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Exhibition Design
마곡. 정확히는 현재 강서지역의 옛 지명은, 가양동(加陽洞)의 한강 변에 있는 암굴에서 유래한 재차파의(齊次巴衣:구멍바위)라는 이름이었다.
지금은 남서쪽의 양천구와 강서구가 분리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이 서울 서방 지역을 하나의 지역으로 통칭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름은 신라 시대에 공암(孔岩)이라 개칭되었는데, 그 이름이 다시 바뀐 것은 고려 때였다.
양천현(陽川縣).
즉, 밝은 태양과 냇물이 흐르는 고장이라는 아름다운 의미의 지명을 얻은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주 단순한 이름인 것 같지만, 이러한 지명이 지어진 데에는 당연히 지리적 요인이 작용하였다.
동남쪽의 관악(冠岳)부터 시작하여 서쪽의 계양(桂陽)까지 이어진 산지에 둘러싸여 있으며, 동남쪽에서 북서쪽으로 흘러나가는 한강을 사선으로 끼고 있는 양지바른 땅.
그것이 바로 마곡의 입지였으니까.
“마곡은 양천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지역 안에서도, 그 이름에 가장 부합하는 입지조건을 지닌 곳입니다.”
스크린에는 서울의 지형지도가 떠올라 있었고, 우진은 그것을 가리키며 설명을 계속했다.
“오히려 한강에 거의 인접하지 못한 지금의 양천구보다, 그 양천이라는 이름에 더 어울리는 지역이 바로 마곡인 것이지요.”
우진은 마곡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하나둘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면서, 수려한 자연경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다면 우진이 이러한 이야기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한 이유는 뭘까?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우진이 담백한 어조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자연은 신이 빚은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한다.”
건축을 전공한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야기에 장내의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주억거렸고.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이 다시 이어졌다.
“저는 그러한 측면에서 마곡 MICE 단지의 디자인을 바라보았고…….”
우진이 손을 뻗자,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이 양천이라는 이름이 가진 자연 속의 아름다운 조형적 가치를, 마곡 컨벤션센터의 디자인에 담아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스크린에 떠오른 이미지는, 처음 프레젠테이션 시작 때 보여줬던 마곡 컨벤션센터의 외관 디자인과 같은 것이었다.
“……!”
“오……!”
하지만 같은 ‘조감도’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랜더링 컷이 단순한 쿼터뷰(Quarter View)*[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보는 시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분명 같은 모델링과 같은 랜더링 기법을 활용해 촬영한 조감도였지만, 카메라 앵글이 변하면서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이미지를 연출한 것.
우진은 잠시 관객들이 준비한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고, 단상 위에 놓여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입을 떼었다.
“어떻습니까. 마곡을 둘러싼 수려한 산세가 느껴지십니까?”
투박하고 웅장한 조형성이 강조된 서남쪽의 외관을 보여줬던 우진이, 이번에는 반대로 잔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동북 측의 외관을 가리켰다.
“이번엔 어떻습니까. 아름다운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잔잔한 강川과 볕陽의 조화가 느껴지십니까?”
우진이 보여준 두 장의 이미지를 차례로 확인한 좌중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침묵에 빠졌다.
그의 말대로 두 장의 이미지는 그렇게 완전히 상반된 아름다움과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분명 하나의 건축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같은 건축물이 다른 시점과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것만으로, 전혀 다른 두 가지 아름다움을 보여준 우진.
좌중의 반응을 확인한 우진은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단단하고 거친 산의 기백과, 부드럽고 따뜻한 강이 가진 안락함을 하나의 디자인 안에 담았습니다.”
우진이 레이저포인트를 다시 스크린을 향해 들었고.
딸깍-
이번에는 마곡 컨벤션센터뿐 아니라, MICE 단지 전경을 담은 가상의 이미지가 스크린 위에 송출되었다.
우진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 상반된 두 가지의 조형성은, MICE 단지가 가진 목적성과도 긴밀한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우진의 이야기를 듣던 좌중은, 이번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자연이 가진 조형적 아름다움과 MICE 단지의 목적성 사이에서, 쉽사리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반대로 우진은 웃었다.
이러한 의문은 곧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바뀔 것이고, 그것은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집중력으로 치환될 테니까.
이제 ‘서론’을 끝낸 우진이, 본격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였다.
* * *
제이콥은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크흠.”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을 듣던 중, 저도 모르게 몰입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ALuna에서 최종 선정한 디자인이라는 건가…….’
처음 마곡의 옛 이름에 대한 이야기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여 가우디의 명언을 인용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조금은 고리타분한 방식의 프레젠테이션이라고 생각했었다.
분명 디자인된 컨벤션센터 건물의 외관은 수려하고 훌륭했지만, 자연이 가진 조형성에서 모티브를 따오는 것은 건축디자인에서 꽤 흔한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경쟁작을 보는 디자이너의, 자기방어 기제가 조금은 포함된 평가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처음 제이콥은, 그런 생각을 하며 우진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제이콥의 생각은, 우진이 다양한 뷰포인트에서 촬영한 랜더컷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반전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말, 같은 건물의 랜더컷이라고……?’
마치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웅장함과 기백을 보여주던 건축의 이면에는, 더 없이 부드러운 포용력이 담겨 있었다.
뾰족하고 날카롭던 건축의 선(線)은 어느 순간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으로 변해 있었으며.
보던 이를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사납게 꿈틀거리던 매스(Mass)는, 그 이면에서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우진은 그것을 산과 강이라 표현하였고, 대자연이 가진 조형성이라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제이콥은, 그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런 상반된 조형성을 건축의 양 측면에 담을 수 있었던 거지? 카메라 연출로, 부자연스러운 이음새를 일부러 화면에 담지 않은 것인가?’
제이콥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다양한 조감도와 랜더컷을 전부 보고 우진의 설명까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전체 건축의 구조가 쉽사리 그려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 당연했다.
기하학적인 삼차원 설계를 활용한 우진의 디자인은, 아무리 공간지각능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쉽사리 그려내기 힘든 구조체였으니까.
직접 도면을 그린 우진조차도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다시 그려내기 힘든 구조였으니, 제이콥이라고 가능할 리 없었던 것이다.
‘평면, 입면을 보면 알 수 있겠지. 어떤 식으로 매스를 연결했는지…….’
그래서 제이콥은 더욱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하여 잠시 후, MICE 단지 전체 조감도 위에 얹어 놓은 컨벤션센터의 외관을 확인하였을 때.
“……!”
제이콥의 입은 쩍 하고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 * *
루카스는 감탄했다.
이것은 단순히 투고된 설계와 디자인을 문서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고 놀라움이었다.
그의 주름진 두 눈은, 우진에게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MICE 단지는,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모든 시스템을 갖춘 시설입니다.”
“대규모 B2B의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치열하게 경쟁할 공간도 필요하고 때로는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지요.”
일견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자연의 조형성과, MICE 단지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징.
‘자연에서 따온 조형성과 MICE 단지에 이미 담겨 있던 건축구조를 이런 식으로 연결 지어 해석하다니…….’
우진은 그것을 자연스레 연결 지어 디자인으로 풀어내고 있었고.
이것은 투고됐던 설계와 PPT에서는 또 볼 수 없던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미 디자인된 MICE 단지의 다른 시설물들은 각각의 역할에 맞는 디자인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으며, 루카스는 이미 확정난 호텔 건물의 디자인과 업무시설의 디자인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건축물들의 공모와 디자인 또한 ALuna에서 결정하고 진행하였기 때문에, 우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루카스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는 이러한 상반된 디자인 이미지를 가진 MICE 단지의 건축물들이, 마곡을 담은 자연의 조형성과도 자연스레 이어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납게 솟아있는 산세와, 부드럽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
그것이 가진 조형적 언어는, 우진의 말처럼 MICE 단지 전체의 조형성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그래서 저희 WJ 스튜디오는 컨벤션센터를 디자인할 때, 그렇게 서로 상반된 조형성을 가진 MICE 단지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주는 디자인을 추구하였습니다.”
우진의 이야기 속에서,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던 두 가지 주제 사이에 단단한 연결고리가 생겨났다.
“그것은 어쩌면 ‘조화’를 추구하는 자연의 가치와도,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 연결고리는 우진의 디자인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으며, 청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저희 WJ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한 M-Tec 컨벤션센터는, MICE 단지 전체와 조화를 이룸과 동시에 마곡이라는 입지 안에 자연스레 녹아들 것입니다.”
루카스는 반짝이는 우진의 눈빛을 발견했다.
그 눈빛 안에는 건축디자이너의 열정이 담겨 있었고.
그 열정 안에는 확신과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인류가 알지 못하는 그 오래전부터 자연이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해 왔던 것처럼.”
우진이 좌중을 둘러보았고, 루카스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저희 WJ 스튜디오가 설계한 마곡 컨벤션센터는, 그 자리에 ‘그렇게’ 지어질 겁니다.”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이 또 한 번 일단락되었다.
지난 반년의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컨벤션센터의 디자인.
우진은 그 안에 담긴 가치를 청중들에게 공감받는 것에 성공했고, 분위기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우진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루카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검증뿐이로군.”
그는 더욱 기대에 찬 표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이 투고됐던 설계와 디자인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라면.
이제부터 우진이 발표해야 할 컨벤션센터의 내부공간 디자인과 전시 디자인은,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발표되는 것이었으니까.
만약 여기서 우진이 전시에 대해 제이콥 못지않은 이해도와 실력을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공모 결과는 깔끔하게 결정 날 터였다.
그래서 루카스는 양손에 깍지를 낀 채, 우진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