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46화 (46/315)

46화

첫 번째 공모전

조금 소란스럽게 시작되긴 했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진행된 공모전 컨셉 회의.

이 첫 번째 공모전 팀플에서, 우진의 팀은 제법 괜찮은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다.

결국 소연과 제이든이 찾아낸 자료들을 바탕으로, 좀 더 프로젝트 방향성을 확실하게 구체화할 수 있었으니까.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래. 다음 팀플 날까지, 서치는 완벽하게 끝내기로 하자고.”

“흠. 이 제이든 님은 이미 완벽한 래퍼런스(Reference)들을 찾아 뒀지만……. 뭐, 알겠어. 둘을 위해 좀 기다려 주도록 하지.”

어느 정도 회의가 일단락되자, 제이든과 소연은 천천히 짐을 싸며 노트북을 덮었다.

대략 세 시간 정도 이어진 팀플이었지만, 워낙 열정적으로 작업한 탓에 다들 진이 좀 빠진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해야 할 게 하나 남아 있었다.

첫 번째 팀플이 끝났으니, 이제 다음 일정을 픽스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짜는, 금요일 괜찮아?”

우진의 말에, 짐을 싸던 두 사람이 곧바로 대답하였다.

“Good. 난 좋아.”

“나도 좋아. 그날은 거의 공강이니까.”

“그럼 날짜는 정해졌고…….”

휴대폰 달력에 우진이 일정을 표시하는 동안, 이번에는 소연과 제이든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그럼 팀플 장소는 어디? 오늘처럼 학교에서 할까?”

“아니면 Site에 답사를 가는 건 어때? 어디였지? 강북구 수유동?”

제이든이 말하는 Site란, 당연히 공모전의 건축물이 지어질 위치를 말함이다.

소연은 그것이 괜찮은 생각이라 여겨졌는지, 눈을 반짝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후후. 역시 제이든은 똑똑해. 천재인 것 같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우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이든의 의견도 괜찮은 생각이기는 했지만, 우진이 이미 생각해 놓은 장소가 따로 있었으니까.

“제이든, 천재의 의견에 태클을 걸어서 미안하지만…….”

“Bloody Hell!”

헬보이가 지옥을 외치며 인상을 팍 찡그렸지만, 우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불광동. 어때?”

“불광? 거기가 어디지?”

“불광이면……. 은평구 아냐?”

“맞아.”

우진의 말을 들은 제이든은, 더욱 인상을 찡그리는 대신 아리송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제시한 불광동이라는 장소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불광? 거기 뭐 특별한 게 있었나?’

3호선 깊숙한 곳에 있는 불광동은, K대의 캠퍼스에서 제법 먼 곳이었다.

그렇다고 우진의 집이 가까운 곳이냐?

그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은평구 불광동은, 우진의 집이 있는 개포동에서 완벽한 서울 반대편에 위치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소연은, 이 불광동이라는 장소가 공모전과 뭔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물론 그 연관성이라는 것이, 쉽게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뭐지? 진짜 모르겠는데…….’

하지만 소연과 제이든이 의문을 표현하기 전에, 우진이 먼저 설명을 시작하였다.

당연히 두 사람이, 의문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수유동과 불광동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글쎄.”

우진이 자신의 노트북을 들어 지도를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하나의 위치를 짚었고, 거기에는 ‘북한산’ 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바로 여기. 이 북한산을 등지고 있다는 점.”

우진은 마른 침을 삼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동네 전체가 산자락에 인접해 있지는 않아. 하지만 공모전에 공고된 지적도대로라면……. 우리가 디자인해야 할 요양원이 지어질 곳은, 임야와 인접해 있는 제 2종일반주거지역이야.”

복잡한 우진의 말을, 제이든이 간결하게 정리했다.

“산이랑 붙어있다는 거지?”

“맞아.”

공모전에 명시되어있는 수유동의 대지를 지도상에서 보여준 우진이, 이번에는 불광동의 지도를 펼쳐 보였다.

정확히는, 불광동 안에서도 특정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공모전에서 주어진 Site처럼, 북한산 자락을 등지고 있는 제법 넓은 면적의 부지.

그 위에는 [세운 요양병원] 이라는 글씨가 작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이 요양병원이, 우리에게 주어진 공모전 Site랑 엄청 흡사한 환경에 지어져 있어.”

“오호.”

“물론 여긴 요양병원이고, 우리가 디자인해야 할 건축물은 병원 기능이 빠진 요양원이라 조금 다르지만……. 충분히 참고될 만한 사례인 것 같거든.”

“그럴 수 있겠네.”

팀플이 진행된 세 시간 동안.

우진을 비롯한 세 사람은, 정말 많은 자료들을 서치 했다.

우진이 얘기했던 그 ‘소스’라는 것을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 직접 가서 보는 것만큼 확실한 경험은 없다.

우진은 실제로 요양병원에 방문해서, 그곳의 시스템을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금요일은 여기를 한 번 답사하고, 근처 카페 같은 곳에서 작업하면 좋을 것 같아.”

우진의 설명이 끝나자, 제이든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난 좋아.”

우진이 자신의 의견을 기각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 같은 것은,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 제이든.

소연 또한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찬성.”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우진의 제안에 감탄하고 있었다.

다 같이 래퍼런스를 찾고 분석했지만, 이렇게 지형까지 비슷한 사례를 찾아 직접 가볼 생각은 못했으니 말이다.

‘확실히 비슷한 환경에 지어진 같은 용도의 건축물을 보면……. 시설 구조를 짤 때 많은 도움이 되겠어.’

소연은 이것이 일종의 통찰력이라고 생각했다.

한 수 앞을 빠르게 내다보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캐치하는 능력.

아마 모르긴 몰라도 공모전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제이든이 제안했던 것처럼 현장 답사 위주로 스캐쥴을 짰을 것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사고의 흐름이었으니까.

물론 그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거기서 볼 수 있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일차원적인 정보들 뿐.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진은, 뛰어난 리더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진짜로 해산!”

순조롭게 다음 일정까지 픽스되자, 우진 또한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였다.

공모전 덕에 해가 질 때까지 학교에 있었으니, 이제 작업실에 가서 석현과 함께 밤새 모형을 만들어야 할지도 몰랐다.

‘하, 배도 고픈데. 작업실에서 피자나 시켜 먹을까?’

그런데 잠시 후.

먼저 짐을 싸고 기다리던 소연이, 과실을 나서려던 우진을 불렀다.

“저기, 오빠.”

“응?”

“그……. 답사 말이야.”

뭔가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머뭇머뭇 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젓는 소연.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뭐야, 무슨 일인데?”

“아냐.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다음에 다시 얘기할게.”

“……?”

우진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뭔가 소연의 얼굴이,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으니까.

‘뭐지? 얘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물론 눈치 없는 제이든은 여전히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말이다.

“우진, 이제 공모전 팀플 끝났으니까,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맥스하자!”

“무슨 소리야. 나랑 같이 작업실 가서 모형 만들어야 한다니까?”

“Shit! 모형! 젠장, 괜히 한다고 했어!”

갑자기 어색한 표정이 되어, 빠른 걸음으로 교정을 나서는 소연.

끊임없이 구시렁거리면서도, 우진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멀대.

그렇게 그들의 첫 번째 공모전 팀플은, 묘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 * *

공모전이라는 새로운 일거리까지 생긴 탓에, 그렇지 않아도 빡빡하던 우진의 일정은 더더욱 빼곡해졌다.

자신 있게 일거리를 따오겠다던 김진태가 알짜배기 시공일도 두어 개 물어왔으며.

기말이 다가옴에 따라 학교 전공 수업들도 점점 더 빡빡해졌으니 말이다.

우진은 이 일정을 전부 다 소화해 내고 있는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나……. 졸업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업이 잘 풀린다고 해서, 바쁜 학업이 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진은 학교 수업에서도,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부분들을 배우고 있었으니까.

특히 최근 수업에서 가장 고무적이었던 것은, 디지털 공간 그래픽에서 배운 랜더링(Rendering)기법.

랜더링은 3d로 만들어 낸 모델링 파일에 질감을 입히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었고.

이것은 우진이 전생에서도, 전혀 배워보지 못했던 분야였으니 말이다.

‘모델링으로 실사 같은 화면을 어떻게 만드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런 방식이었구나.’

랜더링을 높은 퀄리티로 뽑아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설정값들과 기능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본질 자체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3D공간 안에 모델링을 완성한 뒤, 만들어진 모형의 모든 표면에 각각 들어갈 질감을 설정해 준다.

금속이나 유리. 거울 같은 질감들은, 빛의 반사율과 색상, 투명도 등을 설정하는 것으로 질감을 만들 수 있었으며.

나무나 석재, 대리석같이 패턴이 있는 질감들은, 2D에서 해당 질감을 그려낸 뒤 모델링의 표면을 따라 교묘하게 그것을 적용 시키는 방식으로 질감을 만들 수 있었다.

업계에선 ‘Mapping’이라 칭하는 작업.

그리고 이렇게 모든 질감이 세팅이 되고 나면, 3D 공간 안에 빛을 설정한다.

그 빛은 인조 조명이 될 수도 있고, 프로그램에 의해 구현된 태양광이 될 수도 있다.

해서 그 모든 설정값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수록.

랜더링으로 만들어진 3D모델링 컷은, 더욱 실사에 가까운 이미지로 탄생된다.

‘앞으로 WJ 스튜디오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려면, 랜더링 스킬은 정말 필수야.’

건축사무소에 설계를 맡기는 클라이언트들은, 도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볼 줄 모른다.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 것.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고 일을 따내기 위해선, 디자인 된 결과물을 직관적인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디자인한 대로 시공되면, 이런 공간이 나올 겁니다.’라고 얘기하며, 실제 시공된 사진처럼 퀄리티 높고 아름다운 가상의 공간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모델링만으로도 어느 정도 느낌은 낼 수 있겠지만, 제대로 랜더링 된 이미지는 아예 격이 다른 수준이었다.

단순 모델링 파일은 공간의 구조 정도를 보여줄 수 있다면.

잘 뽑힌 3D 랜더링컷을 보면, 실제로 그 공간을 시공한 뒤 사진을 찍어 가져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진은 전생에서도 기가 막히게 3D컷을 뽑아내는 능력자들을 많이 보아왔고, 항상 그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다.

‘좀 빡세게 배우면, 이번 공모전에서도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바쁜 일정 와중에도, 우진은 청담동 홍보관에 두어 번 정도 다녀와야 했다.

한번은 박경완이 천웅건설의 전무와 자리를 주선해 줘서 다녀왔으며.

또 한 번은 잊고 있던 사람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저, 서우진 대표님 전화 맞죠?]

“네. 제가 맞습니다만……. 누구신지요?”

[아, 저 지난번에 모델하우스에서 뵀던, 임수하예요.]

“아! 임수하 배우님이셨군요!”

우진이 그녀를 잊고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청약 당첨 발표가 나고 계약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연락이 없었고.

때문에 우진은 그녀가 청약에서 떨어졌거나, 계약하러 모델하우스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진이 생각지 못했던 약간의 변수가 있었다.

[글쎄, 제가 쓴 평형의 경쟁률이 1.5대 1이었는데, 떨어졌지 뭐예요?]

“1.5대 1이면, 40평대 쓰셨나 봐요?”

[맞아요. 기왕 좋은 집 계약하는 거 넓게 살고 싶어서 그랬는데……. 1.5대 1을 떨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요.]

“그럼 계약은 못 하신……?”

[아, 그건 아니예요.]

“……?”

[제가 1번 예비 당첨자였거든요.]

“아…….”

[오늘 됐다고 연락 왔어요. 그래서 이렇게 대표님께 전화 드렸잖아요. 휴우…….]

아파트 청약시스템은, 정해진 당첨자 외에도 예비 당첨자를 일정 퍼센트만큼 더 뽑는다.

당첨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약하지 않는 경우가 꽤나 많았으며.

심지어는 ‘설마 되겠어?’ 라고 생각하며 묻지 마 청약을 넣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때문에 계약 날 오지 않는 당첨자들은 조금씩이라도 분명 있었고, 그때 계약되지 않은 물량은 예비 당첨자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계약 날짜가 지나 뒤늦은 타이밍에, 임수하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고 말이다.

[저, 몇 시쯤 찾아가면 대표님 계실까요?]

“아, 저는 오전에 있을 겁니다. 그때 오실 수 있나요?”

[아, 네! 그럼 내일 오전에 갈게요.]

“옙,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배우님.”

[고마워요 대표님!]

그리고 임수하의 전화를 끊은 우진은, 기분 좋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그녀의 번호를 손에 넣었고.

그가 계획한 대로, 확실히 인맥으로 만들 기회를 잡았으니 말이다.

‘기왕이면 배우님 빨리 성공하셔서, 별장 한 채 지어달라는 의뢰라도 주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우진이 알기로 임수하는, 조만간 예능 위주로 섭외되면서 인기를 순식간에 얻게 된다.

그 정확한 시점이 언젠지는 기억나지 않았고, 공모전이 그랬듯 미래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성공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우진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방송 쪽 인맥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장기적으로 WJ 스튜디오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도, 부동산과 관련된 예능 및 프로가 많이 생겨나게 될 테니 말이다.

매체를 타고 한 번에 큰 인지도를 쌓을 수 있다면, 그것은 WJ 스튜디오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었다.

“후우, 배우님 전화 없어서 좀 아쉬울 뻔했는데……. 이쪽도 결국 잘 풀렸네.”

한층 기분이 좋아진 우진은, 달력에 새로운 일정을 표시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목요일 오전에 홍보관에 갔다가 오후 수업 듣고 나면…….’

우진의 시선이 금요일 달력으로 향했다.

어느새 SPDC공모전의, 두 번째 팀플 날이 돌아왔으니 말이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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