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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154화 (154/315)

1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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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과의 비밀스런 회동(?)이 있던 그 날로부터, 대략 3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3일 차가 되던 날의 아침.

우진은 홍식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을 수 있었다.

[슬슬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서 대표님.]

“그래요?”

[친한 부동산들에서 어제부터 미친 듯이 전화가 오더군요.]

“부동산 사장님들 중에도 조합원이 꽤 계시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다들 적잖이 당황한 눈칩니다. 소문이 정말 사실인지, 몇 차례나 확인하더군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저야 뭐, 서 대표님께서 조언 주셨던 대로 대처했죠. 하하.]

“잘하셨습니다. 일반 조합원분들은 지속적으로 최대한 안심시켜드려야 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홍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진은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였다.

슬슬 부동산에서도 급매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고.

때맞춰 기다리고 있었던 홍식의 전화까지 왔으니.

이제 슬슬 우진도 액션을 취할 때가 되었다.

“아, 조합장님. 물건 개수는 정확히 파악되셨습니까?”

[총 열일곱 개 정도 되더군요.]

“오호, 그렇습니까?”

우진의 눈이 빛났다. 생각보다 물량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확실치 않아 의심만 하고 있는 물건이 한 채 정도 있고……. 열일곱 채는 확인된 물건입니다.]

“좋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우진이 홍식에게 다시 물었다.

“조합장님께선 몇 채 커버하실 생각이십니까?”

홍식이 대답했다.

[제가 두 채. 조합 대의원 두 분이 각 한 채씩 하시기로 했습니다.]

우진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그럼 제 쪽에서 대략 열세 채 정도 커버하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보는 사람은 없지만, 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마 가능할 겁니다. 이제 정확한 물량이 나왔으니, 지인들의 확답을 받은 뒤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빨리 얘기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안으로 확답 드리겠습니다.”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눈 뒤, 우진은 홍식의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전화가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우진은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정확한 물량이 확인됐으니, 이제 조금이라도 빠르게 계획을 확정 지어야 한다.

우진의 손은 어느새, 다른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띠- 띠띠띠-!

이어서 송신음이 끝나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어, 서 대표.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우진은 전화통에 대고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

“형님, 혹시 집 한 채 사실 생각 있어요?”

[뭐?]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강석중.

우진의 지인 중 가장 돈이 많은 그가 바로, 첫 번째 고객(?)이었다.

* * *

재건축 물건을 매수할 때에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아주 많다.

2011년도는 대부분의 규제가 풀린 환경이기 때문에 조금 나았지만, 한창 부동산이 최고 호황이었던 07년도 즈음에는 눈이 핑 돌아갈 정도로 복잡한 규제들이 난무했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투기과열지구*[주택가격의 안정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건설교통부 장관 또는 시장·도지사가 지정하는 규제.]로 지정된 지역에 있는 재건축 사업장은, 조합설립 인가 시점부터 전매제한이 걸리게 되어 있었다.

전매제한을 무시하고 매수할 시, 현금청산*[아파트를 가지고 있음에도 새 아파트의 조합원 분양권을 받지 못하고, 강제로 조합에 현금으로 청산 당하는 케이스.]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매수한 물건이 현금청산 대상이 되어 버리면 사실상 개발로 인한 이득은 날려버리는 것이었으니.

만약 강남구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어 있었던 07년도였다면, 지금 우진이 계획한 것처럼 매수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지금이 2011년도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물론 지금 시점이라고 해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세대에 속한 사람이 같은 단지의 물건을 여러 개 보유할 경우, 한 채를 제외한 나머지 물건은 조합원 입주권을 받지 못하고 현금청산 당하게 되는 법안은 아직도 유효했으니까.

우진 한 사람의 명의로 청담 선영 여러 채를 산다면, 물건 하나를 제외하고는 입주권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진은, 한 채를 제외하고는 관리처분고시가 나기 직전에 싹 팔아버려야만 했다.

‘전부 다 매도할 때까진, 긴장 바짝 하고 움직여야겠어.’

사실 이조차도 일 년 전에는 불가능했었다.

다주택자의 물건이었던 아파트는, 누가 매수하던 똑같이 현금청산 대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법안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들이 속출함에 따라, 매수자의 경우에는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개정 법안이 발표되었고.(지분 쪼개기가 성행하는 재개발의 경우 제외되었다.)

그 덕에 우진의 계획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명의는 최대한 분산시켜서 계약해야지. 명의 하나당 한 채까지는, 급하게 안 팔아도 되는 물량이니까.’

우진이 여러 사람을 끌어들인 이유는, 비단 자금 부족 때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진은 앉은 자리에서 거의 두 시간을 통화했다.

석중부터 시작해서 유리아와 재엽.

거기에 박경완까지.

해서 모든 통화가 끝난 뒤, 우진이 매수하기로 결정된 물량은 처음 생각보다 조금 줄어들었다.

개인 명의로 한 채. 어머니 명의로 한 채. WJ 스튜디오 법인 명의로 다섯 채까지.

총 일곱 채를 계약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사실 무리해서라도 열 채까지 하고 싶었지만, 위험부담 분산 차원에서의 결정이었다.

이렇게 하면 관리처분 전에 네 채만 팔면 되니, 훨씬 안정성이 확보된다.

‘일곱 채만 하더라도, 넘치도록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을 거고…….’

물론 이런 결정도, 지인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일단 우진의 설명을 듣자마자 한 번의 고민조차 없이 고개를 끄덕인 석중부터 시작해서…….

“그래서 이게 이렇게 된 일인데……. 아마 두 달 뒤에는 확실히 이익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

“형님께는 크게 부담될 금액도 아니니, 한 채 정도 해보시는 건…….”

[그러지 뭐.]

“네? 넵! 알겠슴다.”

[그리고 우진아.]

“예?”

[필요하면 또 말해. 몇 개 더 계약해줄 수도 있어.]

“그, 그러실 필요까지는…….”

기다렸다는 듯 가장 큰(?) 물건에 눈독을 들인 리아.

[나도 재엽 오빠처럼 펜트 할래.]

“응?”

[펜트 신청할 수 있는 물건은 없어?]

“하나 있긴 한데…….”

[그거 내가 할래.]

“그러지 뭐.”

그리고 최근에 광고를 찍어서 시드머니가 생겼다며, 자기도 한 채 사고 싶다는 수하까지.

[야, 잠깐만, 수하 언니가 바꿔 달래.]

“응? 옆에 있어?”

리아와 통화하던 중에 불쑥 끼어든 수하도, 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니까 4억 정도 있으면 된다는 거잖아?]

“그렇긴 해.”

[그럼 나도 하나! 광고비 들어온 거 넣으면 딱 맞겠다.]

“누나 그 돈으로 마포 프레스티지 잔금 내야 한다더니?”

[2개월 안에 다시 팔면 된다며.]

“아,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나도 껴줘.]

“…….”

해서 이렇게 열화와 같은 성원 덕에, 우진은 손쉽게 세 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여기에 우진의 일곱 채를 합하면 벌써 열 채.

그렇다면 나머지 세 채는 누가 하기로 했느냐.

재엽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가지고 있는 펜트 하나면 충분하다고 손을 내저었으니까.

마지막 세 채에 지분을 넣은 것은, 다름 아닌 경완이었다.

[그래, 까짓것. 세 채 정도는 내가 커버해 주지.]

“부장님. 아니, 상무님.”

[응?]

“왜 상무님이 사시는 것처럼 얘기하세요? 이거 천웅에서 매입하는 거잖아요.”

[돈은 회사가 내도, 결정은 내가 하는 거야 인마.]

“생색내시기는…….”

[소송은 승소하는 거 확실하지?]

“지난번에 조합 사무실에서 얘기 듣지 않으셨습니까.”

[상무 달자마자 옷 벗기는 싫어서 그래.]

“엄살떨지 마시고, 계좌 보내드리면 바로 계약금 쏠 준비나 미리 해 두시죠.”

[총알처럼 쏴 보낼 테니까, 걱정 마라 짜샤.]

솔직히 우진은, 자신의 제안을 다들 이렇게 쉽게 오케이 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었다.

리아는 전에도 청담 선영을 탐냈던 적이 있었으니 하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파트 투자에 전혀 관심 없어 보이던 석중과 시드머니가 충분하지 않던 수하까지 이렇게 흔쾌히 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투자금이 가장 커서 부담스러웠던 대형평수를 리아가 사겠다고 한 덕에, 일은 더 쉽게 풀렸다.

리아가 계약하겠다고 한 한 채는, 투자금만 놓고 따지면 거의 세 채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펜트하우스를 신청할 수 있는 50평형은, 초기 투자금이 8억을 넘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가벼운 마음이 된 우진은, 통화내용을 수첩에 다시 한번 내용을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대표실 구석에 준비해뒀던 작은 선물상자 몇 개를 챙겼다.

오늘 오후에는, 부동산 몇 곳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 * *

“그러니까 사장님. 33평형이 10.5억까지 물건이 나왔다는 거죠?”

우진의 질문에, 청담부동산의 사장 김 씨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렇다니까요, 대표님. 말씀하신 대로 요즘 좀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기는 한데……. 그 부분은 조합장님께서 루머라고 확언 주셨습니다.”

침을 튀겨가며 속사포처럼 설명하는 그를 향해, 우진이 짐짓 모른 척 눈을 치켜뜨며 반문하였다.

“그래요?”

“믿을만한 분이십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은 믿으셔도 될 거예요.”

본격적으로 작전(?)이 시작되기 전, 작은 다과 상자를 하나씩 들고 동네 부동산들을 순회한 우진.

부동산에 직접 발품을 파는 우진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는 동네 부동산들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결국 부동산 거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이렇게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두면 거래에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래 과정에서, 최대한 내가 유리한 쪽으로 포지션을 잡아주겠지.’

그리고 둘째로는, 많은 부동산들 중 가장 믿을만한 곳 한 곳을 찾아두기 위함이었다.

소송이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매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어리버리한 부동산에 일을 맡겼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우진이 오늘 부동산을 돌아다닌 것은, 사전 탐색 같은 개념이었고.

지금 그가 들어와 있는 이곳은, 세 번째로 방문한 부동산이었다.

“여기 비대위가 진짜로 악질입니다.”

“스토리를 좀 아시나 봐요?”

“저도 조합원이니까, 당연히 알죠.”

“그렇군요.”

“반면에 조합장님은 진짜 일 잘하십니다. 아마 이번 루머도, 비대위에서 의도적으로 퍼뜨린 게 분명합니다.”

우진은 살짝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남자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이 사람의 진심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 말이다.

‘조합장을 진짜로 믿는 거야, 아니면 물건 팔려고 이빨 터는 거야?’

만약 조합장을 정말 믿고 이렇게 얘기한다면 괜찮겠지만, 믿지 않으면서 이렇게까지 물건을 추천한다면 양심을 속이는 사람일 터.

이전에 방문했던 두 곳은 후자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이곳 청담부동산의 사장은 꽤 괜찮은 사람 같아 보였다.

적어도 무턱대고 이번이 기회라며, 무조건 등을 떠밀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솔직히 상황 자체가 위험해서 제가 무조건 추천 드릴 수는 없는데, 제가 대표님이었으면 샀을 겁니다.”

“오호.”

“말씀하신 대로 여러 채 하지는 마시고, 30평형대로 한 채 정도만 계약해 보세요. 놓치기 아쉬운 기회인 것도 맞거든요.”

동네 부동산 사장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나이대여서 그런지, 김 씨는 조리 있게 상황에 대한 설명도 잘 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진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멋대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점.

그래서 우진은, 꽤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제가 조금만 더 알아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물건 확실하게 확보해 주세요!”

“예,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우진은 부동산에서 나오면서, 김 씨의 명함을 처음으로 휴대폰에 등록하였다.

“흠. 이제 딱 한 군데만 더 가볼까?”

물량이 많은 만큼 거래는 이 한곳에서 다 이뤄지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괜찮은 곳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김 씨는, 우진이 따로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매물정보를 정리해서 문자로 보내주기까지 하였다.

위이잉-

“오……?”

그것으로 평형별 매물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한 우진의 두 눈이 반짝였다.

‘10.5 언저리에 벌써 물건이 세 개나 나왔네. 11억 정도에 다섯 개……. 똥줄 어지간히 타나 보군.’

벌써부터 한 계단 꺾인 가격도 가격이지만, 확인된 매물의 숫자가 며칠 만에 열 개가 넘어섰다.

심지어 동호수가 확인된 물건들은, 죄다 비대위 진영의 것.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비대위원들의 모습을 떠올린 우진이,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이대로 시세가 내려올 대로 내려왔을 때.

우진은 제대로 가격을 후려쳐서, 최저가에 매수할 생각이었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날 거 뻔히 알면서 양아치 짓 하는 놈들 돈은……. 좀 탈탈 털어먹어도 돼.’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지나, 3월의 마지막 주가 다가왔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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