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공백 空白
4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다.
또다시 벚꽃 피는 계절이 왔고, 예쁜 꽃으로 물든 K대 캠퍼스는 선남선녀들로 가득 들어찼다.
하지만 우진은 그런 벚꽃 피는 계절의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애초에 우진이 K대 캠퍼스에 등교하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가 전부였다.
산학협력으로 채우지 못한 나머지 모든 학점을, 하루에 전부 다 밀어 넣어 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윤치형 교수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표였다.
하여 오전 일찍 등교하여 오후 4시까지 연달아 강의를 들은 우진은, 하교하기 위해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 와중에도, 우진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예, 실장님. 방금 오피셜 떴다고요?”
[네, 대표님. 말씀하신 대로 됐습니다!]
“기본 설계안은 미리 뽑아놨죠?”
[전에 디자인해주셨던 컨셉안대로 A, B, C안까지 준비해 뒀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공고까지 확정이 났으니, 본격적으로 준비해 보죠.”
[대표님께선 지금 바로 사무실로 오시나요?]
“네. 이제 차 탔습니다. 30분 내로 갑니다.”
텅-!
운전석에 탄 우진은, 디자인실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운전대를 잡은 우진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기사가 오늘 드디어 떴으니 말이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 본격적인 재가동. 그 시작은 강변북로 지하화?]
[성수 전략정비구역의 개발 계획안 전면 수정 가결! 총 1만 5천 세대 규모의 신도시급 프리미엄 거주지 탄생!]
[서울시 주관, 역대 최대 규모의 디자인 혁신 설계 공모?]
[서울시장 구윤권, “서울 시민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한강을 선물하고 싶었다.”]
사실 이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은, 비공식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확정된 상태였다.
서울시 내부 행정적으로는 이미 모든 계획안이 통과된 상황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성수 전략정비구역 조합원들과의 조율만 남아있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서울시에서 성수 조합원들에게 제시한 방향성은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이었으니, 이렇게 오피셜한 기사가 나는 것은 사실 시간문제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좋아. 이제 설계 한번 기깔나게 뽑아서, 공모에서 당선되는 일만 남았군.’
만 세대가 넘는 매머드급 프리미엄 주거지로 탈바꿈하는 성수 전략정비구역.
상상만 해도 멋진 이곳의 설계사에 WJ 스튜디오의 이름을 올릴 생각을 하자, 우진은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물론 아직 설계사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고, 서울시장 구윤권이 우진에게 어떤 특혜를 약속한 것도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우진은 무조건 이번 일을 따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힘들게 밥상 다 차려놨는데, 남 좋은 일 시켜줄 수는 없지.’
EAC에서도 인정받은 본인의 디자인과 설계실력을 믿기도 했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이 이번 사업의 성격과 방향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행정절차가 더 빠르게 진행됐고……. 홍식 아저씨도 기대 이상을 보여주고 있고…….’
매일같이 성수동에 출근해서 열심히 구르고 있는 홍식을 떠올린 우진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홍식을 설득하여 사업 파트너로 영입한 것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았다.
[지지부진하던 성수 전략정비구역의 사업 속도. 이제 탄력 붙나?]
[성수 전략정비구역 1지구, 조합설립 동의율 75%! 조합설립을 목전에 두다!]
성수지구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에 대한 오피셜한 기사가 뜬 뒤.
마치 그에 꼬리처럼 항상 따라붙는 1지구에 대한 기사.
성수 전략정비구역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구역이 갑자기 어마어마한 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했으니, 화제성이 된 것도 당연한 것이다.
홍식의 추진력은, 그를 영입한 우진마저도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
그래서 부동산 투자자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 카페에서는, 이 성수 1지구가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성수 1지구 투자자라는 한 사람의 게시글에는, 댓글이 백 개도 넘게 달려있을 정도였다.
[제목 : 작년 12월에 성수1 들어갔던 투자잡니다.]
[내용 – 다들 아시다시피 성수1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주춤하면서 장기 조정상태였던 구역이었습니다. 2, 3지구에 비해서 속도도 느리고 리스크도 커서, 다들 꺼리시던 투자처였죠. 하지만 그런 리스크를 다 감안해도 저평가 상태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과감하게 진입했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터졌고요. 현재 성수 전략정비구역의 상황은…….]
……후략……
└ 초기 투자금이 얼마셨나요?
└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8천만 원 언더였습니다.
└ 와, 12월에 그 가격에 진입 가능한 물건이 있었다고요?
└ 그땐 널려 있었죠. 뚜껑은 5천 대에 매수 가능한 물건도 많았습니다.
└ 지금은 3억 들고도 살 수 있는 물건이 없던데……. 이분 대체 수익률이 얼마신거지?
└ 아직 안 늦었습니다, 여러분. 개발계획 떴으니 이제 시작이고, 계획안대로 완공되기만 한다면 상상 초월하는 프리미엄 주거지가 될 겁니다.
└ 지금보다 더 오르면, 30평대 기준 10억 수준으로 붙을 텐데……. 그게 가능하다고 보세요?
└ 그 이상도 봅니다. 딱 5년 지나면, 준강남급으로 평가받을 겁니다.
└ 이분, 허언이 너무 심하시네. 성수가 강남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 청담 선영 조합장님께서 1지구 추진위 이끌고 계시다던데. 이건 사실인가요?
└ 헐, 정말요? 대박인데?
└ 맞습니다. 곽홍식 조합장님께서 지금 추진위 대표십니다. 아마 조합장까지 해주실 것 같은데…….
구역해제 위기라느니 최소 10년은 지나야 조합설립이 될 거라느니.
최악으로 평가받던 1지구의 동의율이 단 몇 개월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끌려 올라왔다.
이런 전무후무한 추진력을 보여준 추진위를 누가 이끌고 있는지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심지어 그 주인공이 최근 청담 선영아파트 재건축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는 홍식이었다.
그래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번지고 있던 상황에, 서울시에서 최고의 호재까지 오피셜하게 튀어나왔다.
단기간에 프리미엄이 다섯 배도 넘게 튀어 오른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뭐, 어차피 한동안 팔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오르니까 기분은 좋네.’
수업을 마치고 성수동으로 향하는 사이, 우진과 함께 투자했던 지인들에게서도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왔다.
재벌 3세인 석중이나 소정이야 호재가 나오든 뭐가 어떻든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재엽이나 수하 등, 다른 지인들은 신이 날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우진은 이번 사업을 추진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사실 하나도 알게 됐는데, 성수동 강변에 있던 소연이 사는 낡은 아파트도 1지구에 속해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세대주로 등록되어있는 소연 또한 알고 보니 성수 1지구의 조합원이었던 것.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했지.’
아마 소연이 스페인에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녹물이 나오던 소연의 낡은 아파트도 번쩍거리는 신축 아파트가 되어 있을 터였다.
몇 번 안면이 있는 소연의 착한 동생들을 떠올린 우진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다들 잘됐으면 좋겠네.’
우진은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사무실로 올라왔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대표실에 대충 짐을 내려놓은 우진이 곧장 걸음을 향한 곳은 회의실.
회의실에는 이미 회의를 위한 모든 세팅이 끝나 있었고, 디자인 설계팀 모두가 우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여기…….”
“감사합니다.”
직원이 건네준 음료수로 목을 축인 우진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이어서 잠시 후.
“자, 그럼 일단 브리핑부터 들어볼까요?”
상석에 앉은 우진이 손뼉을 짝하고 치자 회의실 불이 꺼졌고, 스크린이 밝게 켜지면서 디자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 * *
올해로 60이 된 권주열은, 한국 건축업계에서 알아주는 디자이너였다.
80년대 후반 30대의 나이의 젊은 건축 디자이너로 데뷔한 뒤, 적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업계에서 인정을 받은 디자이너.
권주열은 실력도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강력한 배경이 있었다.
전 한국건축가협회의 회장이자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건축가였던 박문주.
지금은 별세했지만, 아직도 건축계에 가장 단단한 파벌을 가지고 있는 박문주의 직속 제자가 바로 권주열이었고.
때문에 그가 건축가로서 빠르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건축가로서 탄탄대로를 밟았으며 이렇게 한국 최고의 건축가 중 하나가 된 권주열에게도 한 가지 결여된 것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제적인 명성.
국내에서야 최고의 건축가라고 하면 항상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권주열이었지만, 글로벌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프리츠커상에는 아직 후보군에 이름조차 올려보지 못했으며, 세계적인 건축 컨퍼런스인 EAC에도 두어 번 정도밖에 초대받아보지 못했던 것.
하지만 주열은 자신이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지 못한 것을, 한국 건축계의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었다.
건축예산은 항상 부족하게 책정되고, 반대로 건축에 얽힌 이해관계는 배 이상으로 복잡한 한국 건축계의 구조적인 문제.
건축가 입장에서 해외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자신의 세계적인 도약을 막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자위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합리화를 해 왔던 주열은, 최근 커다란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최근 업계에서 혜성같이 떠오른 서우진이라는 건축 디자이너 때문이었다.
사실 주열이 우진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예능프로에서였다.
그 프로에 우진과 함께 전문가 패널로 섭외됐던 디자이너 김기성이 주열과 친분이 있는 건축가였고.
동종업계의 지인이 예능프로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재밌어서 몇 번 <우리 집에 왜 왔니>를 시청했던 것이다.
그때 우진을 처음 알게 됐던 주열은, 그때부터 그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었다.
김기성은 나이에 비해 실력이 대단하고 뛰어난 인재라고 평가했었지만, 주열이 보기에는 제대로 된 건축가가 되기도 전에 번지르르한 겉모양에만 신경을 쓰는 애송이로 보였던 것이다.
우진에게 어떤 악감정이 있었을 리는 없었다.
다만 아직 학부조차 졸업하지 못한 어린 나이에 전문가랍시고 예능프로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주열에게는 아니꼬왔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한동안 주열의 기억 속에서, 서우진이라는 이름은 지워져 있었다.
‘일개 대학생’에 불과한 디자이너의 이름을, 딱히 기억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잊고 있던 그 이름이, 다시 주열의 앞에 나타나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건축가라……. 기자 놈들, 제목은 잘 주워다 갖다 붙인단 말이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기사를 보던 주열은, 불편한 표정이 되어 모니터를 끄고 일어섰다.
그런데 걸음을 옮기려던 그 순간.
띠리리링-!
주열의 자리 위에 놓여있던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