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가장 뜨거운 여름
[기사 입력 2012.08.06. 오후 4:30]
[데일리 디자인, 유지수 기자]
8월의 여름은 뜨거웠다.
그리고 <국제 리빙페어>의 열기는 그 여름의 열기보다도 더욱 뜨거웠다.
Media와 Living이라는 다소 연관성을 떠올리기 힘든 두 가지 컨텐츠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완벽히 조화를 이루었으며, 전에 없던 새롭고도 멋진 전시를 관람객들 앞에 선보였다.
……중략……
이러한 흥행에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드라마 <천년의 그대>와 WJ 스튜디오의 대표 서우진 디자이너였다.
<천년의 그대>는 제작비 100억 이상에 모든 회차가 사전제작으로 촬영되는 드라마다.
이 <천년의 그대>의 촬영이 이뤄진 세트장 일부가 리빙페어의 메인 부스에 전시되었는데, 이는 WJ 스튜디오의 서우진 대표가 직접 디자인‧설계한 작품이다.
일반 관람객들은 물론 리빙페어에 방문한 수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이 멋진 작품을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드라마 <천년의 그대>의 세트장 / 사진 : 김정수]
“정말 놀랍습니다. 리빙페어에 와서 이런 멋진 작품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말 그대로 환상적입니다.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멋지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니…….”
“서우진 디자이너의 작품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이 작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두 시간 넘게 줄 서 있던 수고를 보상받는 것 같군요.”
천년 전의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스토리가 진행되는 <천년의 그대> 세트장은, 전통의 멋을 살리면서도 현대건축의 세련된 아름다움을 멋지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전반적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전시였지만, 특히 이 작품 앞에는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시가 오픈한 4일 오후 타임에는, <천년의 그대>에 주연을 맡은 배우 성하영과 민우가 현장에 방문하여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저희 드라마 세트장을 디자인해주신 서우진 대표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드라마, 정말 예쁘게 잘 나왔어요!”
“서우진 대표님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조금 있는 형님이기도 합니다. 워낙 바쁘셔서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하하. 드라마 첫 방영 날에는 같이 본방 사수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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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컨텐츠 업계의 전문가들 또한, 이번 전시를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는 후문이다.
“컨텐츠의 확장성은 무한합니다. 컨텐츠는 곧 문화이며, 어떤 분야에도 문화는 항상 존재하죠. 새로운 시도를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전시는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심지어 최근에 있었던 그 어떤 페어보다 아름다운 전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주최 측과 그 안에 단단한 알맹이를 채워 넣은 모든 참가사 여러분께 찬사를 보냅니다.”
이번 코엑스 <국제 리빙페어>는, 8월 4일 토요일부터 8월 10일 금요일까지 총 일주일 동안 오픈한다.
그 어느 때보다 볼거리가 많은 전시인 만큼, 일반적인 페어보다 2배 이상 긴 기간 동안 전시가 이어진다.
<서울 디자인 재단>의 이사장 안정묵은, 이번 페어의 총 방문객 숫자가 역대 최고 수준인 5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 * *
11년 하반기부터 12년 상반기까지.
우진이 쉼 없이 뛰어다니며 만들어 낸 결과물인 리빙페어는,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전시를 기획한 주최 측과 관계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리고 우진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크게 말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진이 이슈화시켰던 그 어떤 일들보다도 훨씬 더 파급력이 강력했는데, 이것은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단 전시장에 방문한 인원만 50만 명이 넘는 수준에, 해외 방문객이 그 중 10퍼센트나 차지할 정도였으니.
전시가 진행되는 내내 저녁 뉴스 헤드라인으로 <코엑스 국제 리빙페어>가 도배될 정도였던 것이다.
우진은 이 결과가 결국, 미디어 컨텐츠와의 콜라보 덕분이라고 생각하였다.
우진이 아무리 날고 기어 멋진 건축디자인을 전시에 선보였다고 해도, ‘미디어 컨텐츠’라는 무기 없이 이렇게 대중적인 관심을 끌어모으는 것은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전시가 마무리되어가는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성수동 단골 바에서 만난 우진과 소정은, 칵테일을 한 모금씩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류 컨텐츠 전시를 보러 A섹터에 방문했던 방문객들도, 결국 한 번씩은 B섹터를 둘러봤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전시 내용 자체가 전부 다 물 흐르듯 이어져 있었으니까요.”
“하영 씨가 왔다 간 것도 이슈화에 큰 역할을 했고요.”
“그러게요. 민우가 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하영 씨가 방문할 줄은 저도 몰랐어요.”
두 사람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 리빙페어에 가장 많은 노력을 부은 사람이자 가장 큰 수혜를 보게 될 사람인 우진은 당연했으며.
숙원사업이나 다름없는 <천년의 그대>가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딛은 셈인 소정 또한, 우진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어쨌든……. 모두가 잘 해주신 덕에 대박 난 것 같습니다.”
“이제 드라마만 재밌으면 되겠군요?”
“소정 대표님만 믿습니다.”
“으……. 이거 부담돼서 큰일 났네요.”
“왜 갑자기 약한 척하세요? 항상 자신감 넘치시던 분께서.”
“이제 드라마 잘 안 되면, 핑계 댈 곳도 없잖아요.”
“크크. 그야 그렇죠.”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떠는 소정을 보며, 우진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절반쯤의 농담과 절반쯤의 진심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떨리겠지. 진짜 소정 대표님 입장에서는 올인인데.’
리빙페어의 흥행으로 인해 <천년의 그대>가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졌고.
이것은 분명 드라마 흥행에 청신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드라마가 재미없고 반응이 좋지 않다면.
오히려 이것은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대중의 기대감은 최고조로 높아져 있는 상황이었고.
이렇게 훌륭하게 깔린 판 위에서 대차게 말아먹는다면, 그만큼 더 크게 욕을 먹을 테니 말이다.
‘어차피 성공할 드라마라고, 걱정말라고 해줄 수도 없고. 참…….’
우진은 말없이 칵테일을 다시 한 모금 홀짝였다.
그리고 잠시 후.
소정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대표님.”
“네?”
“우리 내기 하나 할까요?”
“무슨 내기요?”
소정의 물음에, 우진이 씨익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드라마. 첫 방 언제였죠?”
우진의 물음에, 소정의 입에서 1초도 지체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12월 5일. 수요일이요.”
“어. 편성이 좀 바뀌었나 보네요?”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왜 물어봤어요? 내기하자면서요?”
조금 장난기 어린 우진의 목소리에, 소정이 눈을 빛내며 대답을 재촉하였다.
그에 우진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별 건 아니고……. 첫 방영 시청률 내기 한번 해볼까 했죠.”
소정은 더욱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오……. 그거 재밌겠는데요?”
그리고 소정이 대답하는 사이, 우진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보고 있었다.
‘원래 천년의 그대 시청률이 얼마쯤이었더라……. 한 20% 정도 됐었나?’
우진이 다시 물었다.
“요즘 드라마, 첫 방 시청률 몇퍼센트 정도가 대박이죠?”
소정이 대답했다.
“10퍼센트만 넘어도 괜찮죠. 대박이라고 하면……. 한 15퍼센트쯤?”
2020년대쯤에는, 공중파 드라마의 파급력이 많이 줄어든다.
2010년대 후반부터, 넷플릭스 등 수많은 영상 미디어 컨텐츠들이 시장의 파이를 갈라먹기 시작하니 말이다.
그래서 사실상 첫 방영 10퍼센트라는 시청률을 찍는 드라마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하지만 2012년에는 20퍼센트 이상의 시청률도 가능하다.
우진의 기억에 <천년의 그대>는, 분명 20퍼센트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었다.
‘한 18? 19퍼센트 정도였던 것 같은데……. 전생에는 리빙페어도 없었고, 이슈화도 훨씬 덜 됐었으니까…….’
스토리부터 등장인물, 제작진까지 전부 같았으니.
아마 최고시청률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방영은 마케팅 빨도 많이 받는 회차였고…….
분명한 것은 지금, 우진의 전생에 비해 <천년의 그대>가 훨씬 더 크게 이슈화됐다는 사실이었다.
“전 25프로에 걸겠습니다.”
우진의 말에, 소정이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하였다.
“25퍼센트요?”
“네. 왜요?”
“혹시 제 말 잘못 들은 건 아니죠?”
“음……?”
“대박 나야 15퍼센트라니까요? 20퍼센트만 되어도 초대박이에요.”
“그렇겠죠?”
“25퍼센트면 내기 져주겠다는 소리 같은데…….”
우진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 하였다.
“뭐, 어쨌든 전 25퍼센트에 겁니다. 참고로 전 져드릴 생각은 없어요.”
“진짜요?”
“네. 그래서 소정 대표님은 몇 퍼센트에 거십니까?”
단순한 내기일 뿐이라 해도 25퍼센트라는 이야기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소정이 베시시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난 24프로.”
그리고 소정의 말에, 우진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와, 치사한 것 봐.”
“뭐가 치사해요?”
“이러면 25퍼센트보다 조금만 낮아도 무조건 소정 대표님이 이기잖아요.”
“그러게 누가 그렇게 기분 내래?”
“무를 수는 없는 거죠?”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기 있어요?”
“뭐. 어차피 이길 거니까. 콜!”
우진은 자신 있게 콜을 외쳤지만, 사실 미래를 아는 그라 해도 25퍼센트의 시청률은 장담할 수 없었다.
기존의 <천년의 그대> 시청률보다도, 무려 5포인트 이상을 높게 잡은 수치였으니까.
‘그래도 이길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서 내기에는, 나름 현실적인(?) 조건을 걸었다.
“좋아! 그럼 내기에는 뭘 거는 거예요?”
“일단 내가 지면, KSJ엔터 신사옥 지어드릴게요.”
“헐, 정말?”
“물론 시공비랑 설계비는 주셔야죠. 디자인피를 공짜로 해드린단 소립니다.”
“우와, 대박!”
“그럼 소정 대표님은?”
“난 음…….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요. 당장은 안 떠올라.”
“기대해도 되죠?”
“뭐, 어차피 제가 이길 것 같지만……. 아니다. 우진 씨가 이겼으면 좋겠네. 내기 져도 첫 방송 시청률 25퍼센트면 기분 째질 것 같아.”
우진 덕에 행복회로가 가동됐는지, 소정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원래 걱정이란 것을 한번 하다 보면 끝도 없이 하게 되지만.
반대로 행복한 상상을 하다 보면 또 긍정적인 생각들을 계속하게 되는 법.
그리고 소정의 밝아진 표정을 보니, 우진의 기분 또한 한결 더 좋아졌다.
“내기는 내기고, 우리 짠이나 한 번 더 해요.”
“좋죠.”
술잔을 가볍게 부딪친 두 사람은, 기분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더 주고받았다.
사적인 이야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앞으로의 사업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들.
“소정 대표님. <우리 집에 왜 왔니> 방영은 다음 주였죠?”
“뭐, 촬영은 잘 끝났고……. 아마 다음 주 맞을 거예요.”
“그때 맞춰서 또 이것저것 준비하셔야겠네요.”
“저야 뭐 하는 것 있나요. 우리 마케팅 팀이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겠죠.”
어느새 비즈니스 파트너를 넘어 친구가 된 두 사람은, 그렇게 밤늦게까지 <천년의 그대>가 흥행한 뒤의 플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