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75화 (75/315)

75화

첫 번째 촬영

설계를 뜯어고치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다.

한 곳을 고치면 다른 부분에도 필연적으로 영향이 가게 되고, 그렇기에 고려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진은 사무실에서 밤까지 꼴딱 새 가면서, 결국 설계를 전부 다 고쳐내었다.

골든 프린트로 인해 얻은 깨달음을, 전부 다 도면 위에 반영한 것이다.

‘좋아. 시공은 조금 힘들어도, 이렇게 입면 구조를 비대칭으로 만들면……. 가운데 들어서는 메인 오브젝트의 존재감이 더 강렬하게 드러날 거야.’

사실 이번에 골든 프린트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별개로.

우진이 고생하며 수정한 설계는, 기존의 설계도에서 다이나믹하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디자인 컨셉과 평면구조 자체가, 전혀 바뀌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우진이 작업한 것은.

유저가 움직이며 바라보는 시야 각도에 따라, 답답하게 느껴지는 공간의 내벽을 과감하게 들어내거나.

콘크리트 질감과 회색 벽돌로 디자인되어 있던 전면 파사드의 진입로 부분을 통유리 재질로 바꾸는 정도의 작업이었다.

매장에 들어선 고객들의 시야 확보를 좀 더 용이하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디자인 컨셉은 조금 더 강조한 것이다.

우진의 기준에서 이전의 디자인이 89점 정도의 퀄리티였다면.

새로 얻은 깨달음을 통해 완성한 디자인의 점수는 91점 정도.

굳이 고생해가며 설계를 전부 수정한 대가치고는 아쉬울 수도 있었지만, 우진은 한 치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수정하였다.

이런 미세한 노력이 누적되어 커다란 차이가 만들어지며.

우진은 그것이 자신의 목표에 한 걸음 더 빠르게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어.’

덕분에 착공 일정은 3일 정도 지연되었고, 실무 총괄의 역할을 하는 진태에게 한 소리 들어야 했지만.

그것이야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어후, 이번에는 좀 여유롭게 공사 시작하나 했더니. 꼭 이렇게 막판에 설계를 뒤집냐.”

“하하, 어쩔 수 없었어, 형. 그래도 바뀐 설계가 확실히 나을 테니, 고생한 보람은 있을 거야.”

“그래, 뭐 디자인이야 네가 잘 알겠지.”

사실 3일 정도의 공사 지연은, 원래대로라면 일정에 아무 무리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방송이라는 변수가 함께 겹치면서, 거기서 이틀 정도가 추가로 빠지게 되었고.

때문에 전체적인 시공 일정이, 꽤나 빡빡하게 잡혀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WJ 스튜디오의 직원들의 표정은, 평소보다 오히려 더 밝았다.

그들이 밝은 이유는 하나.

예능 촬영이라는 호재(?)덕에, 연예인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반장님. 다음 주에 진짜, 유리아 오는 거죠?”

“다음 주는 아니고, 그다음 주 초 정도. 대표님이 거짓말하신 게 아니라면 말이야.”

“으으아! 윤재엽도 오고 임수하도 온다던데.”

“아 진짜? 윤재엽이 온다고? 근데 임수하는 누구야? 배우인가?”

“응. 아마 얼굴 보면 알걸? 연기파 조연으로 유명한데, 예쁘기도 엄청 예뻐.”

윤재엽은 2008년쯤부터 급속도로 인기를 얻어, 현재는 간판MC중 하나로 자리 잡은 인기 개그맨이었다.

유리아는 오 년 전쯤까지 무명의 걸그룹 메인보컬로 활동하다가, 최근에 솔로로 데뷔하면서 엄청나게 인기를 얻은 여가수.

그 두 사람에 임수하까지가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 우진과 한 팀으로 움직이게 될 연예인들이었고.

그래서 우진이 작업하는 현장에 함께 오게 될 인물들이기도 하였다.

“자, 다들 쓰잘데기 없는 소리 그만하고, 오늘 내로 철거 싹 끝내야 한다. 알지?”

“예썰! 당연하죠!”

어떻게 보면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는 작업자들이었지만, 덕분에 현장의 분위기는 더없이 밝았다.

현장 분위기가 좋으니, 일의 능률도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

손발이 착착 맞는 작업자들 덕에, 공사는 무리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총 300평이 넘는, WJ 스튜디오가 시공했던 모든 공간 중 가장 넓은 면적의 공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 빠르게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모든 것이 분위기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석중이 더위 속에 일하는 작업자들을 위해, 시스템 에어컨을 빵빵 틀도록 해준 것도 큰 도움이 되었으며.

결정적으로 오랜만에 직접 현장에 나와 목공파트를 컨트롤한 우진이, 빠른 작업 속도의 가장 큰 이유였으니 말이다.

“햐, 대표님 기술은 진짜 매번 봐도 신기하다니까.”

“대표님 진짜 스물둘 맞아요? 스물두 살이 무슨 다루끼(각목)를 즉석에서 저렇게 정확하게 잘라 붙여?”

“반장님이 얘기하실 땐 그냥 농담인줄 알았는데……. 대박이네, 대박.”

작업자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진태가, 피식 웃으며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살부터 목공질 하면 저렇게 된다더라.”

“반장님, 그건 또 무슨 말?”

“대표님이 전에 그러셨거든. 나이는 스물둘이지만, 경력은 이십 년 차라고.”

그러자 목수들 중 가장 어린 진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했고.

“경력이 이십 년인 것과 나이가 스물둘인 것 중에, 뭘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네요.”

진태도 웃으며 대꾸하였다.

“나도 그래. 하하.”

목공과 전기반의 작업까지 전부 끝나자, 공간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자리 잡혔다.

우진은 모양새가 완성되어갈수록 자신의 설계에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며.

그렇게 공사는 마지막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A파트 조명 확인해 주시고! 1층 파벽돌*[부서진 벽돌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인테리어에서는 벽에 붙이는 벽돌타일을 통칭한다.] 마감은 한 시간 내로 끝내주세요!”

공사가 끝나기 5일 전쯤에는, 메인이 되는 마감재까지 하나 둘 시공이 되며 공간의 분위기가 살아났으며.

2일이 남은 오늘, 일정에 잡혀있던 모든 공사가 끝난 오후 다섯 시쯤에는.

이제 세부 마감 작업을 제외한 모든 공사가, 깔끔하게 끝난 상황이었다.

내부에 들어갈 가구들과 소품까지도 거의 다 배치가 되어서, 거의 완공에 가까운 공간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작업 마감 후 현장정리를 마친 작업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공간에 저마다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야, 진짜 멋지게 잘 뽑혔네요.”

“노출 천장이 이렇게까지 예쁠 줄이야.”

“내가 작업했지만, 해외 유명 잡지에 실릴 것만 같은 공간이야.”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든 작업이 끝났음에도, 거의 대부분의 작업자들이 퇴근하지 않고 현장에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야, 니들 집에 안 가? 평소에는 작업만 끝나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튀어 나가는 것들이…….”

“반장님은 왜 안 가십니까?”

“나야, 어! 마무리작업도 해야 하고. 대표님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고도 드려야 하고! 어!”

“거짓말 마십쇼. 그러다 대머리 됩니다!”

“공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하다가 대머리가 된다고?”

“원래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하지만 현장에 있는 모두는, 다들 왜 안 가고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으앗! KBC 촬영팀 들어온다!”

“어디, 어디!”

“저쪽 주차장!”

오늘 있을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촬영과 함께, 연예인들을 구경하기 위함이었다.

* * *

임수하는 오늘, 한껏 꾸미고 집을 나서는 중이었다.

오늘은 <우리 집에 왜 왔니>에 합류한 이후 그녀의 첫 번째 촬영이 있는 날이었고.

때문에 매니저 송지호의 닦달로 인해, 하루 종일 온몸을 치장했던 것이다.

“임수하, 오늘 진짜 잘해야 해. 알지?”

“아, 알겠다니까, 오빠. 벌써 50번은 들은 것 같아.”

“아직도 500번은 더 얘기하고 싶은데, 겨우 겨우 참는 중이야.”

“제발. 이러다 노이로제 걸리겠어. 스토커도 오빠처럼은 안 할거야.”

“너, 스토커도 없잖아. 더 유명해져야 그런 것도 생기지.”

“으악! 나 잔다! 도착할 때까지 말시키지 마!”

“휴대폰 만질 거면서.”

“으아아아!”

임수하를 태운 검정색 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물론 수하가 송지호의 잔소리로부터 벗어난 지금이, 가장 평온한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저 인간은 결혼이라도 하면 잔소리가 좀 줄어들려나…….’

운전하는 지호의 뒷통수를 힐끔 째려본 뒤 속으로 투덜거린 수하는, 휴대폰을 집어 드는 대신 제작진으로부터 미리 받은 대본을 한번 읽어보기로 하였다.

지호가 따로 잔소리하지 않아도, 오늘 촬영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첫 예능, 첫 출연이니까.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이미지가 잘 잡히는 거겠지.’

예능에 출연하지 않은 배우들은, 자신이 작품 활동을 하며 맡았던 배역들로 인해 이미지가 형성되곤 한다.

하지만 한번 예능에 출연하기 시작하면, 거기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곧 그 배우의 이미지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결국 배역은 철저한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였으니.

예능에서 보여주는 배우의 모습이 훨씬 더 본모습에 가깝다고, 시청자들이 생각하게 되는 게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상황이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대본을 쭉 읽어 내려가던 수하는, 문득 이 상황에 가장 큰 지분이 있는 우진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예능을 하라고 부추기고, 본인이 그 예능 안으로 들어왔으며.

심지어는 그녀의 첫 방송에, 컨텐츠가 될 요소까지 제작진에 제공한 인물.

오늘 촬영은 우진이 시공 중인 ‘카페 프레스코’라는 곳에서 시작될 예정이었고.

대본상 출연진들을 이곳으로 인도한 것은, 바로 임수하 그녀가 될 것이다.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 같은 팀으로 활약하게 될 윤재엽과 유리아에게, ‘서우진’이라는 전문가를 소개한 것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물론 대본 안에서 말이다.

‘대본 대로라면, 재엽씨랑 리아가 먼저 도착해서 현장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인테리어에 미친 듯이 감탄하면서 리액션을 보여줄 때 내가 등장하게 되는 건데…….’

솔직히 수하는 조금 불안했다.

이제는 제법 우진과 친해졌고,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진이 디자인한 인테리어는, 아직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제작진 측에서 우진에 대한 검증을 어느 정도 끝냈다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윤재엽과 유리아가 리액션을 보여주기에 너무 소박한(?)인테리어가 공사되어 있고.

억지 리액션 속에서 수하가 처음 화면에 등장하게 된다면.

이것은 상황 자체가 초장부터 완전히 꼬여버리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요즘 시청자들, 억지 리액션은 귀신같이 알아차리던데…….’

하여 불안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촬영장에 도착한 임수하는, 벤의 문을 열고 천천히 주차장에 내려섰다.

드르륵- 텅-!

그리고 그녀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있던 촬영 스텝들이,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와 촬영장으로 인도하였다.

“수하 씨, 차 밀려서 고생하셨죠?”

“아, 아니예요. 샵에서 생각보다 늦게 끝나서……. 죄송해요, 더 빨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수하는 촬영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스텝들과 출연진이 먼저 도착해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연기 경력이나 인지도와는 별개로, 그녀는 예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선 완전히 신인이나 다름없는 포지션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하를 발견한 공진영 피디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오히려 그녀를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수하 씨, 왔어요?”

“늦어서 죄송해요.”

“늦기는. 우리가 빨리 온 거지.”

이어서 수하의 손을 잡아 끈 공PD는,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임수하 씨는 앞으로 세 번 정도, 촬영장에 지각해도 돼.”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수하 씨 덕에 지금 우리 프로그램, 첫 그림이 기가 막히게 빠질 것 같거든요.”

공PD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임수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에 이끌려 현장으로 들어갔다.

‘뭐야, 불안하게 왜 이러는 거지?’

하지만 다음 순간.

“……!”

환하게 조명이 들어온 내부현장에 들어선 임수하는, 공PD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와, 이거 뭐야. 대박!”

그녀의 눈앞에 ‘카페 프레스코’의 공간이, 보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 공간 안에서는, 먼저 도착한 윤재엽과 유리아가, 아직 촬영조차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신 호들갑을 떨며 감탄하고 있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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