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성장을 위한 밑그림
다시 목요일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이번 주 목요일도,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 촬영의 내용이 지난 촬영보다 훨씬 더 수월한 내용이라는 점이었다.
“이야, 우진 씨. 못 본 새에 신수가 더 훤해지셨네.”
“거짓말 마시죠. 지금 다크서클 턱 밑까지 흘러 내려온 거 다 아니까.”
“앗……! 빈말이긴 한데, 그냥 모른 척해주면 안 돼요?”
오늘도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촬영 현장은, 무척이나 분위기가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일요일 2화 방영 이후로,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상승 기세가 더 무섭게 불타올랐던 것이다.
2화의 평균 시청률은 무려 1화보다 더 높아진 13.6퍼센트였고.
순간 최고 시청률은 아예 18%를 넘어서면서, 말 그대로 기염을 토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고무적인 지표는, 시청률뿐 만이 아니었다.
지난 화를 시청할 수 있는 유료 다시 보기 횟수가, 2화 방영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우리 집에 왜 왔니> 제작진은, 요즘 축제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공PD는 피곤해서 뻗고 싶을 때마다, 인터넷을 열어 ‘우리 집에 왜 왔니’를 한 번 검색해 본다고 할 정도였다.
“진짜, 검색 한번 해 보면, 바로 힐링이 된다니까?”
“그 정도예요?”
“설마 2화 방영 이후로, 검색 한 번도 안 해본 거에요, 우진 씨?”
“아니, 하긴 했죠. 그런데 제가 바빠서…….”
“와, 완전 서운해! 난 하루에도 오십 번 정도 검색하는데!”
너스레를 떠는 공PD의 옆으로 다가온 촬영감독이, 한 마디 슬쩍 끼어들었다.
“거짓말 마세요, 피디님.”
“예?”
“피디님 하루에 오백 번 정돈 검색하시잖아요. 다 알아요.”
옆에 있던 보조PD도 불쑥 끼어들었다.
“아닐걸요? 제가 볼 땐 최소 천 번?”
“…….”
공PD의 멋쩍은 표정을 보며, 우진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우진도 검색을 조금 한 것은 아니다.
방영 바로 다음 날인 월요일에는,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인터넷을 들락거렸으니 말이다.
다만 공PD와, 검색의 포커스가 달랐을 뿐이었다.
공PD를 비롯한 다른 제작진들은 방송에 대한 시청자 반응과 컨텐츠에 대한 평가 위주로 검색했다면.
우진의 관심사는 오로지, 카페 프레스코의 화제성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방송이 잘 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디자인이 얼마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느냐가, 우진에겐 더 중요한 문제였다.
“여튼, 이제 슬슬 촬영 시작하죠, 피디님?”
“그러죠.”
촬영감독의 말에 공PD가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우진은 조금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네? 아직 저 말고 아무도 안 왔는데요?”
우진이 당황한 것은 당연했다.
지금 촬영장에는, 우진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이 아무도 안 온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PD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다른 분들은 3시에서 4시 사이에 오실 거에요.”
“네?”
“오늘 촬영 절반은, 우진 씨 혼자 할 예정이니까요.”
“……?”
지난주 촬영과 마찬가지로, 이번 주 촬영도 을지로의 목공방에서 진행된다.
컨텐츠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재엽의 집 인테리어에 들어갈 가구를 제작하는 내용.
하지만 지난주와 다른 점은, 오늘은 가구 제작을 거의 우진 혼자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다른 출연진들도 거들긴 하지만, 지난번처럼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재엽과 수하. 그리고 리아의 진정성 넘치는 목공작업은 지난주에 이미 넘치도록 분량이 뽑혔으니.
오늘은 그냥 우진 혼자서 최대한 빠르게 나머지 가구들을 제작하고 그 과정 위주로 카메라에 담기로 한 것이다.
나머지 출연진들이 좀 늦게 합류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
수하나 리아는 오늘도 지난번처럼 작업에 참여하고 싶어 했지만, 최대한 효율적인 촬영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촬영 시간이 늘어나면 그게 다 제작비가 되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 집에 왜 왔니> 제작진에게는, 비축 영상이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미 <우리 집에 왜 왔니>는 2회분까지 방영이 된 상황이었는데, 공PD가 어제까지 편집 작업하던 영상이, 고작 4화에 불과했으니까.
그래서 공PD는 오늘 우진의 가구 제작 영상을 위주로 최대한 효율적인 촬영을 해서, 이것으로 6화 분량까지 뽑아낼 예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 남은 가구들을 전부 다 완성해야 했고.
그것이 우진 혼자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업해야 하는 이유였다.
“우진 씨 가구 다 만들려면, 시간 얼마나 필요할 것 같아요?”
“음…….”
“대충 저녁 10시? 11시? 다 완성하려면 그쯤은 되어야겠죠?”
공PD의 물음에, 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그럼……? 혹시 새벽까지 촬영해야 할까요?”
공PD의 물음에, 촬영감독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야근을 넘어 새벽 근무를 좋아하는 직장인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하하. 걱정 마세요, PD님. 제가 오후 5시 안에 끝내드릴게요.”
“네? 그게 가능해요?”
“저도 빨리 촬영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고요.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우진은 오늘 촬영을 위해 남은 자재들을 사전에 싹 다 손질해 놓은 상태였다.
직접 한 것도 아니었다.
바빠서 그럴 시간적 여유는 없었으니까.
다만 고재성에게 소정의 수고비를 입금하여, 시간을 아낀 것일 뿐.
공PD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고재성이 큰돈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괜히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예산을 떼어 주겠다며 국장에게 보고를 올리러 갈 사람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런 이유로.
우진은 남은 가구들을 전부 다 완성하는 데까지, 대충 다섯 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자, 그럼 시작하면 되죠?”
우진이 다시 입을 열자, 공PD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이에요. 세팅은 돼 있으니까요.”
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해요.”
“어떤 문젠데요?”
“우진 씨 말대로 그렇게 일찍 끝나면, 출연진 세 분을 좀 더 일찍 불러야 하니까요.”
“아…….”
잠깐의 혼란이 있었지만, 촬영 준비는 금방 되었다.
이어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우진은, 본격적으로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하였고.
“적당히 설명 정도만 곁들이시면서, 작업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 주세요.”
“넵.”
“촬영 팀이 알아서 다 각도로 촬영할 테니까, 오늘은 촬영 편의 봐주실 필요 없어요.”
“그럼 제가 설명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방영되어 나가나요?”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아마 나레이션 처리를 할 것 같은데, 우진 씨 목소리가 직접 나갈 수도 있고, 다른 목소리로 나갈 수도 있고요.”
그렇게 우진의 <우리 집에 왜 왔니> 5번째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탕- 탕- 탕-
지이이잉-!
공방은 조용했다.
촬영 때문에 거의 스무 명에 가까운 사람이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방 안에서는, 우진의 뚝딱거리는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거, 예능 촬영 맞아?’
그리고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촬영감독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찍는 것이 작업 과정을 빠르게 보여줄 짜깁기 영상의 소재라고는 하지만.
다큐를 촬영할 때에도, 이렇게까지 정적으로 촬영하는 일은 드물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이 상황이 뭔가 아이러니한 이유는, 조용한 가운데도 모든 제작진이 우진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촬영을 잘하기 위한 집중이 아니었다.
그냥 우진이 뚝딱거릴 때마다 뭐가 하나씩 만들어지고, 또 그 부위들이 모여 가구가 완성되니.
그 광경이 신기한 나머지, 다들 입을 반쯤 벌리고 구경 중이었던 것이다.
마치 신들리기라도 한 듯 뚝딱뚝딱 목공작업을 하는 우진의 모습은, 목공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경외감이 느껴지는 수준.
아마 짜깁기 편집이 아니라 그냥 쭉 이어서 방송에 내보내도, 시청자들이 멍하니 구경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진짜 목수들은 대단하구나.’
우진을 가만히 지켜보던 공PD는, 속으로 적잖이 감탄하고 있었다.
이 영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프로그램의 포맷 상 전부 내보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기존에 계획했던 분량보다는, 더 많은 분량을 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제작진이 저마다 우진의 작업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사이.
재엽과 리아, 그리고 수하가 차례로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공PD가 전화를 돌린 뒤, 정확히 두 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다.
“지금 우진이 먼저 촬영 중인 거죠, PD님?”
“오, 다들 일찍 오셨네요.”
공PD의 말에, 재엽이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촬영 빨리 끝날 수 있겠다고, 빨리 오라 하셨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셋 다 부리나케 달려왔죠.”
“하하.”
제작진과 인사를 나눈 세 사람은, 촬영장 구석에 쓱 들어가서 우진의 작업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촬영에 투입되는 것은 지금 촬영 중인 파트가 끝난 뒤였으니, 일단은 그들도 구경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은 지금까지 제작진이 그랬던 것처럼.
최면이라도 걸린 듯 우진의 작업을 지켜보기 시작하였다.
“와……. 뭐 저렇게 작업속도가 빨라?”
“지난주에 우리랑 템포 맞춘다고 정말 속 터졌겠네, 우진이.”
“그러게. 저기 뒤에 저 탁자는 뭐지?”
“헛……! 우리 오기 전에, 벌써 탁자랑 의자는 완성한 것 같은데?”
“우와……!”
출연진들이 구경을 시작한 시점.
우진이 제작에 들어간 가구는, 재엽의 집 거실과 부엌 사이에 놓이게 될 아트 월(Art wall) 이었다.
직접 제작되어 들어갈 가구들 중, 우진이 가장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일 가구이자 마지막으로 제작하는 가구.
그래서 도착한 출연진들을 발견한 우진은, 공PD에게 사인을 보냈다.
여기서 촬영을 한번 끊고 출연진들과 함께 작업하기 위해서 말이다.
“피디님, 여기서 한번 끊을까요?”
“나쁘지 않죠.”
그가 디자인한 아트 월은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인 것과 별개로, 작업 난이도는 가장 쉬운 가구였다.
작업량은 많았지만, 거의 단순 노가다에 가까운 것들.
그래서 우진이 생각하기에 이 마지막 가구들만큼은,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출연진들과 함께하는 게 오히려 더 속도가 빠를 것 같았다.
편집해서 내보낼 촬영 소스가 많아지는 것은 덤이었다.
“여기부턴 같이 작업할까?”
“오, 그래도 돼?”
“정말?”
우진의 부름에 출연진 세 사람이 신나서 촬영장 안으로 들어오자, 우진은 웃으며 작업 설명을 시작하였다.
카메라는 한 번 꺼진 적 없이 계속해서 촬영 중이었지만, 어차피 공PD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으니 상관없었다.
“재엽이 형. 혹시, 스크랩우드 라고 들어봤어?”
“스크랩…… 우드?”
“아트월 마감재로 스크랩우드 느낌 나는 처리를 할 건데, 미리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스크랩우드(Scrap Wood)란, 목재를 스크랩(Scrap)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디자인 용어이다.
네덜란드의 산업디자이너들이 폐목재, 철재 등을 활용하여 업사이클링(Upcycling)*[재활용품을 활용하여, 기존보다 가치가 더 높은 새 제품을 재생산하는 과정] 디자인을 한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낡은 페인트 질감, 다양한 무늬와 색상의 나무 재질 등. 여러 가지 목재들을 한데 스크랩하여, 빈티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쓰이는 스타일리쉬한 마감재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진이 작업할 스크랩 우드 방식의 마감은, 업사이클링과 거리가 있었다.
여러 가지 목재들을 한 데 스크랩한다는 개념은 같았지만, 그것이 결코 폐목재나 재활용품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우진은 네모난 각재들을 일정한 두께로 썰어서, 그것을 정해둔 패턴에 맞춰 이어붙일 생각이었다.
우진의 설명을 들은 재엽이, 두 눈을 반짝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썰고, 네가 이어 붙인다는 거지?”
“그런 셈이지.”
수하가 팔을 걷어붙이며 다가왔다.
“그럼 한번 시작해볼까?”
이어서 공방 구석에 있던 커다란 톱을 들고 오는 리아.
리아를 발견한 우진이, 기겁을 하며 그녀를 제지했다.
“아 누나. 진정해. 제발. 그거 아니야.”
“왜, 썰어야 된다며. 톱으로 써는 거 아냐?”
“그 무식한 거로 언제 썰어……. 기계로 하면 되니까 그건 내려놓고 오시죠.”
오늘도 촬영은 유쾌했다.
다들 기분 좋은 가운데, 그림이 예쁘게 나오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