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35화 (35/315)

35화

시공(施工)

강남이 부촌으로 부상한 이후.

청담동은 그 강남 안에서도, 항상 럭셔리의 이미지를 확고히 가진 동네였다.

때문에 서울 내 여러 군데 존재하는 천웅건설의 홍보관 중, 프리미엄 브랜드 홍보관의 위치가 이곳 청담으로 정해진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자, 자재 들어갑니다!”

“3층 상담관부터 먼저 공사해야 하니, 세팅된 품목들 전부 화물 엘베로 넣어 주세요.”

“컴프레셔! 컴프레셔도 올려줘!”

땅- 땅-!

천웅건설의 청담 홍보관 위치는, 청담역에서 도보로 5~6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게다가 고급 주거단지 안쪽에 근린공원까지 끼고 있는 위치였기에, 프리미엄 브랜드 홍보관으로는 최상의 입지라고 할 수 있었다.

대로변의 소음조차 잘 들리지 않는, 고급스럽고 고즈넉한 위치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조용했던 이 근방이, 최근 들어 시끄러워졌다.

“오늘 내로 3층 뼈대는 전부 다 칠겁니다.”

“곧 ‘전기반’ 들어올 거야! 그전에 빨리 각목부터 다 때려 박아!”

몇 달 전 천웅건설에서 성수동에 분양한 ‘CW성수’라는 이름의 고급 오피스텔 홍보관으로 쓰인 이후.

천웅건설의 청담 홍보관은, 오랜만에 공사 중이었으니 말이었다.

“반장님. 저희가 아무래도 양반은 못 되나 봅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 지금 들어가는 거 어떻게 알았대.”

장비를 챙겨서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던 김관홍은, 경력 10년이 넘은 배테랑 전기공이었다.

목공으로 따지자면 김진태와 비슷한 수준의, 반장급 기술자인 것.

하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목공과 달리, 전기반은 대부분 소수정예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기공사의 특성상 사람이 많이 투입되어 봐야, 효율적인 시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해서 홍보관에 전기공사를 위해 들어온 인원은, 반장인 김관홍을 포함해 총 셋뿐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예상보다 공사 규모가 제법 큰데요?”

“그러게. 홍보관 인테리어라기에 전기는 별로 할 거 없을 줄 알았는데……. 내벽을 다 뜯어버렸잖아?”

보통 건설사의 홍보관은, 신축 분양하는 단지의 모델하우스로 거의 쓰인다.

때문에 인테리어를 변경한다 해도, 사실 규모가 큰 공사는 많지 않았다.

애초에 용도가 같기 때문에 구조가 바뀔 일이 없었고, 그 말은 곧 마감재 공사가 거의 전부라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해서 오늘 청담 현장에 나온 김관홍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 나오듯 걸음 한 것이었다.

반나절 안에 필요한 전기공사 전반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일찍 퇴근하여 소주라도 한잔할 생각으로 말이다.

어지간한 일일 공사는 한나절 안에 야리끼리 치는 김관홍이었기에, 그리 비현실적인 계획도 아니었다.

적어도 실제 현장을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 관홍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후. 잘못하면 오늘 하루 꼬박 여기 박혀있어야겠는데?’

3층 현장 곳곳에 각목으로 세워진 뼈대를 보며, 김관홍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통 벽체가 들어서면 그 안에 전기도 같이 들어가야 했으니.

배테랑 기술자인 김관홍으로서는, 대충 구조 잡힌 것만 봐도 견적이 나오는 것이다.

“야, 잘못 걸린 것 같다.”

김관홍의 말에, 그와 함께 온 조공 박경필이 울상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반장님. 이 정도면 어지간한 오피스보다 빡센 것 같은데…….”

“끄응.”

하지만 현장이 빡세다고 해서, 이미 계약된 건을 도로 물릴 수도 없는 노릇.

김관홍은 오늘 이 현장을 총괄할 목공반장이, 실력 있는 사람이기를 조용히 기도할 뿐이었다.

‘어디서 실력도 없이 연차만 쌓은 답답한 노땅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전기공사는 결국, 후행성으로 목공작업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공사속도가 더 빠르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전선을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해서 김관홍이 아무리 일을 빠르게 잘해도 목공 팀의 실력이 나쁘다면.

연장을 쥔 채로 공사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손이 놀면서 퇴근은 못하는 그런 상황이, 김관홍이 가장 싫어하는 형태의 일터라고 할 수 있었다.

“아, 반장님 오셨습니까!”

3층에 도착하자 관홍을 발견한 한 청년이, 밝게 웃으며 다가와 그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관홍은 이 청년을 알고 있었다.

‘우진. 서우진이라고 했던가?’

그에게 직접 찾아와서 일을 주고 갔던 것이, WJ 스튜디오의 대표라고 했던 바로 이 청년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상대가 어려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의 고용주이자 한 회사의 대표였기에, 관홍은 깍듯이 존대를 하며 그에게 마주 인사하였다.

물론 우진의 나이가 20대 초반일 것이라고까지는, 생각지 못했지만 말이다.

“서 대표님, 계셨군요. 조금 일찍 도착하기는 했는데, 바로 시공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반장님. 그렇지 않아도 골조시공 끝내놓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관홍은 이 우진이라는 청년이, 대표로서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몰랐다.

그저 일을 받은 것뿐, 우진에 대한 설명까지 따로 들은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다음 순간, 그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 같더군요. 하핫. 그럼 혹시, 목공반장님 좀 모셔주실 수 있겠습니까? 작업 전에 전반적인 브리핑 좀 듣고 싶어서 말입니다.”

목공반장을 데려와 달라는 그의 이야기에, 우진이 불쑥 자신을 가리켰으니 말이다.

“뭘, 멀리서 찾으려 하십니까.”

“예?”

“브리핑은 제가 해드릴 겁니다. 일단 오늘 목공작업 총괄은, 제가 맡고 있으니까요.”

“……?!”

평정심을 잃은 김관홍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뭐? 농담하는 건 아니겠지?’

나이, 경력만 많고 실력은 없는 꼰대 반장과 일할 것을 걱정했건만.

반대로 나이조차 어린 애송이가 목공반장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는 쉽게 어떤 상황이나 사람에게 편견을 갖는 부류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후우. 당장이라도 일 못하겠다고 박차고 나가야 하나? 대체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당황하여 귓불까지 빨개진 관홍을 보며, 우진은 그가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진은 무시했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변명 같은 말을 꺼내는 것보다는,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하고 명확했으니 말이다.

척-

관홍의 앞에 실시설계 도면을 펼친 우진은, 붉은 형광펜으로 능숙하게 표시하며 작업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하나씩 차곡차곡 치고 나갈 겁니다.”

“…….”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업하기 위해서, 목공 1팀은 판재들을 한쪽만 덧대면서 지나갈 겁니다.”

“나머지 한 팀이 우리 뒤를 따라오면서 뚜껑을 덮는다는 거겠죠.”

“바로 그렇습니다.”

우진의 설명을 듣던 김관홍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평정심이 찾아왔다.

‘흐음. 그래도 아주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은 아닌 건가?’

작업 설명도 요점만 짚어서 간결하게 잘 정리해 주었으며, 무엇보다 그가 효율적인 시공방식을 잘 알고 있어 보였으니 말이다.

‘그래. 시공능력이 좀 떨어져도, 답답하지만 않으면 해볼 만해.’

우진의 작업설명은, 대략 십 분 정도 안팎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김관홍의 질문 몇 개가 이어진 뒤, 전기공사가 시작되었다.

“바짝 따라붙으셔야 합니다. 늦어도 다섯 시 즈음엔 작업 끝내고, 퇴근시켜드리는 게 제 목표니까요.”

자신감 넘치는 우진의 말에 관홍은 다시 어이가 없어졌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제발, 말씀대로 부탁드립니다. 설마 전기공사가 목공을 못 따라가겠습니까?”

우진은 웃으며 농담조로 반문하였다.

“못 따라오던데요?”

“어지간히 초짜였나 봅니다.”

관홍은 작업준비를 하는 우진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며, 속으로 단단히 벼르기 시작하였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제대로 한번 갈궈 봐?’

관홍이 갈군다는 것은 별 게 아니다.

최대한 빨리 우진의 작업에 따라붙으며, 더 빨리 작업하라고 압박하는 것.

한 성격 하는 그는 목공반장과 기 싸움이 붙을 때마다 이런 방식으로 상대의 콧대를 눌러줬었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다른 목수들 앞에서 망신 한 번 당해봐야…….’

하지만 막상 작업이 시작되자, 관홍은 생각했던 계획을 전혀 실천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기회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일지도 몰랐다.

“선태 님, 왼쪽으로 3미리만 더!”

“스톱!”

탕- 타탕-!

“오케이! 사포질은 조금 있다가 하고, 다음 섹터!”

톱날과 전동드릴에 전자 각도기라도 붙여놓은 것인지, 우진의 작업속도가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뭐야? 제대로 작업하고 있는 거 맞아?’

분명 관홍과 그의 조공은 여느 때 보다 더 빠르게 작업을 쳐내고 있었건만, 도저히 따라붙을 수 없는 우진의 작업속도.

심지어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작업 된 벽체나 구조물의 퀄리티가 놀랍도록 깔끔하고 정확하다는 것이었다.

‘미친. 엄마 뱃속에서부터 목수질만 했나……!’

하지만 자존심 강한 관홍은, 우진의 실력에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든 그의 작업속도를 따라가며, 큰소리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드르륵- 텅-!

“야, 경필이! 한 번에 하자고, 한 번에!”

“아니, 반장님이 너무 빨리 움직이시니까…….”

“시꺼 인마! 뒤에서 뚜껑 따라오는 거 안 보여?”

“으아아, 여기 분위기 대체 왜 이래!”

그리고 이런 별난 상황 때문인지, 홍보관 현장의 전기 작업속도는 놀라운 수준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스무 군데가 넘는 내벽 전기 작업부터 시작해서, 수십 개의 LED조명과 할로겐들이 붙을 천장 전기 작업까지.

느긋하게 하면 이틀도 넘게 걸릴 작업을, 오후 한 타임 만에 싹 다 끝내버린 것이다.

“헉, 헉. 끝났습니다, 반장님!”

“후우, 이제 남은 파트 없지?”

“그런 것 같아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현장을 돌아본 관홍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자존심 때문에 무아지경으로 일을 하다 보니, 그가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작업량을 소화해낸 것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이쪽 파트는 내일 작업 분량이었던 것 같은데…….’

관홍은 벽에 간이로 걸린 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17:25]

본래 생각했던 퇴근시간인 저녁 6시까지는 아직 30분 정도가 남았지만, 왠지 모르게 억울해졌다.

‘생각해보니 야리끼리로 치면……. 대충 한 시간 전쯤 퇴근할 수도 있었잖아?’

뭔가 우진의 계략(?)에 말려, 노동력을 착취당한 느낌이랄까.

‘젠장!’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홍은, 밝게 웃으며 공손히 인사하는 우진이 밉진 않았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반장님.”

“서 대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물론 미운 것과 ‘얄미운’ 것은, 조금 다른 종류의 얘기였지만 말이다.

“작업량 충분히 채우셨으니, 시간은 좀 남았지만 먼저 퇴근하시지요.”

“거참. 그렇지 않아도 퇴근하려 했습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처럼 필요 이상으로 하진 않을 생각이요.”

“하하하.”

관홍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우진은 기분 좋게 웃었고, 관홍 또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같이 웃었다.

“여튼 내일 봅시다. 이런 속도로 작업하면, 전기 일정 이틀은 빼도 되겠습니다.”

조금 뼈가 느껴지는 관홍의 이야기에, 우진이 빙긋 웃으며 대답하였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시죠, 반장님.”

“억울한데 어떻게 억울해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일찍 끝나도 원래 일정대로 일당은 전부 챙겨 드릴 테니, 오늘처럼 최대한 빠르게 작업 부탁드린다는 얘깁니다.”

우진의 이야기에 관홍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날 작업을 빠르게 끝내고 야리끼리 쳐본 적은 많아도, 당긴 일정과 별개로 수당을 그대로 주는 업주는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이런 걸로 왜 거짓말을 합니까.”

수서현장에서 경완의 배려가 고마웠던 우진은, 이게 작업자 입장에서 얼마나 큰 동기부여가 되는 제안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김관홍 또한, 보통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평범한 작업자였다.

“조, 좋습니다! 그 말씀이 정말이라면……. 이틀이 아니라 삼 일도 당겨봐야죠!”

관홍의 반응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우진은, 빠르게 현장을 정리하고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오늘은 다들 여기까지 하시죠!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내일 뵙겠습니다!”

그리고 WJ 스튜디오의 시공현장은 바로 이날처럼.

하루하루 순탄하게 완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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