그가 걸어온 길의 경이로움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첫 일터에서 최고의 사업 파트너가 된 박경완 이사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며, 그해 여름에는 국민배우 임수하와의 친분까지 생기게 됐다며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생각한다. 어쩌면 운이 좋았던 것은, 오히려 그들이 아니었을까?]
스물둘에 WJ 스튜디오를 창업했다는 이야기는, 업계에서 너무 유명해 아영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WJ 스튜디오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다.
설립 첫해부터 전국의 규모 있는 아파트단지 건축모형 외주를 싸그리 쓸어 담았으며.
그렇게 생긴 시드머니로 인테리어 디자인 시장에 뛰어들었고.
당시 창업자이던 재벌 3세 석중을 어떤 식으로 구워삶아, 현재까지도 최고의 국내 커피 브랜드로 성업 중인 <카페 프레스코>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말이다.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강남 최고의 프리미엄 아파트 단지로 평가받고 있는 <청담 클리오>의 설계를 제안받았던 때가, 바로 같은 해 겨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때까지도 우진은, 고작 학부 새내기일 뿐이었다.
[필자는 그의 일생에 대한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몇 번이고 두 눈을 의심해야 했었다.]
[연도를 잘못 본 것인지, 아니면 서우진 대표의 나이를 잘못 본 것인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막힌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아영은 이번 프로젝트가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기획‧편집하는 모든 소스들 중, 단 한 가지도 진부한 것이 없었다.
[서우진 대표가 세계적인 건축가 브루노 산체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SPDC 공모전에서였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건축을 전공하는 학부생들에게는, 꿈의 공모전으로 통하는 SPDC(Seoul Public Design Contest).]
[브루노는 서우진 대표가 작품을 출품했던 당시, SPDC의 심사위원이었다고 한다.]
2010년의 SPDC에 대해서 조사할 때에는 무척이나 큰 아쉬움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SPDC에서 대상을 받았던 그 당시 서우진의 프레젠테이션 영상자료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
아영은 당시의 영상자료를 어떻게든 구해서 본 뒤 그 감동을 글로써 구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지만, 결국 그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 대신 그때의 감동을 공유해 줄 사람을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필자에게 그때의 감격을 공유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건축가 브루노였다.]
[‘아르티카’ 팀은 잠시 국내 프로젝트를 위해 방한해 있던 브루노를 운 좋게 만날 수 있었고, 그는 우리 팀과의 짧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그 프레젠테이션은,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있지요.”]
[“정말 놀라운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이었어요.”]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아마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을 겁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의 패널로 등장하여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일부러 기고 글에 다루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알리지 않더라도,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태산같이 많았다.
[디자이너 서우진을 건축가로서 성장시켜 준 초기의 작품 중, 왕십리 패러필드의 파빌리온도 빼놓을 수 없다.]
[왕십리 패러필드는, 세계적인 건축가 브루노가 디자인한 수많은 건축물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항상 꼽히는 작품.]
[전문가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디지털 패러메트릭 기법을 활용해 디자인한 서우진의 파빌리온이, ‘빛의 건축’이라고 불리는 브루노의 패러필드를 더욱 완벽하게 완성 시켰다고 말이다.]
자신의 글을 쭉 읽어 내려가던 아영은, 작업했던 페이지의 상당수에 Delete Key를 누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우진의 이야기들 중 다루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은데, 정해진 지면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말이다.
서우진이라는 건축가가 손댔던 그 수많은 프로젝트들 중, 일부를 ‘선택’해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우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안에는, ‘성수동’도 반드시 존재한다.]
[지금의 아름다운 성수동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다름 아닌 건축가 서우진이니까.]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 성수동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초고층 주거단지부터 시작해서, 한강변을 따라 조성된 아름다운 성수 한강공원과 문화시설들.]
[아직까지 서울 숲 인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는 WJ 타워는 물론, 수많은 오피스 건물들까지. 건축가 서우진의 손이 닿지 않은 지역은 성수동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성수동이 강남 못지않은 최고의 부촌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 가장 공이 큰 사람이 서우진 대표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일 것이다.]
본인이 쓴 글을 읽어 내려가던 아영은, 저도 모르게 성수동의 풍경을 떠올렸다.
그녀의 글에 쓰여 있는 이야기 그대로, 성수동은 정말 우진의 건축과 디자인이 가장 많이 담겨있는 도시였다.
성수동을 ‘서우진의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
물론 아영 또한, 그 이야기에 동의했다.
‘성수동, 정말 살기 좋은 곳이지.’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일부러 다루지 않았지만, 같은 영상매체인 <천년의 그대>는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천시의 명물인 <천년의 그대> 세트장은, 건축적으로도 뛰어난 가치를 가진 곳이었으니까.
[서우진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건축가가 된 이후, <천년의 그대> 세트장은 해외 전문가들을 통해 재평가받기도 했다.]
[세계인들에게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미래지향적이라고 느껴지는 건축이, 드라마 세트장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랍다며 말이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미래지향적인 건축’]
[서우진의 작품 ‘하늘궁전’을 이보다 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서우진의 상징과도 같은 브랜드.
<아르코> 또한 결코 빼놓을 수 없었다.
<청담 아르코>라는 이름의 도심 럭셔리 타운하우스 이후로.
우진은 전국 각지에 수많은 아르코를 탄생시켰고, 그 모든 곳을 전부 성공시켰으니 말이다.
[<아르코>는 한국에서 어느새 ‘부’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아르코>에 산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인생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어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드림 하우스로 <아르코>를 첫손에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브랜드 <아르코>를 보면서 필자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서우진 대표는 훌륭한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이지만, 그 이상으로 탁월한 사업가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영이 지금까지 작업한 분량은 여기까지였다.
지금까지의 내용만으로도, 잡지 기고 글치고는 무척이나 긴 분량.
하지만 그녀의 글은 여기서 끝일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서우진이라는 건축가의 건축 인생 절반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식어서 미지근해진 커피로 천천히 목을 축인 아영은, 의자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부터 그녀가 써 내려가야 할 내용은, 지금의 서우진을 있게 만들어준 가장 역사적인 건축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천루, 삼성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그리고 이와 동시에, 서우진이라는 건축가 인생의 2막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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