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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104화 (104/315)

104화

성장을 위한 밑그림

우진이 바빴다는 것은, 그만큼 WJ 스튜디오도 성장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우진이 숨 막힐 정도로 바빴다는 것은, WJ 스튜디오도 눈부시게 성장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이야, 지난달 매출. 거의 열 장이네?”

우진이 출근하자마자 대표실에 들어온 진태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월말 결산표를 들고 들어왔다.

진태의 ‘열 장’이라는 소리는 10억이라는 이야기.

9월 한 달간의 매출에 대한 결산표가 이제 정리되었고.

그 한 달 동안 WJ 스튜디오의 매출이, 무려 10억이 넘은 것이다.

이것은 8월 달 매출에 비해 두 배가 넘게 성장한 것이고.

더욱 고무적인 것은, 9월보다 10월의 매출이 최소 1.5배 이상 더 많을 예정이라는 점이었다.

현재의 추세를 놓고 봤을 때 말이다.

“좋네, 좋아.”

다소 담담한 우진의 반응에, 진태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친데?”

“안 좋다기보단, 이미 예상했던 액수라서 그래.”

“아하.”

“나야 계속 돈을 굴려야 하는 입장이니까, 러프하게는 계속 체크 하고 있었지.”

진태는 피식 웃으며, 우진의 책상 앞쪽에 붙어있는 회의 테이블 옆에 앉았다.

이럴 때 보면 우진은, 정말 닳고 닳은 사업가 같았다.

‘거죽만 팽팽하지. 아마 저 안에는 50살 먹은 아저씨가 들어앉아 있을 거야.’

만약 우진이 들었다면, 적잖이 억울했을 만한 이야기.

자체적으로(?) 우진의 실제 나이보다도 10살이나 더 부풀려진 평가를 내린 진태는, 회사 재무 표를 확인하며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매출도 매출이지만, 9월은 이익률이 엄청 높네.”

“영업이익 말하는 거지?”

“그래.”

“그럴 수밖에. 8월은 지출도 많았고 회사 덩치도 확 커졌던 달이라 남은 게 없었지만……. 9월 유지비는 크게 늘어난 게 없잖아?”

“하긴.”

“오히려 사무실 인테리어같이 목돈 나갈 일은 더 적었을 테니…….”

WJ 스튜디오의 8월 매출은, 당연히 6월이나 7월보다 훨씬 더 높았다.

7월에는 겨우 2억 정도를 넘었던 수준이었지만, 8월의 매출은 대략 4억 5천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 배 이상 차이나는 매출에도 불구하고, 8월의 영업이익은 7월보다 오히려 낮았었다.

8월 매출 중 4억 초반이 지출로 빠져나갔으니, 실질적으로 번 돈은 3천만 원이 안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9월은 8월과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매출의 성장세가 두 배 정도인 것은 비슷했지만, 지출의 증가폭이 2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해서 9월 한 달. 순수하게 WJ 스튜디오에 남은 돈은 약 4억.

보통 대형 건설사의 영업이익률이 5%남짓만 되도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4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WJ 스튜디오는 모형파트와 인테리어, 설계 쪽의 비중이 꽤 높았기에, 건설사의 카테고리에 놓고 보기는 좀 애매한 회사였지만 말이다.

‘게다가 업체 덩치가 커질수록 영업이익률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고……. 우리 회사는 아직 영세하니까.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

진태에게 재무 표를 받아 든 우진은, 현재 법인통장에 남아 있는 잔고를 확인해 보았다.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은 대략 6억 초반 정도.

이제 슬슬, 좀 더 큰 건을 해볼 수 있을 만한 목돈이 모여 가는 느낌이었다.

‘딱 2~3억만 더 확보되면, 한번 크게 질러볼 수 있을 것 같네.’

재무 표를 덮은 우진이, 건너편에 앉아있는 진태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10월 매출까지 정산되면 못해도 10억 이상의 잔고가 모일 것 같았으니.

이쯤 됐으면 이제, 생각해 뒀던 빌드 업을 하나씩 시작할 때가 되었다.

“진태 형.”

“응?”

“다음 주부터 형이 알아봐 줘야 할 게 하나 있는데…….”

“흠. 뭔데?”

의미심장한 우진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진태는, 의자를 좀 더 가까이 당겨 앉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우진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형. 혹시……. 회사 인수합병에 대해서, 좀 알아?”

생각지도 못했던 우진의 이야기에, 진태의 두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 * *

당연한 얘기겠지만, 건설업을 하려면 면허가 필요하다.

아무 업체나 시공허가가 쉽게 나 버리면, 큰돈이 오가는 시공계약 특성상 사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우진이 지금 주로 하고 있는 인테리어 시공도, 실내건축공사업에 대한 면허가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인테리어도 1500만 원 이상의 규모로 넘어가면, 면허 없이 시공하는 것은 불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몇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비교적 쉽게 딸 수 있는 실내건축업 면허와 달리.

지금 우진에게 필요한 건축공사업 면허는, 훨씬 더 어렵고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했다.

자본금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물론, 일부를 출자하여 건설공제조합에서 보증도 받아야 하며.

분야별로 각종 건축기술을 보유한 전문가가 업체에 정직원으로 등록되어 있어야 하는 등.

조건도 까다로운 데다 면허 발급까지 시간도 꽤 필요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좀 더 장기적으로 보자면, 우진에게 필요한 것은 건축공사업을 포함한 ‘종합건설업’에 대한 면허.

우진은 기왕지사 페이퍼웍(Paper Work)을 해야 하는 김에 이 모든 면허를 한 번에 취득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생각한 방법이 바로, 기존에 면허를 가진 회사를 인수 합병하는 방법이었다.

회사를 인수하면, 그 회사가 가지고 있던 면허도 같이 흡수할 수 있었으니까.

‘이거만큼 쉬운 방법도 없지.’

회사 간의 인수합병이라면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어쨌든 그 회사가 가진 가치를 돈을 지불하고 사는 개념인 것은, 일반적인 거래와 다를 바 없었으니 말이다.

진태에게 인수합병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야, 목수가 인수합병인지 뭔지, 그런 어려운 걸 어떻게 알아.”

“몰랐어도 이제부터 알면 돼.”

“대체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건데?”

“그야 당연히 회사 인수지.”

“어떤 회사를 인수하려고?”

하지만 인수합병의 개념 자체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고 해서, 인수할 회사를 고르는 것까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원래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은, 인수할 기업의 정확한 가치를 판단하는 작업이었으니 말이다.

‘삼켜도 탈 나지 않을, 알짜배기 회사를 고르는 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이지.’

그래서 보통 건설업체의 양도 양수는, 법률사무소나 건설업 전문 컨설팅 업체를 통해 진행된다.

전문가를 통해 꼼꼼히 재무상황과 법리를 따져봐야, 해당 기업의 정확한 가치와 문제점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바로 ‘잘 아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

재무구조부터 시작해서 지배구조까지, 아주 뼛속까지 잘 알고 있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한 가치를 책정할 수 있으며,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알짜만 저렴하고 깔끔하게 집어삼킬 수 있는 회사.

그런 회사와 M&A를 체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이상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건설면허도 한 방에 해결하면서, 그에 더해 누적된 실적까지도 고스란히 꿀꺽……. 회사 덩치 키우는데, 이만한 선택지도 없지.’

물론 그렇게 잘 아는 회사를 인수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내부자가 아니고서는, 회사의 구체적인 사정까지 빠삭하게 알기 힘드니까.

하지만 우진은 일반적인 규격으로 재단할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그런 완벽한 조건을 가진 회사를 하나 알고 있었다.

내부자 이상으로, 아주 빠삭하게 말이다.

“형, 혹시 성진건설이라고 알아?”

“성진……건설?”

“응.”

“처음 듣는데, 거긴 왜?”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 거길 한번 먹어볼까 하거든.”

“뭐야, 벌써 구체적인 계획까지 있었어……?”

“흠, 구체적이라기보단……. 무튼 이건 대외비야.”

“그런데 대체, 갑자기 왜?”

“꿩 먹고 알 먹고.”

“음……?”

“회사 규모도 키우고, 건설면허도 챙기고. 거기에 부족한 건설시공 실적이나 전문 인력도 추가로 확보하고.”

“……!”

우진의 이야기를 듣던 진태는, 적잖이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분야였으니 말이다.

우진이 한 마디 덧붙였다.

“꼭 성진건설이 아니라도 어디든, 괜찮은 건설사를 하나 인수해보려고 해.”

“우리 자본으로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해. 필요한 부분만 분할 인수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으음…….”

말꼬리를 흐린 진태는,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다.

우진이 지금 하는 이야기를,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건설면허 확보를 위해 기존 건설사를 인수하는 방식을 전에 못 본 것은 아니었으나.

그냥 그런 케이스가 있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을 뿐,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우진이 그리는 그림은 단순한 면허확보보다도 좀 더 큰 그림으로 보였으니.

진태의 입장에선, 생각할 게 많은 것이다.

‘점점 더 스케일 커지네 이거.’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 이 속에서도 놀라운 것은.

우진이 이렇게 큰일을 벌이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걱정되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찌 보면 이제 설립 반년 차의, 새싹이나 다름없는 회사인 WJ 스튜디오.

그런 초짜 회사가 다른 건설사를 인수 합병할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진태는 그게 결코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WJ 스튜디오의 성장세가 워낙 대단했으며, 확보된 매출도 이미 새싹 수준을 넘기는 하였다.

하지만 진태가 걱정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

바로 WJ 스튜디오의 대표인, 우진의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우진이 보여준 능력과 치밀함은, 진태에게 무한한 신뢰를 안겨주기 충분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좋아, 한 번 알아볼게.”

“오케이. 급할 필요는 없으니까, 짬 날 때마다 천천히 알아봐 줘.”

“법률사무소 쪽도 미리 컨택 해 놓을까?”

“그건 내가 할게.”

“알겠어.”

그리고 한 가지 더.

진태는 우진과 함께 일하기 시작한 뒤로, 내면에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던 야망을 깨닫는 중이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작은 울타리 안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무한한 가능성을 마주한 지금에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된, 커다란 웅심을 말이다.

그래서 우진으로부터 이런 새로운 사업적 방향성을 들을 때마다 진태는, 미지의 것에 대한 어떤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진태가 생각할 때, 이것은 분명 긍정적인 방향이었다.

‘한 번 사는 인생. 망치만 두들기다 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물론 인생을 두 번째 사는 우진 덕에, WJ 스튜디오의 이런 비상식적인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지만.

그런 것은 진태로서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우진은.

다른 모든 부분들을 떠나서, 그에게 이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준 훌륭한 리더일 뿐이었다.

“본격적인 작업은 그럼, 내년 초부터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진태의 물음에,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이르면 봄. 늦어도 여름 전엔, 싹 다 마무리해서 가져올 거야.”

진태는 기분 좋게 웃었다.

“알겠어, 기대되네.”

“뭐가?”

“우리 회사. 내년엔 어떤 모습일지 말이야.”

진태의 그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들은 우진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마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진태는 지금 사실상 WJ 스튜디오에서 가장 큰 축을 담당해 주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그의 태도에서 이렇게 진심 어린 애사심이 느껴진다는 것은, 오너인 우진의 입장에서 기꺼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후후.’

그래서 우진은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형.”

“뭘?”

“형이 뭘 얼마나 기대하든, 그 이상일 테니 말이야.”

그가 생각하는 오너의 역할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임과 동시에, 그 길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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