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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168화 (168/315)

168화

도전의 첫걸음

단순하게 150평 부지에 10층 이상 건물을 올리면, 연면적은 1500평이 훌쩍 넘어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진이 말한 150평 부지라는 것은, 건물이 지어지는 면적이 아닌 전체 토지의 넓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산업개발진흥지구>*[개발진흥지구 중 하나로, 공업기능을 중심으로 개발·정비할 필요가 있는 지구를 말한다.]로 지정된 성수동 준공업지역의 경우, 법적으로 제한된 건폐율은 70퍼센트 정도.

쉽게 말해 150평 넓이의 부지를 매입하더라도 실제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은 100평 남짓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용적률도 생각해야 되니…….’

그리고 준공업지역에 제한된 용적률은 400퍼센트인데, <산업개발진흥지구>지정 특례로 인해 완화된 용적률로 최대한 연면적을 확보한다고 해도 480퍼센트 정도가 한계다.

여기에 면적을 더 확보할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방법은.

부지의 일부를 공공시설로 국가에 기부채납*[국가 외의 주체가 재산의 소유권을 무상으로 국가에 이전하여 국가가 이를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하는 정도일 것이었다.

땅 일부를 국가에 떼어주면서, 그 대신 용적률과 층수 제한을 완화 받는 것.

그리고 이렇게 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모든 용적률을 다 땡겼을 때, 우진이 지을 수 있는 사옥의 총면적은 천 평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최대 층 13층. 총 연면적 1072평. 서울숲이나 한강뷰는 아니지만, 북쪽으로 중랑천뷰도 나오고……. 확실히 괜찮네 이 정도면.”

“맞아. 좀 알아보니까, 평단가도 꽤 괜찮게 나온 매물이야.”

아침 일찍부터 대표실에는, 세 사람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우진과 진태, 그리고 석현.

그들의 앞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얼음이 가득 담겨있는 커피가 한 잔씩 놓여 있었다.

“유일한 흠은 역까지 거리가 좀 된다는 건데…….”

우진과 진태의 대화를 듣던 석현이, 슬쩍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성수역에서는 많이 멀지만. 뚝섬역까진 8분 정도?”

“그렇게 얘기하니까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의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성수동의 지도.

그 옆에는 부동산에서 브리핑받은 매물들 중, 가장 조건이 좋아 보이는 부지와 관련된 서류도 쌓여 있었다.

‘전생에 성수동 부지 찾아봤을 땐 이 입지에 이 정도 규모 부지면 거의 100억짜리였는데……. 이게 고작 30억이라니.’

카페 프레스코에서 공수(?)해 온 아메리카노를 기분 좋게 홀짝이며, 우진은 잠시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우진이 전생에 성수동 부지를 알아봤던 것은 그때 다니던 건설사에서 지식산업센터를 수주했을 때였는데.

그러니까 2024년 정도에 봤던 시세와 지금의 시세를 비교해본 것이다.

어차피 사옥으로 쓸 건물을 짓는 것이지만, 사옥이라는 것이 본래 기업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자산 중 하나.

미래가치를 생각해보는 것은, 우진으로선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더 괜찮은 물건이 안 나온다 싶으면 여기로 해야겠어.’

그리고 우진이 이런 생각을 잠시 떠올리고 있던 그때, 석현이 우진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

“응?”

“이렇게 사옥을 크게 짓는 이유는 뭐야? 나중에 직원들로 전 층을 다 채울 생각을 하는 거야?”

아무리 성진건설을 인수했다 한들, WJ 스튜디오에게 그렇게나 큰 평수가 필요하지는 않다.

넉넉히 직원 숫자를 130명 정도로 잡아도, 두세 개 층이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것이다.

그래서 석현은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우진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질문이 너무 순진하게 느껴졌으니까.

“아니, 뭐 언젠가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 정도 규모가 되면 다시 신사옥을 짓는 게 낫겠지.”

“그럼?”

“우리 회사에서는 일단 꼭대기 세 개 층만 사용할 거야.”

“음……?”

“왜 꼭 사옥 전체를 우리가 써야 한다고 생각해? 임대주면 되지.”

“아!”

“위치만 잘 잡으면, 한 층당 임대료 천오백 정도는 나올 거야. 1층은 그 두 배도 가능할걸?”

“대박……!”

우진의 머릿속에는, 이미 사옥을 지은 후의 계획들이 서 있었다.

어떤 식으로 임대를 맞추고, 그 와중에 어떻게 근무환경을 최적화시킬지 말이다.

‘1, 2층에는 카페 프레스코를 내 이름으로 하나 내고, 3, 4층은 음식점을 좀 들여와야겠어. 10층 한 층 정도는 휴게 공간 위주로 구성된 라운지도 괜찮겠고…….’

브랜드가 런칭 한 지도 반년이 넘게 지난 지금, 카페 프레스코는 명실상부 첫손에 꼽는 국내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가 되었다.

가맹점을 열고 싶다는 업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

그래서 이 카페 프레스코를 1, 2층에 입점시키는 것만으로도 건물 가치를 크게 올릴 수 있었으며.

우진은 여기에 더해 석중과의 인맥을 활용하여, NA푸드원의 요식업 브랜드들도 들여올 생각이었다.

뚝섬역 사거리부터 이어지는 서울숲 길은 점점 더 상권이 살아나 핫 플레이스가 될 예정이었으니, 장기적으로 봐도 아주 괜찮은 계획.

그러니까 부지 매입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도 전에, 이미 사업적인 측면에서의 구상은 거의 끝나 있었던 것이다.

‘남은 건 이제, 사업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멋진 디자인을 뽑아내는 건데…….’

진태, 석현과 이삼십 분 정도 더 이야기를 나눈 우진은, 사무실을 나갈 준비를 하였다.

“진태 형. 부동산이랑 약속시간 12시 30분이었지?”

“맞아.”

“가기 전에, 조금 이른 점심이나 먹고 움직이자.”

“좋지.”

우진은 한시라도 빨리 사옥의 디자인 시안을 작업하고, 설계를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이 먼저.

그래서 오늘 부동산을 둘러보러 가는 우진은, 잔뜩 마음이 들떠 있었다.

‘직접 임장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며 사무실을 나선 우진은, 그날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 * *

성수동은 원래 낡은 공장과 오래된 빌라들이 주를 이루던 지역이었다.

좁은 골목골목을 돌아다녀 보면, 대체 이렇게 낙후된 지역이 어쩌다가 핫 플레이스가 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

그 첫 번째는 당연히 지리적으로 훌륭한 입지 때문이겠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우진이 생각할 때 2010년대 중반부터 성수동이 뜬 가장 큰 이유는, 서울 중심권에서 산업개발 진흥 지구로 지정되어있는 유일한 지역이라는 점이었다.

2호선 라인을 기준으로 북쪽은 IT 산업단지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추진되고 있었으며.

남쪽 한강변은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50층에 육박하는 고급 주거지역이 예전부터 구상되었으니.

자연스레 자본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다만 2011년 기준으로 아직도 대부분이 낙후된 공장지대다 보니, 아직까지는 미래가치에 비해 값이 많이 싼 상황이었고.

우진이 WJ 스튜디오를 아예 이쪽에서 뿌리 내리려는 이유도 그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진은 지금 열심히 옆에서 떠드는 부동산 사장님이, 조금 난감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 사실 사장님. 이쪽 북측지대에 있는 부지를 사옥부지로 매입하시는 건, 좀 추천 드리고 싶지 않아요.”

“왜요?”

“지구 단위 개발이라는 게 지정됐다고 해서 막 그렇게 빨리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너무 난개발된 지역이라 정비되는데 엄청 오래 걸릴 거거든요.”

“아하.”

“차라리 건대 쪽에 제가 괜찮은 빌딩 몇 개 알고 있는데, 그쪽으로 알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토지가 아니고 빌딩이요?”

“빌딩도 어차피 이십 년 넘은 것들은, 건물가격 다 감가돼서 남아 있질 않습니다.”

“그야 그렇죠.”

“그런 것들을 잡으셔서 리모델링 잘해서 다시 매각하시면……. 차익이 아주 쏠쏠하거든요.”

지금 우진의 곁에서 걸으며 쉬지 않고 얘기하는 남자는, <서울숲 부동산>이라는 상호를 가진 뚝섬역 인근의 부동산 사장이었다.

일전에 우진이 지식산업센터 임대를 맞출 때에, 일을 아주 꼼꼼히 잘 해줬던 윤 사장님.

그래서 이번에도 이쪽에서 거래를 한 번 해볼까 했던 우진은, 속으로 한숨을 푹 쉬고 있었다.

꼼꼼하고 성실한 그의 성향이 마음에 들어서 거래를 하려는 것이었지만, 그만큼 오지랖까지 넓은 사람인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너무 진심으로 조언해 주셔서 고맙긴 한데……. 내가 10년 20년 뒤에 여기 와봤다고요, 이 아저씨야…….’

사실 사장님 입장에서는 매수자가 잘 나타나지 않는 공장지대를 우진이 사주면 훨씬 더 좋은 것인데, 나름 양심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우진은 떨떠름한 표정이면서도, 그저 웃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래도 싼값에 최대한 넓은 부지를 확보하려는 거라서요, 건대 쪽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

“아하, 그러시군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돈 더 벌면 또 말씀드릴게요.”

“하핫. 젊으신 분이 지금도 충분히 많이 버시면서, 얼마나 더 버시려고요. 대단하십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진이 몇 번 딱 잘라 얘기하자 오지랖을 더 부리지는 않았다는 점.

표정에는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 그를 보며 우진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 사람에게서는, 본인이 생각할 때 최대한 좋은 물건을 소개해주고자 하는 선한 의도가 계속 보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확실히 좋은 아저씨라니까.’

그와 함께 천천히 공장지대 안으로 들어서며, 우진은 오전까지 분석했던 다른 매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최대한 이 조건과 비슷하면서 더 좋은 입지와 가격을 가진 물건을 찾는 것이, 오늘 임장의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말씀하신 물건, 광나루길 쪽에 있는 주유소 부지지요?”

“역시 바로 아시네요.”

“하하. 당연하지요. 제가 이 동네에서 그래도 몇 년을 굴렀는데요.”

윤 사장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작은 수첩을 품속에서 꺼내 들고는, 잠깐 그것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우진이 원하는 토지가 어떤 스타일인지는 거의 파악되었으니, 조건에 맞는 매물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음. 일단 확실히 낫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건 비슷한 매물이 두어 개 정도는 더 있군요.”

“오, 그렇습니까?”

“기왕 여기까지 걸어오신 거, 하나씩 다 둘러보시죠?”

“물론입니다. 한두 푼 하는 거래도 아닌데, 직접 눈으로 다 보고 결정해야죠.”

저벅- 저벅-

윤 사장으로부터 몇 군데 브리핑받은 우진은,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이동하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을 흥미롭게 감상하였다.

‘이 동네는 공장들보다, 너무 자잘하게 지어진 한 동짜리 아파트들이 제일 문제야 역시. 이러니까 사업성이 안 나와서 십 년이 더 지나도 아파트만 그대로 서 있었지…….’

과거와 미래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우진만의 특권이었고, 그래서 이렇게 부동산 임장을 다닐 때면 우진은 자연스레 전생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진에게는 과거의 일이지만, 이 시점에서는 미래에 일어나게 될 일들.

하지만 이미 우진으로 인해 조금씩 뒤틀려서, 언제든 다른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미래의 일들.

그런데 이렇게 상념에 잠겨 걷던 우진은, 첫 번째 부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걸음을 우뚝 멈춰서야 했다.

‘음……?’

앞장서 걷고 있던 윤 사장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지만, 갑자기 밀려든 위화감 때문에 도저히 걸음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뭐지? 저 골목 안쪽에 분명히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잠시 윤 씨에게 양해를 구한 우진은, 자신이 본 것을 확인하기 위해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

우진의 눈앞에는 어느새, 황금빛 아지랑이들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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