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249화 (249/315)

249화

타운 하우스

예전부터 청담동에는, 아파트보다 고급 빌라가 비교적 많이 들어서 있었다.

특히 영동대교 남단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수대교 남단까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성수지구 <전략정비구역>과 마주 보고 있는 이 지역은, 대부분의 주거시설이 고급 빌라와 단독주택으로 이뤄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주거환경이 만들어진 데에는 당연히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 한 가지를 꼽아보자면 바로 이곳 대지의 ‘용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가 지어지는 대지인 <제 3종 일반주거지역>에 비하여, <제 2종 일반주거지역>*[용도지역의 주거지역 중 일반주거지역의 하나로, 중층주택을 중심으로 편리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장관·특별시장·광역시장이 지정하는 지역을 말한다.]인 해당 지역은, 아파트를 짓기에 훨씬 더 불리한 건축법이 적용되어 있으니 말이다.

일단 2종 주거지역은, 층수 제한부터가 15층 전후로 빡빡했으며, 용적률도 200퍼센트 전후로 3종 주거지역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다.

같은 면적의 땅 위에 건축을 할 시, 3종 주거지역에 비하여 무려 20~30% 정도나 연 면적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강남이 개발되고 아파트가 들어설 때, 비교적 매력이 떨어지는 지역인 이곳이 통으로 묶여 개발이 진행되질 않았다.

정확히는 3종 주거지역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렸다고 할 수 있을 터.

이미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다양한 원주민들에게 힘들게 땅을 매입하고 명도를 진행해가면서까지, 건설사에서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처음 개발되던 시절만 하더라도, 강남은 부촌의 상징과 다름없는 지금의 모습이 아닌 논밭이나 다름없는 땅덩어리였으니까.

‘물론 이제는 그렇지 않지만…….’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대지가 개별 명의로 쪼개져 있던 이곳 청담동의 빌라촌은, 제대로 개발만 된다면 금싸라기 땅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여전히 2종 주거지역으로 용적률이 낮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낮은 용적률을 커버하고 남을 정도로 사업성이 좋은 위치였으니 말이다.

최상류층을 위한 최고의 주거단지를 잘 조성한다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높은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을 만한 곳.

우진은 이곳에 최고의 집을 짓기 위해.

그와 동시에 최고의 사업성을 뽑아내기 위해.

지난 두 달 동안, 끊임없는 고민을 거듭했었다.

“그래서 말씀하셨던 그 1차 컨셉 설계는……. 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겁니까?”

이런저런 사적인 얘기가 오고간 뒤.

애가 닳았는지, 임중우 사장이 먼저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하하. 그렇지 않아도, 이제 슬슬 보여드리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서 대표의 설계가 기대돼서, 어제 잠도 한숨 제대로 못 잤소.”

임중우 사장의 농담 섞인 이야기에, 우진은 대답 대신 웃으며 아이패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본 임중우는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지금껏 설계 미팅을 하면서, 중우는 아직 종이나 노트북 대신 패드를 들고나오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2012년은 스마트기기의 본격적인 대중화가 시작되던 시점이었지만, 다진건설과 일을 하던 설계사무소의 대표들은 대부분 임중우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딸깍-

가벼운 거치대에 패드를 올린 우진이, 임중우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번 통화하셨을 때……. 저희 이번 프로젝트의 컨셉을, 도심 속의 럭셔리 맨션 같은 느낌으로 가자고 논의되지 않았습니까?”

우진의 물음에 임중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도심 속의 럭셔리 맨션. 그러면서도 타운하우스의 느낌을 살려보자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임중우는 눈을 반짝이며 우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진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이렇게 빌드업을 하는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한 모양이었다.

우진이 다시 말했다.

“맞습니다. 정확히 그렇게 이야기가 됐었고, 저는 그것에 기준을 갖고 첫 번째 컨셉 설계와 디자인을 뽑아 봤습니다.”

우진이 패드의 화면을 몇 번 더 터치하자, 로딩 서클과 함께 잠시 화면이 암전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오……!”

임중우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우진의 패드에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컨셉 조감도였으니까.

컨셉 조감도라고는 해도 그렇게 러프한 퀄리티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지의 퀄리티만 놓고 보면, 거의 사진과 같은 수준.

다만 과연 이렇게 지을 수 있긴 한 건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울 뿐이었다.

분명히 배후에 한강과 올림픽 대로가 보이는, 강남 도심 한복판 위에 그려놓은 주거단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휴양지의 고급 리조트를 연상시킬 만큼, 아늑하고 전원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우진의 조감도.

중우의 눈이 그 화면에 꽂혀 있는 사이, 우진의 설명이 천천히 시작되었다.

* * *

<타운하우스>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하나의 정원을 공유하는 저층으로 건축된 공동주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집과 집을 이어 붙인 듯, 군락을 이루는 주거단지.

타운하우스는 중세 유럽의 가톨릭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장형(細長型) 주택에서 유래된 주거 양식으로,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생겨난 공동주택 양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타운하우스라는 단어는, 유럽 귀족들이 도시 안에 갖고 있는 저택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죠. 유럽의 귀족들은 자신이 소유한 영지 내에 Country house를 가지고 있지만, 수도 도시에도 따로 거주할 주택이 하나 필요했으니까요.”

“재미있군요.”

“그렇게 쓰이던 타운하우스라는 개념이 오늘날의 의미를 갖게 된 건, 아마 1900년대 이후 미국에서가 처음일 겁니다. 오늘날까지도 미국에선, 주택단지를 타운하우스 라고 많이 부르더라고요.”

중우는 우진이 왜 이 타운하우스의 유래에 대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기에 잠자코 듣고 있었다.

우진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국내에서도 한때 타운하우스가 유행하지 않았습니까?”

중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지요. 지금에서야 사실상 망했지만 말입니다.”

한 때라고 해 봐야, 2012년 기준으로는 고작 10년도 되지 않은 가까운 과거의 일이었다.

07년 이후 부동산 시장의 활황기가 막을 내리면서,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게 바로 타운하우스였으니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에서 유행했던 타운하우스는 보통 50~60평대가 넘는 대형평수의 고급 주거였는데.

덩치가 큰 데다 실용성이 떨어지는 타운하우스는 아파트에 비해 환금성도 떨어지고 사치재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심지어 우진이 아는 미래.

다시 부동산 활황기가 오는 2015년 이후에도, 타운하우스는 외면받았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직주근접을 중시 여기기 시작하였으며, 편리하고 실용적인 생활을 주거의 최우선적인 가치로 삼았는데.

타운하우스는 보통 교외에 지어질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서울 도심의 땅값은, 세대수 대비 면적을 크게 차지하는 타운하우스를 짓기엔 너무 비쌌으니까.

우진은 당연히 이러한 타운하우스의 단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대체 왜, 이런 이야기들을 꺼낸 것일까?

“사장님께선 이번 프리미엄 브랜드를 기획하시면서, ‘타운하우스’라는 개념을 왜 떠올리셨습니까?”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 ‘타운하우스’라는 개념을 먼저 이야기한 것은 임중우였고, 그랬기에 나온 우진의 질문.

그에 중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야 서울의 빡빡한 도심 속에서, 전원의 로망을 제대로 살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프리미엄 가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 또한 청담동의 프리미엄 입지라면, 타운하우스의 이런 단점들까지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중우가 고개를 갸웃했고, 우진은 다시 입을 떼었다.

“이 이야기들 속에, 제 설계의 방향성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

여전히 의아한 표정인 중우를 향해,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 브랜드가 완전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 ‘타운하우스’라는 주거 양식이 갖고 있는 요소들 중 최대한 장점만을 살려내야 하니까요.”

“장점들이라…….”

“단점은 제거하거나 보완하고, 장점은 더욱 현대인의 니즈에 맞게 발전시켜 가져오는 것.”

잠시 뜸을 들인 우진이, 패드의 화면을 터치하여 넘겼다.

“저는 그러한 맥락에서, 두 가지 키워드를 특히 중점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펼쳐진 패드의 화면에는 여러 가지 래퍼런스 이미지들이 떠올라 있었고…….

“그 두 가지 키워드는 바로……. ‘셰어링’과 ‘프라이버시’입니다.”

우진은 그 화면 가장 위에 떠올라 있는 한 단어, ‘Sharing’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 * *

타운하우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넓고 쾌적한 정원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로망이었을 ‘정원 있는 집’.

특히나 아파트에 오래 거주한 사람이라면 탁 트인 정원에 대한 로망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땅값이 비싼 도심에서는 정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용적이지 못한 것일 수밖에 없다.

우진은 정원의 이러한 비실용적인 부분을 ‘공유’라는 개념으로 극복한 것이, 바로 타운하우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호화로운 단독주택이라 하더라도 정원을 넓게 갖긴 쉽지 않지만……. 여러 세대가 공유하는 정원이라면 충분히 넓고 쾌적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하여 우진이 첫 번째 키워드로 ‘Sharing’라는 단어를 꼽은 것은, 바로 이 부분과 관계가 있었다.

“혹시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라는 개념에 대해 알고 계세요?”

중우가 대답했다.

“흠.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최근 신축 아파트에도 슬슬 등장하고 있는 개념입니다만, 입주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용시설들을 발전시킨 개념입니다.”

“아하.”

“타운하우스가 가지고 있던 이 공공시설의 ‘공유’라는 장점을, 신축 아파트에서 한 차원 진화시킨 개념이지요.”

중우는 업계에서 오래 일했지만, 사실상 실무에서 손을 놓은 지는 오래였다.

지금의 그는 어디까지나 회사의 오너이자 투자자일 뿐.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을 오랜만에 듣는 것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어쩌면 요즘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주차장을 전부 지하로 내리고 단지 조경에 신경 쓰는 것도, 이런 공유정원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잠시 뜸을 들인 우진이,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하지만 이 Sharing이라는 개념과 필연적으로 상충하는 가치가 하나 있는데, 그 개념이 바로 ‘Privacy’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우진이 이 두가지 키워드를 꺼내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공유’를 통해 대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주거단지의 편리성을 극대화시키면서도.

반대로 ‘사생활’이라는 측면에서 각 세대의 프라이버시(Privacy)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핵심이라고 생각한 것.

이제 우진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이해한 임중우는, 더욱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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