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232화 (232/315)

232화

시민들의 앞에서

2012년 7월.

서울시청 건물은, 번쩍거리는 신축 건물이었다.

5월에 완공되어 외관이 공개된 뒤, 이제는 거의 모든 부서가 신관으로 다시 이전되어 들어와 있었고.

때문에 오늘 <성수 전략정비구역 통합설계 프레젠테이션> 또한, 이 신청사의 컨퍼런스 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우진은 전생에 이 신청사 건물에 몇 번 와봤었지만, 너무 오래됐기 때문인지 신선한 느낌이었다.

‘디자인이야 어쨌든, 새로 지어서 그런지 깔끔하고 좋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미리 받은 표찰을 보여주자, 직원이 우진 일행을 홀로 안내해 주었다.

컨퍼런스 홀은 우진이 들어선 입구에서 가까운 1층 전면에 바로 위치해 있었고.

그래서 찾아 들어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홀 안에 들어서자 커다란 스크린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우진은 그 전경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슬슬 좀 긴장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가볍게 피어올랐고, 우진은 시청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컨퍼런스 홀의 크기 자체는 EAC 발표장이었던 AA스쿨의 홀보다 훨씬 더 큰 수준이었지만, 당연히 그때만큼 긴장할 리는 없었다.

오늘 이 자리는, 우진이 설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리였으니까.

발표자인 우진은 당연히 배정되어있는 자리가 있었고, 자리에 앉은 우진은 양손에 깍지를 끼고 가볍게 손을 풀었다.

발표 시작까지는 아직 10여 분 정도가 남아 있었으니 여유 있었다.

가방을 발밑에 내려놓은 우진은, 힐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 발표자가 나까지 총 다섯인가?’

발표자 지정석으로 표시된 자리는 총 다섯 석.

그중에 두 자리가 아직 비어있었는데, 재밌는 것은 그 비어있는 두 자리가 우진의 양 옆자리라는 점이었다.

우진은 먼저 와서 앉아있던 발표자 한 사람에게 기분 좋게 인사하였다.

“반갑습니다. WJ 스튜디오 서우진이라고 합니다.”

우진의 인사를 받은 남자는 사뭇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우진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엇, 반갑습니다. 서 대표님도 이번 공모에 참여하셨었군요.”

“네. 열심히 준비했죠.”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남자는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우진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만……. 괜히 그랬나 싶습니다.”

“예?”

“아, 아닙니다. 무튼, 반갑습니다 서 대표님.”

남자의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우진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그가 옆자리 다른 발표자와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우리, 발표하지 말고 그냥 나갈까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고 나가야죠.”

“으음…….”

“어차피 당선이야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서울시 SNS에 올라가기까지 한다던데. 아예 불참하면 회사 망신 아니겠습니까.”

그들 또한 이번 설계 공모에 이권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음……. 하긴. 조금 정보가 늦을 수는 있어도, 이런 공모에 참여할 정도면 협회 쪽이랑 몇 다리 건너서라도 인맥이 연결돼 있을 테니까.’

우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기득권이 잇속을 챙기기 위해 자신이 깔아 놓은 판을 더럽혀 놨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 와 닿은 것이다.

‘진짜 이게 뭐야.’

우진은 처음 이 프로젝트가 성사되었을 때.

프레젠테이션 자리를 무척이나 기대했었다.

역량 넘치는 국내 외 다양한 설계사무소들의 디자인과 설계들을 본다면, 공모결과 외적으로도 시야를 넓혀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가 뿌려놓은 오물들 때문에, 그런 발전적인 축제의 장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우진은 그것이 너무도 마음에 안 들었다.

‘협회 놈들……. 이러니까 발전이 없지.’

우진은 자신의 양쪽에 빈자리를 보며,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사람의 대화로 미루어봤을 때, 아마 아직 도착하지 않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협회에서 정한 내정자인 듯싶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그럼, 내정자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아예 오지도 않은 사람일지도.’

그리고 잠시 후.

우진은 자신의 그 예상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이호설계사무소의 대표 김준홉니다.”

다섯 자리 중 가장 끝자리.

우진의 오른쪽 자리에 와서 앉은 사람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먼저 와 있던 발표자들에게 인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인사에도, 우진을 제외한 다른 발표자들은 데면데면하였다.

대충 봐도 이 남자의 인사가 못마땅한 눈치.

그것으로 우진은 알 수 있었다.

협회의 내정자가 뒤늦게 도착한 이 남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흠. 이호설계사무소라…….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데.’

하지만 우진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딱히 불쾌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밝은 표정으로 김준호가 청하는 악수를 받았다.

“반갑습니다, 김 대표님. WJ 스튜디오의 대표 서우진이라고 합니다.”

우진의 인사를 들은 김준호가, 꽤나 놀란 표정이 되었다.

“엇……! 그, <우리 집에 왜 왔니>에 출연하셨던……!”

“하하, 맞습니다.”

“화면으로 뵀던 것보다 더 젊으시네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잠시 후, 김준호의 표정은 살짝 비틀려 있었다.

“오늘 한 번 잘해봅시다. EAC에서 인정받은 건축가의 프레젠테이션을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될 줄은 몰랐군요.”

누가 들어도 비꼬는 듯한 김준호의 어투에, 우진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저도 김 대표님 발표, 기대 하겠습니다.”

김준호의 목소리에서, 복잡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릇 하고는…….’

EAC의 발표자라는 타이틀부터 시작해서 우진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인 인지도.

준호의 목소리에는 그것에 대한 시기심이 담겨 있음과 동시에, 우진을 얕보고 내려다보는 시선이 동시에 깔려 있었다.

그의 눈에 우진은, 운 좋게 예능 출연으로 인지도가 생긴 뒤, 그게 자신의 실력인 줄 아는 ‘건방진 애송이’ 정도였다.

‘건방진 놈.’

EAC의 발표자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땄는지는 몰라도, 그 또한 거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럽 건축협회 쪽에 인맥이 있어서, 운 좋게 단상 위에 한 번 선 정도로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여긴 한국이고. 오늘 쓴맛을 제대로 한 번 보여주마.’

겉으로는 웃으며 우진과 악수를 나눈 김준호는, 자리에 앉아 발표 준비를 시작했다.

준호는 오늘, 실력으로도 인맥으로도 이 애송이를 제대로 눌러줄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기색을 느꼈음에도, 우진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진은 오히려, 이 김준호라는 사람의 발표가 너무 질 떨어지진 않기를 바랬다.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발표가 너무 허접하진 않았으면 좋겠네.’

협회라는 배경만 믿고 완전히 허접한 발표를 들고 왔다면, 우진은 더 기분이 나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위이잉-

우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까맣게 암전되어 있던 스크린이 환한 빛을 내며 켜졌다.

그리고 단상 위에 올라온 진행자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수동 전략정비구역>의 통합설계 공모 발표. 진행을 맡은 고승철이라 합니다.”

그는 간단히 오늘의 행사에 대해 설명하였고.

이어서,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홀의 뒤편에서는, 캠코더 몇 대가 고화질로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 * *

2010년 이후 가파르게 주가를 올리고 있던 수하는, 최근 <한남동 로맨스>라는 이름의 영화를 찍고 있었다.

그렇게 큰 투자를 받은 영화도, 유명한 감독이 찍는 영화도 아니었지만.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배역까지 그녀의 마음에 쏙 든 작품인 한남동 로맨스.

그래서 수하는 무척이나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별개로 기분은 항상 행복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좋아하는 작품을 찍고.

또 그것으로 충분한 돈을 벌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그녀가 무명시절 항상 꿈꿔오던 인생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 며칠 후면, 인생에 처음으로 그녀 명의의 집이 생긴다.

그리고 이 집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의미가 큰 집이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를 시작으로 무명생활을 벗어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점.

그녀의 인생 전환점에서, 처음 계약한 첫 집이었으니까.

그래서 수하는 청담 선영아파트 재건축의 추가 분담금을 낼 돈이 빠듯할 때도, 대출을 더 받아내면서까지 이 집을 팔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소중히 생각했던 첫 집에 곧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최근 들어 더욱 설레게 만들고 있었다.

“히히.”

촬영지로 향하는 벤 안에서 히죽거리며 웃는 수하를 보며, 운전대를 잡고 있던 매니저 송지호가 핀잔을 주었다.

“뭐가 그렇게 좋냐?”

“말 걸지 마, 오빠. 지금 우리 집 구경 중이니까.”

“뭐야. 아직 짓고 있는 거 아니었어?”

지호의 질문에도, 수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모델하우스 이미지는 폰에 저장해 뒀지.”

“야, 모델하우스가 너네 집이냐? 그 사진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으히히. 곧 이사한다! 이사다!”

행복해하는 수하를 보며, 지호가 피식 웃었다.

벌써 그녀와 함께 일한 지 8년이 다 되어가는 지호에게, 수하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부럽다, 임수하. 나도 그때 분양받을 걸.”

“지금이라도 분양하는 아파트 하나 청약 넣어보는 건 어때?”

“너네 집 싸게 전세 주면 안 되냐?”

“그걸 말이라고 해?”

“너 청담동 집도 있잖아!”

“그건 아직 다 지으려면 멀었거든.”

“거기로 이사 갈 때 마포 집 전세 콜?”

“흠. 생각 좀 해보고.”

잠시 티격태격한 뒤,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모델하우스 사진 감상이 시들해진 수하는, 요즘 재미 들린 SNS 앱을 켜서 피드를 구경하기 시작하였다.

최근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아진 SNS 페이스북은, 지인들의 피드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고 팔로워를 늘리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였다.

수하의 폰 화면을 힐끔 훔쳐 본 지호가, 잔소리를 시작하였다.

“너, SNS에 또 엽사 올리면 진짜 죽는다?”

“아. 알겠다고, 진짜. 그 얘기 벌써 100번은 들은 것 같아.”

“네가 페북 켤 때마다 내가 노이로제 걸릴 것 같거든?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내가 무슨 애야?”

“애지 그럼.”

“하…….”

“그냥 페이스북 어플 삭제하면 안 돼?”

“싫어.”

“왜!”

“재밌잖아!”

“…….”

수하와 말씨름을 하던 지호는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SNS가 대중에게 퍼지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벌써 SNS 때문에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연예인들이 많았다.

매니저인 지호로서는, 천방지축인 수하가 걱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운전대를 잡은 채 내비를 한 번 확인한 지호는, 수하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10분이면 도착이야, 임수하. 내릴 준비 해.”

“알겠어.”

“10분이라니까? 너 화장도 고치고 준비할 거 많다며!”

“아, 알겠어. 잠깐만.”

수하의 대답을 듣던 지호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휴대폰을 집어넣고 할 일을 하는 수하였는데, 오늘은 들은 체도 안 하고 뭔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신호 앞에서 차가 멈추자, 지호는 수하가 뭘 보는지 슬쩍 훔쳐보았다.

혹시 쓸데없는 SNS를 한다고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라면, 폰을 뺐어버릴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잠시 후.

수하의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한 지호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스마트폰 위에 떠있는 영상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종류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야, 이게 뭐야?”

“응?”

“지금 보고 있는 거.”

“아……. 이거?”

“서울시 공식 SNS 계정? 이런 걸 왜 보고 있는데?”

수하의 스마트폰 화면 위에는, 어떤 디자인 발표회 같은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고.

이 영상을 스트리밍 중인 계정은 서울시 공식 SNS 계정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지호를 향해, 수하가 피식 웃으며 대답하였다.

“아, 이거. 우진이가 좋아요 좀 눌러 달라고 부탁해서.”

“우진이면……. 서우진 대표?”

“응. 오늘 무슨 서울시에서 디자인 피티 같은 거 하는데, 그거 영상 좀 공유하고 좋아요 눌러 달랬거든.”

“아하.”

“그런데 보다 보니까 계속 보게 되네. 마침 우진이가 발표 시작했거든.”

“그래?”

“이거 지금 같이 보는 사람도 꽤 많아.”

“몇 명인데?”

“라이브 인원 찍혀 있는 게, 5만 명이 넘는데?”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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