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181화 (181/315)

181화

도약을 위한 준비

10월 초.

우진의 뉴 하우스는 꽤나 붐볐다.

이제 꽤 넓어진 인맥들 때문인지, 거의 일주일에 거쳐 손님들이 다녀간 것이다.

일단 이사 첫날 다녀간 제이든과 석현부터가, 바로 다음 날 또 방문하게 되었던 것.

첫날은 사실 이사를 도와주기 위한 명분으로 온 것이었는데 딱히 할 게 없어서 놀다 간 것이었고.

다음 날이 원래 소연과 선빈 등 친한 동기들 몇몇까지 함께하는, 원래 약속된 집들이 날이었던 것이다.

“와……. 같은 성수동인데, 우리 집이랑 온도차이 무엇.”

“소연. 소연도 이런 집에 살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

“그게 뭔데?”

“사모님이 되면 돼.”

“……?”

“우진과 결혼하면…….”

“맞을래, 제이든?”

동기들이 다녀간 다음 날에는, 박경완을 비롯한 친분 있는 천웅건설의 관계자들과 우진의 오른팔(?)인 진태 등이 방문하였다.

우진의 어머니 주희는 십 년 만에 가게 문을 닫은 뒤 보름 정도 여행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우진은 편하게 손님을 맞을 수 있었다.

“상무님, 이게 다 뭡니까……?”

“내가 얼마 전에 러시아 쪽에 출장 다녀온 거 알지?”

“그런데요?”

“거기 보드카가 그렇게 유명하잖냐.”

“설마 그럼 이 상자가 전부다……?”

“잘 쟁여 놔라. 한 번씩 마시러 올라니까.”

경완의 말에, 우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니, 왜 저희 집에서 마십니까? 좋은 술집들 놔두고.”

“뷰가 죽이잖아. 거실 창가에 원목 탁자 가져다 놓은 거, 술 마시려고 세팅해둔 거 아니었냐?”

“아닌데요…….”

물론 우진의 반응은, 전혀 아랑곳 않는 경완이었지만 말이다.

“전망이 아주 그냥 예술이네, 예술이야. 여기서 술 마시면, 안주가 따로 필요 없겠어. 그렇지 않냐 진태야.”

“말해 뭣합니까. 크으……! 그런 의미에서 일단 한 병 까실까요?”

“이 사람들이…….”

“좋지!”

“전무님, 형수님께 이를 겁니다.”

“괜찮아, 괜찮아. 와이프가 너랑 술 마신다고 하면, 외박해도 아무 소리 안 해. 서 대표랑 약속 있다고 하면 아예 등을 떠밀더라니까?”

“…….”

경완과 진태 등이 다녀간 다음, 마지막으로 방문한 손님은 바로 <우리 집에 왜 왔니> 팸들.

세 사람 모두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우진의 집에 방문했다.

사실 순서는 마지막이었지만, 우진의 집들이를 가장 먼저 예약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역시 이쪽 일하는 사람 집이라서 그런가? 인테리어도 깔끔하게 잘해놨네.”

재엽의 감탄에, 따라 들어온 수하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나도 입주하면 우진이한테 인테리어 해달라고 해야겠다.”

“입주? 어디 입주 말하는 거야? 청담은 아직 멀었잖아.”

“일단 마포 클리오 들어가야지. 이제 딱 반년만 기다리면 입주라고!”

반년이라는 수하의 말에, 관계자가 참지 못하고 태클을 걸었다.

“반년은 아닐 걸 누나. 준공예정이 6월이니까, 내년 7월은 되셔야…….”

“이제 2011년도 막바지니까, 반년이나 마찬가지지 뭐.”

“…….”

다들 좋은 집을 많이 경험해본 연예인이라 그런 건지, 집들이에 왔던 손님들 중 집에 대한 감상은 세 사람이 가장 담백했다.

드디어 좋은 집으로 이사한 우진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정도랄까.

하지만 세 번의 집들이 중, 가장 특별한 집들이가 오늘이었다.

오늘은 우진의 집 말고도, 구경(?)하기로 한 집이 하나 더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 집은, 무려 우진의 집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초호화 럭셔리 하우스였다.

그래서 가벼운 디저트와 함께 한 시간 정도를 떠든 네 사람은,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우진이네는 이제 충분히 구경한 것 같으니까……. 우리 위로 올라가 볼까?”

수하의 말에, 옆에 있던 재엽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으흐흐. 그럴까? 이런 아파트 펜트는 대체 어떤 느낌이려나…….”

얌전히 음료수를 홀짝이던 리아도 한 마디 입을 열었다.

“근데 대표님께 먼저 전화해서 말씀은 드려야 하는 것 아냐?”

오늘 이 네 사람이 방문하기로 한 곳은, 우진과 같은 동의 윗집에 사는 이웃인 석중의 아파트.

석중의 집은 무려 120평짜리 복층 펜트하우스였고.

우진조차도 무척이나 궁금할 수밖에 없는 주거의 끝판왕이었다.

세 사람 모두 석중과도 이제 꽤 친분이 생긴 상태였으니, 우진의 집에 방문한다는 얘기를 들은 석중이 아예 본인의 집에까지 초대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모임의 인원은 총 여섯 명이었다.

우진의 집에 먼저 대기하고 있던 네 사람과 석중. 그리고 소정까지.

“괜찮아. 내가 방금 소정이한테 물어봤어.”

“응? 뭘?”

“소정이 지금 위에 도착해 있대. 지금 올라와도 된다는데?”

수하가 말하는 소정이란 그녀의 소속사 대표이자 강석중의 여동생인 강소정이었다.

“좋아. 그럼 바로 고고!”

“구웃!”

수하의 얘기를 들은 네 사람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나 보이는 것은 우진이었다.

세 사람이 자신의 집에 오래 머물지 않아서 서운하거나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크, 오늘은 석중 형님네서 신세 좀 져야지.’

사실 손님들이 집에 오래 머물수록 정리해야 할 것도 많아지는 법.

이미 질리도록 집들이를 한 우진은 오히려 한시라도 빨리 석중의 집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바로 위층이니까, 계단으로 올라가면 돼.”

“진짜 완전 이웃사촌이네.”

“서우진이 뜬금없이 여기 입주한 이유가 다 있었어.”

“응?”

“윗집에서 흘러내리는 콩고물 받아먹으려고 그런 것 아냐.”

“정답!”

“그러네. 강 대표님 정도면 콩고물이 아니라 거의 금가루가 흘러내리겠어.”

“흐흐.”

우진의 집에서 나온 세 사람은 두런두런 떠들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집주인인 석중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다들 바쁘신 분들이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어서들 들어오시지요.”

* * *

일반적인 신축아파트는, 보통 한 층에 2~4개 정도의 호실이 존재한다.

엘리베이터를 두 개 정도 공유하는 작은 메인홀에, 사방으로 한 개씩 호실이 나 있는 구조가 보통이라는 것이다.

우진의 집인 <서울 숲 클라시아 포레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집이 있는 45층만 하더라도, 우진의 집 외에 두 개의 호실이 같은 층에 더 있었으니까.

하지만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는 달랐다.

<서울 숲 클라시아 포레스트>의 46층은, 전부가 석중의 집이었다.

거의 60평에 달하는 세 개 호실을 하나로 합쳐놓은 만큼이, 석중이 혼자 사는 펜트하우스의 넓이였던 것이다.

“와, 이건 뭐…….”

이런 수준의 펜트하우스에 실제로 들어와 보는 것은 우진조차 처음이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상의 모델링이나 이미지로는 호화로운 펜트하우스를 많이 봐 온 우진이지만, 이렇게 실제로 거주하는 펜트하우스에 들어오는 것은 느낌이 또 다를 수밖에 없던 것.

펜트하우스에도 분명히 급이 있었고, 최고의 프리미엄 주상복합인 클라시아 포레스트의 펜트하우스는 그중에서도 최상급의 럭셔리 펜트하우스였으니.

널찍한 마당에 경호원까지 있는 한남동 단독주택을 제외한다면, 이보다 더 호화로운 집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마감재 하나하나 진짜 돈으로 다 발랐네. 칠성건설에서 작정하고 지은 주복(주상복합)이라더니…….’

우진은 감탄하는 와중에도 펜트하우스의 구조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첫인상 자체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호화로운 공간이었지만, 직업병 탓에 구석구석 살피다 보니 아쉬운 부분도 종종 보였다.

‘거실까지 직선으로 이어졌으면 개방감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시야가 가려져서 좀 아쉽네.’

자신이 직접 설계한 청담 써밋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와도, 자연스레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규모랑 마감재만 봤을 땐 여기가 써밋 펜트보다 좀 더 호화롭겠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디자인은 그쪽이 더 낫겠어. 역시 칠성건설은 인테리어 풍이 너무 엔틱한 느낌이 있네.’

직업병에 걸린 우진이 이렇게 공간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반면.

나머지 세 사람은 순수하게 감탄하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특히 미래의 펜트하우스 입주자인 재엽과 유리아의 머릿속에서는, 행복회로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대박……. 펜트하우스가 이런 거구나…….”

우진이 보여준 평면도만 봤을 때는 감이 제대로 오지 않던 펜트하우스의 느낌들이, 석중의 집이라는 래퍼런스를 실물로 확인하고 나자 더 크게 와 닿기 시작한 것.

“우진아.”

“엉?”

“우리 집, 좀 더 빨리 지어주면 안 될까?”

“……. 내가 짓냐.”

“으아아. 나도 빨리 입주하고 싶다! 미쳤어! 진짜 대박이야!”

행복회로 과부하로 비명을 지르는 리아를 보며, 석중과 소정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리아 씨도 청담 펜트 입주하시면 저희 초대해 주셔야 합니다?”

“당연하죠 대표님!”

집이 워낙 넓은 탓에 한 바퀴 도는 데만 10분도 넘게 걸렸지만, 지루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여 그렇게 석중의 집을 충분히 구경한 네 사람은, 마지막으로 테라스에 나왔다.

어지간한 대형평수 아파트의 거실보다도 훨씬 넓은 테라스는, 마치 작은 정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역시 펜트는 테라스가 핵심이지.”

우진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리아가 물었다.

“응? 왜?”

테라스도 분명히 멋지긴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호텔 로비처럼 복층으로 구성된 거실이 훨씬 더 멋져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진의 설명을 듣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테라스는 평수에 포함이 안 되거든. 그러니까 서비스 면적이야.”

“헐, 정말?”

“누나가 분양받은 펜트도 평수는 80평대라고 되어 있지만, 테라스 넓이만 합쳐도 30평은 추가될걸?”

“대박.”

“평단가 계산할 때 포함이 안 되니까, 완전 꿀이지, 꿀.”

선선한 10월의 가을바람 탓인지, 테라스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다들 무척이나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서울의 동쪽부터 서쪽까지 굽이치는 한강의 흐름이 한눈에 보이는 멋들어진 테라스의 전망.

우진의 집 거실에서 봤던 전망과 비슷한 뷰였지만, 개방된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석중은 와인 셀러(Wine cellar)에서 아껴뒀던 고급 와인 몇 병을 꺼내왔고, 그것을 각각 한 모금씩 홀짝이기 시작하자 대화는 점점 더 무르익었다.

“크, 향 진짜 좋다.”

“야 서우진. 와인잔을 그렇게 잡고 마시는 사람이 어딨냐?”

“응?”

“와인잔 손잡이를 잡아야지. 그렇게 잡으면 와인 맛 다 버린다.”

“흐흐 맛있기만 하구만 뭘.”

모임 구성원들의 스펙이 워낙 화려한 탓인지, 대화의 주제는 무척이나 광범위했다.

성수동 거주민들의 동네 자랑에서부터 시작된 사적인 이야기들이, 사업 이야기를 넘어 연예계 쪽으로까지 넘어간 것이다.

연예인 셋에 기획사 대표까지 앉아 있다 보니, 연예계 가십거리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로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이쪽에 대해 잘 모르는 우진은 가만히 듣기만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즐거웠다.

오고 가는 대화의 내용 자체가, 어디서 돈 주고도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아, 잘나가던 김이설이 갑자기 은퇴했던 게 국회의원 스캔들 때문이었구나…….’

그런데 이렇게 연예계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한참 오가고 있을 즈음.

갑자기 시작된 소정의 한 마디가, 단지 관망자에 불과했던 우진을 대화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대표님.”

“야. 여기 대표님이 너 말고도 두 명이야.”

“내가 오빠한테 대표님이라고 그러겠냐? 서 대표님 부른거지.”

“네?”

우진과 눈이 마주친 소정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요.”

두 눈을 반짝이는 소정을 보며, 우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말씀하세요.”

“혹시 서 대표님. 드라마 세트장 같은 쪽도, 작업해보신 적이 있나요?”

“세트장…… 이요?”

생각지도 못했던 소정의 얘기에 우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우진을 놀라게 할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 <천년의 그대>라고, 제가 투자해서 기획 시작한 드라마가 하나 있거든요.”

“네……?”

“그 작품 세계관이 좀 독특해서, 촬영장을 하나 따로 세팅해야 하거든요.”

“아……!”

“근데 제가 이쪽으로는 인맥이 없어서요. 혹시 서 대표님께서 이런 일도 하시나요?”

소정의 이야기를 들은 우진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천년의 그대 메인 투자사가 SJ엔터였구나……!’

그녀의 말이 떨어진 순간, 본능적으로 재밌는 냄새를 맡은 우진이었다.

골든 프린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