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SGBC
우진의 인터뷰는, 특히 디자인 업계에서 크게 이슈화되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우진이야 확신을 가지고 뛰어든 사업이 SGBC였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우진이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자아실현을 위해, 회사의 사활을 걸어야 할 정도로 리스키한 사업에 뛰어든 모양새였으니 말이다.
여론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디자인에 대한 우진의 신념과 배포에 대해 감탄하고 찬양하는 여론.
또 하나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기업 전체의 사활을 걸은 책임감 없는 대표라는 여론.
물론 이 중, 지배적인 여론은 긍정여론이었다.
지금까지 우진이 해낸 것들과 걸어온 길을 보았을 때, 이러한 우진의 선택이 책임감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었으니 말이다.
해당 기사가 뜬 증권 관련 사이트에는, 갑론을박하는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 와, 지분 2400억이라고? 미친……. WJ 스튜디오 대기업 다 됐네.
└ 내가볼 때 오바임 이건.
└ 뭐가?
└ 작년 초만 해도 시총 1조가 안 되던 회사가, 현금으로 2400억을 동원한다고? 대표 욕심 때문에 조만간 파산할 듯.
└ 언제는 서우진 하는 일이 말이 됐냐?
└ 인정. 대학교 1학년 때 법인 세운 놈인데, 이 정도 가지고 뭐.
└ 윗 놈은 재무제표도 볼 줄 모르는 놈인가? 내가볼 떈 WJ 스튜디오, 아직도 저평가임.
└ 이유는?
└ 동종업계 다른 업체들이랑 지표 비교해 봐라. 영업이익만 따지면 상위권 건설사들도 다 씹어 먹는 수준임.
└ 형님, 지금 사도 됩니까?
└ 뭘 사? 주식?
└ ㅇㅇ
└ 난 월급 들어올 때마다 사서 모으는 중.
└ SGBC 대박 나면, 그 땐 진짜 지붕 뚫고 날아갈 듯.
└ 지금 사러 갑니다.
└ 난 어제 다 팔았음. 지금이 꼭대기임.
└ 1년 뒤에 보자 누가 맞는지.
물론 이런 여론들에, 우진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SGBC 사업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그 순간부터, 우진의 관심사는 오로지 설계와 디자인뿐이었으니까.
아무리 우진이 국내 최고의 건축디자이너가 됐다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의 사업장을 직접 핸들링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들다.
그렇기에 우진은 어떻게든, 능력이 허락하는 한 최선의 디자인을 해 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SGBC가 지어질 삼성동은, 수많은 국제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업무지역입니다.”
“지금도 이미 다양한 업종, 다양한 문화를 가진 글로벌 기업들이 상부상조하며,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첨단 업무지구이지요.”
“게다가 영동대로 복합개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종합도시계획이 줄줄이 계획되어 있는 삼성동은, 시간이 갈수록 강남 안에서도 핵심적인 글로벌 허브가 될 입지입니다.”
“이곳 가장 높은 곳에, 저희 WJ 스튜디오의 디자인이 들어서는 겁니다.”
“그 어떤 실수도, 조금의 타협도 용납지 않겠습니다.”
“우린 오늘부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마천루를 설계하는 겁니다.”
WJ 스튜디오의 설계팀 절반 이상이, SGBC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든 직원들 또한, 우진만큼이나 비장하고 열정적이었다.
우진이 지금껏 이렇게까지 말했던 프로젝트가 없기도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다들 욕심이 생긴 것이다.
“두바이에 있는 브루즈 할리파(Burj Khalifa)처럼, 첨탑 같은 디자인은 지양하는 게 좋겠지요?”
“타이베이 국제 금융센터(Taipei World Financial Center)의 실루엣과 흡사한 방식으로, 처마의 모양을 형상화한 파사드는 어떨까요?”
“모델링을 뽑아봐야 알겠지만, 자칫 촌스러운 디자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말레이시아 트윈타워처럼, 대칭형 구조를 잡는 것도 흥미로워 보입니다.”
WJ 스튜디오에서 처음 설계하는 초고층 마천루다 보니,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건축공학 기술자들도 여러 명 섭외되었다.
우진은 특히 마천루 설계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미국과 독일의 기술자들을, 거액의 비용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영입하였다.
“조금 더 기하학적인 실루엣을 뽑아내고 싶은데…….”
“500미터가 넘는 높이의 마천루입니다. 조금만 축이 비틀어져도 역학구조가 무너질 겁니다.”
“절제된 실루엣 안에서 독특한 디자인적 아름다움을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군요.”
“그릇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담을 내용물에 주목해야 합니다.”
“내용물이라는 말씀은…….”
“물론 기하학적이고 복잡한 실루엣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디자인의 선택지가 늘어나긴 하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건축디자인이라는 것은 정해진 제약 안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하는 학문 아닙니까?”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 팀장님은, 패러메트릭 디자인을 활용해서 뽑아낼 수 있는 다양한 외관 패턴에 대해 R&D 해주세요.”
“네, 대표님.”
“그리고 전 팀장님은, 여기 김진형 박사님 모시고 정해진 구조체 안에서 모듈화 작업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아직 기간은 여유가 많이 남아 있지만, 다들 부지런히 작업해 주세요. 최대한 다양한 설계를 검토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하니까요.”
“물론입니다, 대표님. 다음 주에 시안 몇 개 뽑아 올리겠습니다.”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의 설계는, 어떤 한 사람의 역량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메인 디자인 컨셉이나 커다란 골자는 우진의 손에서 만들어지겠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팀워크인 것이다.
‘어쩌면 이번 프로젝트가, 우리 WJ 스튜디오 설계팀의 진가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
그래서 우진은 디자인과 설계 자체에 몰두하는 것 이상으로, 팀원들을 독려하고 소통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한 달, 두 달이 지났을 때.
그 노력의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저는, 무척이나 만족스럽습니다.”
“……!”
“정말입니까, 대표님?!”
“물론 이 디자인과 설계가 감히 완벽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최선의 디자인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컨셉 설계와 디자인을 뽑아내는 데만 꼬박 두 달이 걸렸지만.
드디어 디자인 계획서를 본 우진의 입에서 만족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여기서 디테일만 좀 더 챙겨 보죠.”
“기본설계 진행하면서 조금씩 수정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구체적으로 설계 들어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부분이 나올 테니까요.”
조 단위의 자본이 묶여있는 사업장인 만큼, 금융비용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천문학적인 비용이다.
그래서 설계가 진행되는 WJ 타워는 밤낮으로 불이 꺼지지 않았고, 그중에서도 누구보다도 가장 많은 시간을 설계에 몰두한 것은 바로 우진이었다.
‘단 한 줌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은 프로젝트야.’
사실 사업적인 측면에서만 봤을 때, WJ 스튜디오는 이렇게까지 사활을 걸 필요가 없었다.
경쟁자가 있는 프로젝트도 아니었으며, 그들의 설계에 태클을 걸 수 있는 클라이언트가 따로 있는 프로젝트도 아니었으니.
사실상 최소한의 인력과 노력만을 투입하는 게, 가장 많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우진의 목적은,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게 아니었다.
다만 우진이 남기고 싶은 것은, 최고의 건축이었다.
그리하여 2017년 가을.
모든 설계가 끝나고, SGBC 부지에 첫 삽을 떴을 때.
인터뷰 마이크 앞에서, 우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제 모든 것이 담긴 건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설계에 마침표를 찍은 바로 그 순간. 제게는 그 어떤 미련도, 후회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우진의 이 인터뷰는, 전 국민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 어떤 건축을 할 때도 이렇게까지 자신감을 비췄던 적은 없던 우진이었으니.
대체 그가 어떤 디자인의 어떤 아름다운 건축을 완성했는지 너무도 궁금했던 것이다.
아니, 우진의 디자인이 궁금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 뿐만이 아니었다.
작년부터 시작됐던 여러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들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우진과 WJ 스튜디오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우진의 이 인터뷰는, 외신들까지도 앞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천재적인 20대 건축가 서우진. 그의 손에서 탄생할 최초의 마천루를 조명하다.]
[삼성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SGBC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인가?]
해외의 많은 건축디자이너들도 궁금해했다.
이제 세계적인 건축가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우진이, 물리적으로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높은 마천루인 이 SGBC를 어떻게 디자인했을 지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WJ 스튜디오와 KCA인베스트먼트는, 최종 확정된 디자인을 결코 공개하지 않았다.
워낙 규모가 큰 마천루의 특성상 완공될 때까지 실루엣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미리 조감도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큰 기대감과 궁금증을 자아내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송주빈 이사의 의견이었다.
“이것만큼 좋은 마케팅 소스도 없을 겁니다, 대표님. 디자인이 공개되지 않은 마천루가 하루하루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면, 꽤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겠지요.”
“저도 동의합니다.”
“게다가 한국 최고의 건축가 서우진 대표님께서 디자인하신 작품 아닙니까?”
“하하, 과찬이십니다.”
“미리 조감도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디자인을 가진 건축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광고판이 되어 줄 겁니다.”
덕분에 각종 매체에서 가상으로 그려낸 예상 조감도들이 떠돌았지만, 그것들은 하나같이 우진의 디자인과 너무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와중에 완공된 SGBC의 모습이 가장 기대되고 궁금한 것은 다름 아닌 서우진이었다.
“공사 기간은 5년 정도라고 했지?”
“맞아, 석구. 2022년 9월이야.”
“준공 예정일?”
“그렇지.”
2017년의 10월 어느 날.
우진이 새로 입주한 펜트하우스 테라스에서,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있었다.
“내가 다 두근거리네.”
“하하, 그러냐.”
“당연하지. 내가 설계한 패턴이 들어갔잖아.”
“그랬지.”
“그리고 네 꿈이었잖아.”
“그러네.”
저녁을 먹는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아름다운 조명이 반짝이는 한강의 남쪽이었다.
성수에서 강을 건너면 청담이었고.
그 뒤가 바로 삼성동이었다.
“저기 저쪽이지?”
“아마 그럴걸?”
“그럼 몇 년 뒤에는, 저 위로 건물이 우뚝 솟아 있겠네?”
“충분히 보이고도 남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테니까.”
지금 두 사람이 앉아있는 50층 펜트하우스의 테라스에서도, 아직 SGBC 사업장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공사가 제대로 시작된 지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때문에 부지를 정비하는 작업조차 제대로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말처럼, 2020년이 지날 즈음에는 멋들어진 마천루가 보일 것이었다.
우진의 집처럼 높은 곳이 아니라도.
아니, 서울 어느 곳에 서 있더라도.
우진이 디자인하고 WJ 스튜디오에서 설계한 아름다운 마천루를 볼 수 있게 될 것이었다.
SGBC 빌딩은 마천루라는 그 이름처럼, 하늘에 닿아있는 멋진 건축물로 지어질 테니까.
“빨리 2022년이 됐으면 좋겠다. 그지?”
석현의 물음에, 우진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그래?”
“기대되기도 하면서, 반대로 두렵기도 하거든.”
그리고 우진의 그 아리송한 대답에, 석현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사람들의 평가가?”
우진은 대답 대신 빙긋 웃어 보였다.
이어서 잠시 포크를 내려놓은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테라스 난관으로 향했다.
50층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밤 풍경은, 언제나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 아름다운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5년 뒤에는 더 아름다워져야 할 텐데…….’
차갑지만 상쾌한 서울의 밤공기를 느끼며, 우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