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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255화 (255/315)

255화

<천년의 그대>

[말 그대롭니다. 올해 말은 너무 빠른 것 같고, 내년 1월도 좀 손해가 클 것 같아서요.]

[손해라고요?]

[더 벌 수 있는 것을 덜 벌면, 그게 바로 손해 아닙니까?]

[……?!]

[물론 분양 일정이 밀린다면 다른 일정에 병목이 생기면서 조금 시간적인 손실을 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택지분양만큼은, 최대한 비싸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진의 얘기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관광지로 개발될 이천시 <천년의 그대> 세트장 인근의 택지들을, 드라마가 런칭한 뒤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을 시점에 분양하자는 것.

물론 10월에도 이미 우진과 소정의 노력으로 인해, <천년의 그대>는 꽤 이슈화돼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마케팅의 힘으로 이슈화시킨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었고.

실제 드라마가 방영되어 대박이 난 것의 파급력과는 비교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우진이 다시 말했다.

[지금도 시에서 매입했던 가격보다는 다섯 배 이상 비싸졌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

[제 생각엔 드라마가 종영하기 직전인 2월쯤 분양한다면……. 그 열 배까지도 가격이 튀어 오를 수 있을 겁니다.]

[다섯 배가 아니라 열 배라는 거죠?]

[아뇨, 다섯 배의 열 배. 오십 배라는 겁니다.]

[…….]

조용현 국장은 우진의 그 말을 들었을 때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드라마가 대박이 난다고 한들, 택지 시세가 그 정도까지 튀어 오른다고는 상상하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 가격이면 이천시 도심지 택지보다도 더 비싼 값인데…….]

[제가 나름 부동산 전문갑니다. 한번 믿어 보시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2월에 분양하는 것이 손해라는 우진의 이야기만큼은 100퍼센트 동의했기 때문에, 그에 맞게 일정을 조율했었다.

[뭐, 알겠습니다. 일정 조율이야 다시 하면 되는 거고……. 분양 좀 늦어진다 해도 최종 플랜에는 차질 없게 맞춰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그리고 원래 분양예정이었던 12월이 된 지금.

정확히는 <천년의 그대>가 방영을 시작하고, 하루가 지난 바로 지금.

‘서 대표 말이 맞았어.’

소문을 듣고 모여든 투자자들 덕에 미친 듯이 치솟은 땅값을 확인하고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때 일정을 잡았더라면 10~11월의 시세에 맞춰 분양가를 산정했을 터.

택지분양으로 인한 수익이, 반 토막 날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시장에게 보고가 예정되어있던 오늘 아침.

조용현 국장은 우진에게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봤었다.

[서 대표님!]

[하하, 국장님 출근하셨습니까?]

[예. 방금 출근했습니다.]

이번에 조용현이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건 이유는, 반대로 분양 일정을 더 늦추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해보기 위함.

가파르게 상승하는 지가를 보고 있자니, 우진이 얘기했던 2월도 좀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진의 대답은 단호했다.

[더 늦추는 건 안 됩니다, 국장님.]

[그런가요?]

[어차피 고점을 잡아 분양하려는 게 아니라, 가장 화제성이 높을 때 분양하고자 하는 겁니다.]

[가장 화제성이 높을 때라…….]

[드라마의 화제성이 가장 높은 시점은, 바로 종영 직전이지요.]

[그렇군요.]

[물론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전제하에서지만,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우진은 분명 3,4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그 상승곡선은 확연히 둔화될 것이라 하였다.

쉽게 말해 2월보다 더 늦게까지 기다리는 것은, 시간적 손실이 더 클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에 동의한 조용현은 오늘 결국 시장에게 보고하였고, 결과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이천시에서도 가장 크게 신경을 쓰고 있었던 프로젝트인 만큼.

어제 방영했던 <천년의 그대> 첫 화 방영분을, 시장도 집에서 시청했던 것이다.

“그래요, 조 국장.”

“네, 시장님.”

“어제 드라마는 잘 봤습니다.”

“오……! 직접 보신 겁니까?”

“딸내미가 꼭 봐야 한다고 리모컨을 붙들고 있는데, 안 보고 배길 수가 있어야지. 하하.”

하여 조용현의 보고는 무척이나 순조로울 수밖에 없었으며…….

“조 국장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성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군.”

“결국 마지막 남은 변수가 드라마 흥행 여부였는데, 어제 방영분만 봐도 중박 이상은 확정이라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동의합니다. 내가 시청률 이런 데이터는 잘은 모르지만, 다른 드라마들 성적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이라는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겠어.”

그리하여 예정보다 2배는 길어진 시간 동안의 보고 끝에, 용현은 시장의 확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한번 도와보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시장님.”

“내가 감사하지. 조 국장이 일을 잘해준 덕에, 임기 내에 숙원사업 하나 추가하게 생겼는데. 하하.”

적어도 이천이라는 지역 안에서 만큼은,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가진 이천시장의 전폭적인 지지.

그것을 얻어낸 이상, 이제 프로젝트 진행은 순풍에 돛을 단 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 * *

12월 6일 목요일도 빠르게 흘러갔고, <천년의 그대> 2화 방영이 시작되었다.

수요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천년의 그대> 본방을 사수하기 위해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았으며.

관계자들은 또다시 숨죽이고 시청률 추이를 지켜보았다.

1화의 최고 시청률은 ‘규격 외’ 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수치였지만.

그 막대한 유입이 2화에서는 어디까지 지켜질지.

또 어제의 이슈를 통해 추가로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유입될지.

이 모든 데이터의 상승하락 곡선을 처음 확인할 수 있는 날이, 바로 2화가 방영되는 목요일이었으니 말이다.

우진조차도 9할 정도의 기대와 1할 정도의 조바심을 가지고 결과를 기다렸으며.

그 결과는 역시 만족스러웠다.

드라마가 끝나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우진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위이잉-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흥분한 강소정의 목소리였다.

[최고 시청률이 1.5포인트나 더 올랐네요.]

“1.5포인트요? 그게 뭐에요?”

[아, 1.5퍼센트 더 올랐다고요.]

“아하!”

그리고 그녀의 상기된 목소리에, 우진도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소정은 이제 우진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그에 더해 지금 그녀의 기쁨은, 우진 또한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최고 시청률 한 50퍼센트 찍어버렸으면 좋겠네.’

하지만 다음 순간, 우진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 준비하시죠. 서우진 씨.]

“뭘요?”

[왜 모르는 척하실까.]

“…….”

소정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35퍼센트까지, 이제 0.5포인트 남았잖아요.]

“그게, 그러니까…….”

[빠르면 다음 주 수요일. 늦어도 그 다음 주면 35퍼센트는 찍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아마도 그렇겠죠…….”

우진의 당황한 목소리에, 더욱 신이 난(?) 소정이 계속해서 얘기했다.

[감독님이 오늘 오전에 저한테 그랬어요.]

“뭐라고요?”

[번외편 촬영 일정 슬슬 잡아야 하겠다고요.]

“그렇군요.”

[그러니까 일정 알려주세요.]

“진짜, 해야 하는 겁니까?”

[네. 진짜 하셔야 하니까, 하루만 좀 비워줘요, 서 대표님.]

사실 우진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어지간하면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술자리에서 감독과 소정의 제안이 진심이라는 건 알았지만, 연기라는 것은 도무지 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예능에 출연하는 것과 드라마에 까메오로 출연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후…….”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는 우진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강소정의 말이 재빨리 다시 이어졌다.

[그럼 이건 어때요 서 대표님.]

“네? 뭐요?”

[서 대표님만 출연하시면, WJ 스튜디오 브랜드도 그대로 노출 시켜 줄게요. 어때요?]

방금까지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 중이던 우진조차도, 저절로 눈이 번쩍 뜨이게 할 만한 제안.

“진짜요?”

[역대급 흥행 드라마에 PPL 공짜로 할 수 있는 기횐데. 이 정도면 안 할 수가 없겠죠?]

“크윽…….”

아무리 우진이 관계자고 투자자라 하더라도, 드라마 PPL로 자신의 회사 로고를 끼워 넣으려면 다른 투자자들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메인 투자자이자 디렉터인 소정이 우진의 출연을 빌미로 밀어붙인다면 얘기가 달랐다.

그래서 우진은 소정이 내민 손을 쉽게 뿌리칠 수가 없었고, 그것으로 우진의 출연은 결정되어 버렸다.

[그럼 수락하신 걸로 알고, 감독님께 말씀드릴게요?]

“네…….”

[좋았어!]

우진의 대답에 더욱 신이 난 소정은, 그 뒤로도 거의 십 분이 넘게 떠들었다.

그래서 우진은,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거실 소파 위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전화를 끊었을 때.

리클라이너 위에 앉아 과일을 깎고 있던 주희가 우진을 향해 물어보았다.

“우진이, 여자친구 생겼니?”

“네? 아, 아니에요 엄마. 여자친구는 무슨.”

“여자친구도 아닌데, 그렇게 통화를 오래 해?”

“비즈니스 파트너예요.”

“비즈…… 뭐라고?”

“방금 본 드라마 기획사 대표님이세요.”

“아아, 그렇구나.”

뜬금없는 오해에 우진이 당황한 사이, 주희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나저나 이 드라마. 다음 화는 내용이 어떻게 되는 거니?”

“저, 저도 모르죠.”

“이거 드라마가 감질나서 어떻게 다음 주까지 기다리냐.”

“재밌으세요?”

“재밌으니까 그러지. 오늘은 가게 오시는 단골손님들도, 전부 천년의 그대 얘기하시더라니까?”

“하하, 다행이네요.”

“그리고 그 남자주인공. 이름 뭐라고 그랬지?”

“민우요?”

“아, 그래. 민우! 다음에 그 친구 싸인 좀 받아다 줘라.”

“…….”

“총각이 연기도 잘하고 참하게 잘 생겼네.”

“알겠어요, 엄마.”

우진은 접시에 가지런히 놓인 과일을 먹으며, 꽤 오랜 시간 동안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달리 특별할 건 없는 이야기였지만, 하나뿐인 가족과 보내는 시간만큼 의미 있는 것도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불쑥 우진이 화제를 전환하였다.

“그나저나 엄마, 혹시 연말에 시간 되세요?”

“연말이면, 이달 말 말하는 거니?”

“네. 12월 마지막 주요.”

“내 시간이야 만들면 되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엄마 모시고 제주도라도 한번 다녀오면 어떨까 해서요.”

“제주도?”

“우리, 가족휴가 가본 지 오래됐잖아요.”

“…….”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갑자기 나온 얘기였지만, 순간 울컥했는지 주희는 말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에 엄마가 그러셨잖아요.”

“뭐라고?”

“좋아하는 일이라도 너무 무리 말고, 여유도 좀 갖고 하라면서요.”

“내가…… 그랬나?”

“네. 그러셨어요.”

갑작스레 나온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우진은 두 달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계획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수제비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들었던 이야기를, 잊고 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야 아들이랑 여행 가면 당연히 좋은데……. 괜찮겠니?”

주희의 물음에, 우진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시간 미리 비워놨으니까, 전 걱정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두 번의 <천년의 그대> 방영과 함께 12월 둘째 주도 훌쩍 지나갔다.

<천년의 그대>와 별개로 WJ 스튜디오의 연말 일정은 바쁘게 흘러갔고, 우진은 어머니와 약속한 대로 마지막 주의 시간을 비우기 위해 더욱 열심히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당연히 그동안 <천년의 그대>는 계속 방영되었고, 매회 차마다 시청률은 계속해서 상승하였다.

[수목드라마 <천년의 그대>. 이대로 역대 최고 시청률 갱신하나?]

[현재까지 최고 순간 시청률 41.25%. 진정한 국민 드라마로 등극한 <천년의 그대>.]

[<천년의 그대> 5화에 등장한 ‘서후’의 집 <서울숲 클라시아 포레스트>는 대체 어디?]

2012년 연말은, 계속 좋은 소식만 들려왔다.

깔끔하게 일 처리를 끝내 놓은 우진이, 제주도에 가서도 마음 편히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돌아와 기분 좋게 한 해를 마무리한 우진은, 새해가 밝자마자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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