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수확의 달
문정동에서만 벌써 십수 년째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 씨는,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제법 알려진 실력자였다.
부동산 사장에게 ‘실력’이란, 바로 괜찮은 물건을 수급해서 제값을 받고 팔아주는 일.
길어지는 부동산 불경기에 사업을 접는 중개사무소가 속출하고 있었지만, 김 씨네 부동산이 여지껏 괜찮은 매출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흐음……. 윤 사장님이 이번 달에 괜찮은 물건 하나 잡아 달라 하셨는데……. 매물이 씨가 말랐네 씨가 말랐어.”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송파구 지도를 보던 김 씨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하지만 거의 반쯤 몸을 누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김 씨의 시선은 지도의 한 부분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분명 ○○○레이크빌……. 던지는 사람이 나올 때가 됐는데.’
그의 시선이 닿아있는 위치는, 바로 얼마 전 완판에 성공한 ‘○○○레이크빌’ 아파트가 지어질 위치였다.
고분양가 논란과 함께 분양 기간 내 결국 미분양이 되었고.
그 덕에 할인분양까지 해 가며 겨우 완판해 낸 아파트.
김 씨도 미분양분을 한 채 주워 담은 투자자였기에, 이 아파트에 대해선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프리미엄이 4천 정도 붙었나? 생각보다 많이 붙었단 말이지.’
부동산 사장일 뿐 아니라 이 문정동 토박이나 다름없는 김 씨는, 이 레이크빌 아파트의 입지가 괜찮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해서 분양가가 제법 높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할인분양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한 채 계약했던 것이고 말이다.
‘고민 많이 했었는데……. 안 샀으면 어쩔 뻔했어?’
물론 김 씨조차도, 이렇게 빠르게 프리미엄이 사천만 원이나 붙을 줄은 몰랐다.
그가 예상했던 것은, 완공 시점인 이삼 년 뒤에 오륙천만 원 정도의 차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 시책이 나오기 전의 이야기였고.
전망이라는 것은 원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법이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가 생각보다 유효했어.’
정부 정책이 시기와 맞물려 떨어지며, 2달이라는 단기간에 4천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어버린 ○○○레이크빌 아파트.
이쯤 되면 차익 실현을 원하는 투자자가 분명 나올 것이고, 김 씨가 찾는 것이 바로 그런 매물이었다.
그가 볼 때 ○○○레이크빌은 앞으로도 최소 사오천 이상 더 프리미엄이 붙을 것이었고.
이 정도 포텐이면 그의 단골손님인 윤 사장에게 소개하기에는, 충분히 괜찮은 카드였다.
본인이 한 채 더 매수하기에는 부담되는 프리미엄이지만, 적당히 추천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물건이라는 의미다.
‘흐음, 모하에서 미리 계약자 명단이라도 따놨어야 했는데……. 이거 이러다가, 이번 달 나가리 되는 거 아냐?’
지도에서 눈을 뗀 김씨는, 전면유리로 된 외벽을 통해 길가를 살펴보았다.
한가한 평일 오후였지만, 어디 손님이라도 오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하지만 곧 김 씨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길가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그의 아들뻘도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 청년 하나뿐이었다.
“쩝. 전화번호 걸어놓고 퇴근이나 일찍 할까……. 아무래도 오늘은 글러 먹은 것 같은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김 씨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오늘은 손님이 올 것 같지도 않아 보였으니, 얼마 전에 태어난 손주 놈이나 보러 갈 생각으로 말이다.
한데, 그가 뒤를 돌아 정리를 시작하고, 고작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은 그때.
짜라랑-
사무실 문에 걸린 현관 종이 울리며, 김 씨의 귓전으로 촐싹맞은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 반가운 소리를 들은 김 씨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님 응대를 위해 튀어 나갔다.
“어서 오십시오……!”
언제 한숨을 쉬었냐는 듯, 이미 만면에 영업용 미소를 띠고 있는 김 씨.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김 씨는 표정 관리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음……?’
분명 사무실의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기는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손님일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의 사무소가 있는 위치가, 대학가였으면 몰라도 말이다.
‘젠장. 그럼 그렇지. 길이라도 물어보러 들어왔나?’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김 씨의 표정은 다시 심드렁해졌고, 그런 그의 마음을 모르는 손님은 성큼성큼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손님의 입이 열리는 순간.
김 씨는 다시 한번 반전을 겪게 되었다.
“사장님, 여기 분양권 취급하죠?”
“예?”
“○○○레이크빌, 59타입 매도하러 왔는데……. 여기 잠깐 앉아도 됩니까?”
김 씨의 두 눈이 놀란 개구리의 그것처럼 커졌음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 * *
우진의 기억에 있는 ○○○레이크빌 아파트는, 사오 년쯤 뒤에 억 단위로 가격이 더 오르게 된다.
완공 이후에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좋은 입지와 시너지가 생겨 가격이 순식간에 솟아오르는 것이다.
만약 우진이 계속해서 이 분양권을 들고 간다면, 몇 년 뒤에는 어마어마한 차익을 거두게 되는 것.
하지만 우진은 오늘 분양권 두 장을 전부 다 매도하러 송파구까지 걸음 했고.
그에는 당연히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투자에는 돈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시간도 같이 묶이니까.’
우진이 파악한 시세대로라면, 지금 두 채를 매도하는 것으로 거의 일억에 가까운 차익을 남길 수 있게 된다.
할인분양으로 이득 본 천 이백만 원에, 프리미엄으로 붙은 사천만원까지.
한 채당 5천만 원이 넘는 차익을 보며, 두 채를 매도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이 두 채를 팔지 않고 사오 년 뒤까지 기다린다면, 그 차익은 다섯 배도 넘을 것이다.
완공 시점에 우진이 기억하는 프리미엄이, 대략 2억에서 3억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기다리자면, 당장 쓸 수 있는 1억이 몇 년 동안 묶여버리지.’
우진의 논리는 간단했다.
이 1억을 당장 회사에 투입함으로서 3년 내로 그 다섯 배 이상의 이득을 취할 자신이 있었으니.
미련 없이 털어버리고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답을 정해놓고 부동산을 찾아온 우진의 말은, 거의 청산유수나 다름없었다.
“한 채당 사천 이백씩 받을게요.”
“프리미엄…… 말씀이시죠, 대표님?”
“네. 만약 이번 달 내로 잔금까지 가능하다면, 한 채당 백 정도는 애누리 생각 있습니다.”
아들뻘도 되지 않는 어린 학생이었지만, 김 씨의 입에서는 바로 대표님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돈 벌어주는 사람이 상전인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변의 법칙이었다.
“사천 정도면 얼추 시세가 맞습니다, 대표님.”
“알아보고 왔으니까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김 씨에게는 다른 상전들도 많았다.
그래서 언제나 그렇듯, 약간의 조율은 필요한 법이었다.
“그런데 대표님. 물건이 층은 괜찮은데, 동, 향이 좀 마이너해서…….”
물론 그 ‘조율’이라는 것이, 통하는 상대에게나 가능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사장님.”
“네?”
“근처 부동산 아무 데나 가서 내놔도, 바로 나갈 거 알고 있습니다.”
“…….”
“사실상 마지막 거래가 피 4천인 것뿐이지, 물건이 없어서 못 팔고 있는 거잖습니까.”
“그, 그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우진의 말에, 김 씨는 당황하였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지?’
처음 이야기를 섞은 순간부터 보통내기가 아님은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시장 상황까지 빠삭하게 꿰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사천 이백에 못 팔아주시면, 다른 데 알아보러 가야겠습니다. 이거 원래 피 오천까지는 기다렸다 매도하려 했던 물건이라서요.”
“아, 아니. 대표님. 그런 건 아니고…….”
김 씨는 정말 돌아서 나가려는 우진을 가까스로 잡아 앉히고,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내었다.
그는 우진의 이 제스처가, 블러핑이 아님을 확실히 느낀 것이다.
하지만 우진을 돌려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김 씨는 결국 조금 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복비는 물건 한 채당 50만 원으로, 총 백만 원에 하시죠.”
“네? 분양가가 4억인데 어떻게…….”
“요율이야 어차피 비율 내 협의 아닙니까.”
부동산의 중개수수료는, 매매하는 물건의 일정 퍼센트로 정해진다.
아파트 같은 주거공간의 경우.
매매가격이 6억 미만이라면, 총매매가격의 0.4% 이하에서 협의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우진의 물건으로 치면, 맥시멈 한 채당 160만 원까지 중개수수료로 받을 수 있는 것.
물론 160만 원을 전부 받아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김 씨가 생각했던 금액은 100만 원 이상이었다.
“아니, 그래도 50만 원에 하는 데가 어디 있습니까?”
“왜 없습니까.”
“예?”
“어차피 매도인인 저는 제 발로 찾아왔고, 매수 대기자도 지금 널려 있는 상황인데……. 사실상 제 물건 받아서 전화 몇 통 돌리시면, 그대로 백만 원 버시는 것 아닙니까.”
우진과 대화하던 김 씨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틀린 부분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분이 꿀꿀 한 것도 사실이었다.
우진이 지금 제시한 가격은, 통상 거래되는 가격보다 낮아도 너무 낮았으니까.
하지만 고민하던 김 씨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달 매출이 워낙 저조하기도 했고, 우진의 표정이나 분위기가 너무 단호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더 실랑이를 벌여 봐야, 손해 보는 것은 자신일 게 분명했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한숨을 푹 쉬며 얘기하는 김 씨를 보며, 우진은 티 나지 않게 쓴웃음을 베어 물었다.
이렇게 몰아붙이기는 했지만, 사실 감정 상하면서까지 이득을 취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해서 채찍이 충분하다고 느낀 우진은, 이제 김 씨를 향해 당근을 내밀었다.
“대신, 사장님.”
“예?”
“제 물건, 사장님께 단독매물로 드리겠습니다.”
“……!”
“4월 동안은 아무 데도 오픈 안 하고 들고 있을 테니, 매수인 찾아서 양쪽으로 복비 받으세요.”
“정말,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김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알아보고 왔다’ 는 우진의 말에, 이미 다른 부동산에도 내놓은 매물인 줄 알았는데.
지금 우진의 제안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물건을 내놓은 것은 여기가 처음이라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매물 품귀니까, 그쪽에서 맥시멈으로 땡겨 받으세요. 그러면 사장님도 이득 아니십니까?”
원래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매도, 매수인에게서 둘 다 받는다.
그러니까 한 공인중개사가 매수인과 매도인을 전부 구해 거래를 성사시키면, 시쳇말로 ‘양타’ 를 치게 되는 것이다.
우진이 제안하는 것은 이것이었고, 김 씨의 입장에서는 썩 좋지 않던 기분이 활짝 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대로 ‘○○○레이크빌’의 분양권은 품귀였으니.
매수자를 상대할 때는, 얼마든지 높은 중개비를 제시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제가 빠르게 매수인 구해서, 정확히 사천 이백 받게 해드리겠습니다.”
단숨에 밝아진 김 씨의 표정을 보며, 우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복비를 깎기 위해서 강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그는 김 씨가 제법 괜찮은 중개사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우진이 어리다고 깔보거나 무시하지 않았으며, 딜(Deal)하는 과정에서도 우진을 속이려거나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우진은, 품속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들었다.
오늘 천웅건설과의 미팅을 위해 미리 뽑아뒀던, ‘WJ studio’로고가 박혀있는 자신의 명함을 말이다.
“사장님, 혹시 잠실동이나 신천동 쪽 매물도 취급하십니까?”
“예? 아, 예. 송파구 쪽은 어지간해선 다 하기는 하는데…….”
우진은 그에게 명함을 건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잠실나루 쪽에, 세영아파트 재건축 아시죠?”
갑자기 우진의 입에서 나온 다른 이야기에, 김 씨는 살짝 당황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뭔가 낌새를 느낀 그는 재빨리 대답하였다.
“아, 물론입니다. 물건도 몇 개 가지고 있죠.”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30평형 6억 언더로 나오는 물건 있으면, 연락 주세요. 강변 고층 매물이라면, 6억이 살짝 넘어도 괜찮습니다.”
“네?”
“물론 지금은 그런 물건 없는 거 압니다. 6월이나 7월쯤은 돼야 나올 거예요.”
“……?”
우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김 씨는, 다시 벙 찐 표정이 되었다.
사실 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신천동에 있는 세영아파트는, 최근 재건축 절차를 밟으면서 가격이 조금씩 오르는 추세였으니 말이다.
‘지금도 최하 6.5억인데, 대체 무슨 말이지?’
게다가 우진이 무슨 예언자도 아니었는데, 6월, 7월에 그런 물건이 나올 것이라 확정적으로 얘기하니.
김 씨로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김 씨의 사정이었고, 우진은 할 말만 전했을 뿐이었다.
“여튼,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매수자 연결되면 바로 전화 주세요.”
우진의 명함을 받아 든 김 씨는, 멍한 표정으로 잠시 그의 명함을 응시하였고.
[WJ studio]
[CEO 서 우진]
우진의 직함을 확인한 뒤에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표였잖아?’
젊은 청년을 올려 부를 만한 호칭이 ‘대표님’ 뿐이라 영업용으로 그렇게 부른 것이었는데, 우진의 직책이 정말 CEO로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하여 김 씨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우진을 배웅하였다.
“살펴 가십쇼, 대표님.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 씨를 향해 공손히 마주 인사한 우진은, 성큼성큼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서 역을 향해 걸어가는 그를 잠시 지켜보던 김 씨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떡방 경력 20년 동안, 이런 놈은 또 처음이구만.”
김 씨의 머릿속에, 서우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다시 떠올랐다.
노회한 투자자들에게서도 본 적 없는, 특이한 분위기와 언변을 가진 청년.
분명히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강한 어조로 던짐에도 불구하고, 우진은 끝까지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확실히 난 놈은 난 놈 같은데…….”
해서 새파랗게 어린 녀석에게 휘둘렸음에도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이 된 김 씨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무실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그렇지. 6월, 7월은 뭐야? 지가 무슨 예언이라도 한 거야?”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는 알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개월 정도 후에, 정말 그의 눈앞에서 기적(?)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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