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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247화 (247/315)

247화

새로운 보금자리

WJ 스튜디오의 신사옥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은, 꽤 빠르게 업계에 퍼져나갔다.

사실 WJ 스튜디오는 아직까지 중소기업이나 다를 바 없는 회사였고.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런 작은 회사의 사옥이 지어졌다는 소식이 이슈화될 일은 없었지만.

우진과 WJ 스튜디오는 경우가 좀 달랐다.

올봄 왕십리의 패러필드부터 시작해서 리빙페어, 그리고 <천년의 그대> 세트장까지.

지금은 서우진이라는 건축가가 지속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던 시점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WJ 스튜디오의 신사옥은, 클라이언트도 따로 없었다.

우진이 건축가이자 클라이언트였고, 그렇다는 말은 우진의 건축철학과 디자인 역량을 담기도 가장 좋은 건축이라는 이야기.

때문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네, WJ 스튜디오입니다.”

[안녕하세요. ‘아트온’이라는 디자인 잡지사의 에디터 이지은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저희 잡지사에서 서우진 대표님의 인터뷰를 좀 하고 싶어서요.]

“아, 인터뷰요?”

[네. 이번에 WJ 스튜디오의 신사옥을 서우진 대표님께서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하셨다고 들었거든요.]

“네, 맞습니다.”

[서울숲 명물이라고 벌써부터 얘기도 자자하고 그래서……. 디자인 인터뷰를 꼭 좀 한번 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인터뷰 일정은 대표님 일정에 최대한 맞추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어디 잡지사라고 하셨죠?”

[‘아트온’의 이지은이라고 합니다.]

“저희 회사 메일로 연락처 남겨주시면, 대표님께 여쭤보고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WJ 스튜디오의 비서실과 마케팅팀은 최근 들어 더욱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우진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으니 비서실의 업무가 그만큼 늘어난 것은 당연했으며.

이렇게 우진을 비롯해 회사가 이슈화되는 상황을 최대한 살려 WJ 스튜디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마케팅 부서도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했으니 말이다.

뚝-

오늘도 벌써 우진에 대한 인터뷰 요청만 세 통의 전화를 받은 마케팅팀의 직원 윤 대리는, 아트온의 이지은이라는 이름을 메모장에 기록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왜 그래요, 대리님?”

“아니, 대표님 인터뷰 문의 또 들어와서요.”

“아하.”

“벌써 인터뷰 요청만 열 곳은 넘게 들어온 것 같은데. 이거 대표님께서 하실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절대 못하실 걸요.”

“아무래도 그렇죠?”

“당연하죠. 비서실 친구 얘기 들어보니까, 대표님 시간 아무리 쪼개도 인터뷰 한두 개 나가기도 힘드시다고 하더라고요.”

동료직원의 말에, 윤 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대표님은 어떻게 그렇게 사시나 몰라.”

“그렇게 라니요?”

“아니, 저 같았으면 한 달도 못 버티고 방전될 것 같아서요.”

“아…….”

“그렇잖아요. 제가 뭐 대표님 스케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대충 봐도 여가라곤 없으신 것 같던데.”

“그렇게 하시니까 그 나이에 이런 회사 키우신 거겠죠 뭐.”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동료직원과 잠시 얘기하던 윤 대리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메모장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어떤 매체에서 들어오는 연락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으니, 까먹기 전에 비서실에 전달하려는 생각이었다.

또각- 또각-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긴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띵-

마케팅팀의 사무실은 10층이었고 대표실과 비서실이 있는 곳은 최상층이었다.

‘올라가는 김에 옥상에서 바람이나 좀 쐬야겠다.’

건물 외곽에 위치한 엘리베이터에 타자, 탁 트인 서울숲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WJ 스튜디오의 신사옥은 외관 전체가 유리로 마감된 커튼 월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채광 때문인지 거의 절반 이상의 면적이 투명 소재로 지어져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바깥 전경을 응시하던 윤 대리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녀가 이 WJ 스튜디오에 입사한 지도 어느덧 1년 반이 지났고.

그 사이 그녀의 회사는, 정말 눈부시게 성장해 있었으니까.

* * *

M일보의 경제부 기자 김규식은, 금요일 오후 외근을 나와 있었다.

“날씨 좋고……!”

오후 취재가 끝나면 곧바로 퇴근 예정이기 때문인지, 규식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인터뷰 끝나면 대충 네 시 반 정도 되려나……? 오랜만에 약속이나 잡아볼까?”

택시 뒷좌석에 앉아 스케줄을 확인하던 규식은, 조금 멀미가 올라오는지 다이어리를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오늘 취재를 나온 곳은 다름 아닌 성수동.

그리고 인터뷰를 하기로 되어있는 사람은, 그와 꽤나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기사 한번 기깔나게 만들어 봐야지.’

오늘 인터뷰가 잡혀있는 사람.

우진을 떠올린 규식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를 떠올릴 때면, 규식은 항상 처음 그를 만났던 송파구 잠실동의 종합운동장이 떠올랐다.

선영아파트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굴지의 대기업 발표자들을 압도하며 시공권을 따냈던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청년.

규식은 그 청년을 처음 봤던 순간부터 분명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생각해 왔고.

그래서 그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항상 뿌듯했었다.

우진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대부분의 곳에는 규식의 기사도 남아있었고.

때문에 그의 기사가 우진의 성장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오늘 인터뷰에 기자가 몇 명이나 오려나…….’

우진의 일정 때문에 단독인터뷰는 딸 수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규식은 크게 아쉽지 않았다.

공개 인터뷰 일정이 잡히자마자 WJ 스튜디오에서는 가장 먼저 규식에게 연락을 해 주었고.

규식은 그것으로 충분했으니 말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잠깐이지만 서 대표와 커피라도 한잔할 수 있을 터였다.

“아저씨! 여기서 내려주세요.”

“네, 손님. 감사합니다.”

택시에서 내린 규식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WJ 스튜디오의 신사옥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건축에 완전히 문외한인 그가 보기에도, 더없이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있는 WJ 스튜디오의 서울 숲 신사옥.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규식의 얼굴에는, 적잖은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다.

* * *

우진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와 나의 일상이 다를 뿐……. 나의 오늘과 내일은 크게 변함이 없는 게 평범한 현대인의 일상이지요.”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은, 서울숲로에 지어진 WJ 스튜디오의 신사옥 로비였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우진을, 수많은 카메라들이 촬영하고 있었다.

“물론 같은 길을 지나도 천천히 산책하듯 걷는 사람이 있으며, 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지나는 사람도 있고, 자동차를 타고 다른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다양한 경험은, 공간에 부여된 ‘목적성’이 강해질수록, 반대로 마모되고 희석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지요. 음식점에 와서 축구를 하는 경험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아직 우진을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가장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축가가 누구냐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진을 꼽을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 WJ 스튜디오 사옥은, 목적성이 아주 뚜렷한 건물입니다.”

우진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저를 포함한 모든 임직원분들께선, 오늘도 이곳에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하셨으니까요.”

기자들은 우진의 목소리를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해서 인터뷰를 경청하고 있었다.

우진의 인터뷰가 훌륭한 기삿거리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건축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우진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빨려들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저는 처음 이 공간을 설계할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진이 잠시 뜸을 들이자 모두의 시선이 그의 입으로 모아졌고.

잠시 후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매일 매일이 새롭게 느껴지는 공간을 설계할 수는 없을까?”

“매일 매일, 새로운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건축을 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저는, 이 물음들에 대한 대답을 어느 정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우진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우진이 이 자문(自問)에 어떤 답을 도출했을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냥 눈으로 봐도 아름다운 이 공간이 지금 그들이 서 있는 WJ 스튜디오 사옥의 로비였지만.

이 공간을 설계한 우진으로부터 이 건축에 담긴 철학을 듣다 보면, 더 깊은 아름다움과 감동이 느껴질 테니 말이다.

그리고 우진은, 그런 청자들의 기대에 기꺼이 부응하였다.

“건축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변하지도 않지요.”

말하는 우진의 두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오늘과 내일. 아니, 당장 조금 전과 지금 사이에도 계속 변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진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눈치 빠른 몇몇 기자들은 탄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이어질 다음 말이 어떤 것일지, 깨달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바로 시간. 그리고……. 그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이었습니다.”

우진이 또렷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적어도 365일 동안, 빛은 단 한 번도 같은 날이 없으니까요.”

우진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로비를 두리번거렸다.

단지 수십 갈래의 각도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그 빛에 어우러진 공간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만을 했었는데.

우진의 말을 듣고 나니 새로운 부분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랑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도 같은데?’

‘해가 조금 넘어가서 그런지, 바닥에 깔린 빛의 패턴이 달라졌어.’

어쩌면 ‘기분탓’일수도 있겠지만, 우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미약한 공간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감탄하였다.

그 변화 속에서도, 이 건축의 이 공간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니까.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 공간에 떨어져 내리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각도와 흐름. 그것들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공간의 일부로 만든다면, 그 빛 또한 건축의 일부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우진의 물음은 여전히 자문(自問)이었으나, 그 질문을 들은 청자들은 자연스레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대답은 바로 긍정이었다.

적어도 우진이 지은 이 건축 안에서, 빛은 완벽히 공간의 일부로 녹아있었으니 말이다.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건축한 이 공간으로 대신 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건축이 답이 될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답이 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하얗게 떨어져 내리는 빛.

몇 걸음 옮겨 다시 그 가운데 선 우진이, 오늘의 인터뷰에 마침표를 찍었다.

“제 건축. 이 공간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최대한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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