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94화 (94/315)

94화

첫 방영

KBC의 예능2국 국장 유인식은, 여느 주말 밤과 다를 바 없이 오늘도 TV 앞에 앉아있었다.

그가 이 시간이면 항상 시청하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은, 스크린에 닿아있는 그의 눈빛 안에서 유독 긴장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오늘이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첫 방영날이기 때문이었다.

‘제발, 평타만 치자, 평타만!’

국장으로 부임한 뒤.

유인식에게 생긴 유일한 오점이 바로, 일요일 9시 예능이었다.

물론 예상치 못하게 출연진들이 거하게 사고를 치긴 했지만.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을 만큼 처참한 성적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 일요일 9시 예능만 괜찮은 성적으로 틀어막는다면.

유인식의 전반적인 평가는, 확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시간대의 예능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예능에서 평타 이상을 친 유인식이었으니 말이다.

‘신출내기 PD라 조금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내 눈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겠지.’

유인식은 <우리 집에 왜 왔니>를 기획, 제작한 공진영PD에게,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검증되지 않은, 경험이 부족한 PD이기도 했거니와.

사정상 무척이나 촉박한 일정 안에 제작되어, 예정보다 두 달이나 빠르게 방영된 예능이었으니 말이다.

유인식은 이<우리 집에 왜 왔니>가 평범하게 4~5퍼센트 정도의 시청률만 기록해도.

허허, 웃으며 공PD를 칭찬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시작 한다……!”

올해 고3인 딸내미가 방 안에서 공부 중이기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심한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는 유인식.

그는 이번<우리 집에 왜 왔니>의 촬영 필름을 단 한 번도 사전에 본 적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다.

‘일단, 시작은 좋고.’

항상 어떤 예능이던 최종편집 전에 필름을 한번 확인하는 유인식이었지만, 이번 <우리 집에 왜 왔니>를 미리 보지 않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방영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재촬영이나 재편집 같은 것은 불가능했으니.

굳이 미리 촬영분을 봐서, 제작진에게 태클을 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미리 봐도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면.

사전 정보 하나 없이 완전한 시청자의 마음으로 보는 게, 객관적인 판단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인식의 판단이기도 하였다.

“크, 역시 재엽이가 진행은 잘한단 말이야.”

“여보! 민지 공부하잖아요.”

“아……! 미안, 미안. 실수했네. 조용히 볼게.”

아내의 핀잔에 멋쩍은 표정이 된 인식은, 다시 <우리 집에 왜 왔니>의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인식은 완전히 예능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크, 크크큭.”

“조용히 좀 보라니까요?”

“프하핫!”

“아니, 당신 진짜!”

“아빠!”

방 안에서 공부하던 딸내미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튀어나오기까지 했지만.

인식은 도무지, TV를 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실적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오늘 이 예능은 끝날 때까지 봐야 했으며.

그것과 별개로 예능 자체가, 너무 재밌었으니 말이다.

‘공PD가, 포맷을 이렇게 깔끔하게 짤 줄 알았나?’

‘카메라 워킹도 그렇고, 시점연출도 그렇고……. 이거 진짜, 공PD가 자신감 가질 만했는데?’

인식은 소파 구석에 앉아 웃음을 참느라 끅끅거리며, 강제로 리모컨을 뺏기는 일 없이 무사히 <우리 집에 왜 왔니>를 끝까지 시청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예고편까지 꼼꼼히 시청한 그는.

엔딩 크레딧이 나올 즈음, 두 주먹을 다시 불끈 쥘 수 있었다.

‘됐다. 이건 된다. 무조건 평타 이상이야!’

인식은 자신의 예능 보는 눈이, 제법 괜찮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그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어떻게든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노력파였으니 말이다.

물론 ‘만 번의 법칙’이 거하게 망하긴 했지만.

그것도 어쨌든 처음에는, 평타 정도의 성적을 보여줬던 예능이었다.

“휴우.”

“이제 끝났어요?”

“끝났어.”

“그럼 당장 방으로 들어가욧!”

“아, 알겠어. 알겠다고.”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안방으로 들어간 인식은, 침대에 누우면서도 한 손으로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휴대폰을 쥐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잠시 후 걸려올 전화.

그것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잠이 올 리 없었으니 말이다.

‘재미는 확실히 있었는데……. 시청률 몇 퍼 찍혔을까?’

‘소재가 좀 마이너하니까, 7퍼센트? 아니면 6퍼? 5……퍼센트는 넘었겠지?’

아무리 확실한 재미를 느꼈다고 해도, 결과를 완벽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대중성이라는 것은 본디, 개인의 눈으로 완벽히 재단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

우우웅-!

인식은 다시 한번 심호흡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알게 될 결과로 인해, 어떤 방향으로든 너무 큰 충격을 받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여보세요.”

[국장님, 접니다.]

“몇 퍼야?”

[아, 왜 이렇게 급하십니까.]

“그래서 몇 퍼냐고.”

충격받지 않겠다던 인식의 다짐은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국장님. 아무래도 대박 난 것 같습니다.]

“응……?”

[최고 시청률, 14퍼 찍었습니다!]

“뭐라고?”

[최고 시청률 14. 평균 시청률 12……. 이탈도 거의 없는 것 같고, 진짜, 미쳤습니다!]

우당탕-!

너무 비현실적인 수치를 들은 나머지, 벌떡 일어서려다. 발을 헛디뎌 침대 옆으로 넘어지고 만 것이다.

“아으으……!”

“여보! 오늘 진짜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방문을 확 열고 들어온 아내의 잔소리가 다시 쏟아졌으며.

서랍장에 부딪친 옆구리에는 아무래도 피멍이 든 것 같았지만.

인식은 아무래도 좋았다.

“미안, 미안. 이제 진짜로 조용히 잘게.”

지금 이 순간 그의 기분은, 2010년도 들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았으니 말이다.

‘됐어! 됐다고!’

매번 <만 번의 법칙>이야기를 꺼내며 그를 비꼬던 예능1국장의 콧대를 눌러줄 생각에, 벌써 내일 아침이 기대되는 인식이었다.

* * *

월요일 아침.

인터넷 곳곳에서, 차례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KBC 새 예능 <우리 집에 왜 왔니>. 최고 시청률 14.7% 기록!]

[<우리 집에 왜 왔니> 윤재엽&유리아&박두영! 일요일 저녁 예능, 지각 변동 시작!]

[이제는 먹방, 쿡방에 이어, 집방이다? 공진영PD의, 야심 찬 출사표.]

[명품배우 임수하의 변신? 좀 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고파.]

……후략……

2010년만 해도 ‘주거’라는 소재는, 예능에서 거의 다뤄진 적 없던 신선한 소재였다.

그리고 신선하다는 말은 곧, 아직 검증되지 않은 리스키한 소재라는 뜻.

게다가 공진영PD 또한 그리 인지도 있는 PD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우리 집에 왜 왔니>의 대중적 기대는 그리 크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나마 윤재엽과 유리아의 유명세 덕에, 화제성이 좀 생겼던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첫 번째 방영이 끝나고 다음날이 되자,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일단 TV프로가 가진 재미의 척도나 다름없는 지표인 시청률부터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두 자릿수를 기록했으니 말이었다.

└ 와, 이거 뭔데 이렇게 기사가 계속 뜨냐? 집 짓는 예능임?

└ 집을 짓는다기 보단, 리모델링 쪽에 가까운 소재인 것 같던데…….

└ 토막영상 봤는데, 윤재엽 유리아 케미 터진다 진짜 ㅋㅋㅋ

└ KBC에서 또 대충 이상한 거 땜빵할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했나본데?

└ 믿고 거르는 KBC. 알바들은 갑자기 어디서 이렇게 다 튀어나온 거냐?

사실 시청률 12퍼센트라는 결과는, 막 초대박을 논할 정도의 수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2010년 기준 최고 시청률을 보이는 예능은 20퍼센트를 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며.

지난 몇 주 동안 KBC 홍보팀에서 푸쉬한 수준까지 생각하면…….

첫 방영인 것을 감안했을 때, 중박 정도라는 평가가 더 맞다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담당PD가 신출내기라는 점과, 이전 프로가 워낙 망했다는 상황의 특수성 때문인지.

<우리 집에 왜 왔니>의 화제성은, 어지간한 대박 예능만큼이나 아침부터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흐흐. 역시, 첫 방부터 시작이 좋네.”

조금 일찍 학교에 나와 노트북을 편 우진은.

가장 먼저 <우리 집에 왜 왔니>와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보고는,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대박 예능이라는 사실을 알고 시작한 우진에게, 12퍼센트라는 시청률이 그렇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첫 방영분에는 우진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데다, <우리 집에 왜 왔니> 포맷 상 내용도 맛보기에 불과한 수준이었으니.

2, 3화가 방영되면 시청률이 점점 더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우진은 확신하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2화지만……. 1화 반응 보니, 크게 걱정할 건 없겠어.’

기사를 찾아보며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우진은, 일 잘하는 KBC 홍보팀에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게 뭔지 보여주기라도 하듯, 우진이 인터넷 서핑 중인 이 아침 시간에도.

<우리 집에 왜 왔니>와 관련된 기사들이, 우후죽순처럼 계속해서 솟아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방송이 재밌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홍보팀의 역량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화제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케이스도 비일비재했으니 말이다.

‘2화에선 리아 누나 미니홈피랑 같이, 카페 프레스코 화제성이 빵 빵 터져서……. 바퀴벌레마냥 가맹점이나 미친 듯이 증식됐으면 좋겠네.’

그런데 그렇게 신나서 관련 기사들을 검색하던 우진은.

잠시 후 낯 뜨거워지는 기사 제목들을, 하나둘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K대학교 신입생. 떠오르는 건축계의 루키 디자이너, 서우진은 누구?]

[스타 디자이너 김기성. 그리고 K대학교의 신입생 서우진?]

재엽과 리아가 K대 캠퍼스에서 우진을 찾던 내용 때문인지.

우진의 정체(?)와 관련된 기사들도, 심심찮게 지면을 장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좀 낯간지러운데…….’

사실 우진은 별생각 없었지만.

대중의 관심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낯 뜨거운 멘트들이야 KBC홍보팀의 작품일 확률이 높았지만, 화제성을 위해서는 당연한 작업인 것.

애초에 대중들에게는, 신입생이면서 전문가의 포지션에 섭외된 우진이라는 존재 자체가 궁금증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으며.

게다가 리아, 재엽의 홈페이지에는, 우진이 포함된 <우리 집에 왜 왔니> 출연진들의 단체 사진이 게시되기까지 했으니.

이런 소스들이 하나씩 모여, 우진에 대한 화제성이 자연스레 생겨났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화젯거리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이, 우진이 방송에 뛰어들었던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것도 뭐……. 적응되려나?’

몇몇 기사에 WJ 스튜디오라는 이름까지 살짝 언급된 것을 확인한 우진은.

더욱 흡족한 표정이 되어, 노트북에 띄워져 있던 기사들을 하나둘 끄기 시작하였다.

사실 오늘 학교에 일찍 온 이유는, 기사를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이제, 과제를 해볼까……?’

수업 전까지 제출해야 할 과제를 벼락치기 하기 위해.

일부러 수업시간이 되기 두 시간 전쯤, 미리 과실에 도착해 노트북을 폈던 것.

하지만 30분이나 기사를 구경하는데 시간을 날려버린 우진은, 결국 그 야심 찬 계획을 실패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과실에는 동기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앗! 우진 오빠다!”

“우와아! 연예인이다아……!!”

시끌벅적 떠들며 우진에게 다가오는 동기들 덕에, 도무지 과제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저리가! 연예인은 무슨……! 형 과제 해야 해.”

“아, 그러지 말고 형. <우리 집에 왜 왔니> 촬영 썰 좀 풀어줘 봐요.”

“맞아, 맞아. 2화나 3화는 벌써 찍었을 것 아냐?”

“그렇지!”

“유리아 어때요, 형? 진짜 화면에서 보는 것만큼 예뻐요?”

때문에 우진은 한숨을 푹 쉰 뒤, 노트북을 조용히 덮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미리 과실에 온 것은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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