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244화 (244/315)

244화

신뢰

이천시 문화국의 국장 조용현은, 오랜만에 예능을 시청하기 위해 호프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평소에도 예능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간까지 맞춰가며 기다려서 예능을 시청하는 것은 오랜만.

오늘 그가 온 곳은 후라이드 치킨이 맛있는 시청 근처의 호프집이었고.

그는 오늘 여기서 문화국 직원 몇몇과 맥주를 한 잔씩 하며 <우리 집에 왜 왔니>를 시청하기로 하였다.

어찌 보면 일요일까지도 업무의 연장선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조용현을 비롯한 문화국 직원들은 딱히 그런 생각으로 호프집에 나오진 않았다.

일단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예능프로 자체가 재미있는 예능이었으며.

오늘 이 예능에 출연하는 우진 덕에 최근 문화국 전체가 활기를 띄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난번 우진과의 딜 이후로 조용현은 이천시장에게 1차적으로 보고를 올렸었고.

그 직후에 코엑스에 있던 리빙페어가 대박이 나면서, 시장의 지지를 크게 얻을 수 있었던 것.

이번 프로젝트가 제대로 성사되기만 하면 문화국 직원들의 실적은 역대급으로 치솟을 테니…….

주말에 모여 치맥과 함께 예능을 시청하는 정도는, 그들에게 업무라고 느껴지지도 않는 것이 당연하였다.

“국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기는 무슨. 아직 3분 남았어.”

“진식이도 지금 다 와 간대요.”

“치킨 시켜놨으니까, 맥주는 알아서 주문해.”

“네, 국장님.”

물론 오늘 호프집에 문화국의 직원 전체가 다 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직접적으로 진행하는 실무 요직의 인원들만 호프집에 나와 있었고.

인원은 조용현 국장을 포함해 총 네 사람이었다.

“강호, 어제는 뭐 했어? 아들내미랑 놀러 간다더니.”

“서울 다녀왔습니다.”

“서울?”

“롯데월드 갔다 왔어요. 애가 하도 졸라서.”

“난 또, 서울이라길래 리빙페어라도 보러 갔다 온 줄 알았네.”

“리빙페어 지난주에 닫았잖아요.”

“아, 그랬나?”

“그리고 제가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그렇지, 주말에 아들내미 데리고 리빙페어까지 갈 정도는 아닙니다.”

“열심히 하기는 개뿔.”

“하, 국장님. 너무하시네.”

“크크크.”

오랜 시간 함께 일한 동료들 인만큼, 문화국 직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잡담을 떨었다.

그러는 동안 치킨과 함께 맥주가 나왔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오기로 했던 모든 인원이 모였다.

이어서 맥주잔을 한 차례 부딪쳤을 때.

쨍-

광고가 전부 끝나고, <우리 집에 왜 왔니>가 시작되었다.

“어,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첫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 직원들의 입에서는 거의 동시에 탄성이 새어 나왔다.

“오오……!”

“대박!”

“크, 역시!”

그들이 탄성을 터뜨린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우리 집에 왜 왔니>의 첫 장면부터가, 이천시에 있는 <천년의 그대> 세트장이었던 것이다.

출연진이 등장하기 전 드론을 활용한 P.O.I(Point Of Interest)*[피사체를 중심으로 카메라를 회전시키며 촬영하는 항공촬영 기법.] 항공촬영기법으로, 세트장 전경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방영분의 시작이었던 것.

문화국 직원들은 일단 우진이 완벽하게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에 가장 먼저 감탄하였으며.

항공촬영으로 한 눈에 들어오는 세트장 전경의 수려함에 또 한 번 감탄하였다.

그들은 <천년의 그대> 세트장의 현장에 직접 가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전경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항공뷰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캬, 이렇게 보니까 진짜 멋있네요.”

“컨셉이 무슨 하늘궁전? 이라더니. 진짜 그런 느낌 나는데?”

“바닥에 비싼 청백색 대리석을 왜 깔아놨나 했더니…….”

“구름 위의 궁전같네요, 정말.”

저마다 감탄사를 한 마디씩 터뜨린 네 사람은, 치킨을 뜯는 와중에도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어서 잠시 후.

<우리 집에 왜 왔니>의 고정 출연진들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장 먼저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린 것은, 역시 메인 진행자인 재엽이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PD님. 이 오프닝 멘트 좀 바꾸면 안 될까요? 이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 돼.]

[재엽 오빠.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어? 바꿔주실 거면 이미 예전에 바꿔주셨을 듯.]

[하…….]

초기의 <우리 집에 왜 왔니>가 재엽과 리아의 티키타카로 시작되었다면, 최근에 리아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수하였다.

지난 시간 동안 많은 포맷이 달라져 있는 <우리 집에 왜 왔니>였지만, 프로그램에서 느껴지는 기본 색깔만큼은 아직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잠깐. ‘우리 집’에 왜 왔냐면서요. 대체 여긴 누구네 집인데요?]

수하의 물음에, 옆에 있던 박두영이 추임새를 넣었다.

[우와……. 여기 무슨 궁궐이야?]

박두영은 재엽‧수하와 함께, 첫 방영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에 왜 왔니>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었다.

[당연히 집주인을 모셨지요.]

재엽의 말에, 두영이 다시 물었다.

[집주인? 이런 궁궐에 집주인이 어디 있어? 지금이 조선 시대야?]

수하가 끼어들었다.

[궁궐이 아니고, ‘하늘궁전’이라고요 선배님.]

[하늘궁전?]

재엽이 다시 말했다.

[정확히는 ‘천신궁’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곳이지요.]

[뭐야. 재엽이 너 무협지를 너무 많이 읽은 것 아냐?]

두영이 과장된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고, 재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두영이 형 뿐만 아니라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이 으리으리한 집에 대해 궁금하신 것들이 많을 텐데요……!]

이어서 그가 카메라 우측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단 이 천신궁의 주인들을 먼저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한 건 집주인에게 물어봐야죠! 반갑습니다, 집주인 여러분!]

재엽이 뻗은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카메라가 자연스레 이동하며 게스트들의 면면을 비추었다.

오늘의 게스트들은 총 네 사람.

우진과 리아. 그리고 <천년의 그대>의 주인공인 민우와 하영이었다.

출연진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게스트들이 소개되었고.

게스트들이 소개된 순간 호프집도 웅성이기 시작하였다.

“와, 오늘 게스트 진짜 빵빵하네?”

“이야! 유리아도 나왔어. 오랜만에!”

“저 젊은 친구는 누구야?”

“저 친구가 서우진이잖아.”

“아, 그래? <우리 집에 왜 왔니> 초창기 멤버라더니, 오랜만에 나온 건가?”

“여기 세트장도 서우진이 작품이래.”

“진짜?”

“그렇다니까? 저 친구 진짜 물건이야, 물건.”

금일 <우리 집에 왜 왔니> 방영분의 촬영지가 이천시이기 때문인지.

문화국 직원들을 제외하고 호프집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무척이나 흥미롭게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원래 유명 프로에 익숙한 동네가 나오면, 괜히 내 어깨가 으쓱하고 기분이 좋은 법이었다.

“벌써부터 재밌는데요?”

“오바는…….”

부하직원 진식의 너스레에 한 차례 핀잔을 준 조용현이 다시 TV에 시선을 고정시켰고.

화면에서는 출연진들과 게스트들이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이어졌다.

초창기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 단짝이었던 재엽과 리아가 틱틱대는 것을 시작으로…….

[이야, 유리아. 너 오랜만이다?]

[오빠는 못 본 사이에 살이 왜 이렇게 쪘어?]

<우리 집에 왜 왔니> 흥행의 일등공신인 우진 또한, 고정 출연진들의 격한 인사를 받았다.

[크, 서 대표님! 이거 완전히 금의환향 아닙니까?]

[금의환향이라뇨. 전 엄연히 게스트일 분이라고요. 다시 고정출연하는 거 아닙니다. 오해 마세요.]

[쳇, 야박하시네, 우리 아우님.]

그렇게 출연진들이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분위기는 한층 더 달아올랐고.

잠시 후 민우의 얼굴이 스크린에 확대되었다.

한껏 꾸미고 나온 민우의 얼굴은, 이제 아역배우라는 프레임을 완전히 벗은 잘생기고 멋진 모습이었다.

[잠깐. 집주인‘들’이라니요, 선배님.]

민우의 이야기에 재엽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응? 난 대본대로 읽은 것뿐인데?]

재엽의 애드립에 출연진들이 킥킥거리며 웃었고, 민우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천신궁은 ‘서후’네 집이라고요. 그러니까 집주인은 저 혼자인 거죠.]

민우가 말을 한 직후.

약간의 화면연출과 함께 드라마 <천년의 그대>의 트레일러 영상을 비롯한 미공개 영상들이 잠깐 스크린에 비춰졌다.

그리고 호프집에 있던 모든 시청자들은, 마치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그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이거 드라마 맞아?”

“그러니까……. 퀄리티가 뭐 이렇게 좋아?”

그냥 촬영해도 멋진 천신궁의 건축물들에 CG가 입혀지고.

그 위에서 각기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다.

그것은 앞뒤가 다 짤린 짧은 영상들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거 드라마 제목이 뭐라고?”

“<천년의 그대>라잖아.”

“와……. 제목 유치해서 B급 사극인 줄 알았는데…….”

“대박. 이거 방영이 언제야?”

호프집 여기저기서 웅성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조용현은 괜히 자신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천시에서 이런 퀄리티의 드라마가 촬영되다니…….’

지금 우진과 딜이 오가는 프로젝트가 깔끔하게 진행된다면.

드라마의 흥행은 곧 이천시의 발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된다.

드라마의 스토리나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애초에 <천년의 그대>가 처음 이슈화되는 중심에 ‘천신궁 세트장’이 있었으니.

흥행으로 인한 관심도의 대부분을, 관광수요로 빨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성립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하고 우진에게 컨텍한 조용현의 실적은, 그만큼 크게 인정될 것이었다.

<천년의 그대> 트레일러 영상을 잠깐 본 것으로 여기까지 행복 회로를 돌린 조용현 국장의 얼굴엔, 더욱 푸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야, 민우 출세했네. 집 너무 근사한 거 아냐?]

[그래서 요즘 행복해요 선배님. 촬영하다 보면 진짜 여기가 내 집 같고……. 그렇다니까요?]

재엽과 민우가 대화하던 중, 옆에 있던 수하가 슬쩍 한마디 거들었다.

[이 세트장이 얼마 전에는, 코엑스에서 열렸던 <국제 리빙페어>에서도 엄청 화제가 됐었다죠?]

그리고 그 말을, 재빨리 재엽이 받았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전통건축의 멋을 현대적인 건축기법으로 아름답게 살린 건축이라고, 해외 매체에서도 칭찬이 아주 자자하다고 합니다.]

[크, 역시 서 대표님! <우리 집에 왜 왔니>가 낳은 아들!]

대본에 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수하와 재엽이 손발을 맞춰가며 슬쩍 우진을 띄워준 것.

[우진이는 우진이 어머님께서 낳으셨지, 프로그램이 낳았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괜히 꼬투리 잡기는.]

재엽과 수하는 티격태격하며 다음 순서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출연진은 자연스레 세트장 안으로 이동하였다.

[오늘은 촬영장이 평소보다 무척이나 넓은 만큼, 재밌는 미션을 기대해 봐도 되겠죠?]

[글쎄요. 이상한 건 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스크린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조용현 국장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됐다. 됐어.’

아직 오늘 방영분이 시작한 지 15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오늘 방송이 끝나고 나면, 이천시와 세트장이 뜨겁게 이슈화될 것은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으니 말이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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