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도약의 밑거름
2010년도에 지식산업센터는, 아직까지 부동산 전문가들에게조차 생소한 단어였다.
본래 지식산업센터의 명칭은 ‘아파트형 공장’ 이었고.
이것이 ‘지식산업센터’로 개명된 것이 바로 2010년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아파트형 공장이란 어떤 용도의 시설일까?
아파트형 공장은 그 이름처럼, 공업용지가 부족한 도시에서 활성화된 도시형 공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공장이 들어서기에 땅이 너무 부족하고 땅값이 비싼 동네에 건물을 올려서.
건물의 호실들을 마치 아파트처럼, 기업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분양 방식으로 제공하는 형태인 것이다.
해서 아파트형 공장에는 보통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입주하는 케이스가 많았으며.
그런 업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지원시설들이 복합적으로 입주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지식, 정보통신산업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제조업 외에 해당 산업들도 복합적으로 입주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그것이 2010년에 아파트형 공장이 지식산업센터로 개명된 이유였다.
‘지금 성수동 지식산업센터 시세가……. 평당 600만 원이나 하려나?’
지식산업센터는 IT업체들까지 수용할 수 있게 된 뒤, 단기간에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한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가격이 급등하게 된 것이다.
우진이 회귀하기 전인 2030년 즈음, 성수동의 지식산업센터는 평당 2천만 원대가 훌쩍 넘는 수준이었으며.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인 2020년쯤만 하더라도, 대략 1400~1500만 원까지 치솟는다.
게다가 지금 우진이 매입하려고 하는 위치의 지식산업센터는, 2년쯤 뒤 분당선 ‘서울 숲’역이 개통되는 위치.
지식산업센터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역세권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우진의 눈에 완벽한 투자처였다.
“아파트형 공장에 투자하신다니. 거 참, 저도 잘 모르는 분야라서 드릴 말씀이 없네요.”
부동산 김 씨의 이야기에, 우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저야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니까, 사무실로 사용할 겸 겸사겸사 투자하는 거구요.”
“아하.”
하지만 이 지식산업센터 투자는, 지금까지 우진이 하던 투자들과 그 성격이 조금 달랐다.
이제까지 우진은 초단기간에 최대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투자처 위주로 투자했었는데, 이번에는 꽤나 장기간 돈을 묶어둘 생각으로 투자를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김 씨에게 말한 것처럼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우진은 거의 한 층에 있는 호실 절반 정도를 다 매입해서, 모형제작 작업실 겸 설계사무소의 사무실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조만간 아파트 투자도 다시 할 생각이니, 너무 서운해 마시죠, 사장님.”
“하하. 서운하기는요. 대표님께서 투자하신다니까, 저도 지식산업센터라는 걸 좀 공부해봐야 하나 싶어서 생각 중이었습니다.”
김 씨의 말은 진짜였다.
우진의 통찰력은 그가 생각할 때 어지간한 전문가들보다도 훨씬 뛰어났고.
그가 눈여겨보는 분야라면, 분명히 돈이 될 것이라는 촉이 왔으니까.
“계약금 입금 확인하셨습니까, 대표님?”
“예, 방금 들어왔네요.”
“그럼, 잔금 치를 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여하튼 세영아파트를 성공적으로 매도한 우진은, 그 길로 김 씨의 부동산에서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탔다.
우진이 다시 향한 곳은 성수동.
정확히는 서울숲 인근에 있는, 지식산업센터의 시행사 사무실이었다.
* * *
‘서울숲IT타워’는, 이제 준공을 앞두고 있는 지식산업센터 건물이었다.
총 연면적*[건축물의 모든 층, 바닥면적의 합계]이 12만 제곱미터가 훌쩍 넘는.
지식산업센터 중에는 손에 꼽을 만큼, 커다란 규모로 지어진 건물.
이 건물의 시공사는 중견기업인 AT건설이었고, 시행사 겸 분양대행사는 ‘클라우드 파트너스’라는 회사였다.
그리고 이곳 클라우드 파트너스는 요즘, ‘서울숲IT타워’의 미분양 호실들 때문에 골치가 너무 아픈 상황이었다.
준공까지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건만.
아직도 미분양 상태인 호실이, 전체 호실의 30%나 되었으니 말이다.
“예, 사장님. 14층부터 15층 사이에도 괜찮은 호실 많이 남아있습니다.”
“아, 조금 더 고민해 보신다고요?”
“평단가 500만 원 중반까지 가능합니다. 준공 뜨기 전에 매입하셔야 취․ 등록세 할인되는 거 아시죠?”
“예, 그럼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분양에 실패한 호실들은, 시행사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매입해야 한다.
그것은 회사 차원에서 쓸데없이 많은 돈이 묶이는 일이었고, 돈을 계속 굴려야 하는 시행사의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클라우드 파트너스는, 영업사원들을 말려 죽일 기세로 닦달하는 중이었다.
수 채 이상 팔아치운 사원에게는 꽤나 큰 인센티브를 지급하지만, 반대로 실적이 저조한 사원에게는 권고사직까지 들먹이며 협박을 하는 것이다.
“김 대리. 어떻게 지금까지 한 채 밖에 계약이 없을 수가 있어?”
“지금 다들 발에 불나도록 뛰어다니는 거 안 보여?”
“이번에 미분양 10%이상 넘어가면, 실적 최하위부터 그대로 옷 벗는 거야. 알아?!”
그런 의미에서 현재 실적이 최하위인 김 대리는, 요즘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이과장의 말처럼 뛰어다니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 또한 어떻게든 한 채라도 더 팔아치우기 위해 미친 듯이 전화를 돌리고 발로 뛰고 있었지만.
그래도 팔리지 않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휴우……. 정말 죽을 맛이네 진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 대리의 실적이 비교적 저조한 데에,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성실함이야 다른 사원들 못지않은 김 대리였으나, 그의 성품이 너무 정직한 게 문제였다.
가족들에게 팔아치우거나 거의 사기꾼 수준으로 가치를 부풀려 홍보하는 다른 영업사원들에 비해, 김 대리의 영업은 정말 있는 그대로였으니까.
‘하아. 진짜 다음 달에 사표라도 미리 내야 하나…….’
우울해진 김 대리는, 사무실 옥상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 재낀 뒤 터벅터벅 옥상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위이잉-!
김 대리의 전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아, 박 부장님! 어쩐 일로 연락을 다 주셨습니까?”
그리고 그 전화는, 그를 구원해 줄 동아줄 같은 것이었다.
* * *
클라우드 파트너스는, 시행사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만큼 큰 규모의 회사였다.
때문에 AT건설 같은 중견 건설사는 물론, 도급순위 10위 이내의 대형 건설사와 일한 적도 꽤나 많았고.
그 중에는 천웅건설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 대리와 박경완의 인연은, 그때 생긴 인연이었고 말이다.
[김 대리, 요즘 AT건설 분양대행 때문에 죽을 맛이지?]
“하……. 부장님. 저 진짜 죽겠습니다요. 대체 상부에서는 이런 공장건물 분양대행에 왜 뛰어들어서…….”
[하하, 아직 미분양 소진 덜 됐나 보네.]
“소진이요? 하아……. 자꾸 한숨 나오는 소리 하시네요. 9월 초 준공인데, 지금 아직도 30%는 미계약이예요.”
김 대리는 박경완과 업무 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완을 꽤나 좋아했다.
몇 번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동안, 그의 인간 됨이 좋다는 것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경완 또한 마찬가지였다.
경완은 김 대리의 성실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오늘도 굳이 그에게 전화를 준 것이다.
[김 대리. 내가 좋은 소식 하나 가져왔는데.]
“좋은…… 소식이요?”
[자네 이번 사업장에서, 실적 걱정 없게 만들어 줄 만큼 좋은 소식 말이야.]
경완의 목소리에, 김 대리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구분이 되질 않았으니 말이다.
“저, 이직할 괜찮은 자리라도 하나 만들어 주십니까? 그게 아니면…….”
하지만 다음 순간, 김 대리는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경완의 말은, 믿기 힘든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자네 이직 자리 알아봐 놓은 건 아니고. 대신, IT타워를 사고 싶어 하는 큰손 하나 물어왔지.]
“예에?”
[나도 정확힌 모르지만, 최소 호실 서너 개 정돈 계약하려는 모양인데. 어때, 구미가 좀 당기나?]
생각지도 못했던 경완의 말에, 김 대리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 당연하죠, 부장님! 그 구원자가 대체 누굽니까?”
물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수화기 너머에 있는 박경완에게 보일 리 없었지만.
너무 흥분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마 곧 시행사 사무실로 한 놈 갈 거야. 가서 자네 이름 대라고 했으니까, 잘 좀 부탁드릴게.]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경완과의 전화를 끊은 김 대리는, 신이 나서 계단실을 뛰어내려갔다.
그리고 사무실의 앞에 도착한 그는, 그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 혹시 김준영 대리님 찾아왔는데……. 자리에 안 계시나요?”
아무리 높게 봐 줘도, 절대로 30대로는 보기 힘든 젊은 남자.
하지만 그가 찾는 이름은 분명 자신의 이름이었고.
해서 김 대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불러세울 수밖에 없었다.
“혹시……. 박경완 부장님 소개로 오신……?”
“아, 네. 김준영 대리님이시군요.”
“맞습니다. 제가 김준영…….”
김 대리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반갑습니다. WJ 스튜디오 대표, 서우진이라고 합니다.”
* * *
우진이 지식산업센터를 매입하기로 생각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마침 문정동 부동산 김 씨 아저씨로부터 매수자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았을 즈음, 석현, 진태와 함께, 사무실을 옮기기 위한 회의를 하고 있었으며.
거의 그날, 즉흥적으로 결정한 투자였으니 말이었다.
“진태 형. 우리 다음 사무실, 성수동으로 정했어.”
“뭐?”
“석현이 너도 그렇게 알고 있어. 집이랑은 더 가까워져서 좋지?”
“갑자기, 성수동? 거기 뭐 있는데?”
물론 투자 결정이 즉흥적이었다고 해서, 근거 없는 투자는 당연히 아니었다.
지식산업센터가 떠오른 순간, 우진은 곧바로 입지분석부터 시작하였고.
해서 성수동에서도 가장 투자가치 높은 위치의 지식산업센터를 예쁘게 골라놓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지금 우진의 상황에 딱 알맞은 투자가 지식산업센터 투자였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사무실 확장으로 인해 발생할 월세를 대폭 절감할 수 있음과 동시에, 법인의 월세 지출을 우진 개인의 수입으로 전환 시켜버릴 수가 있다.
‘내 개인 명의로 사서, 내 법인에 월세를 줘야겠어.’
아무리 지분이 100% 우진의 것이라고 한들, 법인의 자산은 회사 돈이지 우진의 돈이 아니다.
하지만 법인에서 누군가에겐 내야 할 월세를 우진에게 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면.
아주 합법적으로 법인의 돈을 개인 명의로 옮겨올 수 있으니, 우진으로서는 짭짤한 소득이 생길 것이었다.
‘고정수입이 커지면, 어머니 용돈 드리기도 편하고…….’
그리고 둘째.
아파트형 공장이 지식산업센터로 변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에, 현시점 ‘지식산업센터’라는 상품 자체가 크게 저평가된 상황이다.
당장이야 우진이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면 임대를 받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를 곳이 지식산업센터였지만.
대충 반년에서 일 년 정도만 지나도 이 성수동 IT타워에는 공실이란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욱 비싸진 값에 되팔아 큰 차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며, 만약 우진이 사옥을 옮기게 된다고 해도 훨씬 높아진 월세로 다른 세입자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지식산업센터 입주기업에는 이런저런 혜택들이 많았다.
2010년 현재 국토부에서는, 이 새로운 형태의 산업시설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으니까.
‘대출도 빵빵하게 나오고 말이지.’
해서 박경완으로부터 김준영 대리를 소개받은 우진은.
시행사 사무실에 들어가 망설임 없이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정말……. 11호실부터 18호실까지 전부 계약하실 겁니까?”
“그렇다니까요?”
“할인된 분양가 기준으로 가도 20억이 넘는데…….”
“대출 거의 90%까지 나오잖아요?”
“90%까진 장담 못 드리고, 85%까지는 확실히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어차피 4억 정도는, 집어넣을 생각이었으니까요.”
우진은 1411호부터 1413호까지, 벽을 싹 다 터서 모형작업장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1414호부터 1415호까지.
두 개 호실을 터서, 설계사무소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16호실부터 18호실까지는……. 일단 세입자 받아서 월세 세팅 해둬야지.’
18억이라는 거액의 대출이 생길 테지만, 그것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 금리 기준으로 매달 6~700만 원 정도의 이자가 발생하겠지만, 16호실~18호실의 세입자들에게 받을 월세만으로도 500만 원 가까이 충당이 될 것이고.
거기에 WJ 스튜디오로부터 받을 월세 또한 7~8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수준이니.
이자를 다 내고 나도, 우진에겐 매달 500만 원이 넘는 순이익이 떨어지는 것이다.
‘땅 사서 사옥 지을 수 있을 때까진, 여기서 쭉 뿌리박아야겠어. 사옥 올릴 만큼 회사가 커질 즈음엔……. 매매가도 최소 두 배 이상은 튀겨지겠지.’
그렇게 남들이 보면 미친놈 취급을 할 법한 투자를 또 한 번 감행한 우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행사 사무실을 나섰다.
“김 대리님, 이 인근에 혹시 괜찮은 부동산 혹시 아시면, 소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부동산이요?”
“호실 몇 개는, 조금 미리 임대 내놓으려고요.”
클라우드 파트너스의 영업 범위에는, 당연히 인근의 부동산들도 포함된다.
부동산이 보유하고 있는 고객들 중에는 큰손들이 제법 많았고.
그들을 상대로 영업하기 위해선, 당연히 부동산 사장들과 커넥션이 있어야 했으니까.
그런 부분을 잘 알고 있던 우진은 김 대리에게 소개를 요청한 것이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김 대리는, 흔쾌히 우진에게 명함 몇 개를 넘겨주었다.
“여기 두 곳 정도, 추천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예, 대리님.”
“거리는 좀 멀어도, 영진부동산으로 가보세요. 여기 사장님이 정말 일 잘하십니다.”
“하하. 신경 써주시니 고맙네요.”
“고맙기는……. 제가 너무 감사하죠.”
기분 좋게 건물을 빠져나온 우진은, 귀가를 위해 버스를 탔다.
부동산에는 일단 전화만 돌려놓고, 오늘은 집에 가서 쉴 예정이었다.
‘으, 피곤해. 다음 주면 차도 출고될 테니, 뚜벅이 생활도 이제 안녕이겠지.’
차근차근 성장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문득 대견해진 우진은, 저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를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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