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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250화 (250/315)

250화

타운 하우스

천웅건설의 상무 박경완은, 오랜만에 사옥의 최상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다.

상무로 승진한 이후에는 종종 이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밖으로 도는 업무가 많아서인지 꽤 오랜만에 천종걸 대표의 호출을 받은 것.

띵-!

처음 이 엘리베이터에 오를 때만 해도 긴장으로 인해 식은땀까지 흘렸던 경완이었지만, 이제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그 앞에서 경완을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상무님, 오셨습니까.”

“내가 늦진 않았지?”

“네, 상무님.”

“대표님께선?”

“집무실에 계십니다. 곧 나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회의실로 가면 되지?”

“그렇습니다.”

경완은 아직 오늘 천종걸 대표가 왜 자신을 호출했는지 전달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불안하거나 하진 않았다.

대략 예상가는 지점들이 있기도 한데다, 애초에 책 잡힐만한 일을 한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성수 전략정비구역의 시공사 입찰을 100퍼센트 따내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는데, 이 또한 사실상 최선의 결과나 다름없었다.

컨소시엄이라고는 해도, 결국 천웅건설이 따낸 지분이 절반 가까이 되었으니까.

‘뭐, 왜 부르셨는지는……. 뵙고 나면 알게 되겠지.’

비서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에 먼저 도착한 경완은,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천종걸 대표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드르륵-

천종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그래, 앉지.”

항상 깔끔한 차림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천종걸은, 오늘도 말끔한 수트를 입고 있었다.

젊을적부터 준수했던 외모 덕분인지, 마치 노년의 영화배우라고 해도 믿어질 법한 비주얼.

담백한 어조로 경완의 인사를 받은 천종걸은,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의자를 고쳐 앉았다.

이어서 경완과 눈이 마주친 종걸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들었네.”

“성수지구 시공권 말씀이시지요?”

“그렇지. 최근 자네가 맡았던 일들 중, 그보다 더 큰 건이 있었던가?”

“없었지요.”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인 종걸이, 느긋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고생했다는 이야기부터 먼저 해주고 싶군.”

“감사합니다.”

“박 상무 덕에, 우리 회사 직원들 월급 나올 구석이 또 크게 하나 생겼어.”

“별 말씀을요.”

시공권을 전부 따지 못해서 아쉽다는 등, 입발린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최선을 다했고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었으면 그뿐.

그 외적인 어떤 변명 같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종걸 또한 그런 담담한 경완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종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통합설계 디자인이 서우진 대표 작품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대표님.”

“조감도 보니 멋지던데.”

그리고 종걸의 말을 듣던 경완은, 순간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종걸의 입에서 ‘멋지다’는 말이 나온 건, 처음 봤으니 말이었다.

좋던 싫던 평소에 어지간하면 본인의 ‘감상’에 대해 입에 잘 올리지 않는 천종걸이었기에, ‘멋지다’는 정도의 가벼운 표현도 꽤나 무게감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놀람 다음으로 느껴진 것은, 뿌듯한 감정이었다.

우진은 나이 차이와 별개로 경완에게 친동생 같은 존재였고.

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인 천종걸에게 그가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이, 경완에게도 기꺼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 대표 실력이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 성수동 설계안은 정말 최고였죠.”

그래서 조금 들뜬 경완의 기분을 종걸도 느꼈는지, 살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멋진 건축에 클리오 단독 브랜드를 걸지 못하게 된 점이 조금 아쉽긴 하군.”

“저도 그렇습니다.”

종걸의 말을 들은 경완은, 이번엔 살짝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시공권을 100퍼센트 따지 못한 부분을 가지고 경완에게 어떤 핀잔을 주려고 꺼낸 이야기가 아님은 느껴졌는데.

그렇다고 아무 의미 없이 툭 던진 말도 아닌 것 같았으니 말이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지?’

그리고 다음 순간.

“그래서 말인데, 박 상무.”

“네, 대표님.”

이어진 천종걸의 이야기를 들은 박경완은, 점점 더 눈이 크게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종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조만간 자리를 한 번 만들어볼 수 있겠나?”

“자리라면…….”

“서 대표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말이지.”

“……!”

“자네가 서 대표와 친분이 꽤 있지 않은가?”

“그, 그렇습니다.”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경완을 보며, 종걸이 피식 웃었다.

“부담가질 건 없어. 개인적으로 한번 부탁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뿐이니 말이야.”

종걸은 부담 갖지 말라 했지만, 경완은 더욱 기겁했다.

‘개인적인 부탁이라니…….’

그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줄 정말 상상도 못 했거니와, 그 부탁이 뭔지도 너무 궁금해진 경완이었다.

* * *

‘Sharing’과 ‘Privacy’.

우진의 설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두 가지 상충되는 가치 안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최대한 잡아내기 위한. 치밀하고도 기발한 설계라고 할 수 있었다.

“아시다시피 뭔가를 공유하고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개념은, 부유한 상류층의 사람들일수록 달가워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리고 이번에 저희 프로젝트가 타겟으로 삼아야 할 고객들은, 부유층 중에서도 최상위 계층이 될 겁니다.”

“그 또한 맞습니다. 이만한 크기의 대지에 딱 30세대만 지을 텐데……. 한 세대 당 최소 분양가가 40억은 넘어야 사업성이 나올 테지요.”

40억이라는 분양가를 담담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임중우.

하지만 40억이라는 수치도 최소치에 가까웠다. 우진은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땅값만 천억. 공사비도 200억은 잡아야 할 텐데……. 분양가 40억으로는 턱도 없지.’

애초에 이런 강남 한복판에 타운 하우스 느낌의 호화저택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수지맞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진은 사업성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이번 프로젝트가 그 정도 수준으로 아슬아슬한 사업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시도도 하지 않았을 그였으니까.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는 이 공유라는 개념에 대해, 사고의 전환을 한번 해 봤습니다.”

“사고의 전환이라면……?”

“커뮤니티 시설 자체의 목적성을 공유에 두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커뮤니티’ 그 자체에 두는 것이지요.”

우진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임중우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였고, 우진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이 서른 세대 안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서로 친분을 쌓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

“음……?”

“공유가 목적이 아닌, 친목을 도모하고 인프라를 구성하는 것.”

“……!”

“이 단지 내의 모든 커뮤니티의 목적성을 그것에 두고 기획한다면 어떻습니까.”

뭔가를 깨달은 듯 임중우가 생각에 잠겼고, 그런 그와 별개로 우진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 단지의 커뮤니티는, 더 이상 어떤 공간을 공유한다는 개념에서 시작된 효율성을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 말씀은……?”

“이 단지의 주민이 아니라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하나의 프리미엄 같은 개념이 되는 거지요.”

“프리미엄이라……. 꽤나 신선한 발상이네요.”

중우는 이제야 우진의 이야기가 이해되기 시작했고, 그런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진의 부연설명이 추가되었다.

“이를테면, 프리미엄 스포츠카 브랜드의……. 리미티드 에디션 같은 느낌인 겁니다. 서른 명의 선택된 사람들만 이 집에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집에 산다는 사실. 이 단지의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재력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증표 같은 게 되는 거죠. 이를테면……. 스카이 캐슬 같은 개념이랄까.”

우진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중우의 표정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었고.

그 이야기가 일단락되었을 때.

어느새 중우의 얼굴에는, 흥미가 가득 어려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확 와 닿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계획을 100퍼센트 수긍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어떤 문제를 말씀하시는 건지…….”

“결국 그만한 프리미엄을 소비자가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내야 한다는 문제 말이지요. 수십억을 자가 구매에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재력가들로 하여금 말입니다.”

중우의 말에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지적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렇습니다.”

우진이 패드를 터치하자, 화면이 몇 장 넘어갔다.

평면과 설계들을 보여주기 전에, 먼저 중우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하여 잠시 후.

우진이 보여준 것은, 우진이 준비해 온 바로 그 ‘프리미엄’이었다.

“……!”

패드를 집어 든 우진은 그것을 아예 중우에게 넘겨주었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한번 찬찬히 훑어보시지요.”

“커뮤니티 기획안이라…….”

“커뮤니티 센터의 기획안뿐 만이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 이 ‘프리미엄’이라는 것을 만들어낼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주거 프리미엄을 어떤 방식으로 브랜딩하고 마케팅하여 ‘스카이 캐슬’을 완성할 수 있을지.”

“음…….”

패드를 받아 든 중우는 집중해서 우진이 준비한 자료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그런 그를 향해 우진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타운 하우스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이것은 ‘타운’이라는 개념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주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중우가 물었다.

“여기 서 대표님께서 제안해 주신 브랜드 네임 청담 아르코(Arco)가……. 혹시 말씀하신 그 프리미엄과도 관계가 있는 건지요?”

우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정확합니다.”

그 사이 중우는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고.

우진은 패드를 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정확히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귀족정에서 최고의 귀족. 즉 1인자를 뜻하는 단어가 아르콘(Archon)이죠. 그리고 대저택을 의미하는 아르코디코 라는 단어가, 여기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진을 보는 중우를 향해, 우진이 다시 말했고.

“아르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한 이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중우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최고의 품격이라는 게 주거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면서, 이 아르코에 입주한 입주민들을 의미하기도 하는 거지요.”

우진이 처음 기획한 주거 브랜드이자, 차후 고급 주거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될 한 단어.

아르코(Arco)는 이렇게, 청담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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