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287화 (287/315)

287화

보이지 않는 마케팅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있다.

생산 규모의 확대에 따라 생산비가 절약되거나, 수익률이 증대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

그리고 이 원리는 마케팅에서도 통용 된다.

더 많은 비용으로 더 규모가 큰 마케팅을 할 때, 그것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며 마케팅 효율을 향상시키는 현상이 일어나니 말이다.

그래서 2010년 즈음만 하더라도 마케팅업계의 주류였던 마케팅 방식은, 대중매체(Mass Media)를 활용한 매스 마케팅(Mass Marketing) 방식이었다.

최대한 많은 자본을 확보하여 최대한 많은 매체에 노출 시키고.

불특정 다수의 최대한 많은 사람이 그 광고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브랜드의 인지도를 올리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하였던 것.

하지만 우진이 경험했던 미래에는, 이러한 매스 마케팅이 점차적으로 사라지는 추세였다.

마케팅 기법이 워낙 다양해진 데다, 정보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소비자들이 상품 하나를 구매할 때도 자신에게 더욱 적합한 상품을 직접 탐색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정확한 타겟(잠재고객)에게 광고가 도달하도록 하는 핀셋 마케팅이나, 틈새시장을 공략하여 특정 소비자를 저격하는 니치 마케팅 등의 최적화 마케팅이 주류를 이루었고.

우진은 그런 마케팅들을 많이 경험했었다.

물론 우진은 마케팅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소비자로서 직접 경험했던 그러한 종류의 마케팅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내 판단이 맞았어.’

그러한 기억들에 더해 지난 몇 년 동안 WJ 스튜디오를 키워오면서 생긴 기업가로서의 사업 감각까지 합쳐지다 보니.

이렇게 최상류층을 위한 브랜드에 맞는 최적화된 프로모션을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마케팅 성과를 확인하며, 우진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지금 상담 예약이 몇 건 들어와 있다고 하셨죠?”

“지금까지 총 170건입니다, 대표님.”

“흠, 그럼 30명 남았군요.”

“30명…… 이라니요?”

“저희 남은 브로셔가 245개쯤 되잖아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그중 30개는 실제로 분양받는 고객에게 줘야 할 물량이니 빼둬야 하고, 남은 15개 정도는 저희가 갖고 있는 게 좋을 테니…….”

“아……!”

“1차 예약 상담은 200건에서 컷 하는 게 어떤가 해서요.”

<아르코> 브랜드의 홈페이지에는, 예약 상담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공지가 떠 있었다.

[10월 1일, 갤러리 더 아르코(Gallery the Arco)가 드디어 오픈합니다.]

[1차로 상담을 예약하신 고객님들에 한해, 아르코의 첫 번째 작품 <청담 아르코>의 브로셔를 증정해드립니다.]

해당 공지가 개시된 것은 고작 3일 전, 기사가 올라간 날 저녁이었는데.

그 이후로 벌써 170명이나 상담 예약을 한 것.

그래서 인원이 더 많아지기 전에, 우진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그럼 1차 예약 상담은 200명까지만 받고, 그 이후에 상담을 원하는 인원은…….”

“추가 상담도 당연히 더 받아야겠지만, 브로셔는 증정해드릴 수 없겠지요.”

“그러면 고객의 입장에서 뭔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죠?”

“실제로 계약 의사가 있어서 홍보관을 방문했던 고객님 입장에서는, 브로셔 가지고 쪼잔하게 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마케팅 팀장의 말에 우진이 웃으며 답했다.

“대신 다른 증정품을 제공하면 됩니다.”

“아하?”

“2차 예약 상담도 200명을 정원으로 하고, 저희 <아르코> 브랜드와 관련된 굿즈를 제작하여 2차 상담고객 한정으로 드리는 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물론 브로셔 만큼 매력적인 굿즈를 만들라는 건 아닙니다. 소장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면 되겠군요.”

10월 1일부터 진행될 예약 상담은, 하루에 최대 10명씩 프라이빗하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청담 아르코 70평대 타입의 인테리어와 구조를 그대로 재현하여 공사 중인 홍보관 전체를, 각 타임당 한 팀만 입장할 수 있도록 하여 한 시간씩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다.

우진은 매체 노출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거액의 비용을 전부 이 프로그램에 투입하였고, 그래서 이 일련의 모든 과정들은 최대한 고급스럽게 계획되어 있었다.

타운하우스 분양을 받기 위한 이 상담 자체만으로도 고객들이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이 상담을 받는 것조차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특별한 ‘자신’이기에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것.

이게 우진의 의도이자 이 프로모션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참을 마케팅 팀장과 함께 세부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픽스하던 우진은,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는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팀장님.”

“네, 대표님.”

“혹시 저희 1차 상담 예약을 주신 고객분들 인적사항은, 한번 쭉 검토해 보셨나요?”

우진의 질문에 마케팅 팀장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래요? 뭐 전부 다 기억하실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어떤 분들이시던가요?”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다양합니다. 대기업 임원분도 계시고, 의사나 판검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도 계시고요.”

“오호.”

“아, 그리고……. 연예인도 몇 분 계시더라고요.”

우진은 재밌는 표정이 되었다.

연예인들 중 그의 지인들은 상담을 받더라도 우진을 통해 따로 받기로 하였으니, 그들을 제외하고도 이 청담 아르코에 대한 정보를 접해 상담을 원하는 연예인이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뭐 1차 상담이 다 끝나봐야 알겠지만……. 이 정도면 완판은 문제없을지도 모르겠군.’

잘 풀려가는 프로젝트 경과를 보면서, 우진은 문득 실소를 머금었다.

다진건설의 임중우 사장과 우스갯소리로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허허, 디자인 정말 잘 나왔군요.]

[사장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만약 미분양이 돼서 몇 채 남으면, 한 채는 제가 들어가 살아야겠습니다.]

[하하, 저도 한 손 보태겠습니다. 성수에서 청담으로 이사하죠, 뭐.]

고급 주택의 경우 아무리 잘 지어놓더라도 수요가 워낙 한정적이다 보니, 두 사람 모두 마음 한 켠에는 미분양의 가능성도 생각했던 것.

하지만 지금 굴러가는 상황을 보니, 우진의 몫이 남을 확률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표님.”

“네, 팀장님.”

“이건 정말……. 정말 만약에 말인데요.”

뜸을 들이는 그를 보며 우진은 고개를 갸웃했고, 그런 우진을 향해 마케팅 팀장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1차 예약 상담을 걸어놓으신 200분의 고객님들이 전부 다녀가시기 전에, 물량이 전부 계약되어버리면 어떻게 하죠?”

“아하……?”

“이미 상담을 예약해 놓으신 고객님께 완판되었으니 오지 마시라고 전화를 하기도 민망하고…….”

그 이야기에 우진은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최상의 시나리오였으니 말이다.

“하하,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 두긴 해야겠네요.”

“그렇지요?”

“흠…….”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던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어떻게…… 말입니까?”

“예약확인 전화를 드릴 때 완판 여부를 먼저 정중히 말씀드린 뒤, 완판과 별개로 상담은 여전히 가능하며, 계약취소물량이 나올 시 예비 순번에 따라 차례가 올 수도 있다고 얘기하면 될 것 같아요.”

“아하, 그럼 일단 도중에 완판이 되더라도, 1차 상담 예약 고객님들은 전부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우진의 설명에 공감한 팀장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대로 CS팀에 지침 내려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제발 이 지침이 필요한 상황이 왔으면 좋겠네요.”

진심이 담긴 그의 말에, 우진도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입니다. 제발, 그랬으면…….”

기사가 나가고 본격적으로 <아르코>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한 뒤.

9월이 전부 지나기 전까지, 무려 몇백 명이 넘는 추가 상담 인원이 <청담 아르코>의 예약 상담을 신청했다.

해서 9월 마지막 주가 되었을 때.

WJ 스튜디오의 고객지원팀에서는, 아직 1차 예약 상담이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에 무려 3차 예약 상담 일정까지 전부 정리해 둬야 했다.

“대체 어디서 알고 이렇게 문의가 들어오는 걸까?”

“그러니까. 마케팅 부서 얘기 들어보면, 어디 따로 광고 송출한 적도 없다던데…….”

“부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라도 퍼졌나 보지 뭐.”

하지만 9월이 지나고 <청담 아르코>의 홍보관인 ‘Gallery the Arco’가 오픈된 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대표님. 방금 재무팀에서 데이터 받았는데, 이미 스물다섯 채가 계약됐다고 합니다.]

“하…… 하하. 이렇게 빨리…….”

[오늘 마케팅팀 회식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마케팅팀이 아니라, 전 직원 회식을 해도 되겠는데요?”

[좋습니다!]

“2차 3차 마케팅에 털어 넣으려 했던 돈 전부 굳었는데, 그 돈으로 회식이나 거하게 하죠.”

[알겠습니다, 대표님!]

1차 예약 상담 인원이 전부 상담을 마치고 간 셋째 주 금요일.

<청담 아르코>의 서른 채 중 스물다섯 채의 계약금이, 전부 시행사의 법인계좌로 들어온 것이다.

마케팅팀장과 농담처럼 얘기했듯 1차 예약 상담이 끝나기도 전에 완판이 나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의 그에 준하는 성과가 만들어져버린 것.

“사장님, 소식 들었습니까?”

[허허허, 이미 재무팀 통해서 얘기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도 축하드립니다. 아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대표님 아니었으면 이런 꿈 같은 결과가 나왔겠습니까?]

“다진에서 절 믿고 기다려 주셨기에 가능했던 성괍니다. 하하.”

임중우 사장과 기분 좋은 통화까지 마친 우진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어……!’

사실 이번 <청담 아르코>에서 우진과 WJ 스튜디오가 남겨가는 마진은, 들인 노력에 비해 그리 크지는 않았다.

통상적인 설계‧디자인 비용에, 공사 이익금의 1할 정도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진은 돈보다 더 큰 것을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브랜드였다.

공사로 인한 이익은 다진건설에서 대부분 가져가는 대신, WJ 스튜디오에서는 <아르코>라는 브랜드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갖기로 했으니까.

물론 산술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조기 완판에 성공한 이상 청담 아르코가 무사히 완공되기만 한다면, 이 <아르코>라는 브랜드의 가치는 당장 수백억 이상의 값어치를 해낼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아르코는, WJ 스튜디오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었다.

“그럼 오늘은……. 오랜만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찍 퇴근해 볼까?”

오랜만에 칼같이 퇴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을 나온 우진은,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머리로는 자신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항상 가지고 있던 부담감 하나를 훌쩍 털어내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좋은 일은 항상 몰려서 찾아온다고 했던가?

지이잉-

가벼운 걸음으로 퇴근하던 우진의 주머니 속에 있던 스마트폰이, 짧게 울리며 기쁜 소식을 한 가지 더 알려주었다.

[Web 발신]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귀사의 설계가 마곡 M-Tec 설계공모의 최종 공모작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알려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첨부된 파일을 통해…….]

……후략……

그것은 바로 마곡 MICE 단지의 사업 주체인 ‘LTK금융그룹’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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