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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223화 (223/315)

223화

Give & Take

클라우드 파트너스의 김준영 과장과 우진의 인연은, 단순한 영업사원과 고객으로서의 인연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된 것부터가, 우진이 지식산업센터를 편하게 매수하기 위해 박경완으로부터 소개받은 것으로 시작이었으며.

그 뒤로도 인연의 끈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우진이 지식산업센터를 매수한 뒤 김준영 과장이 따로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인연은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김준영 과장은 우진 덕에 크게 실적을 쌓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고마워 경완과 우진에게 밥을 산 적이 있었고.

그 덕에 이후로도 연락을 주고받게 됐던 것이었으니까.

[진짜 이번에는 시말서 쓸 뻔했는데……. 두 분 덕에 살았습니다.]

[하하, 뭐 우리 덕을 봤다고 할 것까지 있나. 다 같이 잘 되면 좋은 거지.]

[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덕분에 저도 분양가 할인도 좀 더 받고……. 최대한 싸게 매수할 수 있었고요.]

[전에는 김 대리 자네가 날 도와줬으니, 고마울 것도 없어.]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야 더 감사하죠.]

당시 영업부의 대리였던 김준영은, 영업 압박에 엄청 크게 시달리던 중이었다.

지금이야 성수동의 지식산업센터가 2년 전의 분양가라면 매수 대기자들이 줄을 서서 사 가려고 할 테지만.

당시에는 미분양 위험도가 아주 크던 상황이었으니까.

상부에서는 감봉에 권고사직까지 들먹이며 어떻게든 다 팔아치우라고 하는 상황이었고.

이런 내리 갈굼의 가장 큰 희생양은, 당연히 현장 일선에서 뛰는 영업사원들이었다.

그런 와중에 우진이 매수해 간 여덟 개 호실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가뭄의 단비 수준이 아니었죠. 서 대표님 덕에 저 혼자 10호실을 팔아치운 셈이 됐으니까요.”

“하하,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뒤로도 갑자기 일이 좀 풀려서, 다섯 채나 더 계약하게 됐었습니다. 일이 풀리기 시작하니까 술술 풀리더라고요.”

당시의 일을 설명하는 김준영 과장은 무척이나 밝은 표정이었고, 진태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옆에 앉은 우진은 꽤나 멋쩍은 표정이었고 말이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닙니다.”

“끝이 아니라는 말씀은…….”

“제가 여기 서 대표님 덕을 본 게,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때 그 술자리.

김준영이 두 사람에게 고맙다며 밥을 샀던 그 날.

준영은 경완과 우진에게 이런 이야기도 했었다.

[사실 이 영업 일. 적성에 너무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만둬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래? 적성이라……. 영업이란 게 원래 힘든 일이기는 한데…….]

[그래도 이번에 실적도 좋으실 텐데, 퇴사는 너무 아쉽지 않으신가요?]

[뭐, 진급한다고 해도 분양 때마다 스트레스는 더 심해질 텐데……. 연봉 조금 오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술이 조금 들어가자 평소 가지고 있던 고민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그럼 부서 한 번 옮겨보시는 건 어떠세요?]

[부서요?]

[시행사라고 해서 영업 파트만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사업부도 있을 테고 마케팅 부서도 있을 테고…….]

[어, 음……. 그게 쉽진 않아서…….]

[실적 좋고 분위기 좋으실 때, 윗선에 딜 한번 때려보세요.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분명 유도리가 있을 겁니다.]

그에 대해 우진이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을 했던 것이다.

[사실 예전부터 사업부로 가고 싶긴 했습니다. 그런 쪽으로 고민하는 게 제 적성과 맞거든요.]

[그렇다면 이런 딜은 어떻습니까?]

[어떤 딜 말입니까?]

[IT타워 아직 미소진 물량 조금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아마 다음 달 안으로는 소진될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미소진 물량 한 호실 정도, 대리님이 사시는 겁니다.]

[네?]

[아마 윗선에서는 지금, 하루라도 빨리 다 털어버리고 싶어 하시겠죠?]

[물론입니다. 지금 자금 흐름 때문에, 회사도 급한 상황인 모양이더라고요.]

[이럴 때 실적도 좋은 대리님이 내가 한 손 거들겠다. 대신 본사 사업부로 발령 좀 내달라.]

[헛…….]

[이렇게 딜을 때리면,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겠습니까?]

처음 김 대리는 우진의 이 제안을 들었을 때,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퇴사가 간절할 정도로 보직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억 단위가 넘는 호실 하나를 매입하면서까지 상사와 딜을 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커 보였으니 말이다.

이런 제안을 진짜 그가 한다고 해서, 실제로 우진의 말처럼 될지도 미지수였고.

그래서 그 술자리에서는, 우진의 말을 그냥 웃어넘겼었다.

[에이.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대표님.]

[뭐, 좀 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 같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아서 한번 말씀드려 봤어요. 주제넘었으면 죄송합니다.]

[어우, 주제넘다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까지 해주셔서 제가 정말 감사드리지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 얼마 후.

김 대리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잊고 있었던 우진의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본사에서 아예 노골적으로 영업사원들한테 압력을 넣더군요.”

“어떻게요?”

“가장 판매실적이 높은 세 사람에게, 11년도 인사 우선권을 주겠다고요.”

“허…….”

“심지어 저 얘기가 나왔을 때, 제 실적이 정확히 공동 3등이었습니다. 한 호실만 더 계약해 내면, 안정적으로 3등 안에 들 수 있는 상황이었죠.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결국 서 대표님이 하셨던 제안을, 리스크 없이 그대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지요.”

“그래서 설마…….”

진태의 말에, 김준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설마가 맞습니다. 그때 뭐에 홀리기라도 했는지, 눈 딱 감고 제 명의로 한 호실 사버렸어요. 제 3년 치 연봉을 그대로 때려 박았죠.”

김준영은 그때의 일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이후로 준영의 답답했던 회사생활은 마치 고속도로처럼 뻥 뚫렸으며.

심지어 그때 샀던 IT타워 한 호실도, 재테크 수단으로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으니까.

진태가 물었다.

“그때 계약면적 기준 50평 정도 되는 거 사신 거죠?”

“맞습니다.”

“그럼 한 2억 8천 정도에 사신 건가요?”

“전 내부직원이니까……. 좀 더 싸게 샀죠.”

“그럼 2억 5천 정도……?”

“하하,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당시 준영은 대출 1억 5천을 받아, 2억 3천 정도에 호실 하나를 계약했었다.

1억 5천 대출에 대한 이자는 130만 원 정도 나오는 월세로 충분히 메워졌고, 오히려 매달 80만 원 정도의 괜찮은 부수입까지 생겼다.

게다가 2년이 지난 지금, 준영이 그때 계약했던 호실은, 3억 5천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라 있었다.

실제 투자금만 놓고 보면, 150%가 넘는 수익을 달성한 것이다.

“그러니까 서 대표님께선 제 은인이실 수밖에요.”

김준영 과장의 이야기에, 우진이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은인이라뇨, 그냥 김 과장님께서 그때 선택을 잘하셨던 겁니다.”

준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대표님께서 그때 술자리에서 한 마디 던지셨던 게 아니라면, 아마 저는 이렇게 결단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둘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진태가, 갑자기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하아…….”

의아한 표정이 된 우진이 물었다.

“형은 갑자기 왜 한숨이야?”

그에 진태가 우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 지난 2년 동안 뭐 했나 싶어서.”

“뭐?”

진태가 우진을 툭툭 건드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 바로 옆에 투자 귀신이랑 온종일 붙어 다니면서도, 월급이나 받아먹었지 투자는 한 번도 못 했으니까.”

그제야 진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우진이, 피식 웃으며 대꾸하였다.

“그러게. 내가 사랄 때 말 좀 듣지. 우리 IT타워 살 때도 형한테 내가 얘기했었잖아?”

“야. 살려고 했어. 돈 조금만 더 모으고 나서. 근데 그렇게 갑자기 확 오를 줄은 몰랐지.”

“내가 항상 말하지만, 형. 지금 사도 된다니까?”

“이미 4억이 다 돼 가는데?”

“몇 년 지나면 6억이야.”

“하……. 난 못하겠다. 2억 중반 때 봤던 걸 4억에 사라고 하니까, 손이 도저히 안 가.”

“크크, 내년에 후회할걸?”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진태를 보며, 우진과 준영이 동시에 웃었다.

그리고 준영과 우진의 과거 이야기 덕에, 분위기는 더욱 훈훈하게 흘러갔다.

기분 좋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더 나누던 중, 시계를 확인한 준영이 우진을 향해 물었다.

“자, 그럼 이제 시간도 거의 다 된 것 같으니……. 슬슬 올라가 보실까요 대표님?”

“좋습니다. 계약 진행도 과장님이 직접 해주시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규모 좀 작은 편에 속하기는 해도 시공 건이라……. 아마 차장님께서 테이블에 나오실 겁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준영은 문제없이 계약이 진행될 거라고 했다.

최근 우진의 활약 덕에 WJ 스튜디오라는 회사에 대한 인지도가 제법 높아져 있었던 데다.

준영 본인이 푸쉬를 쎄게 밀어 넣어 놔서, 아마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이다.

“대표님 네임벨류라면, 분양가 좀 쎄게 책정해도 다 팔려나갈 거라고 제가 강하게 얘기해 놨습니다.”

“으…….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부담되는데요?”

“하하. 전 이미 마케팅 전략도 다 짜놨습니다.”

“어떻게요?”

“기존의 아파트형 공장 이미지가 아닌 IT 기업의 사옥 이미지로, 패러필드의 파빌리온을 디자인한 서우진 대표의 WJ 스튜디오가 직접 디자인한 건물이다.”

“저희가 시공은 하지만……. 디자인 설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설계도 WJ 스튜디오 설계팀에서 해주시면 되잖습니까.”

“예?”

“제가 떡밥은 뿌려 놨으니, 대표님께서 한번 요리 잘 해 보세요. 하하.”

김준영의 이야기를 듣던 우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 과장님이 원래 이런 분이셨나……?’

처음 만났을 때에는 꽤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향의 사람으로 생각했었는데.

못 본 사이 사람의 분위기나 에너지 자체가 완전히 바뀐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영업부서에서 매번 실적압박을 받으며 갈굼당하던 현장직원 시절에는 소심해 보이던 김 대리가, 적성에 맞는 사업부에 와서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자,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감사합니다, 과장님. 이번에는 제가 정말 빚을 많이 지네요.”

우진의 감사인사에, 준영이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하였다.

“다음에 박 부장님. 아니, 박 상무님이랑 고기나 한번 구우시죠.”

“좋습니다.”

“이번에는 서 대표님께서 사시는 겁니까?”

“하하,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날 우진은, 김준영의 서포팅 덕에 시공권 계약을 깔끔하게 따낼 수 있었다.

물론 준영이 말했던 설계권은 덤이었다.

다 지어놓은 밥을 떠먹는 정도는, 업계에서 닳고 닳은 우진에게 일도 아니었으니까.

‘김 과장님 덕을 이렇게까지 크게 볼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우진은 계약을 마치고 기분 좋게 다시 성수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의 계약이 WJ 스튜디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했지만.

우진은 이 계약 건보다, 김준영이라는 인맥을 확실하게 얻은 것이 더 큰 수확이라고 생각하였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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