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세 번째 촬영
인테리어의 자재들은 그 용도와 재질에 따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로 분류되어 있다.
때문에 어느 한 업체에서 이 모든 자재들을 취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일단 전문성부터가 떨어질뿐더러, 품질관리도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 집에 왜 왔니>촬영팀이 방문한 ‘럭셔리 하우징’이라는 업체도, 모든 종류의 자재를 직접적으로 취급하는 곳은 아니었다.
다만 각 자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들과 연계하여, 그들의 물건을 팔아주는 역할을 하는 유통업체인 것이다.
‘럭셔리 하우징’의 매장 안에 들어서 출연진들은, 널찍한 공간에 진열되어있는 수많은 건축자재들을 보며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와우, 엄청나잖아?”
양쪽으로 쫙 펼쳐진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과 자재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고.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으니까.
특히나 신이 난 두 여성 출연자들은, 총총걸음으로 뛰어 들어가 그것들을 구경하기 시작하였다.
인테리어 소품들 중에는, 감성을 자극하는 아이템들도 꽤 많았다.
“그냥 오늘 여기서, 싹 다 주문해서 사버리면 되겠는데?”
“그러니까! 다른 데는 갈 필요도 없겠어!”
하지만 흥분한 수하와 리아는, 곧 제지(?)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들의 뒤를 따라 들어간 재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으니 말이다.
“진정해, 유리아. 아직 우리, 예산도 안 정해 졌다고.”
“예산?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완전 처음 듣는 얘긴데?”
‘예산’이라는 재엽의 말에, 토끼 눈이 된 유리아와 임수하가 두 눈을 깜빡였다.
공진영PD는 리얼리티를 이유로 출연진들에게도 촬영 포맷을 전부 공유하지 않았고.
때문에 두 여자의 놀란 표정은, ‘진짜’라고 할 수 있었다.
“오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예산이라니.”
수하의 물음에, 재엽이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너희, 돈 없이 인테리어 하려고 했어?”
“음……?”
“당연히 인테리어를 하려면, 예산이 필요한 거지.”
이번에는 게슴츠레한 표정이 된 유리아가, 옆에서 툭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예산이야 그냥, 마음대로 쓰면 되는 거 아니었어?”
“뭐?”
“오빠네 집 인테리어잖아.”
“그런데?”
“오빠 돈으로 인테리어 하는 거니까, 예산은 당연히 무한인 줄 알았지.”
“대체 그게 무슨 논리야.”
“오빠 돈 많잖아.”
“야, 나 요즘 힘들어…….”
촬영 스텝들은 세 사람의 대화를 열심히 촬영하였고, 우진은 옆에서 그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예산’이라는 말에 놀란 수하나 리아와 달리, 우진은 전혀 놀라지 않았으니 말이다.
원래 <우리 집에 왜 왔니> 셀프 인테리어는, 항상 정해진 예산 안에서 작업하는 게 기본 포맷이었고.
우진은 그 내용을, 아주 열심히 시청했던 애청자였으니까.
일반 출연진들과 달리 전문가 패널들은, 어느 정도 귀띔을 받기도 했고 말이다.
잠시 세 사람이 투닥거리는 것을 지켜보던 우진이,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툭 끼어들어야 할 타이밍이 보이는 우진이었다.
“그래서 재엽이 형. 예산은 얼만데요?”
“흠흠, 그건 나도 몰라.”
“와, 이 오빠가 장난하나!”
“왜냐면 이제부터, 피디님이 알려주실 예정이거든.”
“뭐지……? 뭔가 불길한 냄새가 나는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수하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출연진들의 시선이 일제히 공진영PD를 향했다.
이어서 공PD는 사악한(?) 웃음과 함께, 미리 준비해 뒀던 포맷을 네 사람에게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자. 제가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저희 <우리 집에 왜 왔니> 촬영팀은 매우 가난하답니다.”
윤재엽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하, 그래서 내 출연료가…….”
“거기까지. 오빠, 방금 발언 좀 위험했어.”
재엽의 투덜거림에 피식 웃은 공PD가,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러분. 그러니까 재엽팀은 물론, 두영팀에게도, 인테리어 비용으로 지원되는 금액은 아주 한정될 수밖에 없지요.”
공진영PD의 말이 끝나자, 장내가 살짝 어수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끼이익-!
‘럭셔리 하우징’의 매장문이 열리면서, MC두영을 비롯한 상대 팀의 출연진들이 우르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두 팀이 함께하는, 첫 번째 촬영이 시작된 것이다.
* * *
윤재엽이 30대 중반의 떠오르는 예능인이라면, 박두영은 마흔이 넘은 중견 예능인이었다.
특유의 걸걸하면서도 능글능글한 말투와, 한 번씩 날카롭게 파고드는 독설로 유명해진 예능인.
그는 우진이 전생에서 경험했던 2030년까지도 롱런하는 우량주 같은 예능인이었고, 때문에 우진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는 연예인 중 한사람이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시즌2까지, 고정 패널로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하고 말이다.
“뭐야, 재엽이네가 먼저 와있었잖아?”
“두영이 형, 너무 게을러지신 거 아니에요?”
“야, 난 잘못 없다. 우리 팀 빡빡이가 지각해서 그래.”
“아니, 형님! 빡빡이라뇨. 말씀이 좀 너무하시네.”
재엽과 두영이 틱틱대는 사이로, 두영과 같은 팀의 패널인 오동우가 끼어들었다.
동우는 래퍼 출신의 예능인으로, ‘오동’이라는 별명으로 보통 불리는 연예인이었다.
그리고 오동은, 반질반질한 대머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래퍼였다.
“빡빡이를 그럼 빡빡이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
“아니. 좀 순화해서 대머리라던가……. 잠깐. 그것도 좀 이상하네. 그냥 이름을 불러줘요, 이름을!”
재엽도 한마디 거들었다.
“빡빡이가 입에 착착 감기는데 어떡해. 그게 싫으면 머리 길러오던가.”
“아 놔. 이형들이 진짜. 머리가 자라야 기르……. 후……. PD님! 저 이형들이 괴롭혀서 방송 못하겠어요! 집에 갈래요!”
“뭐야, 너 자발적 대머리 아니었어? 지난번에 그렇다며!”
“당연히 자발적이죠. 아무튼 자발적입니다.”
‘두영팀’의 멤버도, ‘재엽팀’과 마찬가지로 네 사람이었다.
리더인 박두영과 대머리 오동. 그리고 개그우먼인 정민하와 전문가 포지션의 김기성까지.
그렇기에 양 팀의 멤버가 전부 모여 여덟 명이 카메라 앞에 서자, 촬영장은 제법 북적이기 시작하였다.
“으아앗! 민하 언니! 오랜만이에요!”
“와 어떻게 같은 방송 네 번째 촬영하는데 이제 얼굴을 처음 보냐.”
“그러니까 말이에요. 민하 언니랑 같이 출연한다 해서 맨날 볼 줄 알았는데.”
“그건 그렇고, 여기 옆에 오신 분이……. 임수하 배우님?”
“네, 언니. 제가 알기로 두 분 동갑내기신데…….”
“와! 반가워요 민하 씨! 저, 민하 씨 팬이에요!”
“아니, 배우님께서 팬이라고 해주시니까, 갑자기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봤죠, 두영 선배? 나 이런사람이라니까?”
정민하는 개그우먼이지만, 어지간한 가수나 배우 못지않게 예쁘장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물론 아름다운 외모와 대비되는 털털하고 거친(?) 입담이 그녀의 매력이었지만 말이다.
출연진들이 저마다 인사를 나누며 촬영장이 시끌벅적해졌지만, 공진영PD는 딱히 그 모습을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어수선한 분위기 안에서도 재미있을 부분만 편집해서 방송에 내보내면 그만이었다.
출연진들끼리의 대화가 어느 정도 잦아들자, 재엽이 능숙하게 분위기를 정리하며 진행을 시작했다.
“자, 그럼 피디님. 두영이 형네까지 왔으니, 이제 슬슬 공개해 주시죠.”
공피디가 웃으며 되물었다.
“뭘요?”
“당연히 ‘예산’이지 뭐겠어요. 오늘 인테리어 예산, 공개해 주기로 하셨잖아요!”
재엽팀과 두영팀은, 두 번째 촬영 때 이미 디자인 컨셉과 1차 설계안을 전부 짠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현업에서라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산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설계를 짠다는 것 자체가, 순서상 아이러니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예능이었고, 그렇기에 가능했다.
심지어는 애초에 공PD가 짜 놓은 포맷 자체가, 예산이 들쑥날쑥 변동되는 구조였으니까.
양 팀에게 주어지는 인테리어 예산은, 촬영 동안 주어지는 각종 미션과 게임에 의해 계속 바뀌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재엽과 두영이 각각 출연진에게 다가가 예산이 쓰여 있는 폼보드를 받아왔고.
잠시 후, 둘은 동시에 보드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떼어내었다.
“자, 그럼. 두 팀에게 각각 책정된 예산을 공개합니다!”
촤라락-!
그리고 두 사람이 들고 있던 보드에는, 정확히 같은 숫자의 예산이 쓰여 있었다.
[5,000,000\]
* * *
2010년도 당시 보통 가정집의 인테리어 비용은, 전용면적을 기준으로 평당 70~120만원 정도였다.
25평 아파트의 전용면적이 보통 18평 정도였으니.
해당 평수를 기준으로 풀 인테리어를 하면, 대략 천오백만 원에서 2천만 원 초반 정도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업체에 따라 지역에 따라 더 천차만별로 나뉘긴 하지만, 이 정도가 일반적인 비용.
그런 의미에서 양 팀에게 주어진 500만 원이라는 비용은, 정말 택도 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피, 피디님! 이거 0 하나 빠진 거 아니죠?”
재엽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공PD가 웃으며 대꾸하였다.
“그럴 리가요. 아주 정확하게 오백만 원입니다.”
“말도 안 돼! 우리 집 53평이라고요, 피디님!”
“그건 재엽 씨 사정이고요.”
두영도 벙찐 표정으로 말했다.
“으어, 500만 원으로 무슨 인테리어를 해! 마룻바닥 깔면 끝이겠다!”
물론 공PD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 마룻바닥만 까셔도 돼요.”
“…….”
“디자인 점수는, 시청자분들이 매겨주실 테니까요. 후훗.”
생각지도 못했던 소액(?)에, 출연진 전원이 벙쪘다.
전문가 포지션으로 출연한, 서우진과 김기성을 제외하고 말이다.
사실 이 두 사람은, 미리 주어질 예산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 예산이 책정된 배경이 바로, <우리 집에 왜 왔니> 제작진과 두 전문가의 비밀 회동(?)이었으니까.
우진과 기성. 그리고 제작진들이 고심 끝에 설정한 최대한 재밌는 그림을 뽑아낼 수 있을 만한 최초비용이, 바로 500만 원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출연진에게도, 시청자들에게도 비밀이었지만 말이다.
“우리 집은 재엽이네 집보다 더 넓다고요 피디 님! 넓은 만큼 조금 더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와, 이 형이 어디서 약을 팔어! 우리 집보다 딱 한 평 넓으면서.”
“재엽이 너 지금 한 평 무시하냐! 어쨌든 넓은 건 넓은 거야!”
티격태격하는 두 리더와,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패널들.
그런 그들을 웃으며 지켜보던 공PD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여러분! 예산 보니까, 부족해 보이죠?”
“아니, 그걸 지금 말씀이라고……!”
“딱 세 배만 올려주시죠, 피디님.”
공진영PD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지금부터, 미션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미션이요?”
“이 프로, 장르가……. 리얼 버라이어티 쇼였나요?”
출연진들은 웅성거렸지만, 공PD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했다.
“자, 여기에 카드 세 장이 있습니다. 재엽 씨랑 두영 씨가, 한 장씩 뽑아 주세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피디가 내민 카드들을 향해 다가가는 재엽과 두영.
두 사람이 한 장씩 카드를 뽑아 들자, 본격적인 미션이 시작되었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