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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160화 (160/315)

160화

수확의 달

여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보통 회사 부도의 가장 큰 이유는 돈의 흐름이 끊겨서이다.

특히 영업이익률이 낮고 부채비율이 높아 재무건전성*[기업체질이 얼마나 건강한지 측정하는 지표.]에 민감한 편인 건설사들의 경우, 자금 확보만큼 중요한 과제가 없다.

목돈을 크게 확보할수록 더 큰 사업장의 수주에 참여할 수 있고, 반대로 자금이 마를수록 할 수 있는 일의 질과 양도 줄어들게 되니.

자금조달력이야말로 건설사 수주능력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될 때, 현금보유량이 많지 않은 건설사들은 위기를 겪게 된다.

2011년은 바로 그런 해였다.

07, 08년도의 호황으로 시세에 거품이 많이 꼈던 지역들에 미분양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며.

때문에 미분양, 할인분양, 입주자의 잔금연체 등을 이유로, 건설사들은 사업장을 수주하기 위해 대출받았던 돈을 쉽게 상환하지 못했다.

특히 신용도가 높지 않은 중소 건설사들은 회계상 채무에 포함되지 않는 PF(Project Financing)대출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것은 2011년도 저축은행사태*[금융위원회가 2011년 2월 17일부터 22일까지 모두 7곳의 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시작된 사건으로, 5,000만 원 이상 예금자와 채권 투자자들이 원금까지 손실하게 됐던 사태.]까지 불러왔을 정도로 큰 문제가 됐었다.

건설사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한 은행들까지 같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PF대출이란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닌, 어떤 사업의 사업성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개념인데.

그러다 보니 사업이 어그러지면 은행으로서도 돈을 회수할 길이 없게 되는 것.

쉽게 말해 사업 계획서를 보고 돈을 빌려줬는데 해당 사업이 망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 이게 진짜 무슨 날벼락인가 했었지.’

전생의 이맘때쯤 성진건설에서 일했던 우진은, 어렸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저축은행 사태를 바로 옆에서 경험했었다.

현장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정착해 자리 잡았던 회사인 성진건설이, 한순간에 부도가 나서 일자리를 잃었었으니 말이다.

그때 우진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성진건설이 부실기업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여느 중견 건설사들과 달리 성진건설의 재무구조는 튼실한 편이었고, 전년도(2010년) 영업이익률도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었으니까.

소위 말하는 흑자 부도가 났었던 것이다.

완공된 사업장에서 대금만 다 받으면 채무도 갚고 흑자가 날 상황이었는데, 그 돈을 받지 못해서 결국 못 버티고 파산했던 것.

사실 이때 우진은, 크게 손해를 보지 않았었다.

일개 현장직원인 우진이야 한 달 치 수당 정도만 받아내지 못했을 뿐, 그 이상의 손해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도가 터졌던 당시, 우진은 받지 못한 수당이 좀 아까웠던 것을 빼면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다만 나중에 나이를 먹고 실제 건설사가 운영되는 과정을 전부 알게 된 이후.

그때 성진건설의 부도가 어떻게 일어났던 건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안타까운 상황이었지. 성진 대표님도 꽤 인망 있는 사람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리고 이때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우진은 작년 연말부터 성진건설을 인수 합병할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예상이 맞다면 이미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시점인 지금.

성진건설의 채권은, 헐값에 채권시장에 나와 있을 테니까.

“사실, 성진건설에 대해 조사하면서 좀 의아한 부분들이 있었어.”

“어떤 부분?”

“알아보니 회사 가치가 수백억 단위는 되는 건설사였는데, 네가 인수할 예정이라고 했으니까.”

“우리 자본 규모로 여길 어떻게 인수하냐는 생각을 한 거지?”

“그렇지. 사실 이 시점에 우리가 거의 100억 가까운 현금을 쌓을 수 있을지도 몰랐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지금 가진 돈으로도 인수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테니까.”

우진의 지시를 받고 <우림컴퍼니>의 재무조사를 한 진태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림컴퍼니>는 성진건설이 PF대출을 받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이었는데, 이곳의 재무상태를 조사하다 보니 겉으로 보이지 않는 성진건설의 위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림컴퍼니>라는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던 성진건설의 커다란 부채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때문에 이 조사 과정에서, 진태는 우진이 하고자 하는 계획까지도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지식이 부족한 탓에, 약간 방법론적인 부분에서는 헛다리를 짚었지만 말이다.

“빚더미에 앉은 성진건설의 지분을 싼값에 매수하려는 생각이야?”

“아니, 그건 아냐.”

“그럼?”

우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매수하려는 건 성진건설의 채권이야.”

“채권……?”

“은행이 갖고 있는 성진건설의 채권을, 아주 헐값에 가져오려는 거지.”

채권이란 쉽게 말해, 돈을 받을 권리를 말한다.

성진건설을 대상으로 한 100억짜리 채권이 있으면, 성진건설로부터 그 돈을 받아낼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채권이라는 것을, 우진은 어떻게 헐값으로 사겠다는 걸까?

그 해답은 지금의 상황에 있었다.

몇백억을 받아낼 수 있는 채권이라 하더라도, 채무자의 상환능력이 제로에 수렴할 정도로 떨어진 상태라면.

사실상 100억짜리 채권이든 1000억짜리 채권이든, 휴지쪼가리나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지금 시점 성진건설은 거의 부도 위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고.

부도가 나는 순간 사실 은행의 입장에서는 돈을 받을 길이 사라지는 것이니.

우진이 채권의 가격을 후려친다 해도, 팔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전부 다 날려 먹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건지는 게 중요하니까.

하지만 우진의 이러한 설명을 다 들었음에도, 진태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고개를 갸웃하였다.

“네 말대로라면, 우리는 그 채권을 왜 사는 건데?”

“응?”

“은행에서 회수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정도로 부실한 채권을, 우리가 가져와서 회수할 수 있다는 거야?”

우진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대답했다.

“아니, 당연히 불가능하지. 그 지독한 은행 놈들도 받아낼 수 없는 돈을 우리가 무슨 수로 받아내?”

“그럼?”

“우린 이 채권을 갖고 가서, 성진건설에 딜을 할 거야.”

“딜?”

“채무를 돈 말고 지분으로 상환하라고. 결과적으로 채권으로 지분을 사는 셈이지.”

“……!”

“형이 파악한 채권 총액이 얼마라고 했었지?”

“대충 120억 정도 돼.”

“딱 적당하네.”

“뭐가?”

“그 정도 채권이면, 성진건설의 지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 같거든.”

“……!”

“현시점 성진건설은 지분 가치도 많이 떨어진 상태라서……. 120억짜리 채권이면 못해도 지분 50퍼센트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걸?”

“그래?”

“사실상 M&A*[M&A(Mergers & Acquisitions)란 다른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 것을 의미한다.]가 가능해질 정도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거야.”

우진의 이야기를 듣던 진태는,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본인이 직접 조사해서 자료를 뽑아왔다 보니 전반적인 흐름은 이해가 되는데,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진태는 의문스러운 부분을, 다시 우진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은행은 왜 그렇게 안 하는데?”

“뭘?”

“네가 말한 것처럼, 은행도 아예 성진건설을 인수해버릴 수 있는 거잖아?”

진태의 물음에, 우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은행이야 당연히 그렇게 안 하지.”

“……?”

“걔들 입장에서 성진건설은 망해가는 건설사일 뿐이야. 같은 금융권 회사도 아니고……. 거길 왜 인수하겠어?”

진태가 다시 물어보려는 순간, 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우린 달라. 사실상 성진건설이 지금까지 쌓아온 무형적 가치들을, 채권을 통해서 염가에 사는 셈이거든.”

“무형적 가치가 뭔데?”

“WJ 스튜디오의 10배는 족히 넘을 누적 매출. 건설업 분야에서 갖고 있는 각종 면허들.”

“……!”

“거기에 우리가 갖지 못한, 건설 전문 인력들과 장비들.”

우진이 탁자를 톡톡 두들기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결정적으로 성진건설은, 이번 위기만 넘기면 다시 수백억 이상의 기업 가치를 톡톡히 해줄 만한 회사야.”

우진의 입가에 기분 좋은 웃음이 걸렸다.

“물론 우리가 탈 나지 않게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 내부적으로 진통은 좀 있을 테지만…….”

여기까지 모든 이야기를 들은 뒤에야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진 진태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말한 대로만 진행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네.”

“그렇지. 그리고 되게 해야지.”

성진건설의 인수합병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WJ 스튜디오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인테리어 위주로 구성된 작은 규모의 공사들과 각종 건축디자인, 설계 정도가 WJ 스튜디오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었다면.

이제는 제법 그럴싸한 시공능력까지 갖추게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오너인 우진으로서는, 선택지가 몇 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는 셈이랄까.

그래서 우진은 어떻게든 이 그림을 완성 시킬 생각이었다.

“괜찮은 세무법인부터 알아봐 줘 형.”

“우리 거래하는 곳 있잖아?”

“거긴 안 돼. 이쪽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데가 따로 있을 거야.”

“오케이.”

우진의 이야기를 수첩에 간단히 메모한 진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다음 스텝은, 성진건설의 채권을 가진 은행 쪽에 접촉을 하는 건가?”

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먼저 접촉할 필요 없어. 지금 들어가면 그렇게까지 싸게 못 살 거야.”

“그래?”

“조금 기다리면, 분명 시장에 나올 거고……. 한두 번 유찰되면 그때 가져오자고.”

“알겠어. 그럼 경영지원팀이랑 한번 회의를 해야겠네.”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경영지원팀도 경영지원팀이고, 금융 쪽 전문가들 자문도 많이 받아야 해. 큰 그림이야 그렸지만, 사실 나도 디테일은 잘 모르니까.”

진태와 함께 전반적인 계획을 정리한 우진은, 곧바로 사내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한동안 꽤 여유 있던 우진의 일정은 다시 타이트해졌다.

선영아파트 조합과 관련된 일을 할 때는 사실 우진이 직접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부분들이 거의 없었지만.

성진건설을 인수하기까지는, 대표자인 우진에게 떨어지는 페이퍼웍이 가장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해야지. 사실상 올해 있을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이벤트나 다름없으니까.’

다시 눈코 뜰 새 바빠질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대감에 반짝이는 우진의 두 눈.

그런데 이렇게 할 일 많은 우진에게, 한 가지 재앙이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벚꽃이 지면 대학생들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중간고사.

산학협력 덕분에 꽤 많은 학점을 날로 먹은 우진이지만, 그래도 몇몇 과목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우진이 가장 열심히 수강 중인 디공디는, 다른 몇 개 과목을 합친 것보다도 중간과제가 많은 지옥의 과목.

그래서 오늘 우진은 이 과제를 위해, 조금 일찍 퇴근해서 제이든의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를 이 재앙으로부터 지켜줄(?) 흑기사, 석현과 함께 말이다.

“대표님.”

“불안하게 왜 그렇게 불러? 여기 회사도 아닌데.”

“원래 인생, 기브 앤 테이크 아니겠습니까.”

“…….”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흐으음…….”

운전석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우진을 향해, 석현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돈 좀 많이 버셨다는 소문이 있던데…….”

“헛소문이야.”

우진의 대꾸조차 무시한 채, 석현이 계속해서 말했다.

“회사에, 차 한 대 정도 늘릴 때가 된 것 같지 않습니까?”

석현의 검은 속내(?)를 눈치챈 우진이, 푹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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