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보이지 않는 마케팅
사업장과 사업비에 따라 다르겠지만, 건설사에서 분양을 위해 사용하는 마케팅 비용은 천문학적인 경우가 많다.
전체 공사비가 조 단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보니.
억 단위는 기본이요, 사업장이 크다면 수십억 이상의 마케팅 비용까지 태우는 케이스도 더러 있었던 것이다.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고 고급스런 광고 소재를 제작하고 그것을 다양한 매체에 노출 시키다 보면, 몇억씩 줄줄 새는 것은 일도 아닌 것.
때문에 WJ 스튜디오와 다진건설도 미리 마케팅 비용으로 빼 뒀던 금액이 상당히 많았었다.
처음 <청담 아르코>의 마케팅 계획은, 여느 건설사들의 마케팅 전략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하지만 마케팅 노선이 완전히 바뀐 지금.
어쩌다 보니 확 줄어들어 버린 마케팅 예산 때문에 마케팅팀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걱정이 많았다.
“그나저나 대표님.”
“네?”
“이 마케팅만으로……. 정말 효과가 충분할까요?”
조바심 어린 마케팅팀장의 물음에, 우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저도 모르죠.”
“네?”
“저는 될 거라고 생각해서 밀어본 건데, 결과는 나와 봐야 아는 거니까요.”
모든 계획이 픽스된 상황에서, <청담 아르코>의 마케팅 비용은 처음 책정해뒀던 마케팅 비용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광고 소재를 만들거나 탑급 배우인 수하를 섭외하는 데에는 일반적인 케이스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갔지만, 반대로 일반적인 마케팅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매체 노출에는 전혀 비용을 태우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케팅 팀장은 불안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만약 성과가 생각보다 안 나올 경우에는…….”
담담하기 그지없는 우진과 달리, 여전히 불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마케팅 팀장 지용현.
그런 그를, 우진이 다시 한번 안심시켜 주었다.
“걱정 마세요, 팀장님.”
우진이 달력을 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현장 상황도 아직 여유가 좀 있거든요?”
“여유요?”
“일부 빌라들 철거하고 명도 하는 데까지 앞으로 몇 개월은 더 걸릴 테니까요.”
“아…….”
“그동안 반응 오는 거 지켜보고, 답이 안 나온다 싶으면 그때부터 매체 돌리기 시작하면 되니까. 걱정 너무 하지 마세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다행입니다.”
건설사에서 사전분양을 하는 이유는, 결국 시공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보통 전체 분양가격의 10퍼센트로 책정되는 계약금을 먼저 받고 분기마다 중도금 10퍼센트씩을 충당 받는 방식으로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
그래서 아직 철거 작업 중인 청담 아르코의 현장은 여유가 좀 있었다.
본격적으로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자금 수급이 되면 되니까.
다진건설이 시공사이자 지주이기 때문에, 금융비용에 좀 더 여유가 있는 것도 한몫하였다.
‘물론 이 방법이 실패해서 매체 송출로 뒤늦게 마케팅 노선을 전환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말이지.’
지용현이 마케팅과 관련된 보고를 마치고 대표실에서 나가자, 우진은 의자를 빙글 돌려 상체를 푹 뉘였다.
본격적으로 마케팅이 시작된 지 정확히 3일이 지난 오늘.
지용현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우진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입질이 오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테니……. 일단 이번 달 한 달은 여유롭게 기다려 봐야겠어.’
어차피 공사 중인 <아르코> 브랜드의 홍보관도, 꼬박 한 달은 지나야 오픈이 가능하다.
그전에는 고객들이 관심을 보여 봐야 간단한 상담 정도가 해줄 수 있는 전부.
‘분명히 통하는 방법일 거야. 그리고 이미 인맥으로 확보한 수분양자만 해도 전체 분양물량의 1/5는 확보한 셈이니까…….’
그런데 우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띠리리링-!
우진의 대표실 전화기가, 별안간 크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 * *
대표실에 걸려온 전화는,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는 기획팀장의 전화였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꽤 중요한 것이었기에, 전화를 끊은 뒤 다시 대표실로 불러올렸다.
“그러니까……. 브로셔를 좀 더 보내줄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다는 거죠?”
“네, 대표님.”
“연락이 어디서 온 겁니까?”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그래요?”
“저희가 브로셔 공급했던 거의 대부분 매장에서 연락이 왔답니다.”
“오……?”
WJ 스튜디오는 WJ 타워로 사옥을 옮긴 이후, 원래 하나의 실 안에서 운영하던 CS(고객대응) 업무와 마케팅, 기획 등의 부서를 전부 개별로 나누었다.
마케팅팀장인 지용현보다 우진에게 먼저 브로셔와 관련된 문의가 전달된 이유다.
“만약 요청받은 브로셔를 전부 추가로 공급하려면…… 총 몇 부가 더 필요한 거죠?”
“저희가 보유 중인 잔여 부수가 400부 정도니까, 추가로 500부 정도는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유분 남겨둬야 하는 걸 고려해서 하시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저희도 최소 2~300부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모델하우스 오픈 이후에 개별적으로 상담 오실 고객님들께도 한 부씩 드릴 수 있으니까요.”
“흠. 추가 인쇄라……. 각 매장에서 2~3부씩 추가요청을 했나 보네요?”
“맞습니다, 대표님. 가능한 많이 보내 달라는 곳도 있어요?”
“왜요?”
“일부 고객이 꼭 소장하고 싶다고 진상 아닌 진상을…… 부렸다네요.”
“흐음…….”
“추가 발주 넣으면 되겠죠, 대표님?”
기획팀장의 물음에, 우진은 잠시 침묵했다.
지금 이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브로셔를 보고 우리 회사에 문의를 넣을 줄 알았는데…….’
브로셔 안에 담긴 청담 아르코가 궁금하고 그것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객들의 사고가 흘러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브로셔에 대한 문의가 이렇게 먼저 들어왔다.
‘어떻게 대응하는 게 가장 베스트일까.’
우진의 입가에 슬쩍 웃음이 걸렸다.
예상하진 못했지만, 그와 별개로 이 또한 좋은 일이다.
브로셔를 갖고 싶다는 건 결국 그 안에 담긴 청담 아르코가 마음에 든다는 얘기였고.
그런 사람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건 분양에 청신호였으니까.
그래서 우진은 짧은 시간 내에 머리를 최대한 굴려보았고, 이렇게 답을 내었다.
“요청이 온 각 매장에 딱 한 부씩만 추가로 발송하면 총 몇 부가 필요하죠?”
“아마 백 오십 부 정도면 될 겁니다, 대표님.”
“그럼 추가 인쇄 없이도, 저희가 250부 정도를 여유로 보유할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아르코>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전부 다 최고의 가치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이 브로셔도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였고.
때문에 이 브로셔 또한, 희소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럼 추가 증쇄 없이, 그렇게 제공하도록 하죠.”
“엇, 어차피 증쇄해 봐야 추가 인쇄 비용은 그리 크지 않을 텐데요?”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기획팀장을 향해, 우진이 간결히 대답하였다.
“비용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아르코>의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모든 브로셔는, 리미티드 에디션이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
예상치 못한 우진의 말에 잠시 말을 잃은 기획팀장.
그를 향해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매장에는 이렇게 정중히 전하세요.”
“넵?”
“아르코의 브로셔는 천 부 한정으로 인쇄된 책자라서, 이 이상은 저희도 제공이 불가능하다고요.”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책자를 원하는 고객이 계시다면, 저희 CS팀으로 문의 부탁드린다고도 전해 주시고요.”
“네, 대표님!”
기획팀장이 대표실에서 나가자, 이번에는 우진이 대표실의 수화기를 들었다.
이어서 그가 전화한 곳은, 조금 전에 대표실을 다녀갔던 마케팅팀의 팀장실이었다.
“팀장님.”
[네 대표님!]
“우리, 작게 기사 한두 개 내볼까요?”
* * *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의 어느 날.
인터넷에 재밌는 기사들이 떠돌기 시작하였다.
[건축 디자인잡지? 혹은 홍보 브로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프리미엄 브로셔가 있다?]
[청담동에 지어질 프리미엄 타운 하우스, <청담 아르코>.]
[WJ 스튜디오의 첫 주거 브랜드의 탄생?]
베일에 싸여 있던 브랜드 <아르코>에 대한 기사가, 처음으로 인터넷에 올라간 것이다.
‘재밌네.’
물론 대대적으로 기사가 쏟아지거나 한 것은 아니다.
우진은 이 기사로 어떤 홍보 효과를 바란 것이 아니니까.
다만 우진의 목적은 이것이었다.
[팀장님은 여기 브로셔에 있는 <청담 아르코>가 궁금하면 가장 먼저 뭘 하시겠어요?]
[음, 아마 인터넷에 검색을 하겠죠?]
[바로 그겁니다.]
[네?]
[인터넷에 검색을 했을 때, 이게 뭔지 정도는 나와 줬으면 한다는 거지요.]
우진은 기자들과 어떤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평소 WJ 스튜디오에 호의적이고 친분이 있는 기자 몇몇에게, 브로셔 몇 부를 발송해줬을 뿐이었다.
[김 기자님, 이거 어디 주거나 판매하거나 하시면 안 돼요?]
[하하, 제가 이걸 어디다 팝니까. 그런데 중요한 대외비라도 담겨 있나봐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저희도 지금 수량이 모자라는 한정판 브로셔거든요.]
[한정판…… 브로셔요?]
[그러니까 기자님께서 잘 소장해 주세요. 하하, 어디 주고 나면, 저도 이제 더 구할 수 없는 책이니까요.]
그래서 기사에 담긴 내용도 제각각이었다.
우진은 기사로 올라갈 내용을, 완전히 자율로 맡겼으니까.
[그냥 알아서 기사를 써달라고요?]
[네, 기자님.]
[그러다 제가 부정적인 기사라도 올리면 어쩌시려고요.]
[설마 김 기자님이……. 그러시진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흐흐.]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브로셔.
그리고 분양받고 싶어도 분양받을 수 없는 프리미엄 타운 하우스.
아마 책자를 갖고 싶어하던 VIP 고객들 중 일부는 분명히 인터넷에 <아르코>를 검색해볼 것이고.
그러면 이 몇 개의 기사와 함께 WJ 스튜디오에서 미리 만들어 둔 <아르코> 브랜드의 홈페이지가 떠오를 것이다.
홈페이지는 심플하다.
심혈을 기울여 뽑아 놓은 <청담 아르코>의 랜더링 컷이, 모던하고 깔끔한 홈페이지 디자인에 맞춰 갤러리처럼 전시되어 있을 뿐이었으니까.
랜더 컷 외에 올라가 있는 정보는, 이 <아르코>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서우진’에 대한 이야기와 간결한 브랜드 히스토리 뿐.
‘그걸 보면 이제 우리 고객센터로 전화가 올 수밖에 없겠지.’
그 일련의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 본 우진은,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 낚싯대를 드리워 놓은 낚시꾼의 마음이 이러할까?
어떤 물고기가 입질을 할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우진이었다.
‘다음 주 부터는 슬슬 연락이 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우진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기사가 올라간 바로 그 당일.
“네, WJ 스튜디오입니다.”
[안녕하세요, <아르코>라는 브랜드가 궁금해서 문의 전화 드렸는데요.]
“아, 반갑습니다, 고객님.”
[그 아르코라는 타운하우스가, 여기 WJ 스튜디오의 브랜드가 맞는 거죠?]
WJ 스튜디오의 CS센터에, 하나둘 문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