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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68화 (68/315)

68화

브랜딩(Branding)

방학이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됨을 의미하고, 그것은 그만큼 우진에게 시간이 많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수업시간뿐 아니라 과제에 할애되는 시간까지도 비게 되는 셈이니.

활동반경이 거의 두 배는 넓어진 것이다.

하여 우진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늘은.

성수동으로 회사를 이전하기 전, 가장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진태 형, 오늘 시간 되지?”

“뭐, MMA매장 최종감수 하러 가긴 해야 하는데, 그건 내일 가도 돼. 왜?”

“미팅 하나 잡혔거든. 나 혼자 가긴 좀 애매해서.”

“좋아. 뭐, 대표님이 까라면 까야지.”

“우리 지금까지 정리해 둔 포트폴리오 준비하고. 이동은 내 차로 할 거야.”

“오케이, 알겠어.”

MMA매장은, 가장 최근에 WJ 스튜디오에서 시공을 맡은 복합몰의 의류 매장이었다.

우진의 도움 없이 진태가 혼자서 수주해 온 공사로, 최근 WJ 스튜디오 시공 파트의 제법 짭짤한 캐시카우(Cash Cow)였다.

사업장 한곳에서 그렇게 큰 이문이 남지는 않았지만, MMA 브랜드는 프랜차이즈였고.

그 말인 즉 전국에 매장이 생길 때마다 추가적인 수입이 계속 들어온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진태를 데려온 우진의 눈이 옳았음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형이 영업까지 해줄 수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만약 진태가 없었다면 우진이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안 시공 파트는 올 스톱이었겠지만, 진태는 우진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활발히 움직이며 기반을 튼튼하게 잡아 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진은, 오늘 이 미팅을 잡아 올 수 있었고 말이다.

‘카페 프레스코. 이건 무조건 따와야 해.’

2010년은, 전국에 커피 매장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 시작하던 해였다.

08년쯤 스타트를 끊은 국내 브랜드 ‘커피 플레이스(Coffee Place)’를 시작으로, 요식업계의 대기업들이 각종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경쟁적으로 런칭하던 시절.

하지만 우진이 알고 있는 미래에서 이 모든 브랜드들은, 결국 해외 브랜드 커피에 밀려 대부분 몰락하고 만다.

경쟁적으로 점포를 늘리고 덩치를 키우는 데만 주력하다 보니, 가맹점들의 품질관리도 안 되어 시간이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2030년까지도 꽤나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명맥을 유지하던 브랜드가 몇 군데 있었는데.

카페 프레스코가 바로, 그런 브랜드들 중 하나였다.

‘여기 커피 맛은, 항상 일품이었지.’

우진이 아는 카페 프레스코는, 사실 그렇게까지 성공한 브랜드는 아니었다.

앞서 설명했듯 우진이 아는 미래의 커피 시장은, 해외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의 각축장이었고.

그 안에서 카페 프레스코는 단지, 매니아층과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국내 브랜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진이 이 브랜드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이곳이 적어도 우진이 아는 커피 브랜드들 중, 본질에 가장 충실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커피 매장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본질이란, 당연히 커피의 맛.

우진이 생각할 때 카페 프레스코가 크게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는 브랜딩(Branding)의 실패였을 뿐이었다.

‘알맹이는 괜찮았는데, 포장지가 별로였던 거지.’

그 말인 즉.

반대로 이 부분만 해결할 수 있다면, 크게 성공할 잠재력이 있는 브랜드라는 이야기.

하여 우진은 이 카페 프레스코의 브랜딩에, 자신이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카페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감성적인 인테리어니까.

‘인테리어만 좀 더 괜찮았어도, 최소 두 배 이상 성장할 수 있었던 브랜드야.’

하여 우진이 이곳의 인테리어를 수주해 내고.

그 판단이 맞아떨어져 카페 프레스코를 메이저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크게 키울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인테리어를 독점한 WJ 스튜디오의 매출 성장으로 이어질 터였다.

점포가 추가될 때마다 해당 지점의 인테리어를 WJ 스튜디오에서 가져갈 수 있을 테니, 잘만 키우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이 미팅은, 우진이 그리는 큰 그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우진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진태가,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우진아.”

“응?”

“지난번엔 커피숍 인테리어에 관심 없는 것처럼 말하더니.”

“아, 로사커피?”

“맞아. 그땐 내가 거기 미팅 다녀왔다고 했더니, 니가 하지 말랬잖아.”

“그땐 그때고. 이번은 이번이고.”

“흐음…….”

진태의 말을 듣던 우진은,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로사커피가 제대로 런칭도 못한 채 망할 브랜드라는 걸, 얘기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우진이 너, 운전은 언제 배웠냐?”

“왜?”

“너 이제 스물둘이잖아?”

“그렇지.”

“운전 생각보다 잘하는 것 같아서. 장롱면허일 줄 알았더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삼십 분 정도를 진태와 함께 차로 이동한 우진은, 자유로를 지나 금세 고양시로 진입하였다.

미팅이 잡힌 곳은 카페 프레스코의 1호점이 생길 위치였고.

그곳은 공교롭게도 삼송역 인근이었다.

고양 KBC사옥의 근처라는 이야기다.

‘미팅 끝나고 한번 임수하 배우님께 연락이나 드려볼까…….’

끼익-

널찍한 공영주차장에 주차한 우진은, 준비한 자료들을 가지고 미팅 장소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반갑습니다. WJ 스튜디오, 서우진입니다.”

“하하, 목소리로 젊은 분이실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젊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강석중이라고 합니다.”

우진은 카페 프레스코의 창업자인, 서른 후반 정도의 젊은 남자를 만나볼 수 있었다.

* * *

우진이 아는 강석중은 금수저였다.

NA그룹 계열사 사장의 차남이자, W대학교 이사장의 외손자로 태어난 인물.

하지만 이것은, 딱히 우진이 회귀자라서 알고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애초에 2010년인 지금도, 강석중은 꽤나 유명한 인물이었으니까.

‘손대는 것마다 전부 말아먹는, NA그룹의 천덕꾸러기로 유명했지.’

미국 아이비리그의 유명 대학을 졸업한 강석중은, 무척이나 별난 인물이었다.

다른 재벌가의 3세들처럼 스캔들이 터지거나 말썽을 부리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특이하게 사업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안 해본 사업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다만 문제는, 카페 프레스코 이전까지 모든 사업을 다 말아먹었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큰돈을 날려 먹은 것도 아니었다.

마치 취미로 사업을 하고 싫증이 나면 접어버리기라도 하듯.

강석중은 매번, 작은 사업체를 여닫기를 반복했던 인물이었다.

‘뭐, 그것도 재벌 기준에서나 큰돈이 아니지……. 최소 십억 단위는 넘을 테지.’

그렇다면 이렇게 쉽게 싫증을 내는 강석중이, 어떻게 카페 프레스코는 거의 이십 년 동안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우진은 회귀 전, 어떤 남성잡지에서 강석중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고.

그 인터뷰에 여기에 대한 해답이 있었다.

[제가 요식업 쪽으로도 이런저런 사업을 많이 했지만, 사실 가장 좋아하는 건 커피였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정말 커피에 미쳐있던 적이 있었거든요.]

[사실 어디서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카페 사업도, 다른 사업들처럼 망할 뻔한 위기가 제법 많았습니다.]

[그래도 워낙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꾸역꾸역 버티면서 하게 됐고, 그 덕에 이 정도 나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진의 인생 지론 중 하나가, 사업을 시작할 땐 반드시 좋아하는 종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고, 힘이 들 때 버텨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 사업을 시작한 강석중은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CEO였고.

카페 프레스코는, 비전 있는 커피 브랜드였다.

우진과 탁자에 마주 앉은 강석중은, 가장 먼저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저희 업체는 어떻게 아신 겁니까?”

강석중의 이 첫 번째 질문은, 우진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진은 아직 커피 프레스코를 오픈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석중의 사무실에 전화를 넣었고.

런칭할 브랜드의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었으니까.

그래서 우진은, 미리 준비했던 대답을 자연스레 꺼내었다.

“레옹 베이커리가 얼마 전에 문을 닫지 않았습니까?”

“음……?”

“곧 다음 브랜드를 런칭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표님께선 여러 번 그래 오셨으니까요.”

“오호.”

레옹 베이커리는, 강석중이 카페 프레스코를 런칭하기 바로 전에 열었던 베이커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잘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었기에, 석중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레옹 베이커리를 아시다니……. 재밌네요.”

“그런가요?”

“아, 그것보다는 저라는 사람을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게 재미있군요.”

강석중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우진을 잠시 응시하였다.

그리고 그런 석중을 향해,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뭐, 특별히 조사를 한 건 아닙니다. 단지 레옹 베이커리가……. 여기 고양 KBC쪽에 올 때마다, 꼭 사 먹었던 빵집이거든요.”

“그래요? 맛있었나요?”

“다른 빵은 모르겠고, 식빵이 맛있더군요.”

우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주 태연하게 거짓말(?)을 계속했다.

그는 고양 KBC사옥에 와본 적도 없었고, 레옹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 먹어 본 적도 없었다.

다만 미팅을 준비하면서 했던 사전조사로 인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정보들을 이야기한 것뿐이었다.

“갑자기 문을 닫았기에,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찾다 보니, 대표님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고요.”

우진의 이야기 안에는 딱히 의심될만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석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새 브랜드를 런칭할 것임을 예상하고 연락했다는 부분이 조금 신선했지만, 그 또한 억지스런 추측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는 레옹 베이커리 이전에도, 무려 세 가지 브랜드를 연달아 런칭했었고, 그것은 딱히 비밀이 아니었으니까.

“뭐, 어찌됐든…….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연락을 주셨습니다, 서대표님.”

“운이 좋았던 것 같군요. 하하.”

그런데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던 그때.

석중의 입에서, 우진이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대표님.”

“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뭐 하나만 더 여쭤도 되겠습니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 강석중을 향해, 우진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질문인가요?”

석중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질문이 흘러나왔다.

“혹시 대표님은……. 레옹 베이커리가 왜 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

“뭐, 편하게 말씀 주셔도 됩니다. 제가 이미 접은 사업에 미련 갖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음……. 그건…….”

우진이 먼저 접촉하긴 했지만, 어쨌든 석중은 그의 클라이언트다.

그리고 지금 석중이 우진에게 던진 질문은, 클라이언트 앞에서 답하기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석중의 성향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괜히 직언을 했다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었으니까.

‘흠. 뭐라고 해야 하지?’

우진이 고민하는 듯 보이자, 석중이 웃으며 다시 손사래를 쳤다.

“아, 제가 너무 난감하게 해 드린 모양이군요. 답변이 어려우시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우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짧은 순간.

이미 우진은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떠올렸으니 말이다.

“아닙니다. 어떤 대답을 드려야 할지, 잠시 생각하느라 고민했던 것뿐 이라서요.”

“으음……?”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석중을 향해, 우진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브랜딩의 부재.”

“예?”

“레옹 베이커리라는 브랜드는……. 제 기준에서 미완성 브랜드였습니다.”

우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무실에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의 옆에 앉아있던 진태는 당황하여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렇게 대놓고 깐다고?’

맞은편에서 우진의 대답을 기다리던 강석중 또한, 살짝 당황했으니 말이다.

‘……!’

하지만 이 침묵은 정말 잠시였을 뿐.

곧 석중의 입에서, 호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 하하하.”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무척이나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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