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전야(前夜)
재엽은 요즘 고민이 하나 있었다.
부모님이 저질러 놓으신, 작은 사고(?) 하나 때문에 말이다.
“아들.”
“네, 어머니.”
“이번에 조합에서 평형 신청하라고 하길래, 나랑 아빠랑 펜트하우스 신청했어. 잘했지?”
“페, 펜트하우스요?”
“응. 기왕 새집으로 이사 가는 김에, 기분 좀 냈지.”
“어, 어머니. 기분을 좀 너무 많이 내신 것 아닌가 싶은데…….”
“조합에서 얘기하는 것 들어보니까, 펜트 잘 지어지면 투자가치도 엄청 높겠더라고.”
“그러면 추가 분담금은 얼만데요……?”
“대충 15억?”
“그, 그거 감당 가능하세요? 엄니 아부지 15억 있어요?”
“아니, 우리가 15억이 어디 있겠니. 아버지 은퇴하신 지가 언젠데.”
“그럼 어쩌시려고…….”
“이번 기회에 여기 집, 그냥 너한테 팔려고.”
“네에?”
“재엽아, 엄마가 한 일억 싸게 팔아줄게. 가져가서 추가 분담금은 네가 내도록 하렴.”
“으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대신 한동안은 엄마 아빠 여기서 살게 해 줘야 한다?”
“갑자기 이러시면…….”
“다 우리 아들을 위한 거야. 알지, 아들?”
“…….”
재엽의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강남에 사셨던 토박이였다.
그가 학생 때까지 대치동에 살다가 성인이 되면서 이사 온 집이 청담동 선영아파트였고.
지금 재엽이 사는 압구정의 집은, 그가 독립하면서 투자 겸 거주로 새로 매입한 아파트였던 것이다.
당시 압구정 아파트를 샀던 것도, 강남에서도 압구정이 최고라는 어머니의 막무가내 추천 때문.
‘하, 우리 엄마 똥손인데…….’
재엽이 매입한 뒤 거의 1억 가까이 가격이 내려갔다는 슬픈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또다시 일을 벌이신 어머니였다.
“아들, 15억 정도는 있잖아. 그치?”
“없어요, 어머니……. 심지어 집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어머니한테 사라며.”
“그건, 엄마 아빠 노후자금으로 써야지.”
“어쨌든 그럼 엄마 아빠한테도 십억 넘게 드려야 할 텐데, 추가 분담금 15억은 또 어디서 구해요?”
“분담금 완공될 때쯤 내면 된대. 그때까진 벌 수 있잖아?”
“그, 그렇긴 한데.”
“엄마 아빠는 청담동 펜트에서 살아보고. 너는 투자로 돈 많이 벌고. 모두가 행복하네. 그치?”
“펜트 하면, 돈 많이 버는 거……. 확실해요?”
“조합장이 그랬어.”
“그걸 믿어요?”
“아무튼 그렇대. 우리 아들, 파이팅!”
얼마 전에 있었던 엄마와의 대화를 떠올린 재엽은, 다시 한번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하아, 진짜. 못 말리는 분들이라니까.’
사실 신축으로 지어질 청담동 펜트하우스라는 것 자체는, 재엽도 설렐 만큼 매력적이었다.
어쨌든 부모님이 재엽에게 집도 1억가량 싸게 넘기신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추가 분담금까지 총 20억이 훌쩍 넘는 액수는, 재엽에게도 부담될 수밖에 없는 거금이었다.
모아둔 돈에 몇 년 더 뼈 빠지게 일하면 마련할 수야 있는 금액이었지만, 그것을 싸그리 펜트하우스에 투자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으니 말이다.
사실 20~30억이라는 돈은, 수도권에 괜찮은 꼬마빌딩 하나 충분히 장만할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까.
‘진짜, 그 돈이면 좀 더 모아서 건물을 하나 더…….’
일전에 매입해 둔 건물로 꽤 쏠쏠한 시세차익을 거둔 재엽으로서는, 아파트에 그만한 투자를 하는 게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압구정 집값도 떨어진 상황이었으니, 더 심란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하. 이미 저질러진 거, 어쩔 수 없긴 한데…….”
그래서 재엽은 주변에 가장 친한 부동산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사실 조언이라기보단, 심신의 안정을 위한 첨언이 필요한 것이었다.
우진에게 괜찮다, 투자가치 있다. 라는 정도의 말 한마디만 듣는다면, 마음이 한결 더 평온해질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목요일 촬영 날 재엽은 조금 빨리 와서 우진을 기다렸고, 우진이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다가가 상담을 시작했다.
“야, 우진아. 잠깐 형 상담 좀 가능?”
“무슨 상담인데? 부동산?”
“그럼 설마 내가 너한테 연애상담을 하겠냐.”
“뭐, 촬영 시작까지 시간 좀 남아 있으니까……. 한번 말 해봐. 뭔데?”
재엽은 제발 우진이 괜찮다고 얘기하길 기도하면서, 긴장된 표정으로 서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 * *
우진은 촬영장에 왔지만, 영혼은 콩밭에 가 있었다.
오늘 촬영에서 크게 부담될 만한 씬도 없었으며, 사실 촬영보다는 내일 있을 프레젠테이션이 훨씬 더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 재엽이 상담을 해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우진은 반쯤 멍한 상태였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 과부하 상태 비슷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좀 복잡한데…….”
하지만 재엽의 이야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진의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형.”
“응?”
“지금……. 청담 선영 이라고 했어?”
놀랍게도 재엽이 꺼낸 상담이라는 것이, 내일 우진이 프레젠테이션 하게 될 청담 선영과 관련된 얘기였으니 말이다.
“야, 왜 그렇게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냐! 불안하게.”
“뭐가 불안한데?”
“별로라고 할까 봐 불안한 거지, 뭐겠어.”
“청담 한복판에 알짜배기 아파튼데, 투자가치가 나쁠 리가 있어?”
“얌마, 내 압구정 집 살 때도 부동산에서 똑같은 얘기 했어.”
“그 집, 잘 샀다니까. 내가 다섯 번 정도 말한 것 같은데.”
“어쨌든.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거, 이대로 고 해도 되는 거야?”
재엽의 말을 들은 우진이 놀란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옆에 조합원이 있었다니…….’
바로 그 청담 선영 아파트의 시공사 선정 총회 전날에, 재엽이 조합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셈이니 말이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정보 수집하기가 더 쉬웠을 텐데.’
그리고 한 가지 더.
우진은 재엽도, 재복이 꽤나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은 자신이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가 산 압구정 아파트도 조금만 더 지나면 폭등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당장 1억이 떨어졌더라도 다시 10억이 오를 테니, 사실상 지금 시세는 의미가 없는 수준.
여기에 지금 재엽이 상담한답시고 얘기를 꺼낸 청담 선영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는…….
‘이건 그냥 대박이지. 10년만 지나면 거의 100억 찍을 텐데.’
펜트하우스같은 사치재의 경우, 투자가치는 보통 모 아니면 도이다.
장점과 단점이 아주 극명한 물건이니 말이다.
‘장점은 극한의 희소성과 프리미엄. 단점은 최악에 가까운 환금성.’
환금성이 낮다는 이야기는, 쉽게 말해 구매자를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물량도 적지만 수요도 지극히 한정되다 보니.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는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어, 가격을 후려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야 하는 물건인 것이다.
때문에 2010년이 끝나가는 지금 시점처럼 부동산 경기가 하락세일 때는 제값을 절대로 받을 수 없는 아이템.
하지만 반대로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에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을 수밖에 없다.
이때에는 반대로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물건이 되는 것.
가진 사람을 팔 생각이 없고, 사고 싶은 사람은 비싼 값을 주고라도 어떻게든 구하고 싶어 하니.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2010년인 지금과 달리, 2014년이 지날 즈음부터 부동산 시장은 미친 듯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그 시점에 펜트하우스.
그것도 한강뷰가 멋들어지게 뽑혀 나오는, 청담동 최고 입지의 펜트하우스는.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우진은 배가 좀 아팠다.
‘나도 펜트 사고 싶다…….’
그래서 잔뜩 부러운 표정으로, 재엽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형, 그거 펜트 신청한 물건, 나한테 팔면 안 돼?”
“뭐, 인마?”
“하……. 내가 사서 가져가고 싶다. 조합원이 다 가져가고, 일반분양으론 안 나오겠지?”
“그거, 무슨 의미야?”
“무슨 의미긴. 엄청나게 부럽다는 의미지.”
“그…… 정도야?”
“그거 추분 포함해서 지금 30억 정도 되는 거지? 한 31억 2천 정도 되려나?”
우진의 말에, 재엽이 귀신 쳐다보듯 토끼눈을 떴다.
우진이 천만 원 단위까지 정확히 맞춰버리니, 순간 소름이 돋은 것이다.
“뭐야. 어, 어떻게 알았어.”
우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알긴. 지금 내 사무실 책상에 가면, 청담 선영아파트 평형 별 조합원 분양가 싹 다 정리되어 있으니까 알지.”
“뭐……?”
당황하는 재엽의 표정이 재밌었는지, 우진이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내일 오지, 형?”
“이건 또 무슨 말이래?”
“거기, 내일 시공사 선정 총회잖아.”
재엽은 아예 눈이 휘둥그레져서 반문했다.
“뭐야, 너도 조합원이었어?”
그에 우진은 씁쓸한 표정이 되어야 했고 말이다.
“나도 청담 선영 조합원이었으면 좋겠네…….”
“그럼, 아니야?”
“난 그냥, 일개 세일즈맨일 뿐이지.”
“응……?”
재엽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우진은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세일즈맨’이라는 그의 표현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고 말이다.
‘사실 세일즈맨이 맞지 뭐. 조합원들한테 내가 설계한 디자인 세일즈 하러 가는 거니까.’
그리고 내일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재엽을 만나면,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조합원 자리에 앉아 단상 위에 올라온 자신을 보면, 꽤나 재밌는 표정을 지을 것 같은 재엽이었으니 말이다.
“여튼, 한 가지는 확실하게 얘기해 줄 수 있어.”
“그게 뭔데?”
“형 지금 추가 분담금 아깝다고 그거 팔면, 최소 20년 동안은 매일 자기 전에 생각날 거라는 거.”
“……!”
재엽은 우진에게 또다시 뭐라 말하려 했지만, 잠시 두 사람의 대화는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촬영장에 도착한 수하와 리아가, 둘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어, 오빠! 일찍 와 있었네?”
“우진이는 언제 왔어?”
“아, 다들 왔어?”
하지만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해서, 딱히 이야기를 그만할 이유도 없었다.
재엽은 이 이야기를 이미, 지난번 술자리에서 리아와 수하에게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둘이서, 심각한 표정으로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그때 그 얘기. 엄마한테 강매당한 아파트.”
“아하! 그 청담동 아파트?”
“맞아. 그 얘기 하고 있었어.”
그래서 촬영 장비가 세팅되는 동안에도, 재엽은 우진에게 이것저것 더 물어보았다.
선문답하듯 대답하는 우진에게,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니 말이다.
단순하게 좋다는 얘기를 넘어, 그 근거에 대해 듣고 싶었달까?
물론 우진은 귀찮은 관계로 깊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돈으로 어딜 사도 더 벌긴 힘드니까, 그냥 청담 선영 펜트 들고 가세요. 알겠지?”
“으……. 쫄리니까 그러지.”
“예능 블루칩 윤재엽이 무슨 15억으로 쫄리고 그래. 일 년이면 그만큼 벌면서.”
재엽을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는지 우진은 계속 실실거리며 한 마디씩 툭 툭 던졌다.
그런데 옆에서 가만히 듣던 유리아가, 갑자기 불쑥 끼어들었다.
“야, 우진아.”
“응?”
“거기가 그렇게 투자가치가 좋아?”
리아의 물음에 뭔가 위화감을 느낀 우진은 말꼬리를 흐렸다.
“어……? 그렇긴 한데…….”
하지만 리아는 대수롭지 않은 듯, 툭 하고 한 마디 던졌다.
“나도 하나 살까?”
마치 마트에서 물건 하나 고르는 느낌으로 말이다.
“…….”
게다가 더 혼란스러운 것은, 그녀의 그 말이 결코 장난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것.
“우진이 너도 하나 사라. 우리 동네 주민 하자.”
마지막으로 이어진 유리아의 이야기에, 우진과 재엽은 그대로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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