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두 번째 방송
<우리 집에 왜 왔니>의 두 번째 편은, 우진도 가장 기대했던 파트였다.
본격적으로 우진이 등장하게 되는 분량이면서, 동시에 그가 디자인한 ‘카페 프레스코’를 수없이 많은 대중들에게 보이게 되는 편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진은, 어지간하면 집에서 본 방으로 시청하려고 했었다.
이번 주 만큼은 말이다.
하지만 쉬려고 했던 일요일에 급하게 잡힌 미팅은, 결국 우진을 출근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우리 집에 왜 왔니>의 방영시간을 따로 생각하거나 체크 할 정신도 없이, 저녁까지 미팅이 길게 이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만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지금 우진의 눈앞에 있는 이 사업주는, 장기적으로 꽤 중요한 고객이었으니까.
카페 프레스코의 창업주, 강석중만큼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오늘, 대표님 만나 뵙길 정말 잘한 것 같네요.”
“하하. 별말씀을요. 저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리아가 추천해줘서 한번 와 본 거였는데……. 이렇게 꼼꼼하게 신경 써주실 줄은 몰랐어요.”
“제 일인데요. 할 수 있다면 더 잘해드려야지요.”
“후훗,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한 대표님!”
“서 대표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주말에 실례 많았습니다.”
오늘 우진이 만난 사람은, 유리아로부터 소개받은 한 여자였다.
정확히는 유리아가 신인 시절부터 관리를 받아 왔던, 그녀가 단골로 찾는 미용실의 원장.
‘한선아’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서나헤어’라는 상호를 가진 헤어 샵 브랜드의 창업주였고.
나이는 서른 초반 정도로, 수하와 비슷한 연배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서나헤어’는, ‘카페 프레스코’처럼, 우진이 전생에서부터 알고 있는, 또 다른 우량브랜드 중 하나였다.
‘역시, 사업은 인맥이 제일 중요하다니까.’
2010년인 지금 시점에서, 서나헤어는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였다.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머리 잘하는 전문 샵으로 알음알음 소문이 나 있었지만.
여의도 KBC 근처에 있는 평범한 매장 하나만 한선아가 직접 운영하고 있을 뿐, 가맹점 하나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진이 ‘서나헤어’의 원장과 미팅할 수 있었던 것이 완전히 우연이냐?
그건 당연히 아니었다.
우진은 ‘서나헤어’라는 브랜드가 연예인 전문 샵으로 시작해서 유명해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고.
그래서 방송을 통해 친분이 생긴 연예인들에게, 한 번씩 슬쩍 물어봤었으니 말이다.
수하나 재엽 등은 서나헤어에 대해 몰랐지만 리아는 마침 이 가게가 생길 때부터 샵을 애용했던 단골이었고.
덕분에 오늘 이렇게, 미팅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갑자기 오늘이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사실 우진이 서나헤어에 대해 알았다고 한들, 다짜고짜 서나헤어의 인테리어를 하고 싶다며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서나헤어의 대표가 인테리어를 필요로 하는 게 어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얘기부터 꺼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기회가 올 때마다 한 번씩 떡밥을 뿌려두기만 하고, 서나헤어가 본격적으로 확장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한 번 정도 손님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결국 손님으로 만나러 가기 전에, 사업주로 만나게 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진의 그 작은 노력들이, 이렇게 우량 사업주와의 인연을 또 만들어 주었다.
오늘 미팅은 이렇게 아주 훌륭하게 마무리되었고 말이다.
[다음 주에 계약서 들고 매장으로 한 번 찾아가겠습니다!]
[ㅎㅎ좋아요!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한선아 대표로부터 답신 온 문자를 확인한 우진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서나헤어’의 새 매장은, WJ 스튜디오에서 인테리어하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해진 것 같았다.
남은 것은 이제, 계약서에 도장 찍는 것뿐이었으니까.
‘좋았어.’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나헤어와의 계약이 아직 프랜차이즈 수준은 아니라는 점.
우진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 한선아가 우진을 찾아온 것은, 단순히 더 넓은 위치로 매장을 옮기기 위함일 뿐이었던 것이다.
‘뭐, 어차피 한선아는 유명한 뷰티 셀럽이 될 예정이고, 조만간 서나헤어는 프랜차이즈가 될 테니……. 급하게 마음먹을 필요 없지.’
집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도, 우진은 오늘 미팅에서 오고 간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바빴다.
그래서 우진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생각하고 있던 <우리 집에 왜 왔니> 2회분 본 방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원래 우진은 중요한 일에 정신을 집중하면 사소한 것들을 잘 잊어버리는 타입이었고.
갑작스레 잡힌 한선아와의 미팅은, 적어도 방송 본 방을 챙겨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흐아. 오늘도 결국 하루 종일 일했네. 얼른 자야겠다.”
열 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온 우진은 곧바로 씻고 잠을 청했다.
급하게 미팅을 준비하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녹초가 된 상태.
우진은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기절해 버렸고.
그렇게 <우리 집에 왜 왔니> 2회분 본 방은, 우진의 기억 속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 * *
우진의 머릿속에 <우리 집에 왜 왔니>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부릉- 부르릉-!
학교에 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건 우진에게, 이른 오전부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응? 석중 형님은 아침부터 어쩐 일이시지?”
그 전화가 바로, 우진에게 잊었던 것을 상기시켜준 전화였다.
[우진아.]
“네, 형님.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인마. 너, 잠깐 통화 가능해?]
“옙. 말씀하세요, 형님.”
[아무래도 우리, 다음 달부터 좀 많이 바빠질 것 같다.]
“저, 지금도 충분히 바빠요, 형. 대체 또 무슨 일이에요?”
[너. 어제 방송 안 봤어?]
석중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우진은 잠시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방송 시청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기억났으니 말이다.
“아……? 방송……?!”
[하, 이놈 진짜 정신없이 사네. 넌 어째 마흔이 다 돼가는 형보다 더 정신이 없냐?]
“그러게요. 그걸 깜빡하고 못 봤네.”
물론 방송을 못 본 게 그리 큰일은 아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진은 어이가 없었다.
‘어차피 그 시간대에 미팅 중이어서 못 봤겠지만……. 그래도 정신을 진짜 어디에 놓고 다니는 거야. 서우진.’
최소한 미팅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서, 방송이 나간 뒤의 반응이라도 한 번 확인했어야 맞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어제 방송 나간 것 때문인지……. 지금 우리 사무실 전화기에 불나고 있다, 야.]
그리고 그 어이없음이 가신 뒤에는, 의아함이 밀려왔다.
“카페가 아니고, 사무실이요?”
<우리 집에 왜 왔니>에 카페 프레스코가 소개된 뒤, 석중이 바빠질 것이야 당연히 예상했던 거지만.
갑자기 왜 자신까지 바빠질 것이라는 건지는 순간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석중의 목소리가 다시 휴대폰 너머에서부터 들려왔을 때.
[그래, 사무실. 지금 프랜차이즈 가맹 문의가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어.]
“예……?”
우진은 석중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방송이 나간 뒤에, 가맹점 문의가 엄청나게 붙기 시작한 모양이구나.’
손님이 아니라 가맹 문의가 늘어난 것이라면, 업장 인테리어를 독점으로 수주한 WJ 스튜디오도 함께 바빠지는 게 당연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진은 좀 놀란 표정이 되었으며, 어제 보지 못한 방영분이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방송이 얼마나 잘 빠졌기에 카페 손님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가맹점 문의가 폭주한 것인지, 무척이나 신기했으니까.
그런데 우진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당장 이번 주에만, 가맹 미팅이 세 곳이나 잡혔어.]
“뭐라고요?”
[이슈화되기 시작하니까, 조금이라도 먼저 입점하려고 경쟁이라도 붙은 모양새더라니까? 하하.]
석중에게 걸려온 전화들은, 단순한 문의를 넘어 벌써 실질적인 컨택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허……. 방송에 대체 뭐가 나간 거지? 재방이라도 바로 돌려봐야겠는데요?”
[그래, 이놈아. 어떻게 방송 처음 나오는 놈이 자기 나오는 부분도 까먹고 안 볼 수가 있어?]
“으으. 그러게요.”
우진은 진심으로 놀랐다.
원래 가맹 문의라는 것이 많이 들어올 순 있어도, 실제로 그 문의가 가맹계약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가맹점을 차려 점주가 된다는 것도 어쨌든 창업의 일환이었고.
때문에 그것을 결정하는 데까지는,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바로 다음 날, 계약 미팅 건이 세 개나 잡혔다?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파급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형님. 가맹 원한다고 해서, 넙죽 다 받아주시면 안 돼요. 아시죠?”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상권 분석 꼼꼼하게 해서, 가게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위치에만 가맹을 내어줘야 한다는 말이에요.”
[음…….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당장이야 가맹점이 늘어나는 게 무조건 본사 차원에서는 이득이겠지만, 장기적인 이미지도 생각해야죠.”
[장기적인 이미지라…….]
“잘 안 돼서 망하는 업장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브랜드 가치가 조금씩 떨어진다고 생각하셔야 해요.”
[반대로 잘되는 업장이 많을수록, 브랜드 가치가 올라갈 테고?]
“그렇죠.”
우진의 이야기를 들은 석중은, 꽤 놀란 눈치였다.
사실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WJ 스튜디오야말로 가맹이 무조건 많이 늘어나길 바랄 텐데.
오히려 자신보다 더 신중한 접근을 하며 조언을 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한번 나랑 다시 얘기해 보자.]
“언제요?”
[미팅 전에 봐야지.]
그리고 석중의 목소리를 들은 우진은,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형님……. 미팅 이번 주라면서요.”
[목요일에 두 건, 금요일에 한 건이야. 전부 본사로 찾아오기로 했어.]
“으으, 시간 없는데.”
[내가 너희 사무실로 갈게. 그러면 되겠어?]
“알겠어요, 형님.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시간 한 번 잡아주세요.”
[흐흐. 그래, 고맙다. 그럼 일단 끊는다?]
“예엡.”
뚝-
석중과의 통화가 끝난 우진은, 이어폰을 조수석에 내려놓으며 다시 한숨을 크게 쉬었다.
“휴우.”
뭔가 끊이지 않고 회사가 굴러가는 것은, 사업가의 입장에서 아주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이러다가는 정말, 몸이 남아나질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하아. 하루가 딱 10시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석중과 통화 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우진은 어느새, 학교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전공 수업 하나밖에 없는 날이었지만, 수업이 끝나면 곧장 사무실로 돌아가서 회의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회의가 끝나면, 수정 설계안을 다시 잡아야겠지.’
10월이 시작된 것이 바로 엊그제 같건만, 날짜는 벌써 중순에 접어든 지 오래다.
그리고 이 10월이 전부 끝나갈 즈음에는, 드디어 청담 선영아파트 사업장의 설계 공모 결과도 결정될 것이다.
‘그때쯤은 돼야, 한숨 돌릴 수 있으려나.’
한번 살았던 시간을 다시 살아서일까?
우진의 시간은, 남들보다 좀 더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