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또 한해가 지나
우진은 VVIP들의 관리를 위해 지출하는 금액을 제외하면, <아르코> 브랜드의 마케팅 비용을 일절 투입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일주일 전 즈음, 동업자인 다진건설의 임중우 사장이 걱정스럽게 물어봤을 정도였다.
“서 대표님.”
“네, 사장님.”
“아르코 브랜드의 마케팅에 정말 이 이상 금액을 태우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하하, 이미 완판인데 뭘 걱정하시는지요.”
<청담 아르코>는 이미 완판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 우진이 이 아르코 브랜드를 얼마나 크게 키우려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임중우였다.
“당연히 이번 <청담 아르코>를 걱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요?”
“앞으로 아르코 브랜드를 더욱 성장시키려면, 이번처럼 좋은 기회도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다진건설이 <청담 아르코> 프로젝트의 동업자이긴 하나, <아르코>라는 브랜드는 오롯이 우진과 WJ 스튜디오의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스타트를 함께 끊은 회사가 다진건설인 만큼, 앞으로 진행될 아르코 사업장에 다진건설이 또 함께 참여할 확률은 높다.
그렇기에 <아르코>가 잘 되면 임중우에게도 좋은 것이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은 기회라면, 이번 아르코 갤러리 행사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지요.”
“하하, 확실히 갤러리 행사에 참석해 주신 VVIP들 면면만 생각해도, 이슈화시키기 너무 좋은 소스긴 하죠.”
“바로 그거지요.”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사장님. 계획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허허, 서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청담 아르코>의 갤러리 행사에 참가한 VVIP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이슈를 만들어낼 만한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을 거의 백 명 가까이 모은 행사라면?
다른 내용 없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수 없이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을 터다.
우진이 마음먹고 언론을 활용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진은 느긋하게 지켜봤고, 그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이미 청담 사업장의 모든 분양이 끝났으니, 급할 것이 없다.
둘째. VVIP들의 인지도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송곳은, 결국 삐져나올 수밖에 없는 법이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우진의 선택은 옳은 것이 증명되었다.
아르코 갤러리의 행사가 끝난 바로 다음 날부터, 갑자기 몇 개월 전의 기사들이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 (사진)
└ 여기 아는 사람?
└ 어, 이거 청담에 있는 건물 아냐?
└ 맞아.
└ 저기 아르코 갤러리라고 쓰여 있네.
WJ 스튜디오가 가지고 있는 청담의 아르코 갤러리 건물은, 청담 명품거리 바로 인근인 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행사를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그런 사람들은 이 행사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러니까 이름이 궁금한 게 아니고, 뭐 하는 곳인지가 궁금해서.
└ 왜? 무슨 일 있어?
└ (사진)
└ 무슨 행사라도 있는 건지, 연예인 엄청 많더라고.
└ 오……?
궁금해진 사람들은 당연히 인터넷에 검색해 보게 된다.
2013년은 이미 대부분의 것들을 검색으로 알 수 있는 시대였고, 유명인들과 연관되어있는 행사라면 더욱 검색되지 않을 리 없었으니까.
하여 이렇게, 포털 사이트에서 <아르코 갤러리>라는 이름의 검색어로 검색한다면?
사람들이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아르코 브랜드의 공식 홈페이지를 비롯한 몇몇 기사들이었다.
아르코라는 브랜드에 대한 히스토리와 디자이너 우진의 이야기.
그리고 <청담 아르코>의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갤러리의 사진들이 담긴 아르코의 공식 홈페이지.
여기에 몇 개월 전 ‘특별한 브로셔’와 관련되어 올라왔던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에 검색되니, 이것이 대중들의 입장에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 아르코? 서우진이 만든 브랜드인가본데?
└ 대박이네. 이런 집에는 대체 누가 살까?
└ 분양은 언제래요?
└ 궁금해서 전화해 봤는데, 이미 완판이래요.
우진이 한 것은 단지, 아르코 브랜드의 지난 발자취를 흥미로운 소스로 포장한 뒤 연결해놓은 정도였다.
언제든 계기만 생긴다면 불이 지펴질 수 있도록, 마른 장작을 잘 세팅해둔 뒤 시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마케팅 순서와 완전히 반대되는 전략이었다.
보통 마케팅은 최대한 노출 시켜 고객을 확보하는 방식이라면.
우진은 확실한 타겟에게 먼저 노출 시켜 상품을 판매한 뒤, 그 타겟들의 인지도와 화제성을 역이용하여 반대로 퍼져나갈 구도를 그려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브랜드에 맞는 특별한 마케팅 전략을 활용한 결과.
우진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치의 효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우진아.”
“응?”
“이번 행사에, 돈 너무 많이 쓴 것 아냐?”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이야, 누나?”
처음 예상했던 마케팅 비용의 절반도 채 사용하지 않았건만.
<청담 아르코>의 고객이자 홍보모델인 수하로부터, 지출에 대한 걱정(?)까지 들었으니까.
“그렇잖아. 케이터링이야 그렇다 쳐도, 사은품이랑 콜라보 굿즈까지……. 행사에서만 인당 몇백 이상은 태운 것 같던데?”
“흐흐, 뭐야. 우리 회사 걱정도 해 주는 거야?”
“뭐 나야 고객으로선 만족스럽지만, 너무 퍼주는 것 아닌가 해서.”
우진이 행사에서 고객들에게 제공한 굿즈는, 명품 브랜드들과의 콜라보 일환으로 특별 제작된 리미티드 에디션이었다.
작은 클러치 백이나 탁상시계 같은 종류의 물건에, 아르코와 해당 브랜드의 콜라보 로고가 박혀있는 제품.
이것들은 만약 시중에 판매됐다면 몇백만 원 이상은 충분히 호가했을 물건들이었으니, 수하로서는 놀랄만했던 것이다.
‘돈을 많이 쓴 거야 맞지만……. 그래도 마케팅 비용 아낀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뭐.’
그리고 이렇게 모든 계획들이 차곡차곡 맞아 떨어진 결과.
우진의 브랜드 <아르코>는, 점점 대중들의 인식 속에 우진이 원하고 의도했던 이미지대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서우진’이 만든 주거 브랜드 아르코. “유명인들이 더 갖고 싶어 하는 집”]
[<청담 아르코> 완판! 분양은 오로지 ‘초청’방식으로 진행…….]
[아르코 갤러리 관계자, “초청받지 못했다면, 돈이 있어도 분양받을 수 없어.”]
10월, 11월이 지나가면서, 우진이나 WJ 스튜디오에서 딱히 손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윤진명‧오윤석도, ‘겨우’ 분양받을 수 있었던 프리미엄 하우스 아르코.]
[청담동에 타운 하우스? 국내 최고의 프리미엄 주거단지, <아르코>는 어디?]
[홍보모델 ‘임수하’도 분양받았다? “이보다 더 확실한 마케팅은 없다.”]
어차피 아무나 접근하기 힘든 VVIP를 위한 브랜드지만, 대중의 관심은 도무지 식을 줄을 몰랐다.
원래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가질 수 없는 떡이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법.
그리고 우진은, 이런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마케팅 방식을 도입하였다.
청담의 다음 타자가 될 <아르코 하우스>에 입주할 고객을, 미리 ‘초대’하기로 한 것이다.
[서우진의 프리미엄 브랜드 아르코. 두 번째 <아르코 하우스>의 주인이 될 VVIP들은 누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에 지어질지, 어떤 컨셉으로 지어질지.
몇 세대로 지어질지, 분양가는 얼마로 책정될지.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는 상품을 예약판매하는, 말 그대로 ‘미친 마케팅’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러한 우진의 시도는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
계약금으로 3천만 원을 미리 지불해야 하는 이 ‘두 번째 아르코 하우스’로의 초대에, 무려 백 명의 VVIP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응한 것이다.
우진이 이 계약자들에게 약속한 것은 하나.
‘계약 취소 시 조건 없는 전액 환불’ 뿐이었다.
“진짜, 이해할 수가 없네.”
“뭐가, 형.”
“아니 그렇잖아. 실체도 없는 집 계약금으로, 3천만 원을 그냥 쏜다고?”
마케팅 회의가 끝나고 난 뒤, 대표실에 오랜만에 마주 앉은 우진과 진태.
차를 마시던 진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우진이 웃으며 대꾸하였다.
“그 사람들의 3천만 원이, 평범한 사람의 3천 원일 수도 있는 거야 형. 아, 3천 원은 너무했나? 3만 원? 아니면 30만 원……?”
“음…….”
“세상엔, 생각보다 돈 많은 사람이 많더라고.”
“하긴. 네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
<아르코>의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눈 두 사람은, 그 뒤로 브랜드의 다음 플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도 이어갔다.
외부에는 ‘두 번째 아르코 하우스’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후보지 몇 군데를 선정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평창동이라……. 확실히 부촌 느낌은 물씬 나네, 그렇지?”
“맞아. 하지만 청담 아르코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의 디자인이 될 거야.”
“아하.”
“이번에도 도심의 타운하우스 라는 주제로 시작하긴 할 텐데, 아무래도 리버 뷰와 북한산 숲세권은 다가오는 이미지가 많이 다르니까.”
“그렇겠네.”
“아마 다음 달까지 평창동 사업장 쪽은 디자인 시안 전부 나올 테니까, 1월 말쯤 해서 시공 파트 실무팀 회의 잡아 줘.”
“오케이. 알겠다.”
“청담 아르코는 준공 예정 언제로 잡혀 있지?”
“내후년 봄……?”
“좋아. 그 전에 사업장 두 곳 정도 삽 뜨는 걸 목표로 해 보자고.”
“크, 이렇게 올해도 다 지나가는구나……!”
여느 때처럼 바쁜 와중에, 2013년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매년 그래왔지만 2013년에도 WJ 스튜디오는 성장세를 더욱 가파르게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였고.
그 덕에 중소기업 브랜드 혁신 부문, 국무총리상을 표창받기도 하였다.
‘매년,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는 것만 목표로 생각했었는데…….’
2013년의 결산표를 전부 검토한 우진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창밖을 응시하였다.
새하얀 눈이 쌓여 있는 서울 숲.
강변북로를 따라 쭉 늘어서 있는 차들과, 한강 남쪽으로 멀찍이 보이는 아름다운 서울의 풍경들.
그 멋진 풍경을 내려다보며, 우진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지?’
누군가로부터 항상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야, 우진아. 근데 넌 왜 이렇게 열심히 사냐?]
[응?]
[아니, 솔직히 너 정도면 이미 성공한 거잖아. 돈도 이제 벌 만큼 벌었고.]
[그렇지……?]
[이제 좀 쉬엄쉬엄 일하면서, 놀고먹어도 되지 않아?]
반쯤 농담처럼 대답으로 돌려주었던 이야기.
[석구, 내 꿈이 뭔 줄 아냐?]
[뭔데?]
[세계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건물을, 내 이름을 걸고 서울에 짓는 거야.]
[뭐라고……?]
[그러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치?]
[야, 요즘은 초딩들도 얼마나 현실적인데. 초등학교 설문 조사에서도 그런 대답은 잘 안 나와요, 이 사람아.]
그 농담 같던 이야기를 실현시킬 수 있을 날이, 이제 머지않은 것 같다는 생각 말이었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