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두 번째 골든 프린트
우진은 전생에서 프레젠테이션을 그리 잘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만한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우진의 포지션은 현장 전문가이자 시공 기술자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렇다고 한 업체의 대표도 아닌 월급쟁이였으니, 누구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발표하는 것은, 사실상 우진에게 처음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었으며.
우진이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내가 그렇게 언변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니까.’
하지만 우진은, 자신의 그런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지막까지 팀원들과 함께 준비했던 그 모든 것들을, 심사위원들 앞에 남김없이 쏟아내었다.
“요양원이라는 시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시설을 이용하는 유저(User)들의 경험입니다.”
“앞선 팀들이 수 없이 이 자리에 서서 어필했던 UX디자인을, 저희 팀 또한 디자인을 함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이야기죠.”
프레젠테이션을 거의 처음 하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설명을 보여주는 우진.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했던 팀들이 이야기했던 UX와, 저희 팀의 디자인 설계에 골자가 된 UX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별점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우진의 이런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어디서 기인한 것이었을까?
사실은 우진에게, 숨겨뒀던 말주변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진에게는, 오늘 이곳 공모전에 참가한 그 어떤 팀도 갖지 못했던 무한한 자신감이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다른 팀들과 저희 팀이 착안한 유저 경험의 맥락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수많은 경험과 치밀한 도면분석. 그리고 ‘요양원’이라는 시설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
여기에서 기인한, 완벽한 자신감이 말이다.
“요양원은 안락하고 편리해야 한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최대한 배려하고 보살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요양원의 유저인 환자들이, ‘편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디자인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다른 모든 팀들이 착안했던, 요양원의 UX 디자인이었습니다.”
말을 멈춘 우진이, 잠시 뜸을 들이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어서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이었다.
“물론 전부 다 맞는 말입니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편리성이라는 것은, 1차적인 고려대상이 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우진의 눈이 빛났다.
지금부터 그의 입에서 나올 이 마지막 이야기가, 지금까지 설명했던 설계와 디자인에 마침표를 찍어줄 것이었다.
“과연 유저들이 요양원에서 바라는 경험이, 단지 편리성 한 가지뿐일까요?”
우진의 머릿속에, 정확히 2주 전의 경험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 * *
“허허, 우리 소연이가 젊은 총각들을 친구라고 다 데려오고…….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있구나.”
“안녕하세요, 소연이 학교 친구 서우진이라고 합니다.”
“그래, 반가워요. 총각들이 훤칠허니 잘 생겼네.”
“감사합니다!”
“소연아, 그래서 이 친구들 중, 네 신랑감은 누구인 게냐?”
“아, 할머니! 진짜!”
우진을 비롯한 세 사람이 불광동의 요양원에서 절반 정도의 허탕을 친 뒤.
제이든의 차를 타고 찾아갔던, 소연의 외할머니가 계시는 성수동 요양원.
그곳에서 우진은 소연의 외할머니를 만나 뵐 수 있었고, 꽤나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래, 학교 과제를 하는 중이라고?”
“과제는 아니고, 공모전이라니까 할머니.”
“그게 그거 아니냐.”
“아니야!”
소연의 할머니는 연배에 비해 젊고 유쾌한 사람이었고, 이야기도 조목조목 기품 있게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 것은 단지 불편한 하반신 때문이었고.
총명을 잃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이 할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뭔고?”
“요양원에서 할 수 있는 경험들이 궁금합니다.”
“경험?”
“그렇게 말하면 너무 애매하잖아, 오빠.”
“음……?”
“할머니. 요양원에서 제일 행복했던 경험이 뭐야?”
“가장 행복했던…… 경험?”
“응. 우리는 새로운 요양원을 디자인해야 하고, 그 요양원에선 행복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어야 하니까.”
소연의 외할머니는 우진을 비롯한 세 사람에게, 정말 꼼꼼히 많은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실제 요양원의 스케쥴부터 시작해서, 요양원의 편리한 점, 불편한 점. 그리고 개선을 바라는 부분까지도.
하지만 그 이야기들 중 우진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은.
소연이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잠깐 방문을 나섰을 때, 그녀가 씁쓸한 표정으로 꺼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즐거움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할머니.”
“결국 여기서 생활하는 나 같은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 이라네. 사람.”
창밖을 잠시 응시하는 그녀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사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가족과 나눌 수 있었던 온정에 대한 그리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그런 것들인 게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우진은, 순간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소연이나 제이든과 달리 벌써 사십 년이 넘게 살아온 우진으로서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부분이니까.
“아까 소연이가 내게,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 뭐냐고 물어봤었지?”
“그렇…… 습니다.”
“그건 바로, 소연이가 자네들과 함께 날 찾아온.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이라네.”
“……!”
“내게는 내 손녀딸들이 이렇게 날 찾아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거든.”
우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전생에서 봤던 어머니의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몸이 불편하다고 해도, 결국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다 비슷하다네, 학생.”
“물론 건축을 해야 하는 자네의 입장에선, 내 얘기가 비현실적으로 들리겠지만 말이야.”
할머니는 차오르는 눈물을 삼켜내는 것이 쉽지 않은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진은 그때 그 순간, 그의 디자인과 설계에 담아야 할 마지막 한 조각의 가치가 뭔지 깨달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 * *
“인간의 모든 삶은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오는 만족감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우울해지고 외로워지죠.”
“그리고 그런 관계의 결여가 가장 심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이 요양원이라는 시설입니다.”
우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뜻밖의 이야기에, 심사위원들의 동공이 살짝 확대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발표했던 그 어떤 팀에게서도,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종류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늙고 병들고, 몸이 불편해질수록. 그는 인간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람을 그리워하고 갈망하게 되겠지요.”
지이잉-
우진이 레이저 포인트의 버튼을 누르자, 스크린의 화면이 전환되며 평면도의 한쪽 파트가 크게 확대되었다.
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는, 제법 널찍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공간.
확대된 공간에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많은 집기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그것을 자세히 확인한 심사위원들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 집기들의 생김새나 용도가, 요양원이라는 시설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심사위원들의 놀란 표정을 느낀 우진이, 곧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Entertainment의 어원을 알고 계십니까?”
우진이 질문했지만, 대답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하여 우진이 다시 그 답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건 바로……. Entretenir라는 프랑스어. 즉, ‘붙들어두다’ 라는 뜻입니다.”
척-
우진이 레이저포인트를 움직여, 도면 위에 그려진 집기류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아이들이 타고 노는 미끄럼틀의 형태.
척-
그 옆에는 정글짐도 있었고, 볼풀장(Ball Fool)도 있었으며, 트램펄린(Trampoline), 시소, 목마 등 다양한 아이들의 놀이기구가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존 이라는 이름을 붙여 두었지만, 사실상 이 공간은 키즈 카페(Kids Cafe)와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공간이, 요양원의 유저들을 붙들어둘 수는 없을 겁니다. 애초에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손자 손녀들을 붙들어둘 수 있겠지요.”
이제는 우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누구에게는 소연처럼 조부모의 이야기일 것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그의 부모님.
또 누군가에게는,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들은 요양원의 노인들이 이곳에 머물게 할 것이며, 그들에게 가장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줄 겁니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놀 공간이 요양원에 있다면, 부모들도 훨씬 마음 편히 아이들을 데리고 노부모가 계시는 요양원에 방문할 수 있을 테고 말이죠.”
순식간에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낸 우진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우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 모두가,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음을 말이다.
하여 우진의 프레젠테이션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단순히 편안을 위한 설계를 넘어, 행복을 위한 설계를 생각했습니다.”
“사용자들이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UX디자인의 목적점이자 본질 아닐까요?”
“건축의 목적이란 본디,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니까요.”
말을 마친 우진은,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였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지이잉-
스크린 위에, 그가 디자인한 요양원의 전경이 펼쳐졌다.
“제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은, 여기까집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벅- 저벅-
마이크가 세워진 단상의 옆으로 몇 걸음 걸어 나온 우진은, 심사위원들을 포함한 청중들에게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그리고 굽어졌던 우진의 허리가 곧게 다시 펴졌을 때.
짝짝짝-
우진은 벅찬 광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프레젠테이션을 듣던 모든 심사위원들과 청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는 광경을 말이다.
“Bravo.”
“훌륭하군.”
“미쳤어. 이게 학부생의 발표라니.”
“앞에 있던 발표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군요. 저만…… 그렇습니까?”
“그럴 리가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때문에, 우진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심사위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늘, 이 자리의 Winner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진,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