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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41화 (41/315)

41화

뜻밖의 만남

우진이 스물둘로 되돌아온 지도, 어느덧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우진은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덕분에 제법 많은 기반들을 만들어냈다.

물질적으로도 스물둘의 나이를 감안하면 충분히 대단한 성과를 일궈냈지만, 그보다 더 고무적인 것은 WJ 스튜디오라는 회사의 기반이 다져졌다는 것이다.

설립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회사에 ‘인지도’라는 것이 생기게 만들었으며, 직원들의 월급을 충당하고도 남을 훌륭한 캐쉬카우까지 확보했으니.

이것에는 우진이 벌어들인 돈보다 훨씬 더 큰 무형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스물다섯은 돼야 뭔가 기반이 잡힐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우진이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해냈다면, 그 과정에서 몇 가지 깨달은 것들도 있었다.

그 깨달음 중 가장 큰 것은,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한 통찰.

우진은 자신의 행보에 따라 미래에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그와 동시에 터무니없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확신하였다.

미래는 결국 우진이 영향을 주는 만큼만 바뀌는 것이며, 그것이 대세에 큰 영향을 주려면 우진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이번 천웅건설 프리미엄 홍보관의 오픈이 분명 건설업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온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없던 일이 생긴 것은 아니라는 것.

원래라면 클리오 아파트가 준공된 시점부터 시작되었어야 할 프리미엄 브랜드 붐이, 한 2년 정도 앞당겨진 것일 뿐이니까.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를 이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맹신하면 안 되겠어.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점점 더 성장할수록……. 미래가 바뀔 수 있는 여지는 점점 더 커질 테니까.’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고들 속에서, 우진은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오직 그만이 가지고 있는 미래의 경험들을 통해 선험적 통찰력을 키운다면, 그가 새롭게 다가올 미래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것은 우진의 결론이자 목표가 되었으며.

그렇게 우진이 가지고 있던 막연한 꿈은,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우진조차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하나 발생하였다.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사소한 미래 때문에 말이다.

“네? 부장님. 그게 정말이에요?”

[내가 그럼 너한테 거짓말이라도 하겠냐?]

“59타입부터 114타입 까지, 싹 다 완판이라고요?”

[그래, 짜샤. 진짜 말 그대로 대박 났어. 인터넷에 타입별로 경쟁률 뜬 거 못 봤냐? 그 덕에 윗선에서도 아주 입이 귀까지 걸렸다고.]

“…….”

[전무님께서 너 한번 만나보고 싶으시다는데, 시간 언제 낼 수 있냐?]

박경완과 통화 중이던 우진은 잠시 벙찐 표정이 되었다.

경완이 말한 것처럼, 대박이 맞았다.

스물두 살짜리 신생업체의 대표가 천웅건설 전무와 만날 기회가 생긴 것도 대박이었으며.

미분양 예정이던 클리오 아파트가 완판에 가까운 성과를 거둔 것도 대박이 맞았다.

‘그래, 대박이지. 정말 대박인 건 맞는데…….’

우진의 입에서 왜인지 모를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아니, 좋은 소식 전해주려고 전화했더니, 한숨은 대체 왜 쉬는 겨?]

“좋긴 좋은데…….”

[좋은데?]

“계획에 좀 차질이 생겨서요.”

[무슨 계획?]

“클리오 미분양 나면, 59타입이나 84타입으로다가 한 세 채 정도 주워 담으려고 했거든요.”

휴대폰 너머로, 박경완의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미친 꼬마 놈.]

그는 우진의 말이 결코 장난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어처구니없는 목소리였다.

“남은 거 진짜 하나도 없어요?”

[50평대 다섯 채 정도 남은 것 같던데, 그거라도 가져갈래?]

“음……. 그거라도 해야 하나…….”

바뀐 미래와 관계없이. 마포 클리오 프레스티지 아파트의 프리미엄은, 앞으로 수직 상승 할 것이다.

우진이 미래를 바꿨다고 해서, 기존에 아파트가 가지고 있던 미래가치가 바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해서 우진은 정말 있는 자본 싹 다 끌어모아서, 미분양분 딱 세 채만 계약하려고 계획했었다.

전생에서도 분명 분양 후 한 달이 넘도록, 미분양분 소진이 되지 않았던 아파트였으니.

미래가 바뀐다고 해도 우진이 계약할 몇 채 정도는 남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진이 홍보관을 너무 기깔나게 뽑아내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청약 경쟁률이야 전생에서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투자자가 아닌 실수요자 위주로 구성된 당첨자들이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계약해버린 탓에 말이다.

천웅건설 실무진들도 믿기 힘들 정도의, 말도 안 되는 계약률.

‘하아, 쭉 들고 갈 거면 50평대 받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나한테는 지금 당장 자금 유동성이 더 중요하니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우진이, 전화통에 대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 부장님. 50평대는 아무래도 포기해야겠어요.”

[그래. 네가 여길 아무리 좋게 봐도, 아현동에 50평대라니. 그건 좀 과하지.]

“사실, 별로 안 과해요. 이거 완공 시점에 최소 네 장은 붙을 거라 봐서요.”

[응……?]

네 장이 붙는다는 우진의 말은, 프리미엄으로 4억이 더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을 이해한 박경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야, 여기서 네 장 더 붙으면, 거의 13억이야 13억. 아현동 아파트를 누가 13억 주고 사.]

“좀 더 기다리면 15억까지도 올라요 그거. 부장님 집 옮길 생각 있으시면 한 채 주워가세요.”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우진의 말에, 박경완은 잠시 말을 잃었다.

15억이라면 무려 분양가의 1.5배가 훌쩍 넘는 액수.

게다가 분양권 투자에 들어가는 실질적인 투자금은, 분양가의 10퍼센트에 불과하다.

9천만 원을 투자해서 6억이 오른다면, 투자금 대비 수익률이 600퍼센트가 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얘기했다면 그냥 농담으로 치부해버렸겠지만, 말을 꺼낸 놈이 우진인 게 문제였다.

경완은 우진이 분양권 투자를 활용해서 어떻게 자본금을 만들었는지,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이놈, 진심인 것 같은데.’

게다가 우진이 말하기 전에도, 박경완은 클리오 아파트에 조금 혹해있던 상태였다.

클리오가 지어질 아현동은, 종각역 인근에 있는 천웅건설 본사와도 제법 가까운 거리였으니까.

[그렇게 오를 게 확실하면, 너는 왜 안 하는데?]

“실거주로 생각했으면, 저도 망설임 없이 질렀을 거예요.”

[뭐?]

박경완의 입에서 다시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보통의 이십 대 초반이라면, 주거는 그냥 부모의 선택을 따라다니는 시기다.

그런데 50평대 아파트를 두고 실거주 운운하며 이야기하니, 기가 찰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물론 박경완의 반응과 별개로, 우진은 할 말을 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 이제 막 사업 키우고 있잖아요?”

[그렇지.]

“대형평수는 환금성 떨어져서, 아무래도 들고 가기 부담스럽네요. 여차하면 분양권 상태로 팔 수 있어야 하는데, 완공 전까지 제값 받긴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음…….]

좋은 소식 전해준다며 신이 나서 우진에게 전화했다가, 어느새 부동산 투자 상담을 받는 박경완.

“부장님, 애도 셋이잖아요? 여기, 본사랑도 가깝고.”

[그……렇긴 해.]

“제가 부장님 입장에서 여력 된다고 치면, 망설임 없이 바로 계약합니다.”

[그 정도야?]

“혹시 로얄층도 남은 거 있어요?”

[하, 하나 있는 것 같긴 한데…….]

“뭐 하세요, 빨리 끊고 그거나 잡으러 가세요.”

[이, 일단 끊는다?!]

뚝-

경완과의 전화를 끊은 우진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귀여운 아재라니까.”

경완은 우진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주변인들 중 하나였다.

장기적으로 천웅건설의 중진이 되어 천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였지만.

어느새 인간적으로도 무척이나 친밀해졌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투자하려고 했던 자금이 살짝 떠버리는데…….”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던 우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법인에 넣었던 차입반환과 추가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인해, 지금 우진의 통장 잔고는 3억 정도.

통장에서 놀고 있는 돈들에게 어떤 일을 시켜야 할지, 우진은 열심히 고민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다녀왔…….”

그런데 집 현관 안으로 들어선 우진은,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귓전으로, 통화 중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아……. 네에, 형님.”

“그럼요, 이제 우진이 학교도 보냈으니, 형님께 빌린 돈부터 최대한 빨리 갚아드려야죠.”

“아, 돈이 좀 급해지셨구나……. 알겠어요. 제가 어떻게든 이달 안으로는 마련해서…….”

“이자요? 당연하죠.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대로, 몇백만 원 정도는 더 넉넉하게 얹어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던 우진은,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크게 한 번 맞은 기분이었다.

‘젠장, 서우진 이 멍청한 놈……!’

우진은 어머니와 통화 중인 사람이 누군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큰고모겠지.’

아버지는 기획부동산에 사기를 당한 이후, 고모에게도 꽤나 큰돈을 빌렸었고.

어머니께서 형님이라고 칭하며 돈 이야기를 할 만한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전생에서도 우진 모자와 사이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큰고모.

‘아빠가 고모에게 빌렸던 돈이, 대충 육천 정도였었나?’

아마 이제 남은 액수는, 많아야 이삼천 정도일 것이다.

어머니는 항상, 은행의 빚보다 지인의 빚부터 먼저 갚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의 액수는, 지금의 우진이라면 어렵지 않게 털어버릴 수 있는 돈.

때문에 우진은,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챙긴답시고 박경완에게 오지랖을 떨어놓고는, 정작 그에게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아, 불효자식도 이런 불효자식이 없구나.’

물론 우진이 도와드리지 않더라도, 몇 년 내로 어머니께선 모든 빚을 갚아내실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자산가치만 놓고 보자면, 어머니의 빚을 갚아드리는 대신 다른 곳에 투자해서 돈을 더 불리는 것이 맞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모든 상황을 떠나서.

당장 어머니의 어깨에 얹힌 짐을 덜어드리는 것이, 그 어떤 물질적 가치에 우선하는 것이다.

적어도 우진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진은 어머니가 계신 방문을 두들겼다.

“저예요, 어머니.”

“엇, 우진이 언제 왔니?”

그리고 그 길로 그녀의 앞에 앉아, 언젠간 했어야 할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하였다.

“잠깐, 시간 되시죠?”

“그래, 뭐 엄마가 이 시간에 바쁠 게 뭐가 있겠니.”

“제가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

“응……?”

방 한켠에 대충 가방을 풀어 둔 우진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회귀’라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일들을 전부 풀어놓은 것이다.

“어쩌다 보니 제가 좀 잘 풀렸는데, 바빠서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어요.”

“우진이 너, 어디서 못돼먹은 짓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엄마 아들, 그런 사람 아닌 거 아시잖아요.”

어머니는 제대로 믿는 눈치가 아니셨지만, 우진은 차분히 설명하였다.

하여 결국 우진의 말이 전부 끝났을 때, 그녀는 아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고.

거짓이라기엔 우진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너무 사실적이었으니까.

“집에 남은 빚, 다 합해서 얼마예요?”

“그게…….”

“괜찮아요, 엄마. 엄마가 편해지셔야, 저도 더 마음 놓고 계속 일하죠.”

그저 번듯한 대학에 다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녀를 행복하게 해줬던 아들이었건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렇게 훌쩍 자란 아들을 보며, 주희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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