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Dealings
최근 카페 프레스코의 상승세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가로수길에 유리아가 건물을 통째로 인테리어 하여 오픈한 2호점이 대박이 나면서, 그렇지 않아도 <우리 집에 왜 왔니>로 인해 치솟고 있던 인지도가 더욱 빠르게 상승세를 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미친 듯이 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석중은 노를 저을 줄 아는 인물이었다.
과감하게 영업이익 대부분을 마케팅 비용으로 전환하여 태우기 시작했으며.
아버지의 회사인 ‘NA푸드원’과 콜라보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디저트 메뉴와 커피 개발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리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맹수수료를 일체 받지 않는 대신 홍보에 도움을 주기로 했던 만큼, 은근히 자신의 일상을 카페 프레스코에 녹여내어 대중에게 어필해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촬영이 없는 날이면 항상 자신의 카페 건물을 들러 얼굴을 비추었고.
그것을 2차 컨텐츠로 재생산하기도 했다.
<우리 집에 왜 왔니>가 아닌 다른 예능에서도 촬영장으로 자신의 카페 프레스코 건물을 빌려주기도 한 것이다.
하여 이러한 모든 상황들이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카페 프레스코의 인지도는 국내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 중 3위 이내에 들어설 정도로 우뚝 성장하였다.
심지어 3위라는 것도 사실상 아직 가맹점 부족 때문이지,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서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지배적일 정도였다.
이 상승세에 한 발 얹고 있는 WJ 스튜디오의 매출도, 덩달아 쭉쭉 끌려 올라갔고 말이다.
WJ 스튜디오의 1월 총 매출이 10억 단위가 넘어선 데에는, 카페 프레스코의 성장세가 크게 한몫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인테리어 공사치고, 영업이익률도 나쁜 편은 아니고…….’
하지만 우진은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카페 프레스코의 인지도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WJ 스튜디오의 이익에 크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것이다.
같은 상황과 흐름 속에서도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업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성과는 천차만별인 것.
그리고 이러한 고민 속에서, 우진은 괜찮은 Deal을 성사시킬 방안을 구상해 내었다.
그것은 바로 이번 왕십리 역사 민자 사업의 시행사인 패러마운트와 업계의 뜨거운 감자인 카페 프레스코의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며 WJ 스튜디오가 실리를 챙기는 것.
그래서 오늘 패러마운트와의 삼자대면이 있기 이틀 전, 우진은 먼저 석중의 사무실을 찾았었다.
카페 프레스코 본점과 석중의 사무실이 있는 고양시 덕양구에 오랜만에 방문한 것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석중은 우진을 크게 반겨주었다.
“서 대표, 이거 얼굴 보기 너무 힘든 거 아냐?”
“지난번 파티 때 뵀잖아요, 형님”
“그게 벌써 두 달 전이야, 짜샤.”
“그날은 형님께서 바쁘셔서 먼저 가셨으면서…….”
“여튼. 종종 놀러 오고 그래라. 요즘은 수하 씨나 재엽 씨가 너보다 더 자주 오는 것 같아.”
“그래요?”
“방송국이랑 가깝잖아. 다른 연예인분들도 같이 많이 오시더라고.”
카페 프레스코 본점 2층에는, 우진이 따로 설계했던 비즈니스룸들이 있다.
그곳은 꽤 프라이빗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방송국에 올 일 있는 연예인들이 자주 애용한다고 했다.
“밥은 먹고 왔지?”
“예, 형님.”
“잠깐 앉아 있어. 커피 내려올게.”
“사장님이 직접 내려주시는 커피라니……. 이거 너무 황송한데요.”
“징그러우니까, 능글거리지 말고.”
석중과의 대화는 항상 일상적인 내용으로 시작돼서, 결국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로 확장되어 넘어간다.
오늘이야 우진이 사업적으로 할 이야기를 들고 왔기에 당연한 순서였지만.
평소 딱히 용무 없이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대화가 그런 흐름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때문에 우진은 아주 자연스럽게, 왕십리 민자 역사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들 수 있었다.
석중도 그 기사를 본 적 있었기에, 이야기는 더 쉬웠다.
“뭐? 그 건설사 로비가 너랑 관련 있는 얘기였어?”
“에이, 형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로비한 것 같잖아요.”
“아, 말이 좀 이상했나.”
“기사 내용은 안 읽어보셨나 봐요?”
“응, 그냥 대충 훑어봤지.”
“여튼 저희 WJ 스튜디오가 브루노의 설계사무소와 협업을 했어요. 그런데 비리 때문에 공모 심사가 공정하게 진행될 것 같지 않아서……. 제가 살짝 손을 좀 쓴 거죠 뭐.”
“살짝…… 손을……?”
“공기관에 찔렀고, 그쪽에서 힘깨나 쓰시는 어르신께 도움 좀 받았고……. 뭐 그 정도로 알아주시면 됩니다.”
“기업 로비, 비리, 잡아내는 게, 언제부터 그렇게 쉬운 일이었냐?”
“대충 넘어가 줘요, 형님.”
석중은 우진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NA푸드원이라는 대기업이 굴러가는 것을 십수 년 동안 지켜봐 왔던 그는, 기업 간에 벌어지는 로비의 민낯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유착관계를 잘라내는 것은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 그리고 어지간한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게 아니라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태호건설의 로비를 잡아낸 주역이 우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이름 들어본 적 없는 걸 보니 대기업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우진이 꺼내 든 이야기는 흥미로운 것이었고, 그래서 석중은 빨려 들어가듯 집중해서 그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한 10여 분 정도 우진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가 오늘 왜 자신을 찾아온 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네 제안은, 카페 프레스코 매장을 패러필드에 입점시키자는 거네.”
“맞아요.”
우진의 계획이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진 석중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넌, 그쪽에 날 연결시켜주는 대가로 뭔가를 얻어내겠지?”
우진은 부인하지 않았다.
“당연하죠.”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석중이,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그럼 나한테 떨어지는 건?”
석중의 이 물음은 사실 농담이었다.
왕십리 역사는 서울 지하철 역 중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역사 중 한 곳이었고.
게다가 브루노라는 거장이 설계하게 될 복합몰이 들어선다면, 더욱 발전 가능성이 높아질 지역이었으니.
그런 곳에 카페 프레스코의 매장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석중에게도 좋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설령 이득 볼 게 없다 하더라도 우진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줄 생각이었지만, 괜히 우진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한번 튕겨본 것이다.
그러나 석중의 그 말에도, 우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우진이 석중에게 하려 했던 구체적인 제안은, 아직 꺼내지도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그야 당연히, 형님께서 구미가 당기실 만한 제안도 생각해 뒀죠.”
“뭐? 생각해 뒀다고……?”
대화가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자, 석중은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고.
그에 우진은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제가 드릴 제안은, 디테일이 중요합니다.”
“음……?”
“어떻게, 한번 들어보시렵니까?”
석중은 고개를 끄덕였고, 우진은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우진의 이야기 끝에서, 석중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 * *
패러마운트의 신임 기획실장 김진수가, 안경을 살짝 치켜 올렸다.
“그러니까, 요즘 핫한 그 카페 프레스코의 대표님과 다리를 놔주시겠다는 겁니까?”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요즘 카페 프레스코만큼 대중들에게 인지도 높은 카페 브랜드도 없지 않습니까?”
복합 쇼핑몰에서, 카페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화시설 중 하나이다.
고객들의 쉼터 역할을 하여, 쇼핑몰의 체류 시간을 늘려줄 수 있는 공간.
메인 스트릿에 위치한 카페가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휴식공간의 역할을 잘 해준다면, 고객들은 쇼핑몰에 머물면서 느낀 피로감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고.
그것이 체류 시간의 증가로 이어지면서, 전반적인 몰(Mall)의 매출 상승으로 선순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진수 실장이 요식 파트에서 가장 신경 쓰는 업종이 바로 카페였는데, 그 부분에서 우진이 흥미로운 제안을 꺼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카페 프레스코가 입점해 준다면 저희 쪽에서도 구미가 당기는군요. 그런데 어떻게 다리를 놔주신다는 겁니까?”
“저희 WJ 스튜디오가, 카페 프레스코와 전속 계약을 맺고 있는 설계사무소이자 시공업체거든요.”
김진수 실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인테리어를 말씀하시는 거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라는 예능 프로그램 보시면, 2화쯤에 카페 프레스코 본점이 나오는데……. 그때 제가 디자인한 인테리어라는 내용이 방송에 나오기도 했지요.”
“아, 제가 TV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라 몰랐네요. 오늘 여기 오기 전에, 서 대표님께서 유명인이라고 이야기를 듣긴 했었는데. 하하.”
“네? 어디서요?”
“제 밑에 대리 하나가 그 <우리 집에 왜 왔니> 팬인가 보더라고요. 서 대표님 사인하나 받아 달라 하더라고요.”
그의 이야기에 우진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최근 들어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 우진의 등장 비중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기저기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우진으로서는 그것이 참 적응되지 않는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김진수 실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카페 프레스코가 입점한다면, 당연히 가장 좋은 자리를 원하겠죠?”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추진 중인 카페 프레스코 직영점과 가맹점들 모두, 본사에서 최소 일주일 이상 상권분석을 한 뒤에 선별해서 입점 된 곳들입니다.”
김실장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호, 그건 몰랐네요. 어쩐지 유명세에 비해 가맹점 숫자가 빨리 늘지 않더라니…….”
우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특히나 직영점의 경우, 훨씬 더 까다롭게 상권심사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가 잘 된다면, 아마 패러필드에는 직영점으로 진행될 겁니다.”
직영점이라는 말에, 김실장의 눈이 반짝였다.
매장 관리 차원에선 아무래도 점주가 중간에 끼어있는 것보다 직영점으로 운영되는 매장이 훨씬 더 메리트 있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괜찮은 제안이군요. 구체적인 제안서를 보지 못했음에도, 충분히 매력적일 만큼.”
하지만 우진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브루노에게 눈짓으로 허락을 받은 우진이,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 제안이 만약 양자 간에 성립이 된다면……. 인테리어 디자인 설계 과정에서 저희 WJ 스튜디오가 한 가지 추가로 제안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진의 이야기를 들은 김 실장의 얼굴에 흥미가 떠올랐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사실상 본론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디자인 설계 차원에서의 추가 제안인 건가요?”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는 김 실장을 향해, 우진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진의 손은, 패러필드의 지하 3층 평면도의 로비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하 3층 로비는 브루노가 설계한 패러필드의 최하층으로, 지하 3층부터 지상 3층까지 총 6개 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뻥 뚫린 공간이었다.
“패러필드의 전체 톤앤 매너(Tone and manner)에 맞는 파빌리온을, 저희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해 설치하고 싶습니다. 이 뻥 뚫린 공간 전체를 웅장하게 채워 넣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규모로 말이지요.”
생각지도 못했던 우진의 제안에, 김 실장의 두 눈이 종전보다 더 크게 확대되었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