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189화 (189/315)

189화

데뷔

우진은 구윤권과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진이 12년도에 추진하려는 콜라보 사업의 가장 핵심 결정권자가 바로 서울시장인 구윤권이었으며, 바로 옆에는 실무 총 책임자나 다름없는 디자인 재단 이사장 안정묵까지 있었으니.

뜻밖에 만들어진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진은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너무 한정되어있고 짧았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담 요양원>의 준공식이었으니까.

그래서 한 이삼십 분 정도를 대화한 뒤, 우진을 비롯한 일행들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이사장님! 행사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엇,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알겠네. 내가 전부 모시고 나갈 테니, 5분 뒤 행사 시작토록 하지.”

“알겠습니다.”

우진은 아쉬웠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 아쉬움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뒤따라 일어선 구윤권이 우진을 향해 빙긋 웃으며 명함을 건넸으니 말이다.

“오늘은 아무래도 여기까지가 될 것 같으니, 다음에 시청으로 한번 방문 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우진은 화들짝 놀랐다.

‘……!’

사실 방금 전까지도, 처음 자리에 도착했을 때 자연스레 명함교환을 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서울시장의 개인명함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대로 놓치나 했는데 오히려 그가 먼저 명함을 주었으니, 우진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우진은 재빨리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 윤권에게 마주 건네었다.

“초대 감사합니다, 시장님. 제가 오늘 이후, 조만간 시간 내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서 대표님과는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욕심이 좀 많거든요.”

“욕심이라시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말입니다.”

“아……!”

“그중에서도 이 서울시라는 도시를 전 세계 어떤 도시 못지않게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게……. 제 가장 큰 욕심이지요.”

어떤 일이든 첫 단추를 꿰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에서도 첫인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높은 것처럼.

사업 또한 스타트를 어떻게 끊어내느냐가 향방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2년도에 우진이 계획한 콜라보 사업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첫 단추를 꿴 셈이었다.

이번 사업을 성공해 내기 위해 필요한 성공요소가 열 가지 정도 있다면, 그중 일곱 가지 이상은 시작부터 휘어잡은 느낌이랄까.

행사를 위해 내무실에서 나가는 우진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 꾹 눌러 쥐고 있었다.

‘내 손에 쥐어진 이 모든 기회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내야 해.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우진은 꿈을 향해 달리는 길 위에서, 점점 더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 속도가 빨라질수록 꿈은 더 빠른 시일 내에 가까워지겠지만, 반대로 그 길을 따라 운전대를 움직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도를 줄일 수는 없다.

다만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릴 것이다.

우진은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로 나온 우진은, 행사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준공식이 진행되는 곳은 요양원 중앙에 있는 운동장이라고 하였다.

“일정이 어떻게 되죠?”

우진의 물음에, 요원이 고개를 저으며 빙긋 웃었다.

“행사 자체는 금방 끝날 겁니다. 아시다시피 식순이 길지는 않거든요.”

“제가 따로 준비하거나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걱정마세요. 사회자로 오신 분이 알아서 잘 진행해 주실 테니까요.”

“다행이네요.”

우진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제이든과 소연은, 완전히 얼어붙어 얼굴마저 창백해져 있었다.

뜬금없이 서울시장이 등장했을 때부터 얼어있었는데,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더더욱 긴장해버린 것이다.

그 말 많던 제이든이 그동안 한마디도 않았을 정도.

“제이든. 혹시 긴장한 거야?”

“긴장이라니. 제이든은 긴장하지 않아.”

“다행이네.”

“What?”

“내가 시장님이랑 얘기하는 사이에, 혹시 누가 제이든의 입을 몰래 꿰매버린 건 아닌가 걱정했거든.”

“Holy…….”

우진은 제이든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던졌고, 그것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옆에 있던 소연까지도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피식 웃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가벼운 대화가 오가는 사이,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저쪽 단상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조금은 풀린 분위기 속에, 기분 좋게 단상을 오르는 세 사람.

그런데 다음 순간.

“……!”

단상 후방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던 우진의 두 눈이, 구윤권을 처음 발견했을 때만큼이나 휘둥그레 커졌다.

‘뭐, 뭐야?’

계단을 오르자 운동장 방향으로 시야가 확보되었고, 그곳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요양원의 관계자들과 SPDC 공모전 관계자 몇몇. 그리고 요양원의 시공사인 천웅건설의 관계자들 몇 명 정도만 있을 줄 알았던 우진의 예상보다 최소 다섯 배 이상은 많은 숫자였다.

우진과 마찬가지로 그 광경을 발견한 것인지,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비명을 터뜨렸고.

“으아아……!”

단상 위로 올라간 우진의 시선이 이번엔 좌우로 향했다.

그러자 이미 우진을 찍고 있는 수많은 카메라들과, 그 사이에서 보이는 몇몇 공중파 방송국의 로고들이 우진의 눈에 들어왔다.

‘이게…… 언제부터 이런 행사였지……?’

그리고 무척이나 익숙한 한 남자의 목소리가, 혼미해진 우진의 귓전을 두들겼다.

“어이, 서 대표!”

그것은 뒤늦게 현장에 도착해 곧바로 행사장으로 움직여 온 박경완의 목소리.

“거, 복장이 좀 너무한 것 아니요.”

“박 상무님!”

그 목소리를 들은 우진은, 그제야 자신의 심플(?)한 복장을 다시 자각할 수 있었다.

‘젠장…….’

후회하게 될 거라는 제이든의 말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우진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 * *

우진과 제이든, 그리고 소연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지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행사가 진행되고, 어느 순간 인터뷰가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행사가 끝나있었으니 말이다.

우진조차도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으니, 제이든과 소연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우진과 달리 한껏 차려입고 왔으면서도, 이렇게까지 자신들에게 관심이 쏠릴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우진. 제이든은 역시 훌륭했지?”

“뭐라는 거야. 정신 차려, 제이든.”

“오빠, 나 실감이 안 나. 나 인터뷰하면서 무슨 실수한 건 없지?”

“그런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소연은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마치 꿈처럼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당장 그날 저녁 공중파의 뉴스에서부터, 잠깐이지만 세 사람의 얼굴이 곧바로 전파를 탔으니까.

[다음 뉴스입니다. 서울시 디자인 재단에서 주관하는 건축 디자인 공모전 SPDC에서…….]

집에 돌아온 소연은 신난 동생들 사이에서, 쿠션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뉴스를 시청했다.

[대상 수상자이자 <도담요양원>의 설계자는, K대 공간디자인과의 2학년 학생 세 사람으로…….]

“언니 대박. 오늘은 쫌 멋지네?”

막내 아연이 입을 떼자, 둘째 동생 가연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저기 요양원이 진짜 언니가 디자인한 건물이야?”

“그렇다잖아.”

“언니 그냥 숟가락만 얹은 거 아냐?”

“그런가? 사실은 우진 오빠가 다 했나?”

쿠션 뒤에 숨어 재잘거리며 떠드는 두 동생의 말을 듣던 소연이, 고개를 홱 돌리며 아연을 향해 물었다.

“너 우진 오빠는 어떻게 알아?”

“지난번에 스튜디오 로비에서 언니 기다릴 때, 우진 오빠가 아이스크림 사줬거든.”

가연이 끼어들었다.

“고작 아이스크림 한번 사줬다고 그렇게 친한 척?”

“언니는 고작 아이스크림도 잘 안 사주잖아!”

“둘 다 시끄러워!”

뉴스는 짧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로 다음 날 새벽부터, <도담요양원>과 관련된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웹상의 수많은 기사들은 물론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뉴스에서까지도.

한동안 우진과 <도담요양원>은, 크게 이슈화되었다.

실제로 <도담요양원>의 디자인이 이슈화될 정도로 훌륭하기는 했지만,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진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소스들 중, 어느 것 하나 평범한 부분이 없었으니까.

우진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어떤 측면에서는 연예인보다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곧 ‘스타성’이었던 것이다.

한번 매체를 타며 우진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하자, 그동안 우진의 행적이 재조명되며 이슈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서우진. 건축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단단히 입증하다!]

[‘건축의 목적이란 본디,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 스물셋, 디자이너 서우진을 말하다.]

[청담 선영아파트 천웅건설 수주의 숨은 주역. 알고 보니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서우진?]

<우리 집에 왜 왔니>에 전문가 패널로 출현했던 영상들부터 시작해서, SPDC결선에서의 발표 영상. 그리고 시공사 선정 총회 때의 <청담 클리오 써밋> 발표 영상까지.

그런 것들까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우진의 인지도는 그야말로 수직상승하게 되었다.

이 일련의 일들은 정말 부지불식간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으며.

덕분에 지인들과 만나거나 통화할 일이 있으면 꼭 한 번씩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서 대표님, 뉴스는 아주 잘 봤습니다. 프흐흐.]

“그거…… 보셨어요?”

[면바지에 바람막이 아주 잘 어울리던데요?]

“왜 보셨어요…….”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니에요. 그냥 인터넷 좀 하다 보면 곳곳에서 보이던데요?]

“…….”

[이제 거의 연예인 다되셨는데, 저희 KSJ엔터랑 계약하시는 건 어때요.]

“네? 농담이라도 그런 무서운 말씀은…….”

[로드 매니저라도 한 명 붙여 드릴게요. 매니저 있으면 바람막이 입고 뉴스에 나오는 일은 없을 걸요?]

“대표님…….”

[가끔 예능프로 한 번씩 출연해 주시고…….]

“저 그럴 시간 없는 거 아시잖아요.”

[농담이에요, 농담. 흐흐흐.]

“최근에 들었던 농담 중에 제일 무섭네요.”

[그럼 대표님, 내일 미팅 때 봬요. 벨로스톤즈 대표님도 오시는 거죠?]

“네, 물론입니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별말씀을요.]

강소정 대표의 전화를 끊은 우진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놈에 바람막이……. 진짜…….”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할 때면, 바람막이 트라우마에 걸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

“퇴근이나 해야지. 내일 미팅 전까지는 진짜 푹 쉬어야겠어.”

옷걸이에 걸려 있던 코트를 챙겨 입은 우진은, 그날은 왜 바람막이를 입었을까 또 한 번 생각하며 한숨 쉬었다.

그런데 퇴근하려던 우진의 사무실 전화기가, 갑자기 다시 요란히 울리기 시작하였다.

[안녕하세요, 서우진 대표님 맞으시죠?]

“네, 제가 서우진입니다만……?”

[저희는 국내 디자인 잡지사 <아르티카>인데요…….]

골든 프린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