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264화 (264/315)

264화

<천년의 그대> 종영 날은 2013년 2월 7일 목요일이었다.

물론 이 종영 날이라는 건, 처음 방영을 시작할 때 정해져 있던 날.

그러니까 촬영팀에서 새로 촬영한, ‘번외편’을 제외한 본편의 종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천년의 그대> 마지막 편이 방영되는 주까지도 번외편에 대한 오피셜한 발표가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 주 월요일부터, 각종 커뮤니티에는 <천년의 그대>에 대한 떡밥이 끊이지를 않았다.

제목 : 천년의 그대 정말 이번 주에 끝인가요?

내용 : 스토리 상으로 보나 극 중 분위기로 보나……. 이번 주가 끝이 맞긴 한데, 너무 아쉬워 미치겠네요.

매주 수요일 저녁만 되면 TV 앞에 앉았었는데, 앞으로 천년의 그대 없으면 허전해서 어쩌나 싶고…….

……중략……

제발 몇 편이라도 더 늘려주면 안 되나요?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방송국 시청자 게시판에는, 연장 방영을 해달라는 문의가 끊이지를 않았다.

스토리 상 연장이 될지 안 될지 같은 문제는 시청자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배우 하나하나에 몰입해 있는 시청자들은, 그들과 좀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방영 마지막 주 수요일이 다가올 때까지도, 방송국은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추가 방영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그 어떤 제스쳐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원래 예정대로 방영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천년의 그대>가 사전제작 드라마인 것을 다들 알고 있었으니, 미련은 있을지언정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 최종 화 본방까지 사수하고 나면, 주말마다 1화부터 다시 정주행해야지…….

└ 다시 보기는 어디서 하는 게 좋나요, 여러분?

└ 이천시에 있다는 세트장은 언제 민간 오픈하는 거예요? 오픈하면 바로 가서 구경하고 싶은데…….

그런데 예정되어 있던 최종화의 바로 전 화가 방영되는 2월 6일 수요일.

오늘도 본방 마지막까지 TV 앞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시청자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예고편까지 전부 다 끝나고 난 뒤, 방금까지 스크린 속에서 열연하던 반가운 얼굴들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인서’입니다!]

[안녕하세요, ‘서후’입니다!]

시청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두 배우가 작중 복장을 그대로 입은 채 직접 카메라 앞에 선 것.

[어머, 서후 씨. 이번 주가 <천년의 그대> 본방 마지막 주라면서요?]

[그러게요.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아쉬우시겠지만, 저희도 너무너무 아쉽답니다.]

[벌써 2월이라니. 정말 믿기지가 않아요!]

두 사람은 작중에서 보여준 캐미를 뽐내기라도 하듯, 유쾌하게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어서 잠시 후.

두 사람은 곧 시청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서후 씨.]

[네, 인서 씨.]

[저희가 시청자 여러분께, 깜짝 선물을 하나 가져왔잖아요?]

[하하, 그렇죠!]

[이제 더 뜸 들이지 말고, 이제 슬슬 공개해 볼까요?]

[좋습니다.]

[그럼 준비하시고…….]

[하나…… 둘…… 짠!]

두 배우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자, 스크린이 암전되면서 짧은 영상이 시작되었다.

천년의 그대 본방에서 공개되지 않은, 짧은 작중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영상.

3분도 채 되지 않는 영상이었지만 그것은 몰입감이 충분히 넘쳤고.

두 배우가 준비했다는 선물은 그 영상의 끝에 있었다.

[<천년의 그대>를 시청해주시는 시청자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 <천년의 그대>는,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앞으로 3주간 추가 방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추가 방영분은 방금 보셨던 바와 같이 번외편의 개념으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천년의 그대>를 사랑해 주셔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천년의 그대> 제작진 일동 올림.]

그리고 이 ‘선물’이 전파를 타고 나간 순간, 인터넷 커뮤니티는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소정 씨.”

“네?”

“반응은 좀 어때요?”

“무슨 반응이요?”

“방영 3주 연장 떡밥 어제 나갔잖아요.”

“아, 그거…….”

“제가 바빠서 모니터링을 못 했거든요. 다들 좋아하시죠?”

오늘 우진과 소정은, 꽤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먹었다.

두 사람이 점심을 먹은 곳은 서울이 아니었다.

오늘은 이천시 문화국 직원들과 몇 가지 실무조율을 위해 이천에 내려와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미팅 시간이 좀 애매해서 둘이 먼저 만나 점심을 먹었던 것이다.

“더 말하면 입 아프죠.”

“하하, 그 정도예요?”

“한두 화도 아니고 무려 여섯 화나 더 방영한다니까, 다들 난리 났죠 뭐.”

가볍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약속시간에 맞춰 이천시청에 들어섰다.

오늘 두 사람이 이곳에 온 것은, 조만간 민간에 오픈될 예정인 <천년의 그대> 드라마 세트장 때문.

단순히 세트장만 오픈하는 것이라면 이천시청에까지 올 이유는 없었다.

이미 오픈을 위해 받아야 할 인허가는 전부 받아놓은 상태였으니까.

다만 단순히 ‘오픈’만 할 게 아닌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시청과의 조율이 필요했던 것이다.

“추가 방영 일정에 맞춰서, 프로모션 계획은 얼추 나온 거죠?”

“걱정 마세요. 그렇잖아도 사업지원팀에서, 굿즈부터 시작해서 프로모션 전략까지 전부 다 세팅해뒀으니까요.”

우진은 오늘 이 자리에 직접 나와 준 소정이 고마웠다.

사실 오늘의 미팅은 세트장 사업과 관련된 부분이 가장 비중이 컸고.

때문에 세트장에 지분이 없는 KSJ엔터에서는 프로모션 담당자 한 사람 정도만 와도 충분히 미팅을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더 나은 사업 방향성을 위해 이렇게 직접 자리에 함께 해준 것이었으니, 우진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게 당연하였다.

“역시 꼼꼼하시네요.”

“호호, 어느 안전인데 꼼꼼하게 브리핑해 드려야죠.”

“어느 안전인데요?”

“당연히 우리 투자자님 안전이죠.”

두 사람은 가벼운 농담과 함께 사업 이야기를 하며 약속 장소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후.

“하하, 두 분 대표님 오셨습니까!”

이천시 문화국장 조용현을 비롯해 실무진들이 자리에 들어왔고.

그와 함께 회의가 시작되었다.

* * *

공직 감사기관의 사무관인 조 사무관은, 연신 서류를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하였다.

“이상해. 진짜 이상하단 말이지.”

“왜요, 사무관님.”

“분명히 뭔가 있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어.”

“으음…….”

“이럴 리가 없는데…….”

감사원의 하위기관에서 감사관의 역할을 하는 조 씨가 이번에 맡은 감사는, 이천시에서 추진 중인 지구 단위 개발 사업의 업무감사였다.

명분은 심플했다.

국책사업이라 할 수 있는 이천 관광산업 개발 과정이, 적법한 절차 하에 합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그것을 확인하고 감시‧감독해야 한다는 것.

수많은 사업장 중에 왜 여기가 감사대상 사업장으로 선택되었는지는 실무자가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다만 한 가지, 조 사무관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보통 이렇게 선정된 사업장의 경우, 조금만 털어도 먼지가 펑펑 쏟아진다는 사실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국내에 개발이 진행되는 사업장은 한두 곳이 아니었고, 감사원이라 해도 그 모든 곳을 감사할 인력은 없었으니.

보통 감사원에서 감사 지시가 내려오는 경우는, 윗선의 이해관계가 포함되어 있거나 실제로 구린내가 이미 진동을 하는 경우였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 상부로부터 이번 감사를 지시받았을 때, 조 씨는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을 다 때려 놓은 상태였다.

[이거, 척 보면 척이네요.]

[그렇지?]

[너무 뻔하잖아요. 드라마 세트장 주변으로 지구단위 계획 세우고, 용도 변경해서 택지개발 하고…….]

이번 개발을 추진한 이천시 문화국의 실무 관계자들과, <천년의 그대>를 제작한 KSJ엔터. 그리고 세트장을 소유하고 있는 WJ 스튜디오까지.

이 세 개 회사 간에 비밀리에 이뤄진 뒷돈 거래가 있을 거라는 계산을 말이다.

[얼마쯤 해먹었을까?]

[글쎄요. 천년의 그대 요즘 핫 하던데. 제작비만 100억 썼다는 거 보면, 이쪽에도 몇십억 정돈 바르지 않았을까요?]

[그치? 게다가 세트장 주변에 필지 대부분이 서우진 대표 명의더라고.]

[캬……. 그림 그려지네요.]

[용도변경에 포함된 토지는 일부긴 한데, 그 외 필지들도 아마 매입가보다 몇 배는 가격이 올랐을 거야.]

[실적 올리기 좋겠네요.]

[그러니까 가서 싹 다 털어 와. 먼지 한 올 남기지 말고 탈탈 털어오란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정의감에 불탄다거나, 반드시 비리를 파헤치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일을 하면서 그는 이미 수많은 비리의 현장들을 보아왔고, 감사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비리의 현장들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단지 이것은 그의 일이었고, 비리 적발은 곧 그의 실적이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의지를 불태웠던 것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잘하면 승진이라도…….’

하지만 감사가 진행된 지 벌써 3주 차가 된 지금.

이렇게 넘쳐나던 감사관 조 씨의 의욕은, 엄청나게 꺾여버린 상황이었다.

‘아니, 어떻게 털어도,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올 수가 있지?’

내부감사가 끝나가는 지금.

조 씨가 찾아낸 비리(?)라고는, 문화국 직원들의 회식 때 지출된 비용 30만 원이, 회계 실수로 장부에서 누락 되었다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것도 분명 공금횡령(?)이라면 공금횡령이었지만, 이거 하나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감사관의 체면을 구기는 일일 뿐이었다.

장부를 한 손으로 꾹 움켜쥔 채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옆에 있던 수사관이 슬쩍 물어보았다.

“혹시…… 말입니다.”

“응?”

“비리가 진짜 없는 건 아닐까요?”

수사관의 그 말에, 조 씨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야, 너 바보냐?”

“옙?”

“개발계획 나오기 전에, 여기 서우진 대표가 토지를 싹 다 쓸어 담았어.”

“그랬죠?”

“개발계획도 모르는데, 미쳤다고 이 촌구석에 땅을 그만큼이나 사?”

잠깐 생각하던 조 씨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세트장 지어지면 값 오를 거라고 생각한 거 아닐까요?”

“그게 말이 돼?”

“왜 안돼요?”

“드라마가 이렇게 터질 줄, 시작도 전에 어떻게 아냐?”

“흠……. 그런가…….”

“분명히 뭔가 있어.”

“그렇군요.”

“뭔가 있는데……. 내가 못 찾은 게 분명해.”

“…….”

“어떻게 이렇게 철저할 수가 있는 거지?”

나름 일리 있는 조 씨의 말에, 수사관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 사업장에 비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직까지 하고 있었다.

‘근데 생각해 보면……. WJ 스튜디오쯤 되는 회사 오너가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이럴 필요가 있나?’

서우진이 어지간한 연예인 이상으로 이슈화되면서, WJ 스튜디오라는 회사는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최근 WJ스튜디오의 추정 연매출에 대한 기사도 떴었는데, 그것만 해도 이제 천억 단위가 훌쩍 넘어가는 상황.

게다가 이제 공인이 되어 대외적인 이미지까지 중요해진 서우진이 굳이 이런 불법을 저지를 이유가 있는지.

수사관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제 내부감사 끝나가니, 그쪽 까보면 알게 되겠지.’

어깨를 한 차례 으쓱 한 수사관은, 담배를 한 대 태우기 위해 시청 옥상으로 올라갔다.

조 사무관의 말대로라면, 늦어도 다음 주 안에는 결판이 날 터였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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