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144화 (144/315)

144화

의외의 지원군들

게임 덕후 석현은, 요즘 게임에 접속한지 꽤나 오래 되었다.

매일 저녁만 되면 석현을 기다리는 어린 양들이 무수한 러브콜을 보내옴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한 치 망설임조차 없이 거절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헤이, 석현! 정말 오늘도 안 올 거야?]

[요즘은 제이든도 게임에 안 들어오던데. 너희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제발 한판만 같이 해줘. 부탁이야.]

[오, 제발. 나 승급하고 싶어. 석현이 필요해.]

[미안, 친구들. 요즘 일이 좀 많아서.]

[흑흑…….]

제이든의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석현의 게임 접속이 끊긴 이유는 바빠서였다.

하지만 그 바쁘다는 게, WJ 스튜디오의 일 때문은 또 아니었다.

최근 WJ 스튜디오의 모형 파트는 꽤나 고급인력들이 충원된 상황이었고.

그래서 석현은 이제 전반적인 디렉팅 역할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석현이 그 좋아하던 게임도 접어둔 채 빠져있는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전에 석현이 그 무언가에 빠지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발단은 바로, 석현의 생일날이었다.

“잠깐……. 이거 아이폰이잖아?”

“맞아.”

“이번에 나온 신형 모델인 것 같은데?”

“맞아, 석구. 이건, WJ 스튜디오의 개국공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지.”

“Bloody Hell! 생일선물로 아이폰이라니! 미쳤어, 우진! 나도 아이폰!”

“시끄러워 제이든. 아이폰은 개국 공신에게만 선물할 거야.”

“나도 개국공신이야!”

“개국공신이 뭔지는 알아?”

“Holy!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생일선물로 아이폰을 받은 석현은, 우진에게 적잖이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오랜 불알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생일을 챙긴 역사가 거의 없는데.

가격을 떠나서 석현이 정말 갖고 싶었던 물건을 미리 준비해서 선물해 주었으니,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아도 은근히 감동한 것이다.

‘우진이 거랑 커플 폰인 것만 제외하면 완벽하네. 색깔은 좀 다른 거로 사 오지…….’

하여 이 생일선물은 석현의 충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덕분에 따로 우진의 이야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석현은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내가 딱히 하는 일이 없네. 우리 대표님, 뭔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을까?’

물론 석현이 하는 일이 없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모형작업자들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최고의 작업물을 뽑아낼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는 게 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진과 달리 사회경험이 부족한 석현은 사업 확장 차원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말재간이 좋아서 영업을 뛰어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 모형사업을 더 확장 시켜 크게 키울 만한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석현은, 문득 예전에 우진과 잠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게 되었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그때, 우진이 비주얼 스크립트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었지?’

청담 선영의 설계공모가 마감된 직후였던 11월 초쯤.

WJ 스튜디오의 대표실에서, 우진과 함께 나눴던 이야기들.

[프로그래밍 쪽을 좀 배워보고 싶어.]

[뭐…… 라고?]

[제대로 된 프로그래밍을 배우겠다는 건 아냐. 내가 어떻게 그것까지 공부하냐? 그게 그렇게 쉽게 겉핥기식으로 배울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

[그럼 뭔데?]

[정확히는 알고리즘을 배우고 싶은 거야.]

[알고리즘이라면…….]

[디자인 툴에 쓰이는 알고리즘. 그러니까 라이노에 들어가 있는, 그래스호퍼(Grasshopper) 같은 비주얼 스크립트(Visual Script)를 좀 공부해보고 싶다는 거야.]

당시 우진과 얘기를 좀 나눴던 석현은, 디자인에 쓰이는 비주얼 스크립트라는 것에 대해 꽤 관심이 생겼었다.

우진의 설명에 의하면 그것을 모형제작에 활용할 수도 있어 보였으니 말이다.

비주얼 스크립트를 이용해 3D 모델링 파일을 만들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기계를 활용하여 모형작업을 하는 것.

‘재밌겠는데?’

모델링 파일을 인식할 수 있는 가장 많이 대중에게 알려진 장비는 3D프린터 같은 것이다.

하지만 2011년도에 3D프린팅은, 아직 가격대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져 실용성이 부족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3D프린팅이 아니더라도 CNC머신*[컴퓨터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내장한 수치 제어 공작 기계로, 컴퓨터에 의해서 정확한 수치로 절삭 공구의 움직임을 자동 제어하는 기계를 통칭한다.] 같은 기계들도 모델링 파일을 인식할 수 있었고.

그것은 이미 WJ 스튜디오에도 여러 대 구비되어 있는 장비였다.

우진이 말한 비주얼 스크립트를 배운다면, 그 장비들을 활용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모형의 폭이 더 다양해지는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계산하고 설계하기 힘든 특별한 작업물들을, 알고리즘과 컴퓨터를 활용하면 깔끔하게 작업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한번 미리 공부해 볼까?’

그리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석현은, 비주얼 스크립트라는 장르를 우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그것은 C언어와 같은 컴퓨터 언어에 비유하자면, 가장 사람의 언어에 가까운 장르였으니까.

쉽게 말해 0과 1로 이뤄지는 컴퓨터 언어를 프로그래머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봐도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머들이 짠 함수를 아이콘 같은 것으로 이미지화시킨 것이 비주얼 스크립트였다.

“일단 라이노라는 프로그램을 깔아야 한다고 그랬지?”

저가에 배포되어 학생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라이노 프로그램을 다운받은 석현은, 작년 연말부터 짬날 때마다 공부하고 있었다.

라이노를 공부할 수 있게 시중에 나온 책도 몇 권 샀다.

우선은 비주얼 스크립트가 담겨있는 그래스하퍼(Grasshopper)를 사용하기 전에, 라이노를 이용한 모델링부터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했으니 말이다.

하여 그렇게 취미 삼아 라이노를 끄적여 보던 석현은, 금세 모델링의 세계에 빠져들고 말았다.

애초에 모델링이라는 것이 3차원 가상공간에서 컴퓨터 툴을 이용해 모형을 빚는 작업이었으니.

원래도 모형 덕후였던 석현에게는, 너무 재밌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거…… 왜 이렇게 재밌어?”

게다가 라이노로 작업한 3D모델링 파일을 도면화시켜서, WJ 스튜디오에 있는 CNC기계와 레이저커팅기 등으로 실물제작까지 해볼 수 있었으니.

이것은 석현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는 환경이었다.

꼭 라이노와 비주얼스크립트를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석현의 원래 취미생활이던 프라모델 파츠 개조 같은 부분에도 접목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11월부터 모델링에 빠져있던 석현은, 자연스레 게임을 멀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역시 나는 디자인과에 갔어야 했어……. 걔들은 이런 재밌는 작업을 매번 과제로 하는 거 아냐? 지금이라도 우리 학교 디자인과에 편입할 방법을 알아볼까…….”

우진에게는 이렇게 따로 공부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직은 석현도 공부하는 단계일 뿐이었으니, 좀 더 실력을 쌓아 놀랄만한 작업물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짠하고 오픈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진도 모르는 이 사실을 아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제이든이었다.

제이든은 우진을 제외한다면, 석현과 가장 오래 붙어있는 소울 메이트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서프라이즈를 준비한다고 한들, 석현도 자신의 연구 성과(?)를 자랑할 사람이 한 명쯤은 필요했다.

“석현! 이거 정말 석현이 모델링한 모형이야?”

“흐흐. 그렇다니까? 모델링이 이렇게 재미있는 작업인 줄은 몰랐지.”

게다가 제이든만큼, 리액션이 뛰어난 친구도 찾기 힘들었다.

“Bloody Hell! 석현이 우진보다 모델링을 더 잘하잖아?!”

“우진이야, 나처럼 연습할 시간이 없으니까.”

“아냐. 석현은 역시 천재가 분명해. 물론 이 제이든 님만큼은 아니지만.”

심지어 제이든은 이 모델링이라는 분야를 직접 공부하는 학생이기에, 석현의 작업물들을 같이 공감해줄 수도 있었다.

“라이노는 네가 공부하던 맥스와 또 모델링 방식이 달라.”

“어떻게 다른데?”

“맥스는 하나의 매스(Mass)를 만들어서 그것을 깎거나 확장 시키는 형태의 모델링 방식에 최적화되어 있다면, 이 라이노 모델링에서는 벡터(Vector)가 엄청 중요하거든.”

“벡터라면, 방향 값을 얘기하는 거야?”

“음, 말로 얘기하기는 좀 힘드네. 쉽게 라이노가 맥스보다 나은 장점을 설명하자면, 곡면이 많은 물체를 모델링하는데 라이노가 더 좋아. 곡면이 많은 다리미 같은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모델링 같은 것 말야.”

원래 자신이 재미 붙여 공부하는 분야를 공감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것은 큰 시너지를 불러일으킨다.

“좀만 기다려 제이든. 라이노에 좀 더 익숙해지고 나면, 내가 진짜 멋진 작품을 보여줄 테니까.”

그래서 석현은 혼자 작업하기 심심할 때면 꼭 제이든을 불러 옆에 앉혀 놓았고.

그것은 결국 제이든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젠장! 아무래도 안 되겠어, 석현.”

“뭐가?”

“이 제이든 님도, 석현과 함께 모델링 공부를 해야겠어.”

“흠……. 너도?”

어려운 곡면체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모델링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석현을 보고 있자니, 조금 흥미를 잃었던 모델링이라는 분야 자체가 다시 재밌어 보였던 것이다.

특히 제이든이 게임 다음으로 좋아하는 슈퍼카들을 석현이 모델링하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제이든은 결국 구경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이번 학기에 모델링 과목은, 반드시 우진보다 점수를 잘 받아야 해.”

“왜?”

“그야, 이 제이든 님이 얼마나 뛰어난지 증명하기 위해서지.”

“뭐, 그러던가. 나도 혼자 하는 것보단 덜 심심하고 좋지 뭐.”

그래서 제이든이 석현의 모델링 파티에 합류한 것은, 대략 1월 초부터였다.

그들이 항상 회동을 하던 곳은 바로 유리아의 카페 프레스코 매장.

원래 모델링 공부를 항상 집에서 했던 석현이었지만, 제이든을 위해 장소를 카페로 바꾼 것이다.

크리스마스 파티 때 두 사람과 안면을 튼 유리아는 그들이 자신의 매장에 놀러 오는 것을 당연히 반겼고.

가끔 그녀가 매장에 있을 때 방문하면, 서비스 디저트를 두둑이 챙겨주기도 했다.

한번은 매장에서 제이든이 유리아와 마주친 적도 있었는데, 그때 제이든은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리아 누나, 우리가 여기 온다는 사실을, 우진에겐 절대로 얘기해선 안 돼요.”

“응? 왜?”

“제이든과 석현이, 우진 몰래 엄청난 걸 준비하고 있거든요.”

“엄청난……거?”

“흐음. 말하자면 WJ 스튜디오의 비밀병기 같은 거죠. 그러니까, 절대로 말하시면 안 돼요.”

“프흐흐,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어.”

이렇게 우진도 모르는 사이, 합심해서 엄청난 비밀병기(?)를 준비하고 있던 석현과 제이든.

이것이 차후에 우진에게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당장 우진이 진행하려는 파빌리온 제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석현과 제이든조차 짐작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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