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90화 (90/315)

90화

기회는 어디에서나 찾아온다.

리아가 얼마 전에 건물을 샀다는 사실은, 재엽이나 수하도 전혀 몰랐던 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진을 점쟁이라고 부르는 수하의 마음이, 순간 이해되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리아의 반문이 이어지자, 수하와 재엽은 난리가 났다.

“뭐야, 리아. 너 진짜 샀어?”

“어디에 샀는데? 대박. 우리 리아, 건물주 된 거야?”

“어딘데, 어딘데! 부럽다, 리아.”

우진의 신기에 놀란 리아와, 그녀가 건물을 샀다는 사실에 놀란 재엽과 수하.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상황을 만들어낸 우진 또한 같이 놀랐다는 점이었다.

진심으로 말이다.

“뭐야. 누나 진짜로 건물 샀어요? 그냥 한번 때려 맞춰 본 건데?”

우진은 리아가 건물을 샀는지, 진짜로 몰랐다.

미래의 지식으로 맞춘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돈 많이 벌었으니, 건물이라도 하나 샀겠지. 하는 마음에서 한번 툭 던져본 거였으니까.

하지만 이미 양치기 소년이 된 우진은, 신뢰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와, 연기하는 것 봐, 서우진.”

수하의 말에, 우진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연기?”

“너 솔직히 말해. 어디서 신내림 같은 거 받았지?”

“아, 또 무슨 신내림이야, 누나.”

“얘 조심해라 리아야. 진짜 위험한 놈이야.”

“위험하긴! 나 덕분에 <우리 집에 왜 왔니> 고정패널도 됐으면서.”

“그게 왜 니 덕분이야. 그냥 내가 선택한 거지.”

“아무튼! 난 위험하지 않아. 얼마나 선량한데.”

티격태격하는 우진과 수하를 보며, 재엽과 리아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수하가 워낙 동안이어서인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남매사이 같은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티격태격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 모두의 관심사는, 리아가 매입한 그 건물에 관한 것이었으니까.

“리아, 건물 얘기나 더 해봐.”

재엽의 호기심 가득한 물음에, 리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근데 재엽 오빠.”

“응?”

“오빠는 이미 재작년에 건물 하나 샀으면서, 왜 내가 건물 샀다는 거에 그렇게 놀라고 그래?”

리아의 물음에, 재엽이 과장된 몸짓을 하며 대답했다.

“야, 내가 산 건 진짜, 소박한 거잖아 소박한 거.”

“소박은 무슨. 세상에 소박한 건물이 어디 있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리아를 향해, 재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소박하다는 말은, 결국 상대적인 거야.”

“그건 또 무슨 말?”

“네가 산 건물에 비하면, 분명히 소박할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말도 안 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리아의 반발에, 재엽은 커피를 쪽 빨아들이며 태연히 말했다.

“여기 작년이랑 올해, 너만큼 번 사람이 어딨냐. 네가 건물 샀으면, 진짜 알짜배기로 제대로 샀을 것 아냐.”

“음…….”

“너, 내 건물 알잖아. 내 거보다 싼 거 샀어? 그럼 인정.”

재엽의 말에 리아는 뒷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박할 말이 전혀 떠오르질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그녀가 매입한 건물은, 재엽의 말처럼 정말 알짜 그 자체였다.

재작년에 매입한 재엽의 건물보다, 최소 두 배는 비싼 물건이었던 것이다.

“가로수길 근처에 하나 샀어. 낡은 건물 하나 매입해서, 지금 리모델링 공사 중이야.”

“미친!”

“가로수길!?”

“아, 메인 스트릿은 아냐. 거긴 나도 너무 비싸서 엄두가 안 나더라고.”

“그래도!”

리아의 이야기에, 우진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부동산이라면 여기 있는 누구보다 관심 많고 빠삭한 게 우진이었으니.

그녀가 산 건물이 가로수길 어디에 붙어있는 건지 너무 궁금하였으니까.

‘이거, 진지하게 말하는 거 보면……. 리아 누나 가맹점 하고 싶다는 거 정말 진심인 것 같은데.’

신사동 가로수길이라면, 카페 프레스코의 2호점의 입지로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얘기하는 걸 보니 이면도로 쪽 건물인 것 같지만.

2010년을 기준으로 가로수길 만큼 상징성 있으면서 상권도 좋은 동네는 찾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진은, 누구보다 집중해서 리아의 말을 듣고 있었다.

생각도 못했던 리아의 가맹점 욕심은, 우진의 사업에 또 괜찮은 소스가 될 것 같았으니 말이다.

마음 편히 놀러 와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쨌든 이제 리모델링 들어가서 완공까지 한 3개월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사실 임차인 구하기가 애매해서 걱정이었거든.”

이번에는 우진이 물었다.

“왜요?”

“거기 월세가 좀 비싸? 사실 안정적으로 월세 나오는 임차인 구해서 쭉 맡겨놓고 신경 끄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누가?”

“나 건물 매입 도와준, 부동산 컨설턴트가 그랬어.”

리아는 꽤 깊숙한 이야기까지 나오자 머쓱한 표정이 되었지만,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기왕 여기까지 얘기한 거, 우진의 의견도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수하의 말에 의하면 우진은, 꽤 부동산 전문가인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그냥 방금 즉흥적으로 든 생각인데……. 차라리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이 브랜드를, 통으로 건물에 들여와 보는 건 어떨까 싶네.”

“관리에 신경 쓰기 싫다면서요?”

우진의 반문에, 리아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웃었다.

“그거랑 이건 다르지. 임차인은 남이고, 내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는 내거니까.”

어느새 대화는 리아와 우진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었고.

수하와 재엽은 두 눈을 반짝이며 그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탑 연예인과 스물두 살짜리 대학생의 대화라기엔, 뭔가 큰 괴리감이 느껴졌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잠시 뜸을 들인 우진이, 턱을 살짝 만지작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흐음 그러니까, 정말 생각은 있다는 거죠?”

리아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좋아. 그럼 제가, 꽤 괜찮은 연결고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리아를 비롯한 세 사람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우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우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흥미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누나는 프랜차이즈 수수료를 아끼고, 카페 프레스코는 홍보 효과를 누리고.”

“음……?”

“석중이 형님. 아니, 강 대표님께 얘기하면……. 충분히 괜찮은 딜이 될 것 같거든요.”

우진의 말이 끝나자, 장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말의 의미를, 각자 생각해본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은 어렵지 않게,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다들 적잖이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이었으니까.

“프랜차이즈 수수료를 아낀다면, 얼마나 아낄 수 있다는 거야?”

리아는 아직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차려본 적이 없었지만, 그 수수료가 적지 않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본사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아, 사업을 접는 케이스를 주변에서 여러 번 봤으니 말이다.

그리고 리아의 그 질문에, 우진은 간단히 대답하였다.

“어쩌면 가맹 수수료를 아예 안낼 수 있을지도 모르죠.”

눈이 휘둥그레진 그녀가 재차 물었다.

“그게 가능해?”

“당연하죠. 서로 수지만 맞으면,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리아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우진의 머리는 팽팽 돌고 있었다.

‘일단 건물의 입지나 상권분석도 좀 해봐야겠지만……. 이건 백퍼 되는 딜이야.’

이 제안은 분명, 리아와 석중이 윈윈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도 개인적으로 열심히 홍보해줄 수 있지.”

“그럼, 누나는 딜?”

“네가 주인장도 아닌데, 왜 너랑 딜을 하냐?”

우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대리인 정도라고 해 두죠.”

리아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아, 딜.”

리아는 우진을 향해 오른쪽 주먹을 살짝 들어 보였고, 우진은 거기에 자신의 왼쪽 주먹을 가볍게 맞부딪쳤다.

바쁘게 굴러가는 우진의 머릿속에서는.

어느새 자신과 WJ 스튜디오에 떨어질 콩고물까지, 깔끔하게 계산이 끝나있었다.

* * *

“짠! 여깁니다, 여러분!”

카페 프레스코에 도착하자, 가이드(?) 예영이, 양팔을 활짝 펴며 입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음? 외관은 그냥 평범한데?”

“중요한 건 인테리어라고.”

“그래?”

“나도 사진으로만 보긴 했는데, 안에 공간이 진짜 예술이에요, 언니.”

카페 프레스코 건물 앞에 선 소연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낯익은 이름과 달리, 외관은 완전히 처음 보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 인테리어를 확인한 순간.

“어……?”

디자인에서 뭔가 낯익다는 느낌이 확 든 소연은, 두리번거리며 내부를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예영은, 그런 소연의 행동이 디자인에 감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더욱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하였다.

“진짜, 대박이죠, 언니?”

신난 것은 예영뿐이 아니었다.

“오와! 여기 진짜 짱 멋있다!”

도착 직전까지 영혼 이탈 상태였던 선빈마저도, 눈을 반짝이며 내부를 둘러볼 정도.

“여기 디자인 진짜 느낌 있네.”

“그치, 선빈아?”

“엣헴. 내가 제대로 찾았다고 했잖아.”

하지만 상기된 표정의 팀원들과 별개로, 소연은 계속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생각날 듯 말 듯 머릿속을 간질이는 이 낯익음의 정체를, 어떻게든 떠올리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1층을 빠르게 다 둘러본 소연은, 먼저 2층으로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내가 먼저 2층 올라가서 자리 잡아놓을 테니까, 너희가 커피 시켜서 올라올래?”

“좋아, 언니!”

“알겠어, 누나.”

하지만 2층이라고 해서, 바로 느낌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진짜. 궁금해 미치겠네.’

해서 2층까지 천천히 돌아본 소연은, 일단 빈자리에 가방을 두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생각나지 않은 탓에, 일단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소연이 의자에 걸터앉아 창밖을 응시하던 그때.

“어……?”

맞은편 창가 구석에 위치한 카페 프레스코의 비즈니스 룸에서, 몇몇 사람들이 걸어 나오는 것이 소연의 눈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

소연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비즈니스 룸에서 나온 2남 2녀 중 한 사람이, 그녀가 무척이나 잘 아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뭐야. 우진 오빠잖아?’

해서 소연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바쁘다며 학교에서도 일찍 나간 우진이, 어째서 여기 있는 건지 궁금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잠깐.’

우진과 함께 나온 얼굴들을 확인한 소연은,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우진뿐 아니라 나머지 세 사람도, 그녀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으니 말이었다.

‘미친……! 윤재엽이잖아? 게다가 유리아?’

마지막으로 임수하의 얼굴까지 확인한 소연은, 우진이 왜 여기 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멤버는 분명, <우리 집에 왜 왔니>에 우진과 함께 촬영에 나오는 연예인들이었으니 말이다.

정확히 왜 만났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프로그램과 연관된 비즈니스일 터.

게다가 한 가지 더.

소연은 방금 전까지 계속 궁금했던 낯익음의 정체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우진을 발견하고 나니, WJ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 봤던 ‘카페 프레스코’ 디자인 제안서가 드디어 떠오른 것이다.

‘그래, 이제야 기억났네. 생각해보니 여기, 우진 오빠가 디자인한 곳이었잖아?’

때문에 처음에 소연이 느낀 감정은, 감탄. 그다음엔 당황스러움이었다.

학교 과제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팀원이 찾아온 그 핫 하다는 상업공간이.

알고 보니 같은 10학번 동기이자 친한 오빠인, 우진이 디자인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미팅이 있다며 서둘러 하교한 우진이 만나고 있던 사람들은, 연예인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만큼 유명한 사람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그런데, 소연이 그렇게 얼빠진 표정으로 당황해 있던 그때.

소연의 귓전으로, 돌연 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한소연?! 네가 여기 왜 있어?”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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