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카페 프레스코
카페 프레스코 1호점의 공간은, 1층과 2층의 면적을 합하여 무려 300평이 넘을 정도로 널찍했다.
10년도까지만 해도 삼송 원흥지구의 땅값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고.
때문에 강석중은 아예 넓은 건물 하나를 자신의 명의로 매입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진은 디자인을 함에 있어, 공간의 면적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한두 자리가 아쉬워서 디자인적인 손해를 볼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우진은 아주 과감하게, 층고 높은 1층의 센터 공간을, 디자인 컨셉에 할애하였다.
석중이 해외에서 공수해 온 거대한 커피 로스팅 기계들과 각종 원두가 진열될 진열대를, 1층의 센터 공간에 떡 하니 배치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디자인의 시작은, 강석중이 미팅 중에 꺼냈던 이 한마디 대답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카페 프레스코라는 브랜드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내세우실 가치가 뭘까요.”
디자인 컨셉을 잡기 위한 우진의 물음에, 석중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고.
“그야 당연히, 커피의 맛입니다.”
“커피의 맛이라…….”
“다른 어떤 것보다도, 커피의 맛 그 자체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우진은, 석중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었다.
“카페 프레스코에서 커피의 맛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것을, 대표님 혼자 알고 계시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고객들에게 알리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
“우리 가게의 커피는,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들과 다르다. 다른 건 몰라도 커피의 맛 하나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한다.”
“음…….”
“물론 진짜 그 맛 하나만으로 입소문이 나고 성공할 가능성도 있기야 할 겁니다.”
“하하. 제 생각을 들여다보시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누군가 알아주길 기다리는 것보단,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게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거라는 얘깁니다.”
“그 말씀은…….”
“고객이 매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자신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그런 공간을 디자인하겠다는 이야깁니다.”
그때 우진의 이야기를 들었던 석중은 무척이나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커피에 대한 자신감을 공간으로 표현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석중과 달리 우진은 그때부터 이미 머릿속에 디자인을 그리고 있었고.
그래서 나온 디자인이 바로 이것이었다.
‘고객들이 매장에 들어선 순간. 커피와 관련된 전문적인 장비들의 모습에……. 스케일, 분위기. 모든 면에서 압도당해야 해.’
매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은빛 스테인레스 질감의 복잡한 로스팅 기계들과, 종류를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한 원두가 담긴 바구니, 그리고 패키지들.
그것을 보는 순간 고객들은 무의식 속에서 ‘신뢰’라는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고, 이것은 곧 커피에 대한 기대감으로 치환될 것이다.
그것이 이토록 과감하고 파격적인 공간배치를, 우진이 선보인 이유였다.
“이런 구조로 생긴 카페는……. 본 적이 없는 것 같군요.”
석중의 첫 마디에, 우진은 웃으며 대답하였다.
“대표님께서. 아니, 카페 프레스코에서 가장 자신 있는 것을, 고객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겁니다.”
“디자인 의도가 이해되긴 하는데…….”
아리송한 표정의 석중을 보며, 우진은 작게 웃었다.
사실 그의 이런 반응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이 설계한 디자인에 확신이 있는 우진과 달리, 석중은 아직 공간의 청사진을 보지 못한 상황이었고.
비전문가인 그의 입장에서 생소한 평면구성은, 거부감이 먼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첫 미팅부터 우진에게 어느정도 신뢰가 쌓인 석중은, 의문을 먼저 제시하기보다는 설명부터 더 들어보길 원했다.
“대표님 제안서에 대한 설명을 전부 다 들은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우진은 평면도를 다시 펼친 뒤,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평면에 대한 설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탁 트인 널찍한 공간.
그 가운데를 가득 메우고 있는, 로스팅 기계들과 베이킹 기계들.
그 외에 공간구조 자체는, 타원형으로 설계된 단순한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평면에 대한 브리핑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카페라는 공간이 복잡한 기능을 갖는 공간은 아니었으니.
평면의 구조보다는 입면 디자인.
그리고 전체적인 공간의 분위기와 컨셉을 살려주는 마감재의 구성과 배치가 훨씬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우진이 입면도와 함께 1층의 투시도를 석중의 앞에 펼쳐 보였을 때.
그의 두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와…….”
석중이 놀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일단 가장 처음 놀란 이유는, 우진이 펼친 투시도의 이미지가 사진처럼 사실감 넘쳤기 때문.
‘이거 거의 이미지가 실제 사진 같잖아?’
우진이 가져온 투시도는, 손 그림으로 작업한 것이 아니었다.
그간 학교에서 배운 ‘3DMAX’를 이용하여, 직접 모델링을 다 짜고 랜더링까지 하여, 실사 같은 이미지로 뽑아온 것이다.
물론 우진은 자신의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때문에 조운찬 교수를 통해 소개받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클라이언트인 강석중의 입장에서 의미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눈앞에 있는 결과물일 뿐이니까.
“이거, 그래픽이죠?”
“하하. 당연합니다, 대표님. 제가 대표님 컨펌도 없이, 공사부터 해버리진 않았겠죠.”
MAX같은 프로그램으로 뽑아내는 3D컷은, 작업자의 실력에 따라 그 결과물의 퀄리티가 크게 차이난다.
전문적으로 인테리어 3D투시도를 작업하는 업체라고 할지라도, 그 수준 차이가 천차만별인 것이다.
지금 우진의 실력도 이미 학생 수준은 훨씬 넘은 상황이었는데, 국내 최고의 실력자인 조운찬 교수를 통한 도움까지 받았으니.
우진이 가져온 3D투시도의 수준은, 강석중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퀄리티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대표님이 이야기하신 컨셉이 한눈에 이해되는군요.”
그리고 석중이 두 번째로 놀란 이유.
그것은 이 투시도 위에 그려진, 지금까지 본 적 없던 특별한 디자인 때문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게 적잖이 혼란을 주고 있는 디자인 마감재의 컨셉 때문이었다.
“그런데 서 대표님.”
“예?”
“여기 벽체부터 천장까지. 질감이 전부 다 그냥 콘크리트 느낌인 것 같은데……. 의도하신 게 맞나요?”
석중의 두 번째 질문을 들은 우진은, 이번에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맞습니다.”
이 또한 우진의 예상 범주 안에 있던, 당연한 질문이었으니 말이다.
‘카페 마감재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건, 확실히 아직 흔하지 않지.’
노출 콘크리트에 빈티지 컨셉이 결합된 카페 디자인은, 몇 년만 더 지나도 유행하게 될 트랜드 중 하나였다.
물론 2010년도에도 그런 디자인이 없던 것은 아니다.
건축물의 외관에 유행처럼 쓰이던 노출 콘크리트 마감이 08년 즈음부터 이미 인테리어 마감재의 영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고.
그것이 하나의 현대적인 디자인 트랜드로 자리잡으면서, 패널식 또는 미장식 노출 콘크리트 제품들까지 인테리어 마감재로 출시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카페의 디자인에 유행처럼 쓰이는 것은 몇 년이 더 지난 시점이었고, 그래서 강석중에게는 이것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미묘한 표정으로 투시도를 들여다보는 석중을 향해, 우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 지금 고민 중이시죠?”
“네? 뭘 말입니까?”
“노출 콘크리트부터 시작해서 우레탄 바닥까지. 마감재가 분명 빈티지 감성인데, 인테리어 자체는 후줄근한 느낌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아……!”
우진의 말을 들은 석중은, 그제야 자신이 느낀 미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분명 천장의 배관부터 시스템에어컨의 형태까지 전부 다 드러나 있는 모습은 인테리어가 덜된 미완성의 그것이었는데.
전체적인 디자인의 완성도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오히려 빈티지의 감성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우진이 가져온 공간의 느낌은 세련되고 깔끔했다.
빈티지랍시고 흐드러지게 난잡한 디자인과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던 것이다.
‘딱 보면 고급진 커피공장 같기도 하고…….’
첫 이미지는 마치 원두 제조공장의 그것이었지만.
노출 콘크리트의 그레이톤 위에 잘 정돈된 브라운톤의 원목마감과, 깔끔한 블랙 톤의 모던 한 가구들의 조화는, 독특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감성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
아직도 조금 혼란스런 표정인 석중의 앞에, 우진이 한 장의 옐로페이퍼를 찢어 올렸다.
“자, 강 대표님.”
“네?”
“여기, 이렇게 제가 낙서를 하면…….”
우진의 행동은 돌발적이었지만, 석중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지저분하고 난잡하지 않습니까?”
석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히, 그렇죠.”
“하지만.”
우진이 다시 연필을 들어, 낙서가 된 외곽을 따라 반듯한 원을 그려 넣었다.
이어서 그는 원 밖으로 삐져나온 선들을 지우개로 지웠고.
다시 석중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내부가 아무리 번잡해도……. 이렇게 깔끔하게 마감선을 따 넣으면, 이전의 난잡한 느낌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옐로페이퍼 위의 낙서를 다시 본 석중은,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더 이상 낙서가 아니라, 동그란 원 안쪽을 연필로 칠한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지금 제가 제안 드린 이 디자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진은 투시도 위의 얼룩덜룩한 노출 콘크리트 마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때 탄 느낌의 마감재를 벽에 발라 놓아도…….”
이번에는 그의 손가락이, 콘크리트 마감의 외곽 부분에 자리 잡고있는 고급스런 원목 마감을 가리켰다.
“이런 고급스럽고 정돈된 자재로 마감선을 눌러주면.”
석중과 다시 눈이 마주친 우진이, 씨익 웃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빈티지한 원두공장의 느낌은 확 살아나면서도, 전체적인 디자인 분위기는 깔끔하고 모던하게 완성될 수 있는 거죠.”
석중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와 별개로 우진에게서 느껴지는 내공이 상당하기도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석중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말빨 하나는 진짜 좋단 말이지.’
비전문가인 자신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게 될 만큼, 한 번의 끊김 없이 청산유수처럼 이야기를 잇는 우진.
이것은 디자인을 잘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능력이라고, 석중은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석중이 그러던말던, 우진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기. 이 문제의 천장.”
우진이 이번에 가리킨 것은, 천장에 그대로 다 드러나 있는 배관과 설비들의 형태였다.
“얼핏 보면 이거, 그냥 공사비용 아끼려고 손 안 대고 열어놓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천장을 마감재로 때려 막는 것보다, 이 노출 천장 공사가 훨씬 더 까다롭고 돈도 많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