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233화 (233/315)

233화

시민들의 앞에서

서울시청의 컨퍼런스 홀은 넓다.

하지만 그 넓은 홀에, 빈자리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로 빼곡하여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수백 석이 넘는 좌석들만큼은 전부 들어찬 것이다.

일단 자리를 채운 인원 중 절반 정도는 성수 전략정비구역의 조합원들.

사실 이 설계안 자체가 그들의 ‘새집’을 위한 설계이기도 하다 보니, 그 어떤 서울시민들 중에서도 가장이번 프로젝트를 기대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하여 조합원들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절반은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의 관계자들부터 시작해서, 공모에 참가한 스튜디오 직원들까지.

그렇다면 이 관계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자리는 누가 채운 것일까?

그것은 바로, 프로젝트와 관계없는 평범한 서울시민인 시청 직원들이었다.

관계자들이야 전부 합해도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수준이었고.

남은 좌석들을 채운 것은 전부 일반 직원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발표현장에 비 관계자들이 많이 들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울시장 구윤권의 지시.

윤권은 황종호의 전화를 받았을 때 우진의 의중을 완벽히 이해하였으며.

우진이 원하는 방향성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성과 완전히 일치하다고 생각하여, 전폭적으로 도움을 준 것이다.

구윤권이 한 일은 간단했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서울시청의 전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존경하는 직원 여러분, 서울시장 구윤권입니다. 금일 있을 특별한 행사와 관련하여…….]

……중략……

[참여시 행사가 진행되는 두 시간 정도를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드릴 예정이오니, 업무에 지장 받지 않으시는 선에서 자율적으로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일은 간결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시장이 직접 발송한 이 메일은 수많은 서울시청 직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응? 오늘 뭐 행사 있나?”

“성수지구 프로젝트 있잖아.”

“그거야 알지. 근데 왜?”

“오늘 그거, 설계 공모 발표 날이거든.”

“아하!”

“시장님이 엄청 신경 쓰시는 프로젝트라고 하더니……. 메일까지 보내셨네.”

“한번 가 볼까?”

“점심 먹고, 시간 봐서 생각하자.”

물론 시청 직원의 대부분은 각자 해야 할 일이 바쁘기 때문에, 행사 참여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준다는 것이 그렇게 큰 매리트는 아니었다.

일이 다 끝나지 않으면, 결국 야근하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이런 행사가 있다’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점이었으며.

근무 중에라도 잠시 들러볼 명분을 만들어줬다는 것이었다.

시청 직원들이 컨퍼런스 홀에 와 봐야 천 명이 되기는 힘들 테지만, 그들이 또다시 입에서 입으로 지인들에게 전파할 것이고.

이런 작은 부분들이 모이면 커다란 시너지를 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메일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준 것은, 행사 참가 인증 방식으로 SNS를 활용했다는 점이었다.

“밥 먹고 잠깐 와 봤는데, 근무 인정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서울시 공식 SNS를 팔로우해 주시고, 인증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올려주시면 됩니다.”

“오……! 재밌네요.”

명분은 서울시 공식 SNS의 팔로워를 늘리고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취지였기 때문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이라고? 이런 거 처음 보는데…….”

“신기하네. 우리 잠깐만 보고 갈까?”

“좋아.”

이렇게 컨퍼런스 홀에 들어온 직원들 덕분에.

첫 번째 발표가 시작될 즈음, 모든 좌석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장 먼저 단상에 올라선 사람은 다름 아닌 우진이었다.

* * *

저벅- 저벅-

우진의 발표 차례는 1번이었다.

총 다섯의 참가사 중, 가장 먼저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에서, 이 1번이라는 순서는 명확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규모의 발표에서 첫 순서로 피티하는 건 또 처음이네.’

첫 순서의 가장 큰 장점은, 청자들이 가장 집중력이 좋을 시점에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긴 발표내용을 듣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니.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의욕 있고 집중력도 좋은 상황에서 듣게 되는 프레젠테이션이 당연히 첫 번째 순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이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의 가장 큰 단점은, 전체 발표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잊혀지기도 쉽다는 점이었다.

첫 순서에서 임펙트 있게 발표를 했다 하더라도 뒷 순서에 더 확실하게 이목을 끄는 발표가 이어진다면.

이전 발표의 임펙트가 많이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장점을 가장 살리면서 이 단점도 확실히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건 당연히 압도적인 발표내용일 것이었다.

가장 집중력이 좋은 관객들의 앞에서 처음부터 최고의 발표를 보여준다면.

그 뒤에 어지간히 대단한 발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존재감을 묻어버리기는 힘들 테니까.

우진이 원하는 그림이 바로 이러한 그림이었다.

‘생각보다 사람도 많이 왔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들이 모인 이 상황에서.

그가 준비한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각인시켜서, 뒤에 이어질 부실한 프레젠테이션들이 자신의 발표내용과 비교되게 만드는 것 말이다.

미리 내정자를 정해 뒀던 국토부의 심사위원들이라고 하더라도, 차마 원래 생각해뒀던 선택지를 집기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압도적인 차이.

그 정도의 차이를 보여줄 각오로, 우진은 단상 위에 올라왔다.

우진이 입을 열자,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다.

[안녕하십니까, 성수 전략정비구역 조합원 여러분. 그리고 서울시민 여러분.]

그리고 이 첫 마디가 울려 퍼지자, 관객석이 조금씩 웅성이기 시작하였다.

“어? 저 사람, 서우진아니야?”

“잠깐. 잘 안 보여.”

“그런 것 같은데?”

이어서 우진이 자신을 소개했을 때.

[이번 성수지구 통합설계 공모에 참가하게 된, WJ 스튜디오의 대표 서우진입니다.]

그 웅성임은 조금씩 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어, 서우진? 나 저 사람 알아.”

“어어……? <우리 집에 왜 왔니>에 나왔던, 그 서우진 아니야?”

지금 이 시점은, ‘서우진’이라는 키워드가 왕십리 패러필드로 인해 크게 이슈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때문에 업계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우진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제법 되었다.

“우와. 너 알고 있었어?”

“뭘?”

“오늘 발표자에 서우진 있는 거.”

“아니. 몰랐지 나도.”

“대박! 사진 찍어도 괜찮은 거겠지?”

“몰라. 너무 대놓고 찍지는 마.”

단상 위에서 좌중을 내려다보고 있던 우진도 당연히 이러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관객들의 집중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이 기회를 쉽게 놓칠 우진이 아니었다.

[서울시의 오랜 숙원사업이자, 아름답고 쾌적한 한강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

우진의 단단한 목소리에, 웅성임은 다시 잦아들었다.

[개발구역으로 묶여 오랜 기간 낙후된 주거에서 고생하신 성수동 전략정비구역 조합원 여러분들께, 최고의 프리미엄 주거를 선물해 드리기 위한 성수지구 통합설계 프로젝트.]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우진의 입에서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런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저희 WJ 스튜디오의 역량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조합원 여러분들과 서울시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이야기를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그 호기심을 흥미와 관심으로 바꿔내는 것이, 지금부터 우진이 해야 할 일이었다.

우진이 스크린을 향해 손을 뻗자, 홀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스크린에 하얗게 불이 들어왔다.

“오……!”

“우와!”

그리고 그 커다란 스크린 위에 떠 오른 이미지는.

다름 아닌 우진과 WJ 스튜디오에서 설계하고 디자인한, 새로운 성수지구의 아름다운 조감도였다.

[서울시민 여러분들께, 최고의 한강공원을 선물 드리고 싶었습니다.]

우진의 말이 다시 울려 퍼졌지만, 좌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의 시선은 오로지 스크린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조합원 여러분들께는, 이 아름다운 주거환경에서 비롯된 최고의 프리미엄 주거를 선물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어떤 설명도 필요 없었다.

다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들과 후줄근한 빌라들이 즐비해 있던 성수 한강 변의 전경이.

과연 저렇게 아름다운 공간으로 탈바꿈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조감도였으니까.

“저……게 뭐야? 아파트야?”

“그럴걸? 이거 원래 재개발 프로젝트였잖아.”

“그래?”

“성수 재개발이랑 전 시장님께서 추진하시던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이랑, 콜라보해서 진행한 프로젝트라더라고.”

그 비주얼에 관객들은 말을 잃어버렸으며, 한층 여유가 생긴 우진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성수지구 개발 프로젝트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아름다운 한강을 더욱 아름다운 우리만의 공간으로 가꿔 나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좌중을 한 차례 둘러본 우진의 발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첫걸음에 부족하지 않은 설계가 될 수 있도록. 저와 WJ 스튜디오는, 가진 모든 역량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 * *

처음 사회자로부터 우진이 호명 받아 단상 위에 올라갈 때만 해도.

준호는 그 뒷모습을 보며, 옅은 비웃음을 던질 뿐이었다.

‘꼴에 자신감은 있어 보이네.’

그 비웃음은 당연히, <이호설계사무소>의 설계가 우진의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는 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어디 한번 그 잘난 EAC 디자이너의 설계를 구경해 보자고.’

그 확신에 대한 근거는, 단순히 우진이 어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단 이번 프로젝트에 주어진 시간 자체가, 미리 정보를 입수한 이호설계사무소에서도 일정이 어긋났을 정도로 빠듯했으며.

우진에게 변변한 포트폴리오도 아직 하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최근에 우진을 이슈화시켜 준, 패러필드의 파빌리온이라는 확실한 포트폴리오는 존재한다.

하지만 준호가 보기에 그 파빌리온은, 브루노라는 걸출한 건축가가 디자인해놓은 결과물에 숟가락만 올린 정도일 뿐이었다.

마치 자신이 협회장인 권주열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대외적으로만 우진의 작품이라고 발표됐을 뿐, 실상은 브루노의 작품이나 다름없는 것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원래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왜곡되기 마련이지만.

그런 왜곡의 정도가 사람의 그릇과 편협함에 따라 차이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디서 대학 과제 수준의 작품을 설계라고 들고 온 건 아니겠지.’

그래서 준호는 느긋했다.

그가 오늘 준비해 온 설계와 디자인은 지금껏 그가 십 년이 넘게 업계에 구르면서 해왔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수준의 것이었고.

그 개인적으로는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꿇리지 않는 설계일 것이라 자부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준호는, 자신의 이 발표를 봤을 때 저 자신만만하던 꼬마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그렇게 상상하던 그 표정을, 잠시 후 자신이 짓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서우진 실제로 보니까 잘생겼는데?”

“훤칠하게 키도 크네.”

“아직 대학생이랬지?”

“와, 무슨 대학생이 이런 설계 공모를 참여해?”

준호는 우진을 알아보고 웅성거리는 관객들의 목소리들이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이 또한 발표가 시작되면 비난으로 바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상 전면에 커다랗게 펼쳐진 스크린 위에, 한 장의 조감도가 펼쳐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

푸른 하늘빛이 그대로 담겨있는 아름다운 한강.

그 한강 변을 따라 예쁘게 펼쳐져 있는 조경과, 물결처럼 이어져 올라가는 파랗고 아름다운 건축물들.

이미 지어져 있는 건축물과 공간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높은 퀄리티로 뽑혀 나온 우진의 랜더컷을 확인한 준호는, 두 눈을 점점 더 크게 확대시킬 수밖에 없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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