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2살이지만,
경력은 20년찹니다.
열두 살 우진은,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여덟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일찍 철이 들어서인지.
또래 아이들보다는 진중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비교적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진에게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특별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엇, 아저씨!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오, 우진이로구나. 아저씨는 오늘도 산책을 하고 있었지.”
한결같이 덥수룩한 수염에 꾀죄죄한 작업복을 입고, 동네 골목을 거니는 특이한 남자.
우진조차도 남자를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분명 우진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였다.
언제나 그 아저씨를 만날 때면, 우진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었다.
“나 때는 말이야…….”
“그건 재미없어요, 아저씨.”
“…….”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들을 제쳐두고.
우진이 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학철’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남자는, 우진과 같은 꿈을 꾸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저씨의 꿈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집을 짓는 것이었단다.”
“우, 우와……! 저도! 저도에요!”
“응? 정말이니?”
“네!”
학철은 건축디자이너였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리 유명한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실력 있고 경력 있는, 뛰어난 디자이너였다.
적어도 어린 우진의 눈에는 그러했다.
“저는 아저씨가 부러워요.”
“으음……? 어째서?”
“아저씨는 건축디자이너잖아요!”
“그래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제 꿈이 훌륭한 건축디자이너가 되는 거거든요.”
“아하.”
“아저씨는 제가 가진 꿈을 이룬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저씨가 부러워요.”
우진은 건축디자이너라는 임학철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하지만 우진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학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단다 우진아. 오히려 이 아저씨는 네가 부럽구나.”
“왜요?”
“아저씨는 이제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는 사람이거든.”
“응……?”
“아저씨의 한계는 별 볼 일 없는 건축사무소의 디자이너지만……. 우리 우진이는 더 큰 꿈을 꿀 수 있잖니?”
“왜요? 아저씨는 세계 최고 디자이너가 되지 않을 생각이에요?”
“하, 하핫.”
이런 대화를 나눌 때면 학철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야기를 하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넋두리처럼 해주곤 했다.
“아저씨가 이전에는 30층짜리 큰 건물을 설계한 적도 있었는데…….”
“우, 우와!”
“아주 거지같이 재미가 없었단다.”
“켁. 왜요?”
“한국에서는 네모난 건물 말고, 다른 모양으로는 짓는 게 거의 불가능하거든. 아, 그렇다고 외국가면 가능하단 얘긴 아냐. 사실 아저씨도 외국은 잘 몰라.”
그렇게 매번 우진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임학철은.
언제나 한 시간이 지나면, 어디론가 사라지곤 하였다.
“다음에 또 보자꾸나, 우진아.”
“조금만 더 있다 가시면 안 돼요?”
“아저씨가 보기보다 바쁜 사람이라 미안하구나.”
“피…….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그리고 종종 동네에서 우진과 이야기하던 학철은, 어느 날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진아.”
“네?”
“아저씨는 네가, 삼십 년이 지난 뒤에도 그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에이. 걱정 마세요. 그럴 일은 없으니까요.”
“그래?”
“전 반드시 성공해서 세계적인 건축디자이너가 될 거거든요.”
“후후.”
“두고 보세요, 아저씨. 전 나중에 커서……. 63빌딩보다도 더 높고 멋진 건물을 지을 거예요.”
우진은 그날 보았던 아저씨의 그 미소를,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진이 그 어떤 어른에게서도 본 적 없었던, 해맑고 밝은 미소였으니 말이었다.
“아저씨는 네가 분명, 그렇게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생각한단다.”
“저, 정말요?!”
“지금 네가 가진 그 꿈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우진은 그때 학철이 했던 이 한 마디가.
지금껏 그가 꿈과 열정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버팀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난 지금.
우진은 그때 아저씨가 남겼던 마지막 말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부디 꿈을 잃지 말거라. 우진아.]
[삼십 년 뒤에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면……. 이 아저씨가 너에게 아주 큰 선물을 하나 주도록 하마.]
“아저씨…….”
우진은 이제 알 수 있었다.
삼십 년 전에 사귀었던 그의 ‘특별한’ 친구가, 결코 평범한 아저씨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우웅-!
깨질 것처럼 머릿속을 두들기던 두통이 점점 희석되고, 어지럽던 머리가 천천히 맑아졌다.
이어서 하얀 빛무리로 가득 찼던 우진의 시야가, 서서히 본래의 기능을 찾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어서 우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2010년 2월 15일.]
정확히 20년 전의 달력이었다.
* * *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비슷한 생각들을 하곤 한다.
‘딱 10년 전으로만 돌아갈 수는 없을까? 그럼 정말 멋지게 살아볼 수 있을 텐데…….’
‘답안지 달달 외워서 수능 전날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필요 있냐? 로또 1등 번호만 몇 개 외워서 회귀하면 인생 쫙 필 텐데 말이지.’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저 행복한 상상으로만 남겨둘 뿐.
정말 지나간 로또 번호나 수능 답안지 따위를 외워두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우진 또한.
그런 정상적인 범주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분명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였었다.
회사에선 평소보다 조금 더 답답한 일들이 있었고, 퇴근 후엔 조금 더 특별한 곳에 갔지만.
그뿐이었다.
단지 갑갑해진 마음에, 오래 전 행복했던 추억을 찾았을 뿐인데.
이렇게 기적 같은 일이 우진의 눈앞에 펼쳐졌다.
‘꿈인가? 그런 것 같진 않지만…….’
주변을 둘러본 우진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걸렸다.
‘적어도 쉽게 깰 것 같은 꿈은 아니라 다행이야.’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정말 2010년이 맞는지.
그것은 굳이 확인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지금 우진이 눈을 뜬 이 공간이.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지금의 상황이.
2010년 2월 15일이라는 날짜를, 너무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서우진 병장님, 이제 슬슬 환복 하셔야지 말입니다.”
오늘은 바로 우진의 전역날 이었다.
마흔이 넘도록 결혼조차 하지 못했던 우진의 일생에, 가장 행복했던 날 중 하나인 전역 날.
그날의 아침을 알리는 햇살이 내무반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2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우진은 이날이 또렷이 기억났다.
‘내가 전역을 두 번 하게 될 줄이야.’
사실 전역을 두 번 한다는 경험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손사래를 칠 만한 것이었다.
우진과 같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군 생활을 두 번 했다는 얘기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깔끔하게 전역 날만 한 번 더 경험하는 것이었기에.
우진은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하, 하하.”
“왜 이렇게 느긋하십니까, 서병장님.”
우진의 맞후임이었던 김성관.
그와 얼굴이 마주친 우진은 반사적으로 20년 전과 똑같은 대사를 읊었고.
“뭐, 급할 이유가 있을까?”
성관 또한 우진의 기억과 토시 하나 다르지 않은 말을, 그를 향해 똑같이 대답하였다.
“저라면 0.1초라도 빨리 신고하고 뛰쳐나가겠습니다.”
“흐흐.”
이제 몽롱하던 감각에서 완전히 깨어난 우진은,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전생에서 건축디자이너라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사십 년이라는 세월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우진이었다.
이런 천금 같은 기회가 주어진 이상, 그는 멋지게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말 놓으라니까, 성관이 형.”
“싫습니다.”
“왜?”
“제가 지금 말 놓으면, 벌써 민간인 되신 것 같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게 뭐 어때서?”
“사실 0.1초라도 빨리 전역시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능글거리며 대꾸하는 성관을 향해, 우진은 피식 웃어 보였다.
나이는 우진보다 한 살 많지만, 군 생활 동안 누구보다 자신을 잘 따랐던 맞후임 김성관.
우진은 전생에서도 그랬듯, 성관과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성관에게 예쁜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녀와 같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결코 어떤 사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역하면 꼭 연락해 형.”
“그전에 전역이나 먼저 하시지 말입니다.”
“하, 하하.”
그렇게 우진은.
무사히 전역하여 다시 사회로 나왔다.
“충성! 병장 서우진,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그것으로 우진의 두 번째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 * *
전생의 우진이 결국 디자이너가 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치명적인 이유는, 역시 학벌이었다.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온 우진의 집안 사정은 넉넉지 않았고.
그래서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학을 가지 않았었다.
심지어 국내에서 디자인으로 손꼽히는 대학에, 일찌감치 수시 합격통지까지 받아 놓았는데도 말이다.
어머니는 본인께서 어떻게든 갚아 주시겠다며, 학자금 대출을 받으라 권하셨지만.
나이에 비해 일찍 철이 든 우진은, 어머니를 더 이상 고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땐 몇 백 만원 빚진다는 개념 자체가……. 정말 그렇게도 싫을 수가 없었지.’
처음에는 등록금이 아까워, 입학을 보류하고 군대에 먼저 들어갔었다.
전역 이후에는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건축사무소를 전전하며 노가다를 뛰었었다.
말이 좋아 건축사무소지, 사실상 노가다 현장이나 다름없는 곳.
그러다 보니, 결국 대학의 문턱은 끝까지 밟아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우진이 전생에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한이자 후회였다.
어릴 때는 알지 못했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으니까.
‘빚도 다 자산인데……. 그땐 왜 그걸 몰랐는지 몰라.’
그래서 전역신고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진이 가장 처음 한 것은.
어머니께 심경의 변화를 알려드리는 것이었다.
“어머니, 저……. 대학 가겠습니다.”
“저, 정말이니 우진아?”
“네. 군 생활 동안 많이 생각해 봤는데……. 어머니 말씀이 맞는 것 같더라고요.”
우진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그대로 눈물을 주르륵 떨구셨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눈물을 마주한 우진은, 저도 모르게 울컥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잘 생각했어, 우진아. 정말 잘 생각했단다.”
우진은 울먹임을 숨기기 위해, 목소리를 꾹꾹 눌러 대답하였다.
“대신, 어머니.”
“응?”
“학자금 대출은, 어떻게든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괜찮아. 엄마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대도?”
“싫습니다. 이것만은 저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단호한 아들의 목소리에, 어머니는 잠시 침묵하였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뒤.
그녀는 어느새 다 커버린 아들을, 천천히 끌어안았다.
“고맙다, 우리 아들.”
그렇게 우진은 회귀한 바로 그 날.
그의 마음속에 담겨있던 가장 큰 한을 풀어낼 수 있었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