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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230화 (230/315)

230화

역공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기관님.”

[말씀드린 그대롭니다, 과장님. 예비타당성 관리의 일환으로, 차주부터 감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이미 적격으로 판정 나지 않았습니까?”

[조사가 아니라 관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민간자본의 비중이 더 크다고는 하나, 그래도 국고지원만 삼백억 넘게 들어가는 사업입니다.]

“그…… 렇긴 합니다만…….”

[서울시에서 최근 진행되는 사업들 중 가장 규모가 커서 그런지, 감사 수준을 더 철저하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렇군요.”

[여튼……. 메일로 공문은 발송 드렸으니, 번거로우시더라도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니다.”

[수고하십니다.]

뚝-

국토교통부의 운영지원과장 김지환은, 전화를 끊는 순간 열불이 뻗쳐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뜬금없이 감사라고? 이것들이 진짜……!’

지난 두 달 동안 지환이 예쁘게 차려놓은 밥상 위에, 고춧가루가 툭 하고 뿌려졌으니 말이다.

‘하……. 기재부 이 새끼들이…….’

방금 김지환에게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기획재정부의 4급 공무원으로, 지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사업 시행에서.

돈줄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직급과 별개로 갑중에 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국토부에서 공을 들여 신규 사업을 세팅해 놓아도, 기재부에서 자금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꼼짝없이 묶여버리니 말이다.

‘그나저나 감사라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국토부 측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진행을 관리하는 입장인 김지환은, 기재부의 감사가 너무 싫을 수밖에 없다.

정상적이고 아주 투명한 사업장이라고 해도, 감사가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늘어나는 페이퍼웍 때문에 진절머리가 나는 게 사실인데.

이번 사업장의 경우는, 약간(?)의 이해관계까지도 얽혀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환은 전화를 끊자마자, 기재부에서 보냈다는 공문부터 급하게 열어서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후우.”

지환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진짜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공문에 담긴 내용은 무척이나 단순하였다.

이번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한 모든 민간사업자의 선정 과정에서, 어떤 비리나 유착 관계없이 완전히 공정한 프로세스가 적용되었는지를 철저히 감사하고 조사하겠다는 내용.

뒤에 켕기는 부분이 많은 김지환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기랄. 이러면 다음 주에 잡아뒀던 제운건설 미팅도 취소해야겠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환이 본격적으로 콩고물을 챙기기 이전에 감사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이었다.

만약 한 달만 더 늦었더라면, 지환은 이미 건설사들로부터 쌈짓돈을 적당히 챙긴 뒤였을 테니까.

그래서 지환은 벌려놓은 일을 수습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급히 돌리기 시작하였다.

“네, 팀장님. 통화 가능하시죠? 다름이 아니고 차주 예정되어 있던 미팅 건 말입니다…….”

“아, 어쩌다 보니 좀 곤란한 상황이 됐습니다. 이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요. 따로 만나 뵙진 못하더라도, 최대한 도움은 드려야지요.”

그런데 그렇게 세 통 정도의 전화를 하고 났을 쯤.

지환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잠깐. 그런데 다음 주부터 감사라면……. 당장 월요일 설계심사부터잖아?’

솔직히 감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설계권 쪽으로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지환이었다.

설계 파트는 시공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 수준으로 자금집행 규모가 작았고.

그만큼 해먹을 수 있을 만한 건덕지도 거의 없었으니까.

다만 선배인 건축가협회장 권주열의 편의를 좀 봐준 것이, 조금 켕기기 시작하였다.

‘설마……. 그 정도 가지고 기재부에서 태클을 걸려나? 그렇진 않겠지?’

김지환은 자신이 ‘선’을 잘 지켰다고 생각했다.

해외 업체들의 참가를 막은 것 정도는 명분도 있었으니 공정성에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공모 참가업체 숫자가 너무 적어서 1차 심사를 생략한 것이었으니, 이 또한 특정 업체를 위한 처사는 아니었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조금 찝찝하지만, 지환은 일단 다른 불부터 끄기 위해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설계권 관련해서는 어떤 금품이나 이권을 ‘실질적으로는’ 주고받은 적이 없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지환은 이때만 해도 알 수 없었다.

그가 기재부 직원의 전화를 받았던 그 순간.

이미 눈덩이는 구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주말 저녁.

윤권의 전화기를 울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황종호였다.

[우리 시장님. 통화 가능하신가.]

“하하, 선배님.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쉬고 있을 시간에, 너무 뜬금없이 전화한 건 아닌지 모르겠구만.]

“아닙니다, 선배님. 소파에 앉아서 머리나 좀 식히고 있었습니다.”

[머리 아플 일 많지?]

“그야 어쩌겠습니까. 제 자리가 그런 자리인데요.”

[많이 컸네, 우리 시장님.]

“흐흐, 감사합니다.”

구윤권과 황종호는 꽤 친분 있는 선후배 관계였다.

관계부처에 있을 때도 일하는 스타일이나 성향은 다른 편이었지만, 대쪽같은 성품 자체는 비슷한 측면이 많은 두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고.

항상 연락을 하더라도 후배인 윤권이 먼저 전화를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었다.

그랬기에 주말 저녁 갑작스레 걸려온 종호의 전화는, 윤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이벤트였다.

두 사람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사적인 대화들을 잠시 나누었고, 그렇게 오 분 정도 지났을 즈음.

수화기 너머로 황종호의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툭 하고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요즘 자네 추진 중인 그 성수지구 사업 말이야.]

“예, 선배님.”

[국토부랑 불협화음이 좀 있었다고 들었는데.]

“……!”

종호의 말을 들은 윤권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발령이 났다고는 하지만 한동안 실무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던 사람이 황종호였는데.

이런 내부 사정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잠시 후, 윤권은 더욱 놀라게 되었다.

종호가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경로가, 완전히 예상 밖의 인물을 통한 것이었으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서 대표에게 들었지.]

“네? 서 대표라면…….”

[자네가 아는 그 WJ 스튜디오의 서우진 대표 말이야.]

종호는 우진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윤권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윤권의 두 눈은 시시각각 크게 확대되었다.

[설계 공모 과정에서, 국토부에서 밀어주려는 내정자가 따로 있는 것 같더군.]

“서 대표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정확히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야.]

우진과 약간의 친분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내부 정보를 이야기해준 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종호의 말을 들어보면, 우진은 이미 거의 모든 정황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충분한 정황과 정보를 종호에게 전달했기에, 종호가 이렇게 단정 짓듯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정말 서 대표는, 몇 가지 정황만 가지고 여기까지 유추했다는 건가?’

서우진이 황종호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건넨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공모에 참가하는 우진의 입장에선 부당한 정황을 확인했으니 그것이 못마땅했을 것이었고.

그의 지인 중에 가장 힘 있는 인물이 황종호일 테니,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윤권은 조금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우진의 답답함은 이해하지만, 이런 종류의 이해관계를 그렇게 무 자르듯 딱 잘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리 선배님이라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간단히 하실 수 있는 일은 아닌데…….’

하지만 잠시 후.

윤권은 자신의 그 추측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서 대표가 부정참가 사(社)를 색출해 달라고 하던가요?”

[아니. 오히려 그냥 두라던데?]

“예……?”

[다만 하나 부탁을 하더라고.]

“그게 뭔가요?”

[건설 비리 쪽을 좀 쑤셔달라고 말이야.]

“네에……?”

번번이 깨지는 예상과 추측에, 구윤권은 머릿속이 혼란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종호의 이야기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우진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지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설계 공모 쪽까지 이렇게 이권이 개입되어 있을 정도라면, 분명 시공 쪽은 시궁창일거라고 하더라고.]

“시공 쪽이라면…….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의 비리를 말함이겠지요?”

[그렇지. 분명 담당자나 관계자 몇몇이 여기저기서 적당히 받아먹고, 컨소시엄(consortium)*[공통의 목적을 위한 협회나 조합. 건축업계에서는 여러 건설사가 공동으로 시공하는 것을 consortium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려고 할 거라던데?]

“허허. 그런…….”

황종호의 이야기는 꽤 길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핵심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증거조차 잡기 애매한 설계 공모 쪽에서 부정정황을 밝혀내자고 씨름하는 것보다는, 대충 낚싯대를 걸쳐 놔도 대어가 줄줄이 낚여 올라올 시공 쪽을 쑤시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것.

여기서 국토부의 약점을 제대로 잡는다면 서울시에서 주도권을 잡기도 한결 수월해지는 데다, 설계 공모 쪽 비리까지도 자연스레 딸려 나올 테니.

이거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대처법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서우진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구윤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순간 이런 의문까지 짓게 되었다.

‘서 대표가 혹시 이쪽에서 일했던 적도 있나?’

물론 우진의 나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의문이었지만, 잠깐이나마 그런 의문을 떠올릴 정도로 우진의 혜안은 소름 돋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을 듣던 구윤권은, 문득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그런데 선배님.”

[말씀하시게.]

“혹시 서 대표에게 이런 질문은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어떤 질문?]

“서 대표는 시공 비리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만약 그쪽을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았을 때……. 그땐 어떻게 할 생각인지 말입니다.”

구윤권의 말을 듣던 황종호는, 갑자기 껄껄 웃기 시작하였다.

[하하. 허허허허.]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재밌어서 웃지.]

“예?”

[내가 했던 질문을, 자네가 완전히 똑같이 했으니까.]

“아하.”

종호의 말을 들은 윤권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가 같은 질문을 했다면 우진이 그에 대한 답도 내어놨을 것이고.

그 답이 뭐였을지 너무도 궁금해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윤권의 그 기대를 결코 져버리지 않았다.

[일단 그럴 일은 없을 거라더군. 그쪽으로도 서 대표가 이미 정황을 좀 찾아 놓은 모양이더라고.]

“아하.”

[그리고 재미있는 건…….]

“……?”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대.]

“네?”

황종호가 재밌다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게 바로 내가 자네에게 전화를 건 이유야.]

“그게 무슨…….”

종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윤권이 고개를 갸웃하였고,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서 대표의 부탁대로 내가 손을 좀 써서, 이번 프로젝트를 기재부에서 대대적으로 감사할거야.]

“민간사업자 선정 과정을 감사하는 거죠?”

[그렇지. 그 일환으로 내일 서울시에도 공문이 하나 내려갈 거고.]

“어떤 공문입니까?”

[감사 보고서 제출을 위해, 모든 공모 과정을 전부 다 기록해 달라는 공문이지.]

“헉…….”

이야기를 듣던 윤권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감사를 위해 공모 발표과정을 전부 다 기록해야 한다면, 이 또한 일거리가 늘어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윤권은 다음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기록이라는 게, 윤권이 생각했던 그 서류작업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당황할 것 없어. 그냥 영상으로 전부 기록하라고 할 거야.]

“아……. 그럼 다행이네요.”

그리고 이어진 종호의 마지막 이야기에, 바로 우진이 노리는 핵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서울시 공식 SNS에 올려 달래.]

“네……?”

[그러면 그 게시물에다가, 자기가 따봉을 박겠다던데?]

“…….”

우진의 SNS 계정은 팔로워가 어지간한 셀럽들만큼이나 많았고.

그 팔로워들 중에는 유리아처럼 유명한 연예인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2012년 여름은, SNS가 한창 불타오르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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