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카페 프레스코
2010년도쯤의 카페 디자인은, 아직까지 엔틱(Antique)한 유럽풍 인테리어가 주류였다.
중세에서 근대까지 이어지는 유럽 건축물들의 디자인을 모티브로 한, 고전적이면서 고급스런 유럽풍 분위기를 살린 인테리어 디자인.
그리고 고급진 중세 유럽풍의 디자인에서 내부 설비가 완전히 노출된 천장 디자인은, 결코 있을 수 없는 형태의 마감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든 고딕 양식이든, 혹은 르네상스 양식이든 바로크 양식이든.
유럽의 모든 건축양식은 극도의 세밀한 디테일과 세공에서부터 시작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래서 강석중의 눈에 이 노출 천장 디자인은 생소하다 못해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기준에서 디자인이라기보단, 시공되지 않은 날것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노출 천장은 결코 쉬운 디자인이 아니다.
그래서 우진은 석중에게,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대표님, 혹시 천장 뜯어서 내부를 들여다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뇨? 그럴 리가요. 한데, 그건 갑자기 왜…….”
진짜 아무런 가공 없이 그대로 노출된 천정은, 말 그대로 난잡하고 지저분하다.
전선부터 시작해서 배관, 조명설비까지.
그것들이 말 그대로 오직 필요에 의해서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으니, 배선정리가 하나도 되지 않은 컴퓨터 본체의 내부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진이 디자인한 노출 천장은,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 노출이 아니었다.
지저분하게 연결된 전선들은 철제로 만들어진 관(管) 안에 들어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으며.
급수를 위해 설치된 수도관들은, 우진에 의해 인위적으로 디자인된 형태대로 가공되어 있었으니까.
가로 세로로 연결되어있는 ‘보’*[기둥 위에서 상부의 무게를 전달, 지탱해주는 건축 구조물]와 같은 구조물도 외부로 드러나 있지만, 그 또한 마감 도색에 의해 깔끔하게 시공된다.
그러니까 노출 천장 디자인은, 날 것 그대로를 디자인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날것처럼 ‘보이게’ 의도적으로 디자인된 것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대표님 말씀대로라면, 오히려 평범한 천장 마감을 하는 것보다 손이 더 많이 간다는 얘기네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는……?”
“예쁘니까요.”
“…….”
“투시도에 전부 다 표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커피 공장 느낌의 컨셉과 어울리면서, 빈티지 감성이 제대로 살아날 겁니다.”
우진은 이 디자인이 성공할 수밖에 없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엔틱한 디자인의 카페들을 주로 봤던 강석중의 눈엔 아리송한 느낌이겠지만.
우진이 기억하기로 201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그런 디자인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
처음엔 새롭고 고급스럽게 느껴졌던 엔틱한 디자인이 너무 흔해진 탓인지, 미니멀(Minimal)한 모던 디자인과 빈티지(Vintage) 감성의 인테리어가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진이 이 감성을 제대로 살려서 깔끔하게 디자인을 뽑아낼 수 있다면.
카페 프레스코는 국내의 카페 인테리어 디자인을, 말 그대로 ‘선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게 우진의 노림수이기도 하고 말이다.
우진의 설명을 듣던 강석중은, 결국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 이거 원…….”
“왜 그러세요?”
“아니, 대표님 이야기만 듣다 보면 이게 너무 그럴싸해서 진짜 멋들어지게 디자인이 뽑힐 것 같은데…….”
“그런데요?”
“사실 말씀하신 이 노출 천장구조는, 아직도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 되거든요.”
만약 지금이 2015년 정도만 되었더라도.
우진의 이 디자인을 본 순간, 강석중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우진이 가져온 디자인은 미래를 기준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트랜디한 것이었고.
그때는 이미 노출 천장 디자인이 꽤나 흔해진 뒤일 테니,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조금 어렵더라도, 우진은 이 디자인을 무조건 납득시킬 생각이었다.
지금 우진의 눈에는 이 카페 프레스코라는 브랜드에, 자신이 가져온 디자인이야말로 정답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느끼지 않으십니까?”
“어떤 것 말입니까?”
“카페 프레스코만의 개성이 확실히 살아난다는 것.”
“……!”
“그러니까, 절 한번 믿어보시죠, 대표님.”
“흐음. 서 대표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이렇게까지 자신 있게 말했는데, 졸작이 나오면. 아마 전,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닐 겁니다. 하하.”
아마 우진이 아닌 다른 업체가 이런 디자인을 제안했다면.
석중은 그것을 거절하거나, 최소 오랜 시간 고민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미팅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진이 석중에게 보여준 것들은, 그에게 신뢰감을 주기 충분한 모습들이었고.
때문에 석중은, 시원하게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었다.
“그럼,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대표님.”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사 기간은, 대략 3주 정도 잡으면 된다고 하셨죠?”
“예. 늦어도 8월 3주 차쯤에는 오픈하실 수 있도록 마감 치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석중은 계약서에 사인한 뒤에도 우진의 제안서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았고.
그런 그를 향해 우진은 한 가지 첨언을 하였다.
“아, 그런데 대표님.”
“말씀하세요.”
“그 오늘 드린 제안서에서……. 1층 입면도 부분이랑 2층 입면 일부는, 조금 수정돼서 공사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수정이요?”
살짝 당황한 석중의 표정에, 우진은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렇게 큰 수정은 아닙니다. 오늘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단차라던가 몇 가지 고려돼야 할 부분이 추가로 생겨서…….”
우진이 수정하려는 것은, 골든 프린트로 인한 깨달음을 디자인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설계 변경 작업은, 사실 대대적인 수정이었다.
하지만 그 ‘대대적인’이라는 작업의 기준은 실제 작업자인 우진에게나 그런 것이고, 석중의 입장에서는 도면이나 투시도와 비교해서 뭘 바꿨는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것은 공간구조에 대한 이해가 거의 완벽해야만 알 수 있는 부분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우진은 이렇게 설명했고.
“디자인 컨셉이나 시공단가에는 변동 없이, 구조물의 높낮이 정도만 조금 조정될 예정입니다. 걱정 마세요.”
석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우진이 얘기한 것처럼, 딱히 문제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모든 계약이 끝난 뒤, 우진은 마지막으로 석중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더 꺼내었다.
“그리고 대표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 허락을 구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요.”
“허락이라면……?”
“혹시 카페 프레스코의 시공 과정을, 방송국에서 찍어가도 되겠습니까?”
“네에……?”
우진의 말에, 석중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진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 영상이 어떻게 쓰일 것인지를 이야기하자.
놀랐던 석중의 그 표정은, 환하게 밝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런 거라면, 오히려 제가 서 대표님께 더 부탁드려야죠.”
우진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카페 프레스코의 브랜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임을 바로 깨달았으니까.
“역시.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방송 잘 빠져서 브랜드 홍보에 도움이 된다면, 제가 공사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라도 섭섭잖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방송 섭외까지 받았다는 말은, 디자이너로서 우진의 신뢰도를 한 층 높여주는 일.
‘디자인이 어떻게 나올지, 정말 기대되는군.’
석중은 우진이 제안했던 디자인에 대한 마지막 남은 한 줌의 의심까지 싹 다 털어버렸고, 그의 디자인을 더욱 기대하게 되었다.
우진과 석중의 최종 미팅은,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 * *
혜진은 무척이나 오랜만에, 학교 캠퍼스에 나왔다.
기말고사가 끝난 시점부터 학교 근처도 얼씬거리지 않았던 그녀였건만, 오늘은 과 사무실에 볼일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다.
“어휴, 더워 죽겠네. 디자인학부 건물은, 방학에도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뒀겠지?”
오늘 과 사무실에 있는 그녀의 볼일이란, 다름 아닌 그녀의 성적과 관련된 것이었다.
우진의 소개 덕에 학기 중반부터 연애에 빠진 그녀는 1학기 기말고사를 아주 대차게 말아먹었고.
그 결과 잘못하면 학사경고를 받을 수준의 처참한 성적을 받게 되었으니, 방학 때 학교에 나올 수밖에 없던 것이다.
과 사무실에 가서 그녀가 할 일은 간단했다.
조교에게 조금의 양해를 구한 뒤.
가차 없이 F학점을 준 몇몇 교수님들께 전화하여, 석고대죄를 할 생각이었으니까.
“제발……. 전공과목 딱 하나만 D-로 바꾸면 돼. 제발 살려주세요 교수님들…….”
출석을 빠짐없이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1점대 후반이라는. 어떤 면에선 경이로운 학점을 받은 혜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학점 자체에는 딱히 미련이 없었다.
그녀는 방탕한 생활(?)이 1학년 새내기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어차피 재수강으로 학점을 끌어올릴 것이라면, C+던 D-던 다를 게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학사경고만 피할 수 있으면, 혜진은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끼익-
방학이라 그런지 한산한 디자인 대 건물의 문을 연 혜진은, 죄인의 심정이 되어 학과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엘리베이터에서, 혜진은 뜻밖의 인물을 마주치게 되었다.
“헤이, 혜진!”
“뭐야, 제이든. 너 방학인데 왜 학교에 있어?”
“이 제이든 님의 열정은, 방학이라고 해서 식는 법이 없거든.”
“헛소리 할래?”
“혜진 같은 커플충은 믿기 힘든 얘기겠지만, 난 오늘도 조운찬 교수님께 책을 빌리러 학교에 나왔다고.”
“커플충은 또 뭐야?”
“신성한 학교에서, 공부 대신 연애나 하는 벌레라는 뜻이지.”
“맞는다, 제이든?”
“오, 커플충! 정말 완벽한 단어야. 완전히 혜진 그 자체라고.”
혜진은 제이든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조운찬 교수에게 책을 빌리러 왔다는 그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 책 심부름이, 제이든의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사실 제이든은, 우진의 셔틀이었다.
‘우진은 정말 나빠.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 하는데 말이지.’
어쨌든 그런 속사정과는 별개로, 오랜만에 동기를 만난 두 사람은 시끌벅적 떠들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런데 과 사무실이 있는 4층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당황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사람 없고 조용할 것이라 생각했던 4층의 복도에, 학기중보다도 더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던 두 사람은 사람이 몰려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갔고.
다음 순간, 더욱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박! 촬영이야?”
“What? 방송국에서 이 제이든 님을 촬영하러 왔다고?”
복도 끝에 있는 디자인학부의 로비 한복판에, 놀랍게도 각종 방송 장비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던 것.
곳곳에 KBC 로고가 박혀있는 수많은 촬영 장비들이 포진되어 있었으며.
그 사이에는 당연히 촬영의 대상인 연예인들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몰려있는 이유였고 말이다.
“야, 제이든! 키 크니까 네가 사진좀 찍어봐. 누구야? 누가 온 거야?”
흥분한 혜진이 제이든을 닦달했지만, 그는 혜진의 목소리를 듣지조차 않고 있었다.
제이든은 이미, 혜진보다도 더 크게 흥분한 상태였던 것이다.
“미친! 저기 윤재엽이야! 게다가 유리아도 있어!”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영국인이건만, 놀랍게도 한국 연예인들을 줄줄 꿰고 있는 제이든.
“뭐지? 무슨 방송이지?”
“윤재엽 나오는 거 보니까 예능인가?”
흥분한 인파들 사이에 낀 제이든과 혜진은, 어느새 학교에 온 목적조차 잊은 채 말뚝처럼 건물 로비에 박혀 움직이질 않았다.
타이밍 좋게도 촬영은 방금 시작된 상황이었고.
다른 곳도 아닌 공간디자인과가 촬영장소였으니, 제이든과 혜진의 입장에서는 어떤 내용일지 너무 궁금한 것이다.
하여, 그렇게 두 사람의 흥분이 최고조에 달했을 즈음.
드디어 촬영 장비가 전부 세팅되었고, 기다렸던 녹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K대 공간디자인과에서 녹화를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의 이름은, <우리 집에 왜 왔니>였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