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첫 번째 공모전
공모전 발표가 난 바로 다음 날.
우진의 팀원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두 팀원의 성화가, 생각보다 더 강력했으니 말이다.
“헤이, 우진! 빨리 빨리 좀 다니라고! 벌써 30분이나 기다렸잖아.”
“네가 30분 일찍 왔으니까 그렇지.”
“소연! 우진이 너무 게으른 것 같아. 혼내줘.”
“동의해. 좀 혼나야 되는 오빠야.”
“…….”
의외로 죽이 잘 맞는 제이든과 소연을 보며, 우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분명 평소에 과실에서 제이든을 만나면 시끄럽다고 잔소리를 해 대던 소연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팀플이 시작되자 동맹을 맺어버린 것이다.
추측컨대, 공공의 적을 우진으로 설정한 듯 보였다.
“후, 바보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작업이나 시작하자.”
“제이든은 천재야. 여기에 바보는 우진뿐이라고.”
“절반 정도는 맞는 이야기네.”
“게다가 나랑 소연은, 이미 30분 전부터 열심히 회의 중이었지.”
“맞아, 맞아.”
만나자마자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제이든 탓에, 팀에는 활기가 조금 과할 정도로 넘쳐흘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우진까지 노트북을 펼치고 회의가 시작되자, 세 사람은 모두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일단 둘이 했던 얘기를 먼저 좀 들어볼까?”
우진이 운을 떼자, 제이든이 신나서 먼저 자신의 아이디어 스케치들을 펼쳤다.
“자, 이것 봐 우진.”
“그게 뭔데?”
“내가 디자인한, 요양원의 파사드(Facade)야.”
“으음……?”
소연도 옆에서 맞장구치며 거들었다.
“맞아. 내가 디자인의 컨셉을 짰고, 제이든이 그 컨셉에 맞춰서 아이디어 스케치를 했어.”
제이든이 말하는 파사드란, 외부에서 보이는 건물의 정면 디자인을 얘기한다.
한눈에 봐도 제법 멋들어지는, 제이든의 감각적인 스케치.
제이든은 마치 주인이 던진 공을 물어온 강아지마냥 눈을 반짝이며 우진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고.
소연 또한 기대하는 표정으로 우진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둘을 보며, 우진은 헛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흐음……. 컨셉이 뭔데?”
우진의 그 물음에, 컨셉을 구상했다던 소연이 재빨리 설명을 시작하였다.
“포근함과 안락함. 하늘의 구름처럼, 뭉글뭉글한 질감이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조형감을 살린 거지.”
“오호.”
우진이 소연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 스케치를 살펴보는데, 제이든이 옆에서 슬쩍 끼어들었다.
“하지만 곡선으로 만들어진 건축물 외관은, 시공도 어렵고 비효율적이잖아?”
“그렇지.”
“그래서 레고처럼, 작은 육면체를 하나의 모듈로 만들어서 전체적으로 곡선의 느낌이 나게 배치했어.”
건축에서 모듈화란. 특정 구조를 하나로 묶어, 패턴화하여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서 제이든이 그려낸 아이디어 스케치에는, 육면체들이 아래위로 출렁이며 이어 붙어 부드러운 곡선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진 또한, 이 스케치가 제법 멋지다고 생각하였다.
‘조금 맹 해 보이긴 해도, 어쨌든 미래의 스타 건축가라는 건가?’
그러나 제이든의 스케치가 멋진 것과는 별개로, 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생각할 때는 지금, 디자인의 프로세스가 틀렸기 때문이었다.
“자, 제이든. 그리고 소연이.”
“응?”
“……?”
“멋지고 그럴 듯하고 다 좋은데, 지금 우리는 순서가 틀렸어.”
“What?”
조금 우울한 표정이 된 제이든을 향해,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조형물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거잖아. 그렇지?”
이번에는 소연이 대답하였다.
“맞아. 그렇지.”
우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외적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게 ‘사람’이야.”
예상치 못했던 우진의 이야기에, 제이든과 소연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우진이 칭찬해주지 않았다 해서 기분이 상한 건 당연히 아니다.
두 사람이 그 정도로 유치한 사고를 가진 학생들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들은, 우진의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생각 중이었다.
“건축은……. 결국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이거든. 아무리 아름다운 건축이라도, 사람을 담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어.”
건축이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물론 이것은 우진이 생각해 낸 말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가 이 바닥에서 일 해오면서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가슴 속 깊게 남았던 문장일 뿐이었으니까.
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우린 요양원을 사용할 사람들의 삶을 먼저 이해해야 해. 요양원이 가지는 사전적 의미 정도야 우리 셋 모두 알고 있겠지만, 반대로 우리가 아는 건 그게 전부거든.”
“음…….”
소연이 침음성을 흘렸고, 우진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소스야.”
“Source?”
제이든이 반문하자,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 바로 그 Source.”
우진의 이야기는 꽤나 장황했지만, 그 얘기들이 담고 있는 본질은 어렵지 않았다.
건축물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그곳을 이용하게 될 사람들에 대해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해를 위해, 철저한 조사와 공부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진이 말하는 이야기들의 가장 큰 골자라고 할 수 있었다.
“요리를 하려고 하는데, 재료가 부족해. 그래서 어떻게든 있는 재료로 뭔가 만들어 보려니까, 밋밋한 맛이 날 수밖에 없었던 거지.”
“흐으음…….”
물론 제이든이 그려낸 아이디어 스케치는, 멋지고 그럴싸하다.
하지만 우진이 보기에 여기에는, 제대로 된 알맹이가 보이지 않았다.
소연이 이야기한 ‘컨셉’ 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단순히 요양원은 편해야한다 라는 명제에서부터 출발해 도출된 ‘푸근함’과 ‘안락함’이라는 컨셉은, 다소 뜬구름 잡는 느낌일 수밖에 없었다.
우진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 소연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빠가 말하는 요리재료라는 게, 요양원에 대한 자료조사와 사례조사가 되겠네?”
“바로 그렇지.”
제이든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뭔가 자꾸 스케치에 확신이 생기지 않았던 거였군. 분명 내 스케치는 완벽했는데 말이지.”
“…….”
어찌 보면 디자인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래퍼런스를 찾고 분석하는 일이다.
하지만 소연과 제이든은 아직 경험 없는 신입생이었고, 그래서 이런 프로세스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일 뿐.
우진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둘은 머리가 환하게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디자인을 하면서 뭔가 답답하고 막막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으니까.
“자, 그럼 이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볼까?”
우진의 이야기에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우진은 자신의 노트북을 펼치며 두 사람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우진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자, 팀플의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제이든, 네가 요양원 건축사례부터 쭉 찾아보는 게 어때.”
“Okay. 영미권 사례들 위주로 한번 분석해 볼게.”
“오, 그래. 생각해보니 제이든이 영어를 잘하니까, 해외사례들을 찾아주면 되겠네.”
그리고 다시 작업이 시작되자, 잠깐 떨어졌던 제이든의 텐션이 다시 살아나 펄떡이기 시작했다.
“What? 영어를 잘한다고? 나 영국인이야. The British!”
하여 제이든에게 사례조사를 맡긴 우진은, 이번엔 소연에게 ‘사용자 경험’에 대한 조사를 맡겼다.
“요양원은 확실한 용도가 있는 건물이야, 그렇지?”
“뭐 일단 사전적 의미를 다시 한번 찾아봤는데……. [환자들을 수용하여 요양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어 놓은 보건 기관] 이라고 되어있네.”
“맞아. 그래서 내 생각에 이번 공모전은, UX(User Experience)디자인이 특별히 더 중요할 것 같아.”
“그러게. 나도 동의해. 그 UX디자인이라는 게……. 결국 오빠가 건축에 담아야 한다고 했던, ‘사람의 삶’이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네.”
UX디자인이란.
소비자가 어떤 시설이나 서비스, 제품 등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디자인 함에 있어 1순위로 고려하는 것이다.
요양원의 경우 노쇠하여 자립해서 생활하기 힘든 노인들이, 의료보호와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설이었고.
때문에 유저(User), 즉, 노인들이 이 시설을 사용하면서 어떤 경험(Experience)을 할지.
그것을 디자인에 중점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우진이 지금 강조하는 UX디자인의 골자가 될 것이었다.
“소연이 넌, 보통 요양원에 어떤 시설들이 있고,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조사해 줘.”
“알겠어, 오빠.”
“꼭 들어가야 하는 필수시설 먼저 찾아서 픽스해 두고, 그 외 아이디어에 대한 부분들을 따로 정리해 두면 좋겠어.”
“좋아. 맡겨줘.”
소연까지 확실하게 롤이 주어지자, 먼저 자료조사를 하고 있던 제이든이 우진을 향해 물었다.
“그럼, 우진은 뭘 할 거야?”
소연 또한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우진을 응시했고. 우진은 대답 대신, 노트북에 띄워뒀던 화면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Site. 그러니까, 입지분석.”
“아하?”
“어떤 위치에 어떤 식으로 지어질지, 대지 타입이나 주변 환경을 한번 조사해 보려고.”
SPDC공모전은, 대상 수상작에 한해 실제로 건축에까지 반영하는 실질적인 건축 공모전이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 공모전 중에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시스템.
때문에 공모전의 주제가 나올 때, 해당 건축물이 지어지게 될 지적도(地籍圖) 또한 공고에 함께 명시된다.
우진이 지금 하려는 것은 그 지적도에 명시되어 있는 정보를 활용하여, 해당 입지에 지어질 수 있는 건축물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큰 규모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얼마나 높게 지을 수 있는지. 어떤 디자인이 적용되어야 주변 환경이랑 어울릴 수 있는지. 등등?”
그리고 우진의 이야기를 들은 제이든과 소연은,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진이 하려는 것은, 이 셋 중에 유일하게 우진만이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사실 다른 대부분의 팀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 교수님께 조언을 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학부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들, 실무라는 것은 경험 없이 알기 힘든 부분이 많은 분야였고.
건축법 등의 지극히 실무적인 부분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대지분석은 쉽지 않았으니까.
물론 4학년 졸업반쯤 되면, 조금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타다탁- 타닥- 탁-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자, 조용해진 과실에는 세 사람의 키보드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모두가 의욕 넘치는 상태였기에, 각자 맡은 역할에 빨려 들어가듯 집중한 것이다.
그리고 우진의 요청에 따라 한참 작업하던 소연은,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해 있는 우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 오빠는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을까?’
소연은 우진이란 존재가 너무 신기했다.
나이가 한 살 더 많다고는 해도, 결국 자신들과 다를 것 없는 신입생이었는데.
가끔 보면 정체를 숨긴 교수님인 건 아닌가 싶을 만큼, 건축에 대해 박식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진이 학교 인근에 오픈한 작업실은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제이든의 말에 의하면 거기서 건축모형을 만들어 납품한다는데, 신입생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WJ 스튜디오 어쩌고 하더니, 그게 진짜 있는 회사인 줄은 꿈에도 몰랐지. 게다가 대표라고?’
혼자 생각하던 소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특이한 오빠를 이해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