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167화 (167/315)

167화

도전의 첫걸음

“이거,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브루노의 첫 번째 질문은, 우진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하. 역시 브루노도, 패러메트릭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접하신 건 처음인가 보군요.”

“Parametric…… Design?”

“디지털 건축에 쓰이는 기법 중 하나인데, 들어보신 적 없나요?”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패러메트릭 디자인이라…….”

2011년인 지금 시점은, 해외에도 이제 막 알고리즘이 디지털 건축에 접목되던 시기였다.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의 건축가들 중에도 이미 이러한 연구와 시도를 하는 디자이너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래서 브루노도 우진으로 인해 처음 이 패러메트릭 디자인을 접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건축디자인 기법 자체가 메인 스트림에 올라오지는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지는 않은 것.

그래서 잠시 후 겨우 기억을 떠올린 브루노는,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이 되어 우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코딩과 알고리즘을 접목시킨 모델링 툴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설마 우진이 그런 툴들을 다룰 줄 아는 겁니까?”

아무리 세계적인 건축가라 하더라도, 브루노의 나이는 이제 쉰을 넘어 예순이 다 되어 간다.

물론 브루노가 나이에 비해 깨어있는 디자이너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주얼 스크립트를 활용한 디자인 툴이라는 분야는, 그로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야가 맞았다.

브루노 또래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비주얼 스크립트는커녕 기본적인 3D 모델링 툴들도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기회가 닿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툴이지요.”

그래서 모델링에 대한 우진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브루노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제가 처음에 보여드린 아이디어 스케치 있잖습니까.”

“그래요. 여기 있습니다.”

브루노가 들고 있던 아이디어 스케치를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자, 우진은 그것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 이 아이디어 스케치는 빛의 흐름을 표현한 겁니다.”

브루노는 가만히 우진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자세히 보시면 이 빛줄기가 통과하는 지점이, 제가 만든 모델링의 다이아몬드 패널들이 소멸하는 지점이지요.”

우진은 스케치에 그려진 굵은 선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은 뒤, 레이저 포인트를 들어 스크린에 떠올라있는 모델링을 가리켰다.

이어서 스크린 위에, 똑같이 선을 한 번 그어 내렸다.

“여기. 패널들이 점차 작아지며 결국 소멸하는 지점.”

“오호.”

“빛이 통과되는 이 지점이, 패널이 소멸되며 공간을 만들어내는 지점입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러니까 이 크고 작은 패널들의 모든 움직임이, 브루노가 설계하신 빛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겁니다.”

우진의 말이 끝난 뒤, 브루노는 스케치와 스크린을 계속해서 번갈아 응시하였다.

그렇게 시선을 움직이는 것은, 결코 브루노뿐이 아니었다.

브루노의 옆에 앉아있던 제이든과 우진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소연도, 아이디어 스케치와 스크린을 비교하며, 계속해서 시선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용한 가운데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우진을 제외한 장내의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다시 입을 연 것은 브루노였다.

“멋지군요. 우진.”

“하하,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 디자인이, 최종 디자인인 걸까요?”

우진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늘 보여드린 것은 디자인 컨셉과 전체적인 느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고…….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았으니, 최소 한 달 정도는 추가로 연구하며 디벨롭해 봐야지요.”

“과연…….”

브루노는 우진과 이야기하면서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 패널들의 형태가 다이아몬드 모양인 것은, 아무래도 제가 유리 천정에 사용한 패널들과 디자인 통일성을 주기 위함이겠죠?”

우진이 대답했다.

“어느 정도는 그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브루노가 다이아 패턴을 사용한 이유와 비슷합니다.”

“떨어져 내리는 빛이 다각도로 부서져 내리는 것을 표현하시려고 한 거로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두 디자이너는 계속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우진의 파빌리온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든 것과 별개로, 개선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조금 더 공간과 어우러지면서, 한편으로는 더 극적인 아름다움을 주기 위한 아이디어들.

아예 노트북을 켠 우진은 모델링 파일을 열어 브루노를 보여주었고, 즉석에서 알고리즘과 패러미터를 변형시키며 다양한 모형을 연출해 보였다.

그것을 보던 브루노가 더욱 감탄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 정말 기가 막힌 툴입니다.”

“하하, 그렇지요? 이렇게 알고리즘만 한번 잘 짜놓으면, 같은 컨셉을 가진 다양한 타입의 디자인을 쉽게 뽑아낼 수 있지요.”

“Great!”

브루노의 설계사무소와 WJ 스튜디오 양사 간의 미팅으로 시작된 이 만남은, 어느새 디자인회의가 되어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제이든과 소연도 이런저런 의견을 내었으며, 그것들 또한 확실히 디자인 방향성에 도움이 되었다.

“자,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군요.”

브루노의 말에,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브루노. 역시 제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깔끔하게 짚어주시는군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마지막까지 모델링을 응시하던 브루노는,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다음 달에 다시 갖기로 한 미팅에서는, 얼마나 더 멋진 형태의 파빌리온을 볼 수 있을지 기대되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브루노는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우진.”

“말씀하십시오.”

“파빌리온의 디자인 방향성이나 퀄리티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듭니다만…….”

“……?”

“과연 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실제 건축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그 부분이 많이 걱정되는군요.”

브루노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모델링으로도 스크립트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만들기 어려운 복잡한 형태를, 실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감도 잘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생각해둔 것이 있는 우진은,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델링을 설계할 때 알고리즘을 적용했던 것처럼……. 서로 다른 이 수천 개의 패널들을 도면화시킬 수 있는 알고리즘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오오……!”

우진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브루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조작만으로 천차만별의 형태를 뽑아낼 수 있는 툴이라면,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를 도면화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으니까.

우진이 말했으며 브루노가 상상한 이 방식이, 바로 디지털 페브리케이션(Digital Fabrication)이라고 불리는 기법이었다.

딸깍-

노트북을 정리하여 가방에 넣은 우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와서 몇 시간을 떠들었더니,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브루노. 저녁이라도 함께 하시겠습니까?”

브루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좋습니다.”

* * *

시간은 또다시 빠르게 흘렀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5월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 6월이 되었으며.

그 6월마저도 순식간에 절반이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우진은 여느 때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파빌리온 디자인의 디벨롭부터 시작해서 패브리케이션을 위한 알고리즘 연구까지, 파빌리온 설계를 위해 투자한 시간이 가장 많았으며.

성진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작성하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을 써야만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우진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파빌리온 디자인을 위한 알고리즘 작업에는 석현의 도움이 꼭 필요했으며, 성진건설을 인수하기 위한 대응에는 진태를 비롯한 경영지원팀의 도움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진은 이 훌륭한 조력자들의 도움 덕에.

6월 17일 금요일, 드디어 성진건설을 인수할 수 있게 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대표님.”

“조 팀장님이 가장 고생 많으셨지요.”

“하하, 저야 뭐. 대표님과 진태 실장님께서 오더 주신대로만 자금을 움직였을 뿐입니다.”

“겸손은요. 조 팀장님같은 전문가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애를 먹고 있었을 겁니다.”

WJ 스튜디오의 경영지원팀장인 조석준은, 우진이 작년 연말에 영입한 인재였다.

그는 대형 증권회사의 리스크 관리 팀에서 일하던 엘리트였는데, 박경완의 인맥을 한 다리 건너서 소개받아 높은 연봉을 주고 모셔온 인물이었다.

사실 처음 김진태에게 M&A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시점부터, 오늘을 미리 염두해두고 영입했던 것.

물론 장기적으로 회사를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인재라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다.

“흐흐, 성진건설을 실질적으로 50억 언더에 합병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제 지인들은 믿지 못할 겁니다.”

“특수한 상황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뭐. 그리고 사실 전부 다 인수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M&A과정에서 쓸모없는 부분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어떤 케이스건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제 탈 나지 않게 소화만 잘 시키면 되겠군요.”

“성진에서 아직 받아내지 못한 공사대금부터 하나씩 회수해 내야죠.”

“잘 부탁드립니다, 조 팀장님.”

“대표님 덕에, 이번에 정말 재밌는 경험을 했습니다. 으하핫.”

M&A가 무사히 끝난 뒤, WJ 스튜디오에 남은 여유분의 현금은 대략 20억 정도였다.

현재 찍혀있는 액수만 따지자면 40억에 가깝긴 했지만, 시공에 들어간 자재비용이나 성진건설을 인수함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건비를 생각하면 그 전부를 여윳돈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성진건설이 사옥으로 쓰던 건물을 매각하면 대략 10억 정도는 추가로 생길 거고……. 여기에 다음 달 들어올 공사대금까지 합하면……. 얼추 그림은 그려지네.’

조석준에게 받은 재무파일을 꼼꼼히 확인한 우진은, 기분 좋게 미소지었다.

이제 건설사 인수라는 올해 있었던 가장 큰 산을 하나 또 넘었으니, 드디어 숙원사업(?)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조 팀장님.”

“예, 대표님.”

“이번 주 안으로 성수동 부동산들 돌아다니시면서, 괜찮은 부지 좀 물색해 주세요.”

“부지…… 라시면?”

우진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이제 식구들도 늘어났으니, 더 큰 집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

“성진 건물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이제 우리 식구들이니, 전부 한데 모여야지요.”

우진의 말을 이해한 조석준의 두 눈이 반짝였다.

“부지 규모는 얼마 정도로 알아보면 되겠습니까?”

미리 생각해뒀던 우진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대지 150평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예, 대표님.”

“10층 이상은 올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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