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시민들의 앞에서
이번 성수지구 개발 프로젝트에서.
우진이 가장 큰 의미를 둔 핵심 키워드는 바로 <조화>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업의 방향성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했으며, 우진의 디자인 키워드이기도 했다.
처음 우진이 이 사업을 서울시장 구윤권에게 제안했을 그 시점부터.
이 프로젝트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했던 프로젝트였으니까.
조화와 공생의 개념이 없이는 시작조차 될 수 없던 프로젝트였고, 우진은 그 가치가 결국 디자인 프로세스에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낙후된 공간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프리미엄 주거 공간.
성수동을 방문하는 모든 시민들이 행복한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아름다운 한강공원.
나아가 서울시를 더욱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랜드마크.
이 모든 가치를 만족시키는 최고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진은 디자인 설계 프로세스에 ‘조화’라는 가치를 가장 중요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러분. 이 ‘한강 르네상스’라는 프로젝트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우진의 발표는, 그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자신 있게 역설(力說)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한강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렇다면 뭘 위해서 한강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일까요?”
우진의 화법은, 청자로 하여금 공감을 사게 만드는 효력이 있었다.
함께 고민하고 그에 대한 답을 함께 찾고.
나아가 우진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에, 수긍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효력 말이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진은 자신이 이번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모든 프로세스를,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서울시민들과 공유하고 공감하고자 하였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것의 형태에 깃든 미관(美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진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는지.
그 고민들이 어떤 결과를 도출하였으며, 나아가 어떤 설계와 디자인으로 표현될 수 있었는지.
“공간에 있어서 아름다움의 가치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편리’에서 비롯될 수도 있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기분 좋은 감정. 그리고 지금까지 비슷한 종류의 공간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들까지.”
이 모든 것들을 청자들이 완벽하게 공감하고 이해하였을 때, 비로소 우진이 가지고 온 디자인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봐 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을 제외하고도 이렇게 많은 가치들이, ‘아름다움’이라는 한 단어 안에 녹아 들어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이러한 우진의 화법은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공감할 수 없는 억지 논리와 가치가 선제된다면,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전에 이미 청자들에게 거부감이 생길 테니까.
하지만 우진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확실한 자신이 있었고, 그 자신감은 충분한 근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저는 이 다양한 측면에서의 가치를 최대한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들고자 노력하였으며…….”
그렇기에 우진의 발표는 이미, 이 컨퍼런스 홀 안의 모든 청자들을 휘어잡고 있었다.
“그것이 곧, ‘한강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본질적인 가치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진은 한 자 한 자 힘 있게 이야기하며, 프레젠테이션의 첫걸음을 떼었다.
“이 다양한 가치를 최대한 만족시킬 수 있는 Good Design.”
잠시 뜸을 들인 우진이, 좌중을 둘러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저는 ‘조화’라는 키워드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우진이 손을 뻗자, 아름다운 조감도가 떠올라 있던 스크린이 다음 페이지를 비추기 시작하였다.
* * *
준호는 믿을 수 없었다.
처음 단상 위에 우진이 올라선 뒤, 대형 스크린에 불이 들어온 바로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들이,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저걸……. 저 어린놈이 전부 디자인했다고?’
일단 처음 좌중을 침묵하게 만들어버린 어마어마한 퀄리티의 조감도부터가 비현실적이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조감도를 뽑아내려면 모델링 실력부터 시작해서 랜더링 실력까지 CG를 전문적으로 작업하는 기업의 수준이 되어야 하는 데다.
그 정도의 역량을 가진 인력이 꼬박 2주 정도는 작업해야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애초에 우진이 직접 이런 작업을 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WJ 스튜디오라는 회사가 이런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준호는 일단 이 조감도의 경우, 외주를 보낸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걸 직접 했을 리가 없지. 대충 스케치만 뽑아서, CG 업체에 외주 돌려버린 걸 거야. 사업만 따내면 설계비용으로 백억 이상이 떨어질 테니, CG 외주에 몇천 정도 쓰는 건 아깝지 않았겠지.’
준호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역량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지금 눈앞에 있는 우진의 작품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결과물이었다.
그렇기에 이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기 위해서 어떤 이유든 찾아 만들어야 했다.
‘더러운 수를 썼네. 설계 디자인까지 다 끝내고 모델링을 시작하면 일정에 다 맞출 수 없을 테니……. 일단 스케치 대충 때려서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외주부터 먼저 넣은 거겠어.’
준호는 자신이 생각해낸 그 이유들을 머릿속에서 기정사실화하였고, 이것은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 같은 것이었다.
‘그래 봐야 좀 더 발표하면 들통 날 텐데……. 결국 이런 식으로 작업하면, 실시설계랑 완전히 다른 모형일 수밖에 없을 테지.’
하지만 준호의 그 망상은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었고.
그래서 잠시 후,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린 이 <조화>라는 키워드. 그것이 어떻게 외관 설계에 적용되었는지, 그 프로세스부터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가설과 가정이 부정당했으니 말이다.
처음 우진이 옐로페이퍼 위에 그려 낸 아이디어 스케치를 보여줬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고개를 주억거렸으나…….
‘역시.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보여주네. 실시설계랑 대조하면 외관 생김새가 완전히 달라질 테니, 어쩔 수 없겠지.’
이어서 스크린 위로 튀어나온 세부설계와 부분 조감도는, 준호의 입을 그대로 다물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한강 변을 따라 이어진 곡선은, 갈대의 단조로운 색감와 핑크뮬리(Pink Muhly Grass)의 산뜻한 파스텔 톤으로 구성된 조경을 따라 한강공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음…….”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춘 준호는 침음성을 흘렸고, 그것과 별개로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지점부터는 조경을 깔기가 애매해집니다. 이 구간부터 여기까지는, 기존의 강변북로가 지하화되어야 하는 구간이기 때문이지요.]
우진이 보여준 설계도와 첫 화면의 조감도를 오려놓은 부분 조감도는 정확히 일치하였으며.
[그래서 저희는 도로와 기존의 한강공원이 만나는 경계지점에서, 의도적으로 단차를 만들고 자연스러운 돌계단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렇게 설계가 된다면 강변북로를 덮은 콘크리트는 돌계단으로 이어지며 자연스레 단차가 맞춰질 테고…….]
그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은 일말의 막힘조차 없었다.
[한강공원의 꽃과 같은 자전거도로의 흐름 또한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진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똑같이 진행했던 준호 또한 한 번씩 생각해봤던 문제들이었다.
때문에 지금 우진의 이 발표가 껍데기뿐이 아니라는 것을, 이 안에 있는 누구보다도 준호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조경을 저런 식으로 풀었군…….’
지금의 상황이 여전히 불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준호는 이 업계에서 10년을 넘게 일한 배태랑이었다.
때문에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그 프로세스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조경의 아름다움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큰 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조경은 그 바로 앞을 거닐며 산책하는 사람들의 눈에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창밖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눈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젠장.’
준호는 더욱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그 커다란 틀 안에서, 저는 한강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조경’이라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레 한강공원까지 이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딱딱해진 표정으로, 그저 우진의 발표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강이 가장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면, 제가 디자인한 건축물들은 가장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게 될 것이며…….]
[지금 보여드린 한강공원의 이 조경은, 바로 그 중간의 단계에 있을 것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징검다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우진이 설계와 디자인을 보여주며 가장 많이 역설한 부분은, 공간과 공간 사이의 경계를 어떤 아름다움으로 채워 넣느냐는 것이었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게 될 이 ‘한강공원’이라는 공공재와.
그 어떤 공간보다 프라이빗 해야 하는 ‘프리미엄 주거’라는 사적인 공간.
마지막으로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한강’이라는 공간.
결국 우진이 추구하고자 했던 디자인은, 이 세 종류의 공간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어우러질 수 있는 조화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단지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모든 우진의 이야기들은 청자의 공감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그 청자 안에는 결국 준호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한데 어우러진 공간은, 이들끼리의 조화를 넘어 서울시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에도 자연스레 녹아들어야 하니까요.]
실용(實用)과 조형성(造形性).
거기에 우진 본인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 철학과 가치관까지.
우진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이 모든 것을 <조화>라는 키워드를 활용하여 설명하고 있었고, 그렇게 자신이 디자인한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저는 완전히 탈바꿈될 이 성수지구의 실루엣이……. 한강이라는 평면 위의 곡선에서부터 남산 스카이라인이라는 수평 위의 곡선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형태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디자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우진이 생각하는, 최선이자 최고의 디자인이 완성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