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248화 (248/315)

248화

타운 하우스

우진의 인터뷰가 나간 이후.

WJ 스튜디오의 신사옥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숲 때문에 유동인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던 서울숲로에, 이전보다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진의 인터뷰는 일반적인 기사뿐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잡지와 매체에도 실려 나갔으며.

그 인터뷰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WJ 스튜디오 사옥의 사진이었다.

특히 사옥 안에서도 가장 우진이 공들인 공간인 메인 로비는, 방문객들의 SNS에 빠짐없이 등장하였다.

서울숲 인근에 오면 꼭 방문하여 인증샷을 한 장 정도는 남겨야 하는, 성수동의 명소가 된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한 수백, 수천 장의 사옥 로비의 사진들이, 우진이 얘기했던 것처럼 저마다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간에 따라 로비에 내리쬐는 빛의 각도와 사진을 찍은 사람의 위치.

그런 모든 요소들에 따라, 다른 분위기와 빛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이 공간은, 전문가들뿐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도 흥밋거리가 될 만한 요소였다.

(사진)

└ 와, 여기 어디에요? 해외 같은데?

└ 성수동 WJ 타워에요. 이번에 서우진 건축가가 건축한 건물이라고 하더라고요.

└ 서우진? 그 우리 집에 왜 왔니 서우진이요?

└ 네. 그 서우진 건축가님 맞아요. 저도 얼마 전에 방문했는데, 진짜 신기하고 멋있더라고요.

└ 그런데 여긴 채광이 계속 바뀌나봐요? 신기하네.

└ 가보면 더 신기해요. 2층에 있는 식당에서 밥 먹고 나왔는데, 처음 들어올 때랑 또 분위기가 완전 달라져 있더라고요.

└ 대박……. 그런 게 가능해요?

└ 한번 가보시면 알아요. 한번 정도는 꼭 가볼만 함.

게다가 WJ 타워는, 단순히 건축적 아름다움만 가지고 있는 건물도 아니었다.

애초에 고층부만 WJ 스튜디오의 업무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보니, 1층부터 5층 정도까지는 다양한 상업 시설이 입점한 것이다.

최근까지도 가장 핫한 커피 전문점인 <카페 프레스코>부터 시작해서, 인지도 높고 인기 있는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이 WJ타워에 입점했던 것.

이미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하던 성수동이지만, 이렇게 오래 머물며 여가를 즐길만한 복합 문화시설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었고.

그래서 WJ타워는, 성수동 상권의 거점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검색포털에 ‘서울숲’ 혹은 ‘성수동’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포스팅들이 주르륵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서울숲 WJ 타워 : 성수동에 방문한다면, 꼭 한번 가봐야 하는 명소.]

[성수동 맛집. WJ 타워의 제론 베이커리.]

[<카페 프레스코>, 드디어 서울 숲에도 입점!]

[요즘 핫한 WJ 타워, 주차정보 및 상세 후기.]

이렇게 WJ 타워의 이슈화가 커지자, 우진의 투자에 관심을 갖는, 경제 분야 매체도 점점 더 많아졌다.

연예인들의 사소한 투자에도 관심 갖는 경제매체에서, 이제 연예인이나 다름없을 정도의 인지도가 생긴 우진의 투자 스토리는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훌륭한 소스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기사의 내용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건축가 서우진. 그는 사실 투자의 귀재였다?]

[토지매입부터 시공까지……. 100억 미만의 투자금으로 지어진 성수동 WJ 타워. 현재 추정 시세는 150~200억? 부동산 전문가 A씨. 200억도 아주 보수적으로 책정한 것…….]

[WJ 타워 효과로, 서울숲 인근 지가 대폭 상승!]

[WJ 타워 흥행으로, 인근 상가 매출 급격히 상승해…….]

따끈한 수제비 칼국수를 떠먹으며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던 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부담스럽게……. 이제는 별 얘기가 다 나오네.”

우진은 유명해지는 것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우진이 인정받고 유명해지고 싶은 분야는 건축디자인에 한정된 것이었는데, 최근 기사를 보고 있자면 건축에 대한 이야기 이상으로 다른 가십거리들이 더 크게 이슈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우진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어머니 주희가, 웃으며 우진을 향해 이야기하였다.

“넌 이제 공인이잖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감수해야지.”

“그러게요.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슬쩍 주변을 둘러본 우진은, 다시 수제비를 떠먹기 시작하였다.

우진의 어머니 주희의 칼국수 집도, 항상 손님으로 가득했기에, 만약 정체(?)를 들킨다면 소란스러워질 터였다.

그래서 우진은 조용한 목소리로 주희와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 요즘 가게 매출은 어때요?”

“보다시피 좋지.”

“힘들진 않으세요?”

“이제 네 말 듣고 주방장도 따로 고용했는데 뭐. 내가 힘들 일이 뭐가 있겠니.”

주희의 칼국수 집은 WJ 타워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진이 상가 자리에 음식점들을 입점할 때 어머니의 칼국수 집을 가장 먼저 픽스해버렸던 것이다.

덕분에 주희의 칼국수 집은 개포동에서 장사할 때보다 거의 대여섯 배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지만, 우진은 너무 좋은 자리에 가게를 내어준 것이 조금 후회도 되었다.

우진 자신도 점심시간이든 저녁 시간이든 어머니의 칼국수 집에 편하게 식사하러 오고 싶었는데,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방문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요즘 장사 잘돼서, 항상 기분 좋으신 것 같으니 뿌듯하기도 하고…….’

국물 한 숟갈 남김없이 그릇을 싹 다 비운 우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어요, 엄마.”

든든하게 배도 채웠으니, 이제 다시 오늘의 일정을 소화해야 할 시간이었다.

“우진이 너는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니?”

주희의 물음에, 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엄마. 전 이제 외부에 나가볼 일이 있어서요.”

주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네가 고생이 너무 많구나.”

“고생은요.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거라. 알겠지?”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엄마.”

주희의 칼국수 집을 나온 우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진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 잔소리도, 오랜만에 들어보네.”

띵-

지하 3층의 주차장에 도착하자, 우진의 차가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대표인 우진을 위한 지정 주차 자리에 반듯하게 주차되어있는 우진의 자동차.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며, 우진은 문득 생각하였다.

부릉-!

‘그래. 엄마 말대로 여유를 조금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어.’

물론 오늘은 아니었다.

일단 당장 바쁜 일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면, 우진은 며칠 휴가를 가져보기로 다짐하였다.

* * *

오늘 오후, 우진에게 잡혀있던 일정은 다진건축의 임중우 사장을 만나는 일이었다.

성수동 전략정비구역의 설계 공모 발표가 있기 전, 청담동 부동산의 김 사장을 통해 소개받았던 인맥인 임중우 사장 말이다.

그를 만나는 이유는 당연히 ‘일’ 때문이었다.

임중우 사장과 첫 미팅 이후 시간이 벌써 두 달 정도가 지나갔고, 그래서 다진건축과 WJ 스튜디오의 협업으로 진행되는 청담동 고급 타운하우스 프로젝트도 꽤나 진전이 있었으니까.

어떤 실질적인 진전이라기보단, 프로젝트 전반에 걸친 계획이 이제 다 세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

‘오늘 임 사장님을 만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설계에 들어갈 수 있겠지.’

임중우 사장과 우진이 추구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다진건설과 WJ 스튜디오가 합작으로 만들어낼 새로운 고급 주거 브랜드였다.

때문에 이 브랜드를 런칭하는 과정에서 양 사의 구체적인 역할과 프로세스를 적립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제 그와 관련된 논의가 얼추 끝난 상황이었다.

오늘 우진이 임사장을 만나기로 한 곳은, 한남동의 고급 호텔 라운지였다.

이곳은 임 사장이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 애용하던,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공간이었다.

호텔 정문에서 발렛서비스에 차를 맡긴 우진은, 빠르게 걸음을 옮겨 약속장소로 향했다.

띠링-

이어서 우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이미 도착해 있던 임사장이 웃으며 우진을 맞아 주었다.

“일찍 와 계셨군요!”

우진과 임중우는 오늘로 이제 두 번째 만나는 것이었지만, 그간 프로젝트 관련해서 종종 통화를 했기 때문인지 어색함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하하. 저는 오늘 점심 식사도 여기서 했으니까요. 서 대표도 식사는 하셨지요?”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편히 앉으시지요. 오늘은 좀 여유를 갖고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좋습니다, 사장님.”

우진이 자리에 앉자, 곧 간단한 디저트와 음료가 탁자 위에 놓였다.

임중우가 워낙 단골이기 때문인지, 별다른 오더 없이도 테이블은 자연스레 세팅이 되었다.

달달하고 시원한 과일음료를 한 모금 마신 우진은, 조금 더 기분이 좋아졌다.

우진이 주문한 음료가 아니라 얼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무척이나 맛있었으니까.

그리고 잠시 우진이 숨을 돌린 뒤, 임중우 사장의 입이 다시 떼어졌다.

“그나저나 대표님.”

“네, 사장님.”

“지난달에는 정말 놀랐습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임중우가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성수지구 공공사업 통합 설계권 말입니다.”

“아……!”

“사실 저는 서 대표님께서 아무리 실력이 좋으시다 한들, 결국 사업권을 따내는 것은 실패하실 것이라 생각했었거든요.”

“하하.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요.”

“정말 놀랐습니다. 나이에 비해 노련한 분이시라는 건 그날 대화만으로도 느꼈지만……. 그래도 건축가 협회의 이해관계가 크게 엮여있는 사업권까지 가져오실 수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우진과 임중우의 시선이 허공에서 살짝 마주쳤다.

그리고 중우의 표정을 본 우진은, 그가 뭘 궁금해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대체 내게 어떤 인맥이 있는지. 그게 궁금하신 거겠지.’

우진의 프레젠테이션 퀄리티 자체도 놀라웠고, SNS를 활용하여 판을 묶어버린 한 수도 놀라웠다.

하지만 이 바닥에 벌써 수십 년을 있었던 중우는, 우진이 가진 무기가 그것 외에도 더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우진에게 슬쩍 물어본 것이었다.

이제 한배를 탄 우진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진이, 있는 그대로를 전부 말해줄 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신 시장님께서, 워낙 대쪽같은 분이셔서 가능했습니다.”

“오호, 시장님이라…….”

“강변북로 지하화부터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는, 이번에 부임하신 구윤권 시장님의 첫 야심작이었죠.”

“그랬지요.”

“시장님께선 이 첫 단추가, 구정물에 더럽혀지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 덕에 제가 좀 수월할 수 있었고요.”

우진은 여기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수긍한 임중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이 어떤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서울시장과 우진 사이에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음은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서울시장이라……. 그쯤 되면 협회도 어쩔 수 없는 거물이 맞지.’

이어서 우진을 보는 임중우의 눈빛에, 조금 더 큰 흥미가 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 가지 예감도 함께 떠올랐다.

어쩌면 WJ 스튜디오와 진행하는 이번 사업이, 중우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성공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분 좋은 예감 말이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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