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207화 (207/209)

207. 노르드빈트(3)

구륵, 구륵.

제국 근위기사단장이자 황성 최고의 기사, 진 클라크.

뭇 제국인들의 존경과 선망을 한 몸에 받던 그의 모습은 간데없이, 자신의 맞은편에는 그저 괴물이 한 마리 서 있을 뿐이었다.

“질리지도 않고 일어나는구려. 이안 단장.”

“그래야지. 암, 그래야 하고말고.”

그리고 내가 단장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빌어쳐먹을 놈아.

그렇게 덧붙였지만, 딱히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어차피 여기서 둘 중 하나는 죽을 테니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안은 다시금 자세를 바로잡았다.

“내가 이 꼴이 되어도 나름 삼촌 노릇은 제대로 할 생각이거든?”

“…….”

“알아서 할 테니 먼저 먼저 가라면서 있는 폼 없는 폼은 다 잡아놨는데, 꼴사납게 쓰러지면 쓰겠나.”

카앙-!

기습적으로 날아온 공격에 이안의 몸이 휘청거렸다.

마력을 끌어내 받아치고 있는데도 점점 눈앞이 흐려지고, 다리의 힘은 당장이라도 풀릴 것만 같다.

“통탄스럽기 짝이 없소. 이안 단장. 하늘날개 기사단의 단장이 이렇게까지 약해졌다니.”

“큭큭, 내 나이가 몇인데, 당연한 일 아니겠나.”

“…당연?”

무심하게 말하는 이안의 한 마디에 처음으로 진이 반응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카앙-!

곧바로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른 진이 정면으로 검을 내질렀다.

“어째서,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무감정하게 휘두르던 검에 처음으로 감정이 담겼다.

조롱이나 도발이 아닌,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어투.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 변화에 이안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키리릭-!

“나이를 먹는다는 건, 녹슬어간다는 것.”

얽힌 검을 풀어낸 이안이 발을 놀려 거리를 벌렸다.

그렇지만 그 거리의 이점을 살리기도 전에, 진의 발은 다시금 땅을 박차고 이안을 향해 쇄도했다.

성혈을 이용해 노화를 멈추고, 극한으로 발달시킨 다리의 각력.

그것이 저 기괴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다.

“성장을 멈춘 신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녹슬어가고, 일취월장하던 검술은 정체한 채 삭아 없어지지.”

예상하지 못한 한 수에 놀라는 것보다, 이안의 몸 속에 내재된 경험이 먼저 그의 몸을 움직였다.

“쯧……!”

세로로 검을 세워 진의 오른팔 관절부를 노리는 동시에, 뒤로 몸을 빼면서 피해를 최소화한다.

노련한 검사였기에 가능한 임기응변이었고, 대부분의 검은 여기서 틀어막힌 뒤 일합을 더 도모해야 할 터.

그렇지만.

카칵-!

이안의 동작 사이에 생겨난 작은 틈.

그것을 감지한 진은 곧바로 그사이를 파고들었다.

수십 년 전의 이안이었다면 결코 보이지 않을 틈이었다.

“기민하게 움직이던 근육은 제때 움직이지 않고, 상대의 수를 간파하던 두 눈은 안개가 낀 듯 뿌예지지.”

“맹인한테 눈 얘기라니, 지랄도 유분수지!”

카앙-!

위쪽으로 검을 쳐냈지만, 좋지 않은 수였다.

이안의 어깻죽지를 베고 올라간 진의 검.

안 그래도 출혈 때문에 정신이 희미한 상황에, 또다시 피가 쑥 빠져나가자 이안의 몸이 휘청였다.

“보시오, 이안 단장. 늙는다는 것은 이토록 비극적인 일이지 않소.”

그렇게 말한 진은 젊은 시절에서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근력도, 반사신경도, 시력도, 판단력도.

자신은 그 무엇 하나 무뎌지지 않았다.

그의 검은 아직도 성장하고 있었고, 이안과 검을 나누는 이 순간에도 강해지고 있었다.

그런 반면, 맞은편에 선 저 노인의 몰골은 어떠한가.

자신의 검을 쫓던 양팔은 말라비틀어져, 검격 한두 번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부러질 것만 같다.

자신의 수를 읽고자 총명하게 빛났던 양 눈은 멀어버려서, 동작은커녕 제 앞조차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자신을 앞서가겠다 호언장담하던 두 다리는 완전히 노쇠하여, 이젠 지팡이 없이는 걷는 것조차 힘든 몸이지 않은가.

제국 기사단 최고의 원석은 이제, 길거리 거지와 다를 바가 없는 몸으로 전락했다.

아무리 그간 쌓아온 마력이 있다 해도, 그 몸 상태로 자신을 상대로 이제껏 버틴 것이 기적이라 할 정도였다.

“그날, 난 분명 당신께 말했소. 성혈을 취하고, 함께 검의 끝을 보자고.”

“…….”

“하찮은 복수 따위는 집어치우고, 그 몸에 깃든 재능을 꽃피우자고.”

그가 본 이안은 검을 잡기도 전에 라인란트의 모든 검술을 깨우친 귀재였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대륙의 모든 검술을 몸에 익히고, 서른이 다 지나기 전에 자신만의 유파를 만들어 낸 검의 화신이었다.

끝을 모르는 재능을 지닌 채, 자신을 뒤따라오던 총명한 모습.

동생에게 가문을 양보하고 나온 이안을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진이었다.

“그런데 왜 내 제안을 거부한 거지?”

“…….”

“늙고 추한 몸으로 전락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나? 노쇠한 채 썩어가는 것이 역겹지 않았던가?”

그를 부르는 말투가 바뀐 데에 이어, 그의 목소리에서도 감정이 묻어났다.

평소의 그를 알고 있는 기사들이라면 퍽 놀라웠겠지.

그렇지만 이안은 별다른 감흥 없이 그 말을 흘려넘겼다.

진 클라크.

자신의 스승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무감정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두려웠고, 역겨웠소.”

피식 웃어 보인 이안이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한때는 저 모습을 동경했었다.

제국을 지키는 굳건한 등과,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 느껴졌던 검.

그리고 자신과 검을 나누며, 누구보다 즐거워했던 그 모습까지.

하지만.

“당신처럼 되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고.”

이젠 아니었다.

믿고 따르던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선 채, 자신과 같은 괴물이 되어달라 청하던 그 모습.

“개나 소나 다 겪는 세월이 두려워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 발버둥 치는 그 몰골이…. 너무나도 역겨웠지.”

그 안에 내재된 추악하기 짝이 없는 심리, 힘에 대한 망집.

자신의 스승은 괴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 그게 다 뭔가 싶소. 진 영감.”

그렇게 말하면서, 이안은 피로에 가득 찬 눈을 들어 자신의 맞은편에 선 적을 바라보았다.

“꼴이 참, 불쌍해서 봐줄 수가 없구려.”

“………!”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늙고 병든 주제에.

재능도 가능성도 전부 다 삭아 없어진 주제에, 마치 세상을 통달한 듯 달관한 저 모습이라니.

“……잘도 지껄이는구나.”

저 모습이 너무도 거슬렸다.

저것을 내버려 두면, 지금껏 자신이 해 온 것들이 송두리째 부정당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동료를 베고, 주군을 베고, 왕국을 베고.

강해지기 위해 모든 것을 베어낸 자신의 삶이, 통째로 부정당할 것만 같았다.

키이이이이이---!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가능한 모든 마력을 담아 그를 향해 돌진했다.

가드는 열려있고, 눈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이안의 모습.

……다른 곳을 보고있다고?

‘이안 라인란트가, 이 상황에서 한눈을 판다고?’

잠깐의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그 순간.

스륵---

처음 보는 형체가 눈앞에 나타났다.

허깨비와도 같은 흐릿한 사람의 형상.

“……!”

점점 뭉치고 응축된 그것은 검을 들어,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쿠콰아아아앙---!

한 차례 폭음이 일대를 뒤흔들었지만, 그가 기대했던 이안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라인란트의 갑주와 망토를 두른 기사.

이안의 얼굴을 살핀 진은 순간 직감했다.

방금 전, 이안은 한눈을 판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걱-!

정면으로 내지른 검이 틀어막히는 순간, 동시에 등 뒤에서 시큰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니, 등뿐만이 아니었다.

양어깨, 허벅지, 발목, 척수.

검을 휘두르는 데에 필요한 모든 신체 부위가, 마치 자로 잰 듯 정확한 각도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한순간의 시간 차이도 없이, 동시에 이뤄진 전방위 공격.

황제와 함께 수백 년을 살아온 그의 기억 속에서, 이와 같은 검술을 쓰는 검사는 단 한 명 뿐이었다.

“환영, 검……?”

전대 라인란트 공작, 루델 라인란트의 비기.

그의 죽음과 함께 실전되어, 이젠 그 누구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검.

그것이 지금, 완벽한 형태로 자신의 몸을 산산이 조각낸 것이었다.

털썩-!

마치 방금 전까지의 우위가 거짓말이었다는 듯, 진의 거체가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애써 고개를 들어 이안을 바라보자, 그의 앞을 막아선 다른 기사의 모습이 시야를 메꾸고 있었다.

“어, 떻게……!”

루델 라인란트.

환영검의 창시자이자, 제 6대 라인란트 공작.

수십 년 전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을 그가, 생전과 전혀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뭐야, 어떻게……?”

왕좌 뒤편의 고깃덩이와 완전히 동화된 멜디르.

그렇지만 녀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포위한 기사들을 보았다.

- 드디어 이날이 오는군. 황제.

제 2대 라인란트 공작.

가장 강인한 검사, 벨커스 라인란트가, 자신의 거검을 어깨에 짊어진 채 입가를 비틀었다.

- 우리 라인란트가 잠자코 당신의 농간에 놀아날 줄 알았어? 착각도 유분수지.

제 3대 라인란트 공작.

가장 아름다운 검사, 실비아 라인란트의 레이피어가 정순한 바람을 머금은 채 그를 노리고 있었다.

- 당신이 200년 동안 사람들의 피를 모았다면, 우리 라인란트는 그동안 검을 모았다는 말이지.

제 4대 라인란트 공작.

가장 빠른 검사, 지크하트 라인란트가 자신의 애검 두 자루를 늘어트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리고 지금. 영묘에 저장해두었던 검과 그 주인들이 전장에 도착했다.

제 5대 라인란트 공작.

가장 빛나는 검사, 레이폴드 라인란트가 날 없는 칼자루에 마력을 담았다.

우웅-!

순수한 마력으로 이뤄진 빛의 검이,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 번득이고 있었다.

- 그래서, 당대 라인란트 공작은 어디 갔지? 모처럼 나온 김에 귀여운 손주 녀석 얼굴이나 좀 볼까 했건만.

- 6대는 가족 상봉 중. 7대 꼬맹이 녀석은 다른 기사들과 함께 괴물들을 갈아 마시는 중이야.

- 선대 공작들이 다 모였는데 막내 둘이 빠진다니! 라인란트가 아주 거꾸로 돌아가는구만!? 크하하하하-!

- 그런가 하면, 까마득한 후손 녀석이 시조님 목을 따버리지를 않나, 내가 이래서 점집을 안 간다니까.

다들 당대에 한가락 했던 검사들이라 그런지, 성격도 말투도 제각각이다.

그렇지만 그들에 뒤이어서 나타난 면면을 보자, 어깨에 들어간 힘이 쭉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마지막까지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저 자식이랑 같은 전장에 서게 될 줄이야.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걸어 나오는 이들은, 내게 있어선 훨씬 익숙한 얼굴이었다.

“너희들은…….”

- 뭐야. 200년 지났다고 우리 얼굴도 잊어버린 거냐, 아키몬드?

붉은 수레의 기사, 로드릭.

검은 방패의 기사, 데릭.

그리고 베르켈과 얼음성을 공략했던, 열 한 명의 기사들.

- 영묘에서 니 상판을 봤을 때, 우리가 널 얼마나 씹어댔는지 모르지?

- 미친 짓이란 미친 짓은 다 하고 다니고, 우리 중 최고 선임은 데스나이트로 만들어 버리고 말이지.

- 푸하핫?! 레이븐 선배 저거 갑옷 뭐에요? 생전이랑 달라진 게 없는데?!

- 먹물 가까이 있으면 검어진다고, 원래부터 칙칙한 놈이었잖아.

- 저 목석같은 놈이랑 잘도 친해졌다. 레이븐 쟤 우리 만나기 전에는 친구도 없었는데 말이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각자의 검을 쥔 채 걸어오는 베르켈 원정대.

- 자네들은 200년 만에 만나도…. 여전히 시끄럽구만.

잠시 헛숨을 들이킨 첫 번째 기사, 레이븐이 앞으로 나서 그들을 맞이했다.

200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재회한 기사들.

베르켈의 의지가 담긴 노르드빈트가, 그들의 인사에 화답하듯 검명을 울렸다.

“뭐야, 이 녀석들이 어떻게 한 자리에……!”

“이게 바로, 베르켈 라인란트의 진짜 계획이었단 말이지.”

촤앙-!

새하얗게 빛나는 노르드빈트를 들자, 부름을 받은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들었다.

검의 영묘에서 인정받을 정도의 검술.

망자의 혼을 다루는 네크로맨서의 소양.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낼 얼음성의 연산보조까지.

베르켈이 내 영혼을 안배한 것은, 마로 이 순간을 위해서일 것이다.

“가자.”

한 마디와 함께 노르드빈트를 들어 올리자, 다른 모든 기사들이 자세를 잡았다.

“아키몬드, 도대체 뭘……!”

“불사의 존재, 무한히 재생하는 존재를 죽이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

내 말을 들은 황제의 눈이 커졌다.

불사의 존재를 죽이는 방법.

간단하다면 참 간단하지만, 지금에 와선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모든 신체 부위를 파괴하는 것 뿐이지.”

“아, 아아! 아아아아아--!”

뒤늦게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내 방어하려 했지만, 그조차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모인 것은 200년간 응축된 라인란트의 정수.

성에 있는 모든 힘을 끌어낸다 한들, 황제는 이 공격을 막을 수 없다.

쿠오오오오오-----!

얼음성을 거쳐 내게 흘러들어온 그들의 의지.

각기 다른 파장을 서로 동조시켜, 스물이 넘는 검사들의 공격을 최적의 경로로 배치한다.

“검로는 정면, 검식은 유성검.”

내 뇌를 거쳐 간 유성검의 비기가 수많은 기사의 검에 스며들었다.

수십 겹으로 동조된 마력광이 찬란하게 빛나며, 황제를 둘러싼 불결한 피와 살덩이를 천천히 녹여내고 있었다.

“이걸로, 전부 끝이다.”

짧은 한마디와 함께, 하늘 높이 치켜든 검을 내리쳤다.

수십 명의 영웅이 쏘아낸 수십 갈래의 검격이 하나 되어 거대한 빛무리가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파아아앗---!

소리도, 감각조차도 지워버린 새하얀 빛.

황제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난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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