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78화 (78/315)

78화

시너지(Synergy)

8월 둘째 주 목요일.

뜨거운 여름 밤.

화장과 조명으로 인해 하얗게 뜬 우진의 이마 위로, 송글송글 땀이 맺혀 흘러내린다.

“컷-!”

“여기까지!”

그리고 이 더운 열대야 속에서, 우진의 첫 번째 촬영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야. 벌써 끝이라니! 빨라도 10시까진 카메라 잡을 생각 하고 있었는데.”

“방송이 잘 빠져서 그렇지 뭐. 다시 찍은 컷 하나도 없잖아?”

“공PD님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더라고. 최대한 한 번에 쭉 찍어서 편집으로 승부 보는.”

“어쨌든 이번 방송, 시작이 좋은 것 같아.”

“그러니까 말야. 방송 포맷 듣고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이거, 찍는 와중에도 재밌더라니까?”

총 두 시간 정도의 촬영이었지만, 아마 실제로 이 부분이 방영되는 것은 20분 미만일 것이다.

공진영 PD의 이야기에 의하면 카페 프레스코를 배경으로 한 장면은, 첫 방송의 마지막 장면으로 쓰일 짧은 컷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우진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좋은 기분은, 새로운 경험으로부터 오는 즐거움 같은 것이었다.

‘살다 보니 내가 방송에도 다 나와 보고. 재밌네, 정말.’

사실 처음 임수하의 차 안에서 그녀에게 떡밥을 던질 때만 해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우진이다.

하지만 결국 상황은 우진이 원했던 완벽한 그 상황으로 흘러갔고.

이렇게 오늘 첫 촬영까지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인기 스타인 윤재엽과 유리아와의 친분은 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진 씨, 오늘 정말 멋졌어요.”

“감사합니다, 리아 씨.”

“맞아. 우진 씨 진짜 최고. 앞으로 잘 한번 해 봅시다. 하하.”

“재엽 씨도 고맙습니다. 덕분에 진짜 촬영 엄청 편했어요.”

윤재엽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으며 우진의 어깨를 두들겼고.

유리아 또한 촬영 내용이 마음에 들었는지, 밝은 표정이었다.

원래부터 친분이 있었던 수하와는, 더욱 친근하게 대화할 수 있었고 말이다.

“서 대표님, 그냥 아파트 전문가인 줄만 알았는데……. 오늘 다시 봤어, 정말.”

“하하, 제가 자신 있다고 말했잖아요, 배우님.”

“근데, 이제 그 배우님이라는 호칭은 조금 바꾸는 게 어때요? 재엽 씨랑 리아한테는 가수님 연예인님 안 하면서, 왜 나만 배우님이야?”

“입에 잘 안 붙잖아요.”

“그거 사실, 처음부터 좀 부담스러웠어.”

“그래요? 그럼 그냥 수하 씨라고 하죠 뭐. 대신 배우님도 저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그럼. 대표님 호칭도 부담스러우니까.”

“그래, 좋아요. 근데 수하 씨라고 부른다면서, 또 배우님이라고 하네.”

“아, 맞다.”

우진은 같이 촬영한 출연진들과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눈 뒤, 다른 스텝들에게도 하나하나 감사인사를 했다.

하여 그 좋은 분위기 속에서 촬영팀은 전부 해산하였고.

이제 카페 프레스코에 남은 것은, 우진을 비롯한 WJ 스튜디오의 직원들이었다.

직원 대부분이 그때까지도 퇴근하지 않고, 우진의 촬영을 구경 중이었던 것이다.

“와, 우리 대표님. 진짜 잘 나가네 잘 나가.”

“대표님 방송도 타시고……. 이제 WJ 스튜디오, 대기업 되는 겁니까?”

진태가 다가와 농담을 건네자, 우진이 너스레를 떨며 고개를 저었다.

“형, 대기업은 무슨. 아직 구멍가게야 구멍가게.”

“그럼 더욱 열일하시죠, 대표님. 제 월급 올려주기로 하지 않으셨슴까.”

“그래서 이렇게! 방송국까지 뛰어다니면서 영업하잖아. 어디 예능까지 출연하면서 영업 뛰는 대표 본 적 있어 형은?”

우진의 과장된 제스쳐에, 진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진짜 이거 방송 나가면, 홍보 좀 되겠더라.”

“뭐가? 우리 회사? 아니면 카페 프레스코?”

“둘 다지, 당연히.”

진태는 우진의 방송 출연을 정말 제 일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최근 그는 WJ 스튜디오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회사에 적잖이 애사심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갓 설립된 작은 회사를 이렇게 하나하나 키워나가는 것은, 디렉터 급 역할을 하는 진태의 입장에서 활력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맞아. 형 말처럼 둘 다일 거고……. 그게 결국 다 같은 개념인 거지.”

“같은 개념이라니?”

“어차피 카페 프레스코가 유명해지면, 분명히 그 뒤로 WJ 스튜디오의 이름이 붙을 테니까.”

“아하.”

“아마 우리 인지도 올리는데 엄청 도움 될 거야. 그러니까 타이밍 잘 봐서, 한 번에 회사 덩치 한번 확 불려 보자고.”

본래 어떤 호재(好材)나 기회는 갑자기 찾아온다고 하지만.

이번에 WJ 스튜디오에게 오게 될 기회는 우진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었고, 때문에 충분히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 당연한 얘기겠지만…….

같은 기회가 온다고 해도 그것이 갑자기 오는 것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충분히 준비된 상황에서 오는 기회는 더 크게 살릴 수 있는 법이니 말이다.

때문에 우진은 이 예능이 방영되기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 둘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법인에서 벌어들인 모든 돈을 투자하여, 공사 규모를 단숨에 늘릴 수 있는 인프라를 최대한 만들어 놓고.

예능으로 인해 생길 인지도를 과감히 활용하여, WJ 스튜디오의 마케팅 수단으로 쓸 준비까지 말이다.

우진이 볼 때 변수는 없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애초에 잘 되었던 예능이었으며, 최소 우진의 개입이 방송의 재미에 나쁜 영향을 줬을 리는 없었으니까.

원래 우진이 아니었다면 섭외되었을 전문가는 나이 50대의 설계사무소 소장이었고.

적어도 그보다는 우진이 훨씬 재밌는 사람이었다.

‘파급력이 얼마나 될지 까진 가늠이 잘 안 되지만……. 그래도 물 들어올 때 최대한 노를 저어 봐야지.’

하지만 우진의 생각과 달리.

그가 예상한 범주를 벗어나, 완전히 다르게 흘러간 일도 하나 있었다.

촬영이 있던 날로부터 일주일쯤 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고 카페 프레스코가 오픈한 바로 그 주말.

집에서 쉬고 있던 우진의 휴대폰에, 확연히 상기된 목소리가 울려퍼진 시점부터 말이다.

[서 대표님, 주말에 전화 미안합니다.]

“아, 아니에요, 강 대표님. 오늘 오픈 잘 하셨나요?”

[하하, 물론입니다. 사실 그 때문에 전화 드렸으니까요.]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하자가 발견된다면 바로 말씀 주십시오. 최대한 빨리 보수해 드릴 테니…….”

[아아, 하자라뇨. 그런 것은 전혀 없습니다. 하하핫!]

“그래요? 그럼 어떤 일로…….”

[혹시 오늘 시간 되신다면, 저희 매장에 한 번 들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제가 오늘, 대표님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 * *

2010년의 한국은, SNS라는 개념이 막 생기기 시작하던 때였다.

아직 SNS의 대중화는커녕, 그 개념 자체도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기인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연예계 가십거리들은, 연예인들이 직접 관리하는 미니홈페이지나 블로그. 혹은 그 내용을 기사화한 인터넷 기사를 통해 확산되었고.

경기도 고양시에 생긴 한 카페와 관련된 이슈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진]

오늘 다녀온 삼송역 카페.

우리 집 근처에도 이렇게 감성 넘치는 카페가 생기다니……!

여기 로비 멋있는거 보이시나요, 여러분?

커피도 진짜 존맛…….

앞으로 저, 여기만 다닐 겁니닷!

진짜예요!

Ps. 혹시 여기서 나 발견해도……. 제발 모른 척해주세요, 여러분. 나 여기, 정말 편하게 자주 오고 싶어 ㅠㅠ

Ps2. 그리고 여러분, 여기 아직 오픈 안 된 카페예요. 저는 지인 찬스로 특별히 오픈 이틀 전에 들어왔지만!

아이돌 출신이면서 배우 뺨치도록 예쁜 얼굴과 몸매. 그리고 솔로 데뷔하면서 다시 재평가된 뛰어난 가창력까지.

그로 인해 최근 들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가수 유리아의 미니홈페이지는 하루 방문객 수가 만 단위를 훌쩍 넘을 정도였고.

때문에 그녀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몇 장의 사진을 포함한 게시물은, 순식간에 웹상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 언니! 대박!! 여기 어디예요?

└ 나도 갈래!

└ 삼송에 이런 데가 생겼다고요? 거기 논밭 아님?

└ 삼송역에 작년인가 KBC신사옥 생겼잖아. 거기 근처에 생긴 카페인가본데?

└ 와, 나 사진보고 무슨 해외인 줄 알았어. 누가 제발 좌표 좀 찍어줘.

하루 반나절 만에 천 단위가 넘는 댓글이 달린 유리아의 게시물은, 당연히 기자들의 훌륭한 인터넷 기삿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많은 기사들은 네티즌들에 의해 다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덕분에 게시된 이미지의 주인공인 카페 프레스코는, 오픈 첫날부터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을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것이 지금 우진의 눈앞에 있는 강석중의 입에, 함지박만한 웃음이 걸려있는 이유였고 말이다.

“서 대표님 덕에 우리 가게, 오늘 하루 만에 매출 일주일 예상치를 훨씬 넘어버렸어요.”

“하하, 저도 이렇게까지 이슈가 될 줄은 몰랐네요. 리아씨가 본인 홈페이지에 카페 사진을 올려줄 줄도 몰랐고요.”

이렇게 이슈가 될 줄 몰랐다는 우진의 말은, 정말 진심이었다.

물론 방송이 나간 뒤에 이슈가 될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방송은커녕 고작 카페가 완공되었을 뿐인데, 이 정도로 빠르게 이슈가 확산되어 사람이 몰린 것은 정말 예상 밖이었으니 말이다.

‘리아씨가 카페 지인오픈 좀 먼저 해달라기에, 자기 홈페이지에 뭘 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우진의 기준에서 2010년은, 그가 살았던 2030년에 비해 인터넷 환경이 너무도 낙후되어있던 시기였다.

다른 건 다 몰라도 SNS조차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기였으니.

유리아가 올린 사진 한 장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퍼질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진의 예측이 어쨌든 오늘 석중의 카페 프레스코가 말 그대로 미어터진 것은 현실이었고.

그 공이 오로지 우진에게 있음 또한, 100퍼센트 사실이었다.

카페 프레스코의 커피나 디저트가 훌륭한 것은 오늘 모인 손님들의 재방문 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지.

오픈 첫날 몰린 인파와는 무관했으니 말이다.

오늘 문전성시의 원인은 오로지 우진의 방송 출연과, 유리아의 마음에 쏙 든 카페 프레스코의 인테리어였다.

“그래도 이거, 너무 비싼 거 사주시는 거 아닙니까?”

우진은 자신의 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석중이 그를 데려간 음식점은 한 끼에 수십만 원이 넘는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이었고, 그것은 음식의 가격을 모르고 들어온 우진이 보기에도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대표님 덕에 얻은 것들과 비교하면……. 이 음식들의 가격은 정말 별 것 아닌 수준이죠.”

“뭐,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신다면야.”

석중의 이야기에 부담을 완전히 덜은 우진은, 탁자에 차례대로 나오는 음식들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고, 우진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흐흐, 다 떠나서 재벌 3세한테 이정도 한 끼는, 내가 떡볶이 사 먹는 수준이랑 별반 차이도 나지 않을 테지.’

우진은 혀에 느껴지는 황홀한 식감과 맛에 심취했다.

이 음식들은 그가 전생까지 통틀어 먹어 본 모든 음식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을 만큼 맛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진이 아무 생각 없이 식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업가인 우진에게는 재벌 3세인 석중과의 사적인 자리가, 활용하기에 따라 꽤나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더구나 그 재벌이, 이렇게 우진에게 호의적인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 우진은 강석중의 말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듣고 있었다.

우진이 볼 때 석중은, 단순히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자신을 여기까지 부른 게 아니었으니까.

우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잠시 스테이크를 썰던 석중의 입이 천천히 다시 열렸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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