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109화 (109/315)

109화

10월의 피날레(Finale)

처음 <우리 집에 왜 왔니>가 방영됐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예능에 대한 평가는, 새로 나온 ‘신선하고 재밌는 예능’ 정도였다.

그러니까 좋은 평가들이 있을지언정, ‘최고’라는 평가가 나오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같은 시간대의 KBC 전작이 워낙 나쁜 성적으로 종영돼서인지, 그 반대급부로 이슈 몰이가 된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으며.

KBC가 드디어 정신 차렸다.

신인 PD의 예능치고 괜찮은 작품이다.

등.

확실히 좋은 반응들이기는 했지만, 반대로 그 이상의 반응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방영 날이 지나고 3주 차까지 지난 오늘.

<우리 집에 왜 왔니>를 평가하는 데 씌워져 있던 프레임들은, 천천히 깨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프로그램의 흥행을 반증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인 시청률.

그것부터가 이제 확실히, 동 시간대 1위를 위협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월요일 아침, <우리 집에 왜 왔니>와 관련된 인터넷 기사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기사의 제목이 바로 이것이었다.

[평균 시청률 17.8%, 최고 시청률 21.2% <우리 집에 왜 왔니>. 예능계에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하나?]

‘패러다임’이란, 어떤 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견해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의 테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패러다임이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쓰인 것이 과해 보일 수도 있으나, 이 기사는 대중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사고 있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가 대중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예능프로그램으로서의 새로운 패러다임.

그것은 3화까지 시청한 시청자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 와, 예능에서 인테리어 한다고 하길래, 난 그냥 대충 시늉만 할 줄 알았는데…….

└ 이게 진짜 리얼 버라이어티임. 어지간한 다큐보다 더 리얼한 듯.

└ 맞음. 재엽팀 가구 제작과정도 진짜 리얼하고, 두영팀 자재 흥정하러 다니는 것도 진짜 같고.

2010년도까지 기존의 예능들은, 어떻게든 재밌는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서 시청자들을 웃기기 위해 노력했었다.

예능(藝能)이라는 단어가 가진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이라는 뜻.

그 본질적인 목적에 최대한 충실한 것이다.

물론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제작진 또한, 그 본질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입담 좋은 개그맨들과 예능인들을 섭외한 것이, 그런 이유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단편적인 재미를 주기 이전에 시청자들이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주거’라는 컨텐츠를 삽입하였고.

그것을 리얼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풀어냄으로써, 소소한 재미조차 더욱 크게 느껴지도록 시너지를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전에 있던 요리 프로그램들에서도 이런 요소들이 있기는 했지만, 컨텐츠를 풀어내는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소소하고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요리와 달리,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은 꽤 큰 스케일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 커다란 스케일의 컨텐츠를 잘 녹여낸 것은 공진영PD의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방증이었으며.

그것은 기사마다 달려있는 시청자들의 댓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 근데 이게 대체 왜 재밌는 거지? 나 다큐 틀면 바로 잠드는 타입인데.

└ 윤재엽이 겁나 웃기잖아.

└ 유리아 임수하 정민하가 예뻐서 그럼.

└ 노노 연출의 승리인 듯. 난 웃긴 것 보다, 신기해서 계속 보게 되던데.

각자 자신이 재밌게 봤던 요소들을 저마다 떠들어대며,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네티즌들.

└ 임수하 배우님도 진짜 캐미 좋던데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함. 임수하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 처음 봤는데, 외모도 외모지만 확실히 예능감 있어 보이더라고요.

└ 서우진 전문가님 수하 취급 받는 거 개 꿀잼ㅋㅋ

└ 진짜 소처럼 일하던데?ㅋㅋㅋ

그리고 패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이제 슬슬 우진의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은, 우진이 활약에 비해 화제성이 떨어졌던 게 사실이었다.

└ 맞아. 그러고 보니, 서우진? 그 목수도 진짜 대박.

└ 나도 그 얘기 하려했는데. 그 사람 가구 만드는 거……. 진짜 사기 아님? 어떻게 가구를 그렇게 빨리 만들어?

└ 사기라기엔, 영상이 너무 적나라하던데…….

└ 현직 목수입니다. 서우진님 찾습니다.

└ 왜요?

└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구배지례 가능합니다.

└ 혹시 서우진 본인 아님? 22살이라던데……. 현직 목수가 대딩을 왜 스승으로 모심.

└ 정말입니다. 진지합니다.

└ 응 우진이 학교니?

└ 여기 우진이 나타났다!

목공사무실 컴퓨터에서 댓글을 몇 개 달던 고재성은,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진짠데……. 안 믿네.”

재성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댓글 밑에 달리는 대댓글들을 확인해 보았다.

당연히 재성의 댓글들이 장난인 것은 맞았지만, 우진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이야기는 반쯤 진심이었다.

아마 재성이 열 살만 더 어렸더라면, 정말 우진에게 목공을 배우려 했을 테니까.

“촬영 때 슬쩍 얼굴이라도 비출 걸 그랬나? 해나가 좋아했을 텐데…….”

아홉 살 난 딸내미를 문득 떠올린 재성이, 인스턴트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덜컹-!

사무실 문이 열리고, 조공 하나가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반장님! 이거 인쇄 다 했는데, 어디다 걸어놓으면 될까요?”

고재성의 시선이, 조공이 들고 온 커다란 두루마리를 향했다.

그것은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조공에게 가장 먼저 시켰던 업무였다.

“공방 입구에,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걸어 줘.”

“옙!”

“<우리 집에 왜 왔니> 방영 목공방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인쇄 잘했지?”

“당연하죠!”

“좋아. 우리도 서 대표님 덕 좀 보자고.”

“아마 블로그에 홍보 조금만 하면, 수강생 엄청 몰려들 겁니다.”

고재성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오늘부터, 목공 취미반 클래스를 모집할 예정이었다.

* * *

또 한 번 주말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번 주말도 역시, 일 중독자인 우진에게 휴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이번 주말만큼은, 우진이 쉴 수 없었던 것이 너무 당연했다.

주말이 지나면 10월의 마지막 주가 되고.

그렇다는 것은, ‘청담 선영아파트 재건축 사업’의 설계 공모 마감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는 말이었으니까.

공모 마감 날짜는 정확히 10월 31일, 일요일.

경완의 말에 의하면, 그 바로 다음 날부터 공모작들에 대한 검토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경완이 월요일 아침에 출근할 때까지 공모 파일이 메일로 들어와 있지 않으면, 그대로 아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우진은 주중에도 계속 퀭한 얼굴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지금 학교를 마치고 성수동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빠, 이러다가 갑자기 고장 나는 거 아니지?”

“내가 무슨 기계냐. 고장 나게.”

“기계처럼 일하잖아.”

“…….”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으나, 소연은 우진이 좀 걱정됐다.

그의 열정과 꿈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요즘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행인 건, 우진도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걱정 마. 이번 공모만 끝나면, 내가 직접 해야 할 일들은 최대한 줄일 거야.”

이번 설계 공모를 진행하는 동안, 우진이 뼈저리게 느낀 것은 디자인 디렉터의 부재였다.

기본적으로 큰 방향성을 제시하는 디렉팅이야 우진이 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도 디테일한 디자인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줄, 고급 인력들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으니까.

사실 ‘디자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우진은 아직 배울 것이 많은 학생에 가까웠다.

전생의 경험과 기억들. 그리고 뛰어난 공간 감각과 설계실력이 있기는 했지만.

체계적으로 디자인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성된 디자이너들을 스카웃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 고급 인력들은 일단 컨텍하는 것만 해도 너무 힘들었으며, 이제 신생기업의 대표인 우진의 입장에선 컨트롤하기도 어려웠으니까.

그래서 우진이 원하는 인재는, WJ 스튜디오와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을 잠재력 있는 디자이너였다.

지금 당장은 조금 어설플 수도 있을지언정, 앞날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디자이너.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우진의 시선이, 자연스레 룸미러로 향했다.

룸미러에 비치는 뒷좌석에는, 잔뜩 흥분한 채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 중인 미래의 스타 디자이너가 앉아있었으니 말이다.

“좋아. 그럼 다음 주 일요일은 비워두도록 해, 석현.”

“뭘 할 거냐고?”

“그야, 당연히 맹훈련이지.”

“다음 달 결전의 날 이전에, 반드시 이 제이든 님이 ‘British secret weapon’이 되어야 한다고.”

“설마 이 제이든 님을 무시하는 거야? 난 할 수 있다고. Trust me!”

왜 저렇게 흥분했는지 알 수 없지만, 휴대폰에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제이든.

그런 그를 잠시 지켜보던 우진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쟨 대체 언제쯤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까?’

사실 제대로 각성하기만 한다면, 제이든 만큼 우진에게 도움이 되어 줄 카드도 없다.

우진이 아는 그 어떤 인물보다도, 확실하고 보장된 포텐셜을 가진 디자이너가 제이든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제이든이 요즘 디자인 공부는커녕, 모든 여가시간을 게임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말이야 항상 건축계의 슈퍼 루키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요즘 같아서는 프로게이머 지망생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수준.

그런데 그 순간, 우진의 머릿속에 소름 돋는 생각이 떠오르고 말았다.

‘설마 나 때문에, 제이든의 미래가 바뀐 건 아니겠지?’

어쩌면 우진 때문에.

정확히는 우진으로 인해 알게 된 석현이라는 존재가, 제이든의 미래를 바꿔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물론 그것은 우진의 지나친 비약일 뿐이다.

본인이야 완전히 망각한 지 오래였지만, 우진과 제이든은 아직 학부 1학년 학생일 뿐이었고.

이 시기는 사실 밤새 신나게 게임 하며 노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나이였으니 말이다.

우진은 알 리 없지만, 그가 전생에 알았던 제이든이라는 인물도, 딱히 학부 시절에 모범적인 생활을 했던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래대로라면 팽팽 놀기만 했을 학부 1학년 때 SPDC대상까지 챙기는,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만 있었을 뿐이다.

‘이거, 갑자기 제이든에게 너무 미안하잖아……?’

하지만 갑자기 망상에 빠진 우진은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빠졌고…….

‘아, 안 돼. 그럴 순 없지. 제이든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잔소리를 좀 해야겠어.’

그 덕에 우진은 결국, 제이든 한정 잔소리꾼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제이든.”

“무슨 일이야, 우진?”

“설마 이번 주 일요일도, 석현과 게임을 하려는 건 아니지?”

“What? 설마라니. 너무 당연한 얘기잖아, 그건?”

“아니, 그렇지 않아, 제이든. 넌 요즘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거든.”

“……?!”

“10년 안에 프리츠커 상을 탈거라며?”

“물론!”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는 게임 대신 과제를 하는 게 좋겠어.”

우진의 갑작스런 잔소리에, 제이든은 혼란스런 표정이 되었다.

사실 제이든은 머리털이 난 뒤로,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듣는 게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10년 안에 프리츠커를 타려면……. 이번 주말에 과제를 해야 하는 거야?”

“물론이지.”

“흐으음…….”

마치 활활 타오르던 불길 위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양.

잔뜩 흥분해서 통화하며 열을 올리던 제이든이, 조용히 입을 닫고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우진의 잔소리가 제이든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인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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